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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바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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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철  /  1996 년 6 월 [통권 제2호]  /     /  작성일20-05-06 08:32  /   조회9,50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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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철/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선문정로(禪門正路)』는 성철(性徹)스님께서 1970년대 말에 3년 정도에 걸쳐서 종림의 대중에게 주신 법문의 기록을 정리하여 출판한 책이다.  1981년에 불광출판부에서 초판을 냈고, 그 뒤로 『산은 산, 물은 물』의 일부로, 또 더 뒤에는 백련선서간행회에서 엮은 성철스님법어집 시리즈의 하나로 증보 출판되기도 했다.

 

 


 

 

『선문정로』는 제목이 그대로 말해 주듯이 선문의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주신 법문으로서, 각 장의 주제별로 불조(佛祖)의 중요한 말씀들을 인용하고 대목대목마다 스님의 해설을 붙인 체재로 되어 있다.  스님을 곁에서 모셨던 원택(圓澤)스님에 의하면, 『본지풍광』(本地風光)과 아울러 이 『선문정로』로써 부처님께 밥값을 한 셈이라고 말씀했다고 한다(『백일법문(百日法門)』 후기).  그만큼 스님이 자신의 사상을 심혈을 기울여서 이 법문에다 쏟아 놓았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선문정로』는 한마디로 돈오돈수(頓悟頓修)가 선문의 올바른 길임을 밝히고자 하는 법문이다. 거기에서 스님이 피력하는 돈오돈수의 선수증론(禪修證論)과 돈오점수설(頓悟漸修說) 비판은 불교 전반의 핵심이 무엇인가에 대한 스님의 견해를 바탕으로 해서 조명해 볼 때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성철스님은 일찍이 1967년에 해인총림의 방장으로 추대되었을 때, 대중에게 백일법문을 통해서 원시불교에서부터 선에 이르기까지 불교 사상 전체에 대한 스님의 이해를 총정리해서 피력한 바 있었다. 불교 사상의 다양한 주제 가운데서도 스님은 선사(禪師)답게 역시 수증론(修證論)에 관심의 초점을 모으고 있다. 불교는 뭐니뭐니해도 깨침과 닦음에 그 본질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님은 불교의 수증론을 관통하는 핵심을 중도불이(中道不二) 사상이라고 보아, 역사상에 나타난 다양한 불교 사상들을 이에 비추어 정리하며 해설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그 백일법문을 통해서 한 것이다.

 

백일법문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선사상을 다루고 있는데, 거기에서 스님은 선수증(禪修證)의 정도(正道)는 돈오돈수(頓悟頓修)에 있으며 돈오점수설(頓悟漸修說)은 선수증론으로서는 잘못된 것이라는 견해를 천명하였다. 특히, 보조지눌(普照知訥)스님이 돈오점수설을 통해서 선교일치(禪敎一致)를 주장한 데 대해서 비판을 하고 있다. 이는 중도불이의 완벽한 구현을 바탕으로 하지 못하고 분별의 매개를 인정하는 교가(敎家)의 방법을 갖다가 선에 도입하려고 한 것이며, 따라서 교가의 방법을 극복하고 중도불이의 수증에 완벽히 철저하고자 해서 나온 선의 근본정신에 위배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다양한 불교 사상을 한데 묶는 것은 그런 차원에서 될 일이 아니라 그 모두를 관통하는 핵심, 즉 중도실상(中道實相)의 견지를 축으로 해야지만 제대로 될 일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성철스님은 돈오점수설이 올바른 선수증론이 아님을 밝히는 작업의 일환으로 『한국불교의 법맥』을 저술하여 1976년에 출판하였다.  이 책에서는 교리적인 비판보다는, 선불교 전통에서 중시하는 사자상승(師資相承) 법맥의 기록을 가지고서 보조 지눌스님이 임제선의 정통 계승자가 아니며 따라서 한국 불교, 더 특정적으로는 조계종의 종조가 아니라고 하는 스님의 견해를 증명하고자 하였다. 그리고서는 마침내 『선문정로』의 법문을 열어 불조의 말씀들과 스님의 평석을 통하여 돈오돈수가 선수증의 올바른 길이며 돈오점수는 그릇되었다는 것을 본격적으로 논의한 것이다. 그러니까 『선문정로』는 돈오돈수의 선수증론을 확립하고자 하는 일련의 이론적, 넓은 의미에서 학술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업의 결론에 해당하는 법문라고 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논리적인 방법에 의거하지 않고 선 자체의 언어를 통한 돈오돈수의 법문이라고 할 수 있는 『본지풍광』과 함께 스님이 부처님께 치른 “밥값”으로 자부한 게 아닌가 짐작할 수 있겠다.

 

돈오돈수의 수증론은 중도불이(中道不二)라는 말로 표현되는 독특한 종교적 세계관의 극치를 담고 있다.  불교뿐만 아니라 적어도 동양의 종교에 관한 한 그 불이의 견지를 제켜두고서는 제대로 가까이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갈수록 그 불이의 세계관에서 멀어져 가는 그런 문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기는, 일반적인 문화적 추세가 어떠냐 하는 데에서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중도불이의 실상을 떠나서 분별의 사고와 생활에 빠져 있는 것이 시대를 불문하고 인간 생활의 기본적인 모습이다. 바로 거기에서 중생의 근본 문제를 짚어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아무런 분별적 매개에 의지하지 않고〔無所依〕 조금의 타협도 없이 곧바로 중도불이의 실상에 질러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 선수증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견지와 시도는, 어느 때 어디서든, 나와 너라든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 그리고 여기와 저기 등을 비롯해서 모든 것을 마디마디 끊어 놓고 사는 분절적(分節的)인 삷과는 전혀 다른 마당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나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분절화가 유례 없이 심화되고 그만큼 불이의 실상에서 멀어진 심의식이 선문 안팎에서 횡횅하는 것을 본다.  그런 와중에서 성철스님은 일련의 이론적인 작업을 통해서, 또한 스님의 실수(實修)를 통해서 선불교 전통의 중도불이 실상의 견지를 들이밀어 열어 보인 것이다. 특히 『선문정로』는 그 중에서도 이론적인 작업의 결어에 해당하는 법문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성철스님의 그런 의도를 좇아서 서언(緖言)과 19개의 장으로 구성된 『선문정로』의 주요 대목들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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