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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거사선]
반조(返照)공부를 강조한 『전등록』의 편찬자 양억(楊億) 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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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  2014 년 7 월 [통권 제1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47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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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들의 선문답과 언행을 기록한 공안집과 선어록은 많지만 공식적인 전등사(傳燈史)를 기록한 책은『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이라 할 수 있다. 송나라 때(1004년) 고승 도원(道源) 스님이 과거칠불(過去七佛)에서 석가모니불을 거쳐 달마 대사, 중국 조사들에게 이르는 선종의 역대 법맥(法脈)과 법어를 수록한 대표적인 어록이다. 고려와 조선시대 승과(僧科)에서 선종의 시험과목으로 채택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강원에서 수의과(隨意科)의 교과목으로 사용되기도 한 중요한 교재이다. 이 책은 완성된 후 송나라의 진종(眞宗) 황제에게 봉정(奉呈)되었는데, 칙명에 따라 교정·교열과 첨삭 등의 편집을 거친 후 대장경에 편입시켜 간행한 주역은 출가승이 아닌 재가 거사인 양억(楊億, 973~1020)이었다. 

 


 

 

 

양억은 포성(浦城)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탁월했다. 이미 11세 때, 태종(太宗)이 입면시(入面試)로 불러 신동(神童)이라 찬탄하고 비서성(秘書省) 정자(正字)로 임명할 정도였다. 진종 때에는 한림학사(翰林學士), 수찬(修撰), 시랑(侍郞)을 역임하며 불교 외호에 큰 공을 세웠다. 처음에는 불교를 모르다가 학사 이유면(李維勉)의 권유에 의해 발심하고 후에 여주(汝州) 광혜(廣慧) 선사를 배알하고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불교를 옹호하고 왕흠약(王欽若)과 함께 사료백과사전인『책부원구(冊符元龜)』1천 권을 짓는 등 문인 관료로서 크게 활약했다. 더욱이 조칙을 받들어『대장목록』, 『전등록』을 편집, 교간(校刊)하여 큰 공덕을 쌓았다. 천희(天禧) 4년, 병이 들어 열반송을 써서 이준(李遵)에게 주고는 입적하였다. 이때 나이는 47세, 시호는 문(文)이다. 

 

양억 거사는『전등록』외에도 선종사에서 중요한『선문규식(禪門規式)』과『무상대사행장(無相大師行狀)』이란 글을 남기기도 했다. 『선문규식』은 백장 선사가 8세기에 저술한 선종 총림의 조직과 수행에 필요한 규칙 등을 성문화한『청규(淸規)』가 산실되자, 북송대에 다시 정리한 책이다. 그리고『무상대사행장』은 선승들이 가장 애송하는『증도가(證道歌)』의 저자인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 선사의 가르침과 일대기를 기록한 글이다. 육조혜능 대사를 참문하고 인가를 받아 일숙각(一宿覺)이라는 별명을 얻은 영가 선사는 진각(眞覺) 대사라고도 불렸으며, 시호는 무상(無相)이다. 

 

이와 같이 대문장가이자 권력자로서 역사적인 선종의 중요 전적들을 편찬하여 불법을 중흥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양억 거사의 업적은 선법(禪法)에 대한 안목없이는 불가능한 불사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양억 거사는 어떻게 선문(禪門)에 인연을 맺게 되었고, 어떻게 마음공부를 하였을까? 세상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일들을 모은『인천보감(人天寶鑑)』에서 양억 거사가 한림학사 이유(李維)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의 공부 내력을 일부나마 엿볼 수 있다.

 

“잠깐 남창(南昌) 태수로 와서 마침 광혜상총(廣慧常總: 임제종 황룡파) 스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공양을 될 수 있는 대로 간소하게 하여 밥상을 물리고 여가가 많았으므로 더러는 직접 오시기도 하고 더러는 수레로 모셔오기도 하여 이것저것 터놓고 물었더니, 어둡고 막혀 있던 것이 싹 풀렸습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뒤에는 마치 잊었던 일이 갑자기 생각난 듯, 자다 깨어난 듯 마음이 탁 트여 의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평소 가슴에 막혀 있던 것이 저절로 탁 떨어져 내려가서 몇 겁을 두고 밝히지 못했던 일이 환하게 눈앞에 나타났으니, 이는 정말로 스님께서 의심을 환희 결택(決擇)해 주시고, 막힘없이 지도해 주신 덕분이었습니다.”

 

양억 거사는 남창 태수로 근무할 때 광혜상총 선사를 친견한 후 바쁜 업무시간에도 수시로 선사를 모셔와 법을 청하고 궁금한 점을 질문했던 모양이다. 공부 중에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의문이 점점 뭉쳐져서 화두(話頭)가 되면 선사께 여쭙고 의심을 해결하면서 하나하나 지도·점검을 받다 보니, 평소 은산철벽(銀山鐵壁)처럼 꽉 막혀 있던 의정(疑情)이 드디어 타파되어 오랫동안 밝히지 못했던 본분사(本分事)를 마침내 밝히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양억거사는 그러나, “병든 이 몸이 지금 법을 이어받은 인연은 사실 광혜 스님에게 있으나 처음 일깨워 지도해 주신 분은 바로 별봉(鼈峰: 임제종 대혜파, 無際了派의 제자) 스님이셨다.”고 수법인연을 거듭 밝히고 있다. 

 

이어지는『인천보감(人天寶鑑)』의 기록을 보면, 양억 거사의 살림살이를 좀 더 파악할 수 있다. 거사가 시랑 벼슬을 할 때, 한 스님과 법담을 나누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참학(參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루 종일 언제나 자기를 살펴보아야〔照顧〕합니다. 듣지 못했습니까? 선〔禪道〕을 말하자면 늘 살피고 다녀야 할 도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일상생활에서 무슨 일을 하거나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알을 품고 있는 닭이 알을 두고 일어나버리면 기운이 이어질 수가 없어서 마침내 병아리가 부화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금 만 가지 경계는 빽빽하고 6근은 요동하는데 조금만 살펴보는 일〔照顧〕을 놓치면 그대로 신명을 잃게 되니 작은 일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여기 태어날 인연을 받아 생사에 매여 있는 이유가 수많은 겁토록 생멸심을 쫓아 그것에 끄달려 다니다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한번이라도 살펴봄을 잃은 적이 있다면 어떻게 우리가 여기 있을 수 있겠습니까? 큰 길의 흰 소〔露地白牛〕를 알고자 합니까?

콧구멍을 잡고 한번 끌어당겨 보십시오.”

 

여기서, 노지백우(露地白牛)는 본래『법화경』에서 일승(一乘:성문승, 벽지불승, 보살승을 회통하는 일불승)을 비유한 말로써, 선문에서는 청정무구한 본심을 말한다. 즉, 본래의 마음〔本來心〕을 깨닫고자 한다면, 본래면목을 상징하는 콧구멍〔鼻孔〕을 움직여보라는 말이다. 본래심은 모양과 형상, 소리와 흔적이 없어 알기가 어렵다. 그러나 본래심은 작용을 통해서 그것을 확인할 수는 있기에 소리와 형상이 인식되는 순간, 깨달을 가능성이 있게 된다. 그래서 양억 거사는 일상생활 가운데 늘 조고각하(照顧脚下) 즉, 발밑을 보라고 강조한다. 소리를 듣는 순간 듣는 성품〔聞性〕을 되돌아보고, 빛과 사물을 보는 순간 보는 성품〔見性〕을 되비추어 보는 회광반조(廻光返照)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종의 관법(觀法)인 ‘회광반조’는 객관 세계를 보고 들을(인식할) 때 홀연히 빛을 되돌려 자기 마음속에 자리한 신령스러운 성품〔靈性〕을 깨닫는 걸 가리킨다. 이는 언어문자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내면세계를 회고반성(回顧反省)하는 까닭에, 바로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하라는 말뜻과 같다. 

 


양억 매화를 읊은楊億的《少年游·江南節物》 

 

임제 선사는『임제록』에서 “너는 언하(言下)에 문득 스스로 회광반조할 일이지, 다시 딴 데서 구하지 말라. 이 신심은 불조(佛祖)의 신심과 한 치도 틀리지 않으니 그런 줄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석두 선사는『경덕전등록』에서 “이 암자에 머물며 알음알이를 쉬는데, 누가 감히 시장거리에 자리를 펴서 사람을 매도하려고 하겠느냐? 회광반조하여 바로 돌아가라. 신령스러운 근기〔靈根〕를 확철대오하는 건 밖을 향해 좇아서 될 일이 아니니라.”하였다. 모두 반조(返照) 공부의 중요성을 역설하신 법문이다. 

 

언어 문자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본래면목을 성찰하고 참구하여 바로 심성을 밝히는 것이 회광반조이자, 반문문성(反聞聞性: 듣는 성품을 다시 돌이키는 것)이다. 바깥 경계로 끌려가는 정신을 안으로 되돌려 자성 본원을 비추어 보는 공부이다. 차별심, 분별심, 망상심, 집착심, 증애심, 번뇌심 등을 끊고 항상 본래의 자성을 반조하는 관법인 것이다. 

 

『인천보감』에 따르면, 양억 거사는 임종 하루 전에 아래의 게송 한 수를 직접 써서 집사람들에게 주며 다음날 이부마(李駙馬:李遵, ?∼1038)에게 전하라고 하였다.

 

꺼졌다 일어나는 거품이여

두 법은 본래 같은 것〔生與滅二法本來齊〕

참된 귀결처를 알려 한다면

조주 동원의 서쪽이니라〔欲識眞歸處趙州東院西〕.

 

이부마는 이 열반송을 받아보고서 “태산(泰山)의 사당〔廟〕속에서 지전(紙錢: 죽은 사람의 노자돈으로 쓰는 가짜 종이돈)을 팔도다.”라고 평하였다.

생사와 열반이 모두 다 꿈속의 일이고, 부처와 중생도 모두 군더더기 말이라 불조의 간절한 법문이 어린아이 달래는 노란 종이돈일 뿐이다. ‘조주 동원의 서쪽’ 일도 곧바로 알아버려야지 밖으로 치달려 구해서는 안 된다고 양억 거사는 오늘도 힌트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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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金聖祐

도서출판 비움과소통 대표. 경북 안동 생(生).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한 뒤 현대불교신문사에서 취재부 기자 및 차장, 취재부장을 역임. 현재 도서출판 비움과소통 대표와 넷선방 구도역정(http://cafe.daum.net/ kudoyukjung) 운영자로 활동하며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법음을 전하고 있다. 저서에『문없는 문, 빗장을 열다』,『선(禪)』,『선답(禪答)』등이 있다. 아호는 창해(蒼海ㆍ푸른바다), 본명은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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