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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
경봉의 ‘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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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  2018 년 6 월 [통권 제6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96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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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 밥벌이를 하는 놈이
글 한 줄을 못 쓰게 되었을 때,
사막이 된 머리 위로 까마귀가 날고
앞에서 펄럭이는 검은 만장은
수금(收金)하러 오는 사람 같았다.
“이리로 와라 이리로 와라…
별 수 없다,
이것뿐이다.”

 

세상이 세월호 때문에 울던 시절이었다.
미안하다.
나는 나 때문에 울었다.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고
모든 지인이 무서웠던
그 출구 없는 자학 속에서,
‘그 새끼 목을 따버리겠다’던
며칠 전의 악심(惡心)이
어찌나 기득하고 그리웠던지.

 

프로작(prozac)이 빛나던 오후였다.
차도(差度)가 오고
이것만 넘어가면 될 것 같은데
안 넘어가고,

 

초여름 햇살이 바닥에 엎질러진
벌꿀처럼 무너져 내렸다.
아파트 아래선 고물 사러 다니는 트럭이
자기 전화번호를 스피커로 떠들어댔다.
휴대폰으로 ‘우울증’을 하루에 40번쯤 검색했다.
질소가스를 파는 곳은 영등포 한 군데였고
걸을 수 없는 몸으로는 너무 멀었다.

 

108염주로는 목이 안 메어졌다.
나의 부처님은 무능했다.
제발 살려달라며, 낫게 해달라며
108배를 하고 기체조를 하고
별 개지랄을 다 떨었다.

 

휴대폰 충전기 줄로는
죽을 수 없고
노트북 전기 줄로
죽을 수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번번이 끊어지던 저승과의 교신,
엄밀히 말하면 구조요청이었다고 본다.
결국 가방 끈으로는 성공했는데
아내가 봤다.

 

그렇게 절반의 죽음을 수십 날 반복했다.
프로작이 빛나던,
프로작만 살아있던 오후였다.

 

제정신이 돌아온 지금에 와
돌이켜보면,
투덜대기도 하고 누굴 욕할 수 있다는 게
글도 쓰고 잔머리도 굴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또한
그 소중한 기력으로
굳세게 버티거나
그냥 꾹 참고 넘어가기도
하는 것이다.
적들은 여전히 살아 있고,
고마운 제정신을 지키고 싶어서.

 

“일상에서 보고 듣고 밥 먹고 하는 게
그대로 진리”라던 마조(馬祖)여,
당신이 옳았다.
제정신이 곧 불성(佛性)이었다.
이걸 알자고, 참 멀리도 갔었다.

 


일류대 다니던 대학생들이 경남 양산에 있는 통도사 극락암으로 여름 수련회를 갔다.
= 옛날엔 고시공부를 하러 절에 많이들 갔다.

 

조실(祖室)이었던 경봉정석(鏡峰靖錫, 1892-1982)의 지도 아래 참선을 체험했다. 처음 해보는 가부좌에 다들 애를 먹었다.

= 고시공부도 힘들지만 마음공부도 힘들다.

 

“스님, 이거 잘 안 되는데요. 그냥 책상다리만 하면 안 되겠습니까?”
= 그래서 고시공부만 하고 싶구나.

 

경봉이 말했다. “그래, 병신은 안 되지.”
=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면, 나가서 해라.

 

내가 본 책 속의 선사(禪師)들은 징징대는 걸 몹시 싫어한다. 말들은 하나같이 짧았고 죽을 때가 되면 그냥 죽어버렸다. 그게 너무 부럽다. 엄살은 어디에서 오는가. 간단하다. 이기심 때문이다.

 

내 몸을 아끼는 마음에 힘든 일도 하기 싫고, 내 몸 편하자고 책임을 남에게 미루는 것이다. 불쾌하고 답답하지만 그게 사바세계다. 마음이 몸에 묶여 있는 한, 생명은 일정하게 사악하고 치졸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거룩하고 소중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생명의 진정한 본질이다.

 

우리가 삶을 선택하지 않았듯, 생존을 향한 본능은 이미 태초부터 정해진 프로그램. 내 삶의 주인은, 미안하지만 내가 아니라 삶이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욕을 먹고, 일단 살고는 봐야하겠으니까 머지않아 적폐가 되는 것이다.

 

각자의 몸에 종속된 마음은 각자의 몸을 위해 머리를 굴린다. 내 몸이 처먹을 몫이 커진다면 눈을 까뒤집고, 내 몸이 올라갈 수 있다면 벼랑에서 뛰어보기도 한다. 물론 마음에게 몸을 다치게 하는 것만큼 큰 죄는 없다.

 

가부좌는 하기 싫고 책상다리를 하는 선에서 적절히 타협을 본다. ‘병신’임을 자인하기는 창피하니까 으레 ‘전략적 후퇴’나 ‘일상의 작은 지혜’라고 표현한다. 병신이 한 명 더 있으면 ‘화합’이라고 쓴다.

 

선(禪, dhya-na)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고요한 마음’이겠다. 무심(無心)이라 해도 좋고 청정심(淸淨心)이라 해도 좋다. 마음을 텅 비우거나 사심을 버리면 도인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에 대한 험담 한마디면 그 자리에서 무너지는 것이 무심이요, 30만원 받을 일에 20만원만 받으면 당장에 입이 더러워지는 게 청정심이었다. 요즈음엔 ‘내가 병신이 될 수도 있구나!’ 인정하는 마음과 ‘병신이 되어도 괜찮다.’ 포용하는 마음을 원한다.

 


내일이 오늘을 삼킨다.
여빙귀수(如氷歸水).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장웅연
집필노동자.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조사선(祖師禪)에 관한 수업을 몇 개 들으며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2002년부터 불교계에서 일하고 있다. ‘불교신문 장영섭 기자’가 그다. 본명과 필명으로 『길 위의 절(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불행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눈부시지만, 가짜』, 『공부하지 마라-선사들의 공부법』, 『떠나면 그만인데』, 『그냥, 살라』 등의 책을 냈다. 최근작은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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