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 길라잡이 ]
기도하는 이의 마음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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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스님 / 2024 년 12 월 [통권 제140호] / / 작성일24-12-05 13:17 / 조회689회 / 댓글0건본문
❶ 여러 가지 기도를 하는데 괜찮은지요?
질문
스님, 안녕하세요. 집에서 기도할 때 몇 가지 주의할 점과 순서를 알고 싶습니다. 『천수경』을 읽고 108배, 법신진언, 정근 후 발원, 축원(영가 축원 포함)을 하고 있는데요, 이 순서가 맞는지요?
그리고 『부모은중경』이나 능엄주(때에 따라 다른 경전도 독송합니다. 이를테면 『금강경』, 『아미타경』, 『지장경』 등), 「무상게無常偈」를 읽고 영가 축원을 하는데, 잘못된 것인지요? 향은 기도 시작 전에 피우고 다기 물, 촛불은 안 올리고 안 켭니다.
또 사경寫經에 대해서도 묻고 싶습니다. 절에 다니는 분들이라면 『반야심경』, 『금강경』, 『법화경』 등 이런 경전들은 한 번씩 사경을 하셨을 겁니다. 요즘 우리 절엔 『지장경』 「약찬게」를 사경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좋다고 하고 어떤 분은 그저 그렇다고들 하는데, 사경은 아무 경이나 해도 상관없는지요? 또 『천지팔양경』도 괜찮은지요?
자기 소신껏 해야 하는데…, 옆에서 하는 말들이 하도 많아서 몇 가지 여쭈어보았습니다. 스님의 한 말씀을 기다리겠습니다.
답변
기도는 공부이자 수행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혀간다는 차원에서 공부라 하고, 이 공부로 인해 알게 된 가르침을 지침으로 삼아 삶에서 인연되는 것들을 바라보는 의식의 관점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도록 자신을 닦아야 하기 때문에 수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스승에게 배워야 하고, 그 배운 것을 활용하여 자신의 업력業力(습기習氣)을 제어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갖고자 하는 애씀의 노력[수행]이 필요합니다. 그 노력은 실제로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하기에 머리로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마음을 모아 관찰하고, 그에 따라 증장增長시키거나 그쳐갈 수 있는 삼매력三昧力이 확보되는 수행으로써의 노력이어야 합니다.
깊이가 수반되는 노력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다양하게 이것저것 하는 것보다는 주主 수행법을 정해서 심도 있게 해가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가르침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경전을 두루 접하는 것은 필요할 수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길을 잘 분별해서 가기 위한 앎을 가지기 위해 그러는 것이고, 실질적으로 가는 행위에 있어서는 선택한 주主 수행법으써 집중력을 확보해서 마음을 깊게 관찰하고 물든 요소를 그쳐나가는 실참실수實參實修에 매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목적과 의도를 명확하게
공부든 수행이든 결국 함으로써 자신의 의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즉 견해見解가 바뀌어야 하는데, 이런 변화가 있지 않거나 이런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의도意圖가 있지 않다면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공부와 기도수행의 마음자세에 대해 재점검이 필요합니다.
어떤 것을 하든 그 목적과 하고자 하는 의도가 명확하지 않다면 하는 행위는 애매해지고 막연해지게 됩니다. 공부나 기도수행도 마찬가지겠지요.
무엇 때문에 경전을 보는 건가요?
무엇 때문에 기도를 하려는 건가요?
그리고 이런 행위를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이런 것에 대한 목적의식과 이유가 하는 행위에 분명하게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과 이유에 따라서 수행이 되는 신행信行 생활이 될 수 있고, 현실적 안위와 복을 구하는 기복적인 신앙信仰 생활이 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같은 기도수행법으로 하는 것 같아도, 하는 사람의 이유와 목적이 다르면 같은 공부, 같은 기도라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내가 바뀌어야 할까요? 이 세상은 내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잘 알지 못하니 내가 나 자신을 컨트롤할 수도 없습니다. 내 의식을 내 의지대로, 내 맘대로 통제하고 조절하지 못합니다. 모든 문제는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공부(수행과 기도)는 자신을 변화하는 것
내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런 기도가 되려면 삼매력三昧力이 확보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어야 하고, 관찰해서 에고에 의한 욕심과 집착을 그쳐갈 수 있어야 합니다. 삼매력이 없으면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수행을 할 때도 자신에게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기도가 되려면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해서는 어렵습니다.
질문을 보니, 하시는 것이 너무 많아서 잡다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왜 이렇게 많은 것을 하려 하지요? 경전을 보면서는 그 경전의 내용을 대략이라도 이해하고 넘어갑니까? 경전의 핵심은 ‘내용’에 있는데, 내용의 의미를 새겨서 사유思惟와 숙고熟考를 바르게 정립하는 데 활용해야 하는데, 그런 것보다 하면 좋다고 하니까 내용은 이해하지 못하면서 읽거나 쓰는 데[사경]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면, 그건 초점을 잘못 맞춘 것입니다. 그것도 이 경전, 저 경전 여러 경전을….
정근精勤 기도를 하시려면 한 정근을 진득하게 하십시오. 물론 그 하는 정근에 내 정신을 온전히 쏟아부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내 의식이 산만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산만한 내 의식을 기도의 행위를 통해서 하나로 모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모으는 수행법은 이것저것 다양하게 많이 하는 것보다는 한두 가지의 방법을 반복하면서 깊이 자신을 느끼며 몰입하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서 한두 가지의 수행법이라 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지나온 자신의 삶의 궤적에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와 허물에 대해 참회하고자 하는 방법 하나와 마음을 모으는 방법 하나, 이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8배 이상의 절은 참회로써 좋은 방법입니다. 참선參禪이나 주력呪力, 염불정근念佛精勤 등은 마음을 모아 집중의 상태로 가게 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데 경전經典을 보든 삼매三昧를 닦는 기도수행이든 일단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려는가에 대한 이유와 목적이 분명하게 서 있는지 수시로 자신에게 물어보고 확인해야 합니다. ‘기도를 하려는 이유’가 분명하게 서 있지 않다면 그건 아직 공부할 마음 상태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고, 그런 상태에서 이것저것 하는 것은 그저 막연하게 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식의 변화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단지 ‘해서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는 않을 테니까’라는 생각에 두루두루 다양하게 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됩니다. ‘무엇을 하면 좋고, 무엇을 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적어도 불보살님들이 시설해 놓은 경전과 진언·명호들이라면 한꺼번에 여러 개 한다고 해서 잘못될 것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천지팔양신주경』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방향을 정하고 반복해서 꾸준히
기도 순서와 주의할 점을 물으셨죠? 나의 산만한 의식(정신)을 모아서 나 자신을 제어할 수 있기 위한 기도수행법을 단순하게 정리하시길 바랍니다. 주主 수행법을 선택하라는 겁니다.
이 점은 바른 안목을 가지고 수행하시는 스님에게 직접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경전의 내용을 배워서 무엇 때문에 공부해야 하고,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데 도움을 받으세요. 경전의 일차적인 역할은 이것이지 무조건 사경寫經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불교의 요지는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바르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지에 대한 안목을 키워 가야 합니다. 이러한 안목은 머리로만 헤아리고 이해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질적인 기도수행이 함께 병행되어야 합니다. 선택한 주된 수행법으로 기도를 해 나가면서 교리적인 도움도 받으라는 겁니다.
먼저 기본적으로 매일 108배 이상 절을 하면서 자신이 살아온 지난 삶을 돌아보고 반성을 하면서 자신을 낮추어 가세요. 그리고 능엄주를 하신다니 이를 주 수행법으로 삼아 꾸준히 하세요.
108배는 『예불대참회문』을 보면서 하는 것을 권합니다. 이왕이면 한글본으로 뜻을 새기면서 하면 좋겠죠. 108참회와 능엄주만으로도 삼보三寶에 대한 훌륭한 예경禮敬이 되고, 기도수행이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신심을 북돋아 줄 수 있는 경전과 큰스님들의 글을 자주 접하게 되면 불교에 대한 이해가 점점 깊어지겠지요.
일단 어떤 수행법으로 할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본인의 ‘방향’과 ‘의지’, 즉 ‘마음가짐’입니다. ‘무엇 때문에 하려는가?’라는 점은 ‘공부의 방향’을 결정지어 줍니다. 그 방향이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공부의 내용과 의미는 확연히 달라질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수행법도 운영하는 사람의 방향과 의지에 의해서 수행이 되기도 하고 기복祈福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가시는 절의 스님에게 자주 상담을 하세요. 직접 하면서 느끼는 점을 설명하고 점검을 받는 것이 진전進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❷ 큰 기도와 작은 기도
정림사에는 부부가 함께 나오면서 일과를 받아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 그 부부들 중 한 보살이 지대방에서 다른 보살님들과 얘기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 걸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분담해서 하기로 했어요. 큰 기도는 내가 하고 작은 기도는 남편이 하기로 했어요.”
여기서 큰 기도는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삼천배와 세 달마다 하는 아비라기도를 말하는 것이고, 작은 기도는 일과를 받아 매일 하는 기도를 말하는 것이더군요. 근처에 있다가 이 말을 듣고는 제가 나섰습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안 되겠군. 백일기도 입재하는 날 거사와 출근하기 전에 함께 오세요.”
그 보살이 화들짝 놀라면서 “앗, 스님, 거기 계셨군요.” 하고는 합장 인사를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부부가 함께 찾아왔습니다. 이날은 백일기도 입재를 하는 날이어서 일과日課를 받으러 온 것입니다. 다실茶室로 들어오라 하니, 방에 들어와서는 쭈뼛이 서 있다가는 삼배를 하고 앉겠다고 하더군요. 뭐 특별한 날도 아닌데 왜 그런가 싶어 쳐다보니 거사가 씩 웃으며 한마디 합니다.
“스님께 삼배를 올리고 일과를 받아야 제대로 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는 부부가 나란히 서서 삼배를 하고는 단정하게 무릎 꿇고 앉았습니다.
“요즘 진짜로 기도를 분담해서 하는가? 지난번에 했던 말은 농담이었지?”
스님께 야단을 맞을까 미리 맞추고 왔는지 보살이 정색을 하고는 말하였습니다.
“아이, 스님, 당연히 농담이었죠.”
옆에 앉은 거사도 한 수 거듭니다.
“일과는 각자 자기 것 자기가 합니다.”
반짝 기도보다는 지루함을 이겨나가는 기도
보살들끼리 수다를 떨며 장난으로 하는 말이겠거니 싶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내심 우려했는데, 어쨌든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진짜 나누어서 한다고 하면 한 소리 하려 했는데… 아무튼 보살 입에서 큰 기도, 작은 기도라는 말이 나왔으니 한번 짚고 넘어가 봐야겠습니다.
① 한 달에 한 번씩 삼천배 하고, 세 달마다 돌아오는 그 힘든 아비라기도를 한다.
② 매일 거르지 않고 108배 하고 능엄주 1편 이상 한다.
제가 그 부부에게 물었습니다.
“어느 것이 큰 기도이고 작은 기도이겠는가?”
보살이 대답합니다.
“매일 빠짐없이 108배를 하는 것이 어렵고 힘듭니다.”
‘역시 알기는 잘 아는군. 아니 눈치가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러면 이제부터 ①번 하는 것을 작은 기도라 하고 ②번 하는 것을 큰 기도라 해야겠지.”
불자들이 착각하는 게 있습니다. 기도량이 많으면, 즉 하는 횟수가 많으면 큰 기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짝하고 일어난 신심으로 짧게 몰아쳐서 기도하는 것은 힘들어도 할 수 있습니다. 그 힘듦이 오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다만 108배라도 매일 빠뜨리지 않고 한다는 것은 해야 하는 이유가 서 있고 하려는 의지가 꾸준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마음은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괴로울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때그때의 감정의 상태와 상관없이 꾸준히 기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은 범상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수행을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는 다름 아닌 바로 ‘지루함’이라고 봅니다. 같은 것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지루해집니다. 생각했던 것만큼 공부의 진전은 느껴지지 않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것을 반복해 가고, 갈 것이니 지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지루함은 싫증을 내게 하거나 나태하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견디면서 해가야 합니다. 이게 참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굵고 짧게 하는 것보다는 가늘어도 길게 꾸준히 하는 기도행위가 훨씬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을 해내는 게 큰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굵고 길게 할 수 있다면 그건 말할 것도 없겠지요.
결제結制와 해제解制가 있듯이 기도의 일과량日課量에 완급緩急·강약强弱을 주어 가더라도 아예 놓지 않고 꾸준히 해 가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한 단계 진일보돼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낙수落水가 결국 바위를 뚫는다고 하지요. 한 방울의 물은 힘이 없지만, 지속성이 더해지면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도 힘을 갖게 됩니다. ‘지루함’을 견뎌내며 늘 꾸준하게 닦아 가는 것, 이것이 큰 기도입니다.
※정림사 일행스님의 글을 더 보실 분은 https://cafe.daum.net/jeonglimsarang을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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