[나의 스승, 성철]
여전히 유효한 큰스님의 ‘인재양성’ 당부불교인재원 엄상호(자봉․慈峯)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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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주 / 2015 년 1 월 [통권 제2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818회 / 댓글0건본문
바람은 차고 몸은 움츠려든다. 어깨는 좁아지고 걸음은 빨라진다. 해가 일찍 떨어지니 집으로 향하는 마음도 덩달아 춤을 춘다.
동안거(冬安居)의 계절이다. 2,200명이 넘는 수좌(首座)스님들은 화두와 한 판 대결을 시작했다. 공부에 목마른 재가불자들도 전국의 시민선원에서 정진에 동참하고 있다. ‘출퇴근’ 정진을 하는 불자들도 셀 수 없이 많다. 선지식(善知識)이 없다고 하는 시대, 대중들을 이끌 스승들이 쏟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산중은 아니지만 동안거를 맞아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도 뜻깊은 공부모임이 시작됐다. 바로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과 불교인재원(이사장 엄상호)이 함께 『백일법문』 강좌를 연 것이다.
엄상호 불교인재원 이사장
저녁이 되면서 칼바람을 뚫고 불자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강좌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열기로 강의실은 이미 뜨거웠다. 성철 스님이 ‘백일법문’을 설한지 47년 만에 “완성된 형태”의 책을 세상에 내놓은 원택 스님은 “제가 출가하기 5년 전인 1967년 동안거 백일동안 성철 큰스님께서 사자후를 하셨고, 산문에 들어선 지 40여 년이 지나 어느덧 고희를 맞는 해에 개정증보판 『백일법문』을 세상에 내어놓게 되니 감회가 특별합니다. 앞으로 개정증보판 『백일법문』이 더욱 많은 분들에게 진리를 알려주는 ‘마르지 않는 법문’이 되고, 무명을 밝혀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고 전했다.
불교인재원 엄상호 이사장님의 인사는 구체적이었다.
“제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십 년째 공부해오고 있지만, 이 『백일법문』을 읽고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이번 기회에 공부를 잘하신다면 여러분들 스스로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특히 성철 큰스님께서 수차례 강조하고 있는 중도(中道)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엄 이사장님은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불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첫 번째 『백일법문』 강의가 끝나고 날을 잡아 다시 엄 이사장님을 찾았다.
인재양성, 멀고도 어려운 길
엄 이사장님이 불교인재원 소임을 맡은 것은 초대 허경만 이사장(前 국회부의장)에 이어 2009년 7월부터다. 첫 번째 임기 3년을 마치고 벌써 두 번째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
불교인재원은 그간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해 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조계종 원로의원 고우 스님과 前 조계종 교육원장 무비 스님,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 등 선지식을 초청해 『육조단경』, 『신심명』, 『화엄경』 등을 공부했고, 또 수차례에 걸쳐 간화선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와 함께 명상교실, 주말 참선법회 등도 계속했다. 그리고 2013년부터 2년 동안 ‘성철 스님 수행처 순례단’을 조직해 순례를 성황리에 마치기도 했다.
엄 이사장님이 백일법문 특별강좌에서 인사하고 있다
엄 이사장님은 이미 오래 전에 불교인재원과의 인연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2008년 중앙신도회 고문으로 있을 때 제가 경영했던 건영그룹의 계열사 경리부에서 근무했다는 한 중년신사가 찾아왔습니다. 선친의 원력으로 설치해둔 불전함을 관리하다가 선친이 치매로 편찮으시자 그 불전함에 손을 대고 10여 년간 괴로워했다고 해요. 그러다 전남 해남에 계시던 자신의 어머님을 찾아뵙고 불전에 손을 댄 것을 고백하였고, 이에 어머니는 그 사람을 데리고 대흥사로 가서 밤샘 참회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던 중 새벽에 부처님께서 ‘돈을 주인에게 돌려주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그 사람이 저를 찾아 왔습니다. 저는 그 분이 위대하게 보였습니다. 그 신사를 참회의 길로 이끈 어머니 역시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뜻하지 않은’ 돈이 생겨 어디에 쓸 것인가를 고민하던 엄 이사장님은 중앙신도회에 그 돈을 기금으로 전달했다. 엄 이사장님이 내놓은 돈은 나중에 알고 보니 불교인재원 설립의 ‘종자돈’이 됐다.
“그 인연 때문이었는지 제2대 불교인재원 이사장 제의를 받고 거절할 수가 없어서 지금까지 지내오고 있습니다. 하하.”
2012년 3월 31일 산청 겁외사에서 열린 성철 스님 수행처 순례단 발대식 모습
엄 이사장님은 인재불사와 함께 불교와 현대과학을 접목시켜 일반대중들에게 이를 널리 알리는 일도 하고싶다는 뜻을 전했다.
“현대과학이 발전하기 전에는 불교가 일반인들에게는 미신이라는 취급을 받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과학으로 입증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학문명이 발달하면서 알고 보니 불교만큼 과학적인 종교가 없습니다. 성철 큰스님께서도 ‘백일법문’ 등을 통해 4차원 세계 등 여러 실례(實例)를 말씀하셨듯이 불교는 그 자체가 과학입니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불교와 현대과학, 천체물리학을 연계하여 대중들이 쉽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해볼 생각입니다.”
인재양성과 미래불교를 말하는 엄 이사장님의 표정은 진지했다. 애정도 묻어났다. 엄 이사장님의 이런 마음은 불교와의 인연에서부터 시작됐다.
태몽부터 남달랐던 ‘모태 불자’
“조부님과 선친께서 경북 의성의 대곡사와 인연이 되어 대대로 불자로 살아오셨습니다. 저도 불교를 믿어왔으나 처음에는 그리 마음에 와닿지 않아 천주교에 관심이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친께서는 저의 태몽을 얘기해 주셨습니다.
2012년 4월 28일 산청 대원사 순례 모습
제가 태어나기 전에 태몽을 꾸셨는데 커다란 해가 집 마당에 떠있었다고 합니다. 막대기로 해를 따려고 하자 가운데 ‘中’자가 나타났습니다. 선친께서는 그 ‘中’자가 중도(中道)를 상징한 것이라고 늘 말씀하시면서 불교를 떠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제 집사람도 저와 인연이 되려고 했던지, 달이 장인어른의 무릎에 앉는 태몽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와 달이 만난 셈이죠. 하하.
기이한 것은 대구 동화사 통일대불 불사 때도 있었습니다. 사실 통일대불 불사에도 미력이나마 힘을 보탠 뒤였습니다. 당시 대구신도회 고문이던 박찬 전 국회의원이 ‘통일대불 불사를 마무리하면서 33관음상을 조성하는데 마지막 남은 것이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다’고 알려왔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 꼭 저와 집사람과 인연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광보살상에는 저의 선친을 비롯한 가족들 그리고 월광보살상에는 장인어른을 비롯한 처가의 가족 이름을 새겨 넣었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인연’이었어요.”
엄 이사장님은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면서부터 전국에 있는 당대의 여러 선지식들을 친견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통도사에 계셨던 월하 큰스님, 석주 큰스님, 해인사 원당암의 혜암 큰스님, 前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원담 큰스님, 조계사 회주셨던 무진장 큰스님, 前 총무원장 녹원 큰스님 등께 좋은 법문을 많이 들었습니다. 또 범어사에 계시는 능가 큰스님과 원로의원 암도 큰스님, 고우 큰스님께도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신년하례 후 해인사에서 기념촬영 모습. 성철 스님 왼쪽 옆으로 박완일 회장님과 엄상호 이사장님 모습
능가 큰스님과는 몇 시간 동안 불교에 대한 문답을 주고받은 적도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와세다대학 동창인 이병철 회장과는 아무리 많이 대화를 해도 30분이면 끝나는데, 엄 회장은 그렇지 않네?’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하하.”
엄 이사장님은 과거 건영그룹을 경영할 당시 군불교 진흥회장을 맡아 군포교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또 불교방송(BBS) 창설에도 참여했다. 특히 선친과 통도사 월하 스님의 깊은 인연으로 정우 스님과 인연이 이어져 통도사 서울포교당인 구룡사 창건에 힘을 보탰다. 더불어 수도권 신도시 건설 당시 500세대 이상 1,000세대에 이르는 아파트 단지마다 유치원과 포교당을 건립하는 등 불교의 도심포교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해냈다.
엄 이사장님은 이러한 불사 못지않게 수행에도 철저했다. 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적인 불사’도 병행한 것이다.
“1986년 1월부터 매일 333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월 일만 배를 목표로 30여 년간 수행 해오고 있습니다. 몸을 청결히 하고 새벽 4시부터 50분정도 절을 합니다. 절을 마치고 다시 샤워를 하면 약 1시간 정도 걸립니다. 이렇게 해서 한 달에 1만 배를 채웁니다.
절을 하다 보니 환희심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절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복을 받고 사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또 건강은 덤으로 얻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특히나 사업을 하다보면 우여곡절이 많은데,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절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절을 마치면 아침 7시 30분에 회사로 출근해 오전에는 업무를 보고 오후에는 서예와 사군자를 10여 년째 공부하고 있다. 또 한일협력위원회의 상임이사, 건영육영재단 이사장, 영월엄씨 대종회장, 불교방송(BBS) 이사 등 주요 소임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삼천배를 하고도 성철 스님을 못 만난 사연
사실 엄 이사장님이 절을 시작한 것은 성철 스님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3년 조계종 전국신도회(현 중앙신도회의 전신) 부회장을 맡고 있던 엄 이사장님은 당시 녹원 총무원장스님을 비롯한 종단 주요 소임스님과 신도회 임원단과 함께 종정 신년하례에 참석하기 위해 해인사로 갔다. 대중들과 함께 성철 스님에게 인사를 드렸다. 듣던 대로 스님은 “눈이 이글거리는 가야산 호랑이 같은 모습”이었다. 고상한 법어를 기대했지만 성철 스님은 대뜸 “중들이 배가 나오면 안 된다.”고 했다. 수행보다 다른 일에 관심을 두는 풍토를 질책한 것이다.
말석이었지만 성철 스님을 친견한 자체가 큰 인연이었다. 그런데 가슴 한편에 뭔가 모를 “죄송한 마음”이 느껴졌다.
“일반 불자들은 삼천배를 해야 큰스님을 친견할 수 있는데 저는 삼천배도 하지 않고 뵀습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려서 얼마 후에 대구와 부산지역에 근무하는 저희 회사 불자 임원 8명과 함께 어느 날 다시 백련암으로 찾아갔습니다. 저녁부터 밤을 새워 삼천배를 했습니다. 당당하게 큰스님을 뵈려고 하였으나 시자스님이 ‘큰스님께서 갑자기 몸이 편찮으셔서 새벽에 급히 대구에 있는 병원에 가셨다’고 했습니다. 물론 아쉬웠죠. 그래도 마음의 짐은 덜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 하는 절은 엄 이사장님에게 하나의 생활이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신도회 회장단과 함께 다시 해인사 신년하례에 참석했다. 엄 이사장님의 이런 사정을 알고 있던 당시 박완일 전국신도회장이 성철 스님에게 백련암에서의 일을 말씀드렸다. “허허~” 웃던 성철 스님은 “그러면 내가 미안하니 사진이라도 찍자.”라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하여 큰스님과의 사진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유일한 사진이다 보니 저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입니다. 하하. 그 뒤 큰스님께서 부산에 오시면 저희 계열사 임원들을 통해서 가끔 모시는 인연도 갖게 되었습니다.”
성철 스님을 만나고 엄 이사장님은 본격적으로 절을 하기 시작했다. 삼천배, 1080배, 108배 등 때와 장소에 맞게 절을 했다.
시간이 흘러 성철 스님 열반 후 인연이 다시 찾아 왔다. 성철 스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수행처 순례를 하게 된 것이다. 엄 이사장님은 순례단을 구성하고 또 순례를 진행했다.
“제가 후회하는 것 중의 하나가 기업경영이 잘 될 때 불교를 위해 무언가를 하지 못한 것입니다. ‘나중에 크게 하자’는 생각에 일을 미루기만 하다가 기회를 놓쳐 버렸어요. 큰스님 수행처 순례를 하면서 대작불사를 하지 못한 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그나마 그때 불교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 갚은 것 같습니다.
제가 가본 큰스님 수행처 모든 곳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곳을 말한다면 파계사 성전암입니다. 팔공산 중턱에 있어 한참을 올라가야 했습니다. 60여 년 전에 큰스님께서 철조망을 두르고 10여 년간 동구불출(洞口不出)하셨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누구도 하지 못하는 그와 같은 수행을 하셨기에 1967년 동안거에 ‘백일법문’을 하시고 그 외 수많은 법문과 법어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주옥같은 가르침을 주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엄 이사장님은 순례 도중 성철 스님으로부터 ‘통일기도를 하라’는 무언의 뜻을 받고 지금까지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도 함께 해오고 있다.
엄 이사장님은 성철 스님의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으로 ‘중도(中道)’를 꼽았다.
“큰스님처럼 중도를 잘 설명하고 또 강조한 분이 안계시잖아요. 중도를 조금만 이해하면 정말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큰스님은 평생을 오직 진리를 위해 살다 가신 분입니다. 일체의 명예나 이익, 권세는 상관하지 않고 오직 부처님 법대로 사셨습니다. 특히나 ‘자기를 바로 보라’는 가르침은 우리 모두가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고, 자기 안에 있는 부처를 바로 보라고 가르쳐 주신 분이 성철 큰스님입니다.”
엄 이사장님은 성철 스님 뜻을 계승하는 의미에서라도 ‘인재양성’이 중요하다고 다시 강조했다.
“해인총림 방장과 조계종 종정을 하시면서 승가대학을 세워 인재 양성을 위해 노력하셨으나 그 뜻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불교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가르침을 널리 전하려면 무엇보다 인재양성이 되어야 합니다. 장학사업이나 선원, 승가대학이 다 인재 양성을 하는 것이지만 저는 재가불자들이 불교를 바르게 공부해서 가정과 사회에 기여하는 그런 인재양성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엄 이사장님은 긴 시간의 인터뷰를 무리 없이 소화했다. “매일 333배를 하는 덕분인지 몇 십 년 된 모임에 나가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항상 그대로인 것 같다는 말을 듣는” 엄 이사장님을 보면서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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