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 길라잡이 ]
법등을 활용하여 자등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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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스님 / 2024 년 11 월 [통권 제139호] / / 작성일24-11-05 12:03 / 조회446회 / 댓글0건본문
1. 『대승기신론』의 네 가지 믿음
[질문]
스님, 제가 얼마 전 어느 스님의 법문을 녹취한 글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이렇게 여쭙니다. 그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 중에 일심一心, 이문二門, 삼대三大, 사신四信, 오행五行, 육자六字가 있는데, 그중 사신四信에 대해서 말씀하시길, “사신이란 불佛, 법法, 승僧 삼보와 본성을 믿는 것이다. 진실 본성을 믿는 것이다.”라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저의 얕은 생각으로는 불·법·승 삼보를 믿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진실 본성, 즉 우리는 원래부터 진실하고 여여한 본성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쳐주신 분은 바로 부처님이시며, 그러므로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것이 바로 진실 본성을 믿는 것일진대, 삼보 이외에 진실 본성을 더 말씀하신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가 짧은 탓에 법문의 취지를 뭔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스님의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답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네 가지 믿음[四信]에 대한 질문이군요. 『대승기신론』은 12대 조사祖師 마명馬鳴스님이 저술한 책으로, 불교사佛敎史에 있어서 대승불교 사상을 가장 함축적으로 잘 표현한 명저名著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신라시대 원효스님이 이 논을 연구하여 주석을 붙였는데, 이른바 『대승기신론소』입니다. 이 주석서 또한 대승불교를 연구하는 분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고 있지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이 『대승기신론소』는 저에게 불교란 어떤 가르침의 종교인지, 불교의 윤곽을 잡게 해준 ‘첫 스승’과도 같은 책입니다.
학생 시절, 선배의 책꽂이에 꽂혀 있던 『원효사상 1』 「세계관」(이기영 저)은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소』를 설명해 놓은 책이었고, 이 책은 저를 불교의 세계로 인도하였습니다.
각설却說하고, 『대승기신론소』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신四信, 즉 네 가지 믿음은 이렇습니다.
‘신근본信根本’이 핵심이다
첫째, 신근본이다. 소위낙념진여법인 고니라.
근본을 믿는 것이다. (왜 근본인가?) (이는) 이른바 세상의 모든 사물은 진여자성眞如自性에 의해 드러난 것임을 즐겨 생각하는 까닭이다.
둘째, 신불유무량공덕이다. 상념친근하고 공양공경하야사 발기선근하여 원구일체지인 고니라.
부처님, 즉 진여의 마음을 회복하여 마음의 눈을 뜨신 분에게는 무량한 공덕이 있음을 믿는 것이다. (왜 ‘무량한 공덕이 있다’라고 하는 것일까?) (이는) (그분들을) 항상 잊지 않고 가까이하며 공양하고 공경함으로써 (자신의) 선근善根을 일으키어 (그분들처럼)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는 까닭이다.
셋째, 신법유대이익이다. 상념수행제바라밀인 고니라.
부처님과 같이 마음의 눈을 뜨신 분들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면 큰 이익이 있음을 믿는 것이다. (왜 ‘큰 이익이 있다’라고 하는 것일까?) (이는) (그분들을) 항상 잊지 않고 (그분들의 실천적 가르침인)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수행하는 까닭이다.
넷째, 신승능정수행이다. 자리이타하고 상념친근제보살중하고 구학여실행인 고니라.
승가의 구성원은 능히 올바르게 수행하는 사람임을 믿는 것이다. (왜 ‘능히 올바른 수행을 하는 자’들이라고 하는가?) (이는) 자신을 맑혀 나감은 물론 남 또한 맑게 만들며, 항상 모든 보살들 -진리를 추구하는 분들-을 가까이하고, (스스로 본래의 자기 자신을 회복하려고 애쓰는) 여실행을 구하고 배우는 까닭이다.
이 네 가지 믿음 중에서 첫째 신근본信根本을 제외하면 삼보三寶에 대한 믿음[信]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과 그분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 곧 근본인 진여자성에 대한 믿음과 같은 것일진대 어찌하여 근본에 대한 믿음을 따로 두어 설명하고 있는지, 이것이 질문의 요지인 듯합니다.
네 가지 믿음 중에서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이 ‘신근본信根本’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며 핵심입니다.
예전에 성철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바로 목표했던 공부를 성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근기가 허약해 작은 난관에 부딪혀도 쉽게 퇴굴심을 내고 방황한다. 그러할 때 퇴색되어 가는 마음을 추스르고 다잡아서 굳건히 공부를 지속해 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을 선별해서 너희들에게 읽도록 제시하는 것이다.”
참고로 수계受戒를 하고 백련암에서 의무생활을 할 때 성철스님께서 읽으라고 허락한 책들이 있습니다. 그 외에는 함부로 볼 수 없었지요. 부처님 일대기와 알아야 할 사상들, 그 옛날 선사禪師님들이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관리하며 공부를 지어나가는 모습들과 그분들의 가르침이 담긴 어록語錄이 주된 목록의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행자는 역시 실참실수實參實修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불교에 무지無知해서도 안 되겠지요. 당시에 저는 그 많은 불교 서적 중에서 어떤 것을 봐야 하고 왜 봐야 하는지, 선별해서 주시는 성철스님의 그 의도가 느껴져서 역시 큰스님의 회상會上으로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 기억이 있습니다.
법등을 활용하여 자등을 밝힌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의 근본, 즉 각자 지니고 있는 마음의 참되고 한결같은 진여眞如의 모습을 직접 보아서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혼자의 힘으로는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스승과 그 가르침, 도반道伴들의 도움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막연한 상태에서 공부하는 것과 지도指導를 받으며 공부를 지어가는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법등法燈이 필요한 것이죠. 그 법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자등自燈을 밝히라는 것입니다.
‘신근본信根本’은 자등에 대한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뒤의 셋인 ‘삼보三寶에 대한 믿음’은 법등에 대한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마음의 눈을 떠서 보면 법등과 자등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겠지요. 그러나 공부 분상分上에 있는 입장에서는 법등과 자등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내용은 같지만, 자등自燈은 자신의 불빛이고, 법등法燈은 냉정히 말해 남의 불빛이기 때문입니다. 법등을 알았다고 해도 자등은 아직 드러난 게 아닐 수 있는데, 자칫하면 이를 착각해서 소위 말해서 ‘깨달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등이 드러난 게 아니라면 ‘알았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고 공감’한 것일 뿐입니다. 이것도 상당한 수준이지만, 최종적이지는 않지요. 직접 확인하려는 실참실수實參實修를 위주로 하면서, 이 과정도 막연하면 안 되기에, 스승의 가르침을 접해서 지침指針으로 삼고 자신에게 자극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법등의 도움을 받아서 스스로 자등을 밝혀나가는 실질적인 공부가 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신근본信根本’을 따로 먼저 언급하고, 뒤에 ‘삼보三寶’에 대한 믿음을 언급한 것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위에 성철스님의 말씀에 견주어 본다면, 삼보에 의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바로 공부를 성취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일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그게 막연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는 내게 있어서 자신을 일깨우는 데 더할 나위 없는 보물인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청정한 믿음을 갖지 않을 수 없겠지요.
원효스님은 ’신근본‘에 대하여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여지법은 제불소귀며 중행지원일새 고왈근본야니라.
참되고 한결같은 마음자리는
모든 부처가 돌아간 곳이며,
모든 행위가 나오는 근원이다.
따라서 ‘근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불자佛子라고 하는 우리들은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에 대해서 그 옛날 인도에서 ‘깨달음을 얻으신 분’, ‘그분의 가르침’,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단체 구성원’을 말하는 것쯤으로 알고 있습니다.
삼보에 대한 믿음이 자칫 이런 정도에 그칠까 염려되어, 원효스님은 삼보에 대한 개념과 믿음 역시 근본인 진여자성에서 나온 것이며, 또한 그 자리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혀 놓기 위해 ‘신근본’을 가장 먼저 언급하신 것입니다. 보다 높은 의미의 믿음은 ‘근원에 대한 믿음’이며, 그다음으로는 ‘그 근원에 대해 일깨워 주신 분에 대한 믿음’이고, ‘일깨우기 위한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고, ‘일깨우기 위하여 애쓰는 분들에 대한 믿음’입니다.
2. 법法을 통해 불佛을 본다
신심信心은 ‘부처님을 믿는 마음’이라기보다는 ‘부처님을 배우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신앙信仰이라는 말보다는 신행信行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합니다. 신행은 그저 ‘믿고 받드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信] 그것을 구현하려는 행위[行]입니다. 그래서 ‘신행을 한다’ 함은 곧 ‘가르침을 배우고 그것을 자신에게 구현하려는 수행修行을 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겠습니까? 부처님[佛]과 가르침[法]이겠지요. 만약에 ‘불佛과 법法 중 무엇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법’이라고 할 것입니다.
사실 내게 필요한 것은 가르침, 즉 법입니다. 저는 불佛이라는 존재를 잘 모릅니다. 그런 저에게 그나마 제대로 알게 해준 것은 그분이 남기신 ‘법法’이었습니다. 법을 통해서 불佛이라는 존재는 결국 ‘내가 지향하고 이루어 가야 할 나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佛은 내가 이루어 내야 할 나의 진정한 모습이고, 법法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설명(매뉴얼)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 무언가 ‘애씀의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애씀의 행위가 있지 않고서는 실질적으로 나 자신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서는 애씀의 행위란 한낱 답답함의 몸부림일 수밖에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가 아닌 가지가지의 이해利害로써 세상을 보는 혼탁한 정신적 안목眼目으로는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조차 가늠하기 쉽지 않습니다. 내가 기울이고 있는 노력이라는 것조차 또 다른 이해利害에 따른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되곤 할 뿐입니다. 현재 나는 나 자신 자체가 더 나은 상태로 바뀌어야 됨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사소한 것에서도 쉽게 자신과 남을 볶아대며 괴로워하고 괴로움을 주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개선하려는 마음[발심發心]을 일으키고, 그 작업[수행修行]을 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공부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필요성은 자기 자신의 현재 상태에서 나옵니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 작업을 하려는 사람에게, 그다음에 필요한 것이 바로 ‘어느 쪽으로, 어떻게’입니다. 부처님이라는 존재가 내게 주목될 수밖에 없고, 그분의 가르침이 내게 절대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불佛은 목적입니다.
불교는 목적의 대상인 불佛을 신앙만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불교는 ‘목적에 대한 앎을 완성하는’ 관념의 종교가 아닙니다.
불교는 ‘그렇게 되자’는 실증實證의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불佛만 쳐다보고 신앙하면서 법法을 배워 구현하려 애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처님을 잘못 보아도 한참 잘못 본 것입니다. 불자로서 나는 법法보다는 불佛만 바라보며 신행信行이 아닌 신앙信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정림사 일행스님의 글을 더 보실 분은 https://cafe.daum.net/jeonglimsarang을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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