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 묵향을 더듬다]
마음을 닦아야 무한한 능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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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섭 / 2018 년 5 월 [통권 제6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139회 / 댓글0건본문
근본적으로 보와서 동정(動靜)이 불급(不及)하는(주1) 진여이지만은 동정에 다 호용(互用)되는 것임은 그 작용이 신묘(神妙)한 소이(所以)이다. 이것이 소립자(素粒子)에는 스핀으로써도 발현(發現)된 것이니 등가원리(等價原理)의 에너지 질량 가환(可換)(주2)이나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색공호용(色空互用)(주3) 등이 전혀 이 원리에 기인(基因)함을 알 것이다. 그리하여 유정(有情) 무정(無情)이 동일원리상에서 존재하며 이 원칙상에서 상호 응용이 가능함이 성립될 것이다. 과학상 결론으로 보와도 이 우주는 일체가 전부 소립자 스핀과 갓흔 에너지의 활동체이여서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대원칙상에서 상호 가용(可用)이 성립되며 따라서 물심호용(物心互用)까지도 가능케 되여 현지신행(玄知神行)(주4)의 근본원리를 파악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에너지는 또한 진여의 발용(發用)임을 재삼(再三) 확언(確言)한다. [43b]
바. 이심전심(以心傳心)
현지신행(玄知神行) 등의 일체 신묘난측(神妙難測)(주5)한 작용들이 전혀 개개 심능(心能)(주6)에 본래로 구유(具有)(주7)함은 전술한 바이다. 여기에 무한한 혜변(慧辨)(주8)과 영원한 자유가 발생되여 수모(誰某)를(주9) 막론코 노력하면은 개개(皆皆)(주10) 성취함도 알았을 것이다.
이렇한 대위력들은 상주불멸(常住不滅)하고 현묘난사(玄妙難思)한 우주만유의 근본원리에 입각하여 추호(秋毫)의 의심의 여지(餘地)도 없음을 명백(明白)히 하였다. 그리하여 우주 실체의 발현이며 개개(箇箇)(주11) 구유의 대위력을 원만(圓滿) 구비한(주12) 각자 심능(心能)의 경이적(驚異的) 사실에 입각하여 노력 수련함이 문제의 초점임도 가히 짐작할 것이다.
여기에는 언어문자 유식(有識) 무식(無識)이 전혀 상관없고 오즉 심능 수련에만 있는 것이 확연하다 [44a] 할 것이다. 그럼으로 불교에서는 이 실천방법으로 이심전심(以心傳心)(주13) 불립문자(不立文字)(주14)를 고창(高唱)(주15)하는 것이다. 즉 심능법(心能法)으로써 심능법을 전수(傳受)할 따름 언어문자는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문자에는 세간 일반 문자뿐 안이라 내지(乃至) 불교의 팔만대장경까지 배격하고 순수한 교외별전(敎外別傳)(주16)인 심능 수련에만 전력(專力)(주17)하는 것이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핵변환으로 원자에너지가 발생하듯이 수도(修道)의 최후 과정인 무심위(無心位)에서 실지로 흑암심야(黑暗深夜)(주18)에 백천일월(百千日月) 일시병출(一時並出)(주19)하는 대전환이 있어야만 각기 본구(本具)(주20)한 현지신행(玄知神行)의 위력이 발현되기 따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문자인 장경(藏經)에만 주력(注力)하면은 이는 핵변환의 설계서(設計書)만 독[44b]송(讀誦)하여 원자력을 획득하려 함과 일반(一般)이다.(주21) 실지의 시행이 없이 설계만으로는 천만 년 가도 막대한 원자력은 발생되지 않을 것이며 팔만 장경을 전부 암기하여도 실지로 심능(心能) 수련을 안흐면은 소용이 없는 것이다. 화병(畵餠)(주22)만 드러다보고 있다가는 결국은 아사(餓死)(주23)케 되는 것임으로 설식종불포(說食終不飽)(주24)라 함은 차(此)를 두고 일음이다.
심능(心能) 마련(磨鍊)이란 수선오도(修禪悟道)(주25)를 말함이다. 이 수선법(修禪法)은 불교의 간심(肝心)(주26)이어서 심전심수(心傳心受)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철칙(鐵則)에 입각한다. 석가의 십대제자 중 아난은 다문제일(多聞第一)이여서 일차(一次) 견문(見聞)한(주27) 것은 평생 불망(不忘)이다. 그리하여 석가를 일생 수시(隨侍)(주28)하여 그 설법을 전부 암기하였다가 내후(乃後)에 일대장경(一大藏經)을 송출(誦出) 결집(結集)한 사람이다. 그러나 항상 석가는 아난을 꾸지젓다. 즉 네[45a]가 설사 천만 년간 일대장경을 암송하여도 단 일일(一日)간 수선(修禪)함만큼만 못하니라. 이러케 고구(苦口) 경책(警策)한 것이다.
비단 불교뿐 안이라 세계에 있어서도 사물의 실지의 묘(妙)는 언어문자로 표현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럼으로 세인(世人)도 아모리 기묘한 서적 문자라도 이는 고인(古人) 조박(糟粕)(주29)이라 타기(唾棄)(주30)한 것이다. 자고로 철두철미한 수도인들은 진여묘리(眞如妙理)를 설파한 귀중한 성보(聖寶)인 팔만장경도 고름 딱는 휴지[一大藏敎如拭瘡疣紙(일대장교여식창우지)]로 배척하였으니 이는 오즉 실천궁행(實踐躬行)에만 진력(盡力)하여야 하는 소이(所以)이다.
이 수선(修禪)이야말로 전술(前述)한 진여증지(眞如證知)의 과정인 삼위(三位) 삼단(三段)의 실천방법이다. 그리하여 이 선법(禪法)은 일초직입여래진(一超直入如來地), 즉 한번 뛰여 곳 여래[45b]지(如來地)인 진여위(眞如位)에 직입(直入)되는 묘법(妙法)이여서 최승최고(最勝最高)의 묘법이라 한다.
이 최고의 실천법문인 선법에 의하면은 영원의 자유는 기필(期必) 성취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원한 자유의 길을 알면서도 일시(一時)의 허영(虛榮)에 사로잡혀 영원한 행복을 놋치게 되면은 참으로 통한지사(痛恨之事)이다.
주)
(주1) 동정(動靜)이 불급(不及)하는 : “움직이거나 고요함이 해당하지 않는”
(주2) 가환(可換) : 서로 바뀔 수 있음.
(주3) 색공호용(色空互用) : 물질과 허공, 또는 현상과 실재가 서로 넘나듦.
(주4) 현지신행(玄知神行) : 현묘한 깨달음의 지혜와 그로부터 비롯한 신묘한 실천.
(주5) 신묘난측(神妙難測) : 신기하고 오묘하여 사람의 생각으로는 추측할 수 없음.
(주6) 심능(心能) : 마음이 가진 무한한 능력.
(주7) 구유(具有) : 갖추고 있음.
(주8) 혜변(慧辨) : 지혜와 그 지혜에서 나오는 분별력. 또는 지혜와 언변.
(주9) 수모(誰某)를 : “어느 누구를”
(주10) 개개(皆皆) : “모두가
(주11) 개개(箇箇) : “각자가”
(주12) 원만(圓滿) 구비한 :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주13) 이심전심(以心傳心) : 불교의 핵심은 언어문자가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선종(禪宗)의 핵심 가치.
(주14) 불립문자(不立文字) : 불교의 핵심은 언어문자를 통하는 것이 아니라는 선종(禪宗)의 핵심 가치.
(주15) 고창(高唱) : 의견 따위를 강하게 주장함. ‘소리 높여 외침’으로 순화.
(주16) 교외별전(敎外別傳) : 불교의 핵심은 언어문자 등을 의지하는 경전 등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전해진다는 선종(禪宗)의 핵심 가치.
(주17) 전력(專力) : 오로지 한 가지 일에 온 힘을 다함.
(주18) 흑암심야(黑暗深夜) : 완전히 캄캄한 한밤중.
(주19) 백천일월(百千日月) 일시병출(一時並出) : 수많은 해와 달이 동시에 나타남.
(주20) 본구(本具) : 본래부터 갖추고 있음.
(주21) 일반(一般)이다 : “마찬가지이다”
(주22) 화병(畵餠) : 그림 속의 떡.
(주23) 아사(餓死) : 굶어죽음.
(주24) 설식종불포(說食終不飽) : 한산시(寒山詩)의 한 구절.
說食終不飽(설식종불포) 밥을 말해도 끝내 배부르지 않고
說衣不免寒(설의불면한) 옷을 말해도 추위를 못 면하네
飽喫須是飯(포끽수시반) 배 부르려면 밥을 먹어야 하고
著衣方免寒(착의방면한) 추의를 면하려면 옷을 입어야 하네
不解審思量(불해심사량) 깊이 생각해 헤아릴 줄 모르고
祗道求佛難(지도구불난) 다만 부처 구히기 어렵다 말할 뿐
廻心卽是佛(회심즉시불) 마음 한 번 돌리면 곧 부처이니
莫向外頭看(막향외두간) 멀리 밖에서 구하지 말라.
(주25) 수선오도(修禪悟道) : 선 수행을 하여 깨달음.
(주26) 간심(肝心) : 간장과 심장. 곧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을 가리킴.
(주27) 일차(一次) 견문(見聞)한 : “한 번 보고 들은”
(주28) 수시(隨侍) : 곁에서 늘 시중들고 모심.
(주29) 조박(糟粕) : 학문, 그림, 음악 같은 분야에서 옛사람이 다 밝혀내어 전혀 새로움이 없음을 비유하는 말.
(주30) 타기(唾棄) : 문자 그대로는 침을 뱉는다는 말. 아주 업신여기며 돌아보지도 않는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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