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루 한 끼만 먹어도 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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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 2018 년 10 월 [통권 제66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813회 / 댓글0건본문
이 넓은 세상에 네가 살고 내가 산다.
나에겐 나만의 사연이 있고,
너에겐 너만의 역사가 있다.
너나 나나 오래 걸었고 다치기도 했다.
고단한 거리에서 나는 믿는다.
여기저기서 아가리와 가랑이나 벌리면서
살아온 것은 아닐 것이다.
흉포한 거리에서 나는 울지만,
네가 나를 향해 웃지 않아도
나의 약점이 너에게 가서 꽃이 되어도
너의 짙은 발자국들만으로도 너를 존중한다.
그리하여
네가 술을 마시지 못해도 나는 행복하다.
내가 여행을 싫어해도 너는 자유롭다.
네가 너의 일을 할 때,
나는 나의 시간을 치러낸다.
산봉우리들은 떨어져 있어도
다 같은 산이다.
각자가 산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만난 것이다.
네 안에 자라는 늙음을 바라보며
내 눈깔도 개나리처럼 노래진다.
세상이 가장 따뜻할 때는
날이 저물 때다.
너의 뜨거운 소멸이
내게도 물들어 빛난다.
죽음 속에서나,
우리는 비로소 반갑구나.
계율戒律을 훤히 이해하고 철저히 지키는 스님을 율사律師라 한다. 1960년대 율사로 정평이 났던 자운성우(慈雲盛祐, 1911~1992)가 합천 해인사 주지 시절 미얀마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 집 떠나면 개고생이다. 특히 부잣집에 가면 죄인이 된다.
현지 최대 수도원에 귀빈으로 초청됐다. 스님들만 3,000명, 일하는 재가자까지 포함하면 4,500명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한국에서 온 큰스님을 공양하겠다며 그들이 진상한 음식을 보자마자 자운은 기겁했다. 밥술과 나물이나 몇 점 있어야할 식탁에, 소 돼지 양 닭 오리 등 온갖 종류의 고기들이 거푸 올라왔기 때문이다.
= 남이 주는 음식을 엎드려 먹으며 가난을 부끄러워하고 부모를 욕한다.
진짜 압권은 그 다음이었다. 그쪽 스님들은 거리낌 없이 익혀진 짐승들의 다리를 부여잡고 게걸스럽게 물어뜯었다. 속인들의 거나한 회식자리와 다를 바가 없었던 셈이다. 한국보다 미얀마가 더 잘 살던 시대다.
= 그래서 홈 홈 스위트홈, 모든 익숙한 것들은 달콤하다.
매일같이 풀떼기만 씹던 터라 끝내 요리에 젓가락도 대지 못한 자운은 겸연쩍어 주위를 둘러봤다. 폭이 3미터가 넘는 대형 칠판에 빼곡하게 글자가 적혀 있는 걸 발견했다. 스님들을 대접하지 못해 안달을 내던 신도들의 시주施主를 기록한 현황판이었다. 수도원의 승려들이 하나같이 뚱뚱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기도 했다.
= 얻어먹는 일은 창피하지만, 그래도 배가 부르고 조금 더 남는 것도 있다.
평소 동남아시아 불교를 불교의 원조라 존중했고 남방의 스님들이 누구보다 계율을 철저히 지키리라 믿었던 자운은 크게 실망한 채 귀국했다. ‘저렇게 먹으니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한 끼만 그것도 낮 12시 이전에만 먹어야 한다는 계율)이 가능한 게로군.’
= 네들이나 나나, 결국은 그냥 돼지들이구나!
자운은 제자들의 영화 관람조차 금지했고 사하촌寺下村에서 자장면이라도 먹고 오면 그 즉시 절에서 쫓아내던 성격이었다. 해인사로 돌아온 그는 한동안 이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봐라.” “먹어.”
= 우리 집에는 ‘우리들’이 있다. 내 새끼들이 돼지고기가 되는 꼴은 못 보겠다.
계율은 불교윤리의 근본이며 오계五戒는 계율의 근본이다. 살생 절도 간음 망언 음주의 금지. 굳이 나누자면 개인의 도덕과 관련된 ‘계戒’ 그리고 공동체의 안정적 유지를 위한 법률인 ‘율律’로 나뉜다. 특히 스님들이 지켜야 할 계율은 오만가지가 있는데, 요要는 숨만 쉬고 살라는 것이고(계) 튀지 말라는 것이다(율). 신도나 이교도들로부터 공연히 책을 잡히지 않도록. 완전한 권위는 완벽한 준법에서 나오는 법이다.
인도는 불교의 발상지이나 지금은 명맥이 가늘어졌다. 그러고 보니 인도를 중심으로 동쪽은 불교가 흥하고 서쪽은 이슬람교가 장악했다. 불교는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남방불교와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북방불교로 갈라진다. 종교와 종교가 서로의 이질성을 비난하듯이, 남방불교와 북방불교의 사이도 아주 가깝지는 않다.
남북의 불교를 가르는 결정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승려에 대한 육식의 허용 여부. 동남아시아 스님들은 아침마다 민가를 돌며 탁발을 한다. 밥을 빌어먹고 복을 빌어준다. 신도들이 주는 대로 먹어야 하니 고기도 먹게 된다. 또한 알다시피 여기는 영구적인 폭염의 땅. 상하기 전에 신속하게 먹어치우는 게 도리다. 반면 동북아시아의 승려들은 농사를 짓는 전통을 가졌다. 게다가 겨울이 있고 길어서 저장식이 가능하다. 이쪽 스님들의 채식주의는 ‘먹을거리가 풍족한데, 굳이 생명을 죽여서 만든 고기까지 먹어야 하는가’라는 반성에서 출발한다. 물론 삶의 모습을 규정하는 건 삶의 목적이 아니라 조건이다.
우울증으로 한참 고생하고 병이 나은 뒤 새로운 삶이 열리리라 기대했다. 어떤 각성覺性 같은 거. 지난날의 나를 들여다봤고 고쳐야 할 것은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제정신이 붙어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던 때다.
하지만 어느덧 4년이 훌쩍 지났는데, 유감스럽게도 제자리걸음이다. 이제 좀 살만해졌다고 이 마음이 또 딴짓을 한다. 욕망하거나 원망하다가 날이 저문다. 반면 자책감이 심해지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뼈저리게 실감했다. 스스로 부끄러워서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자니, 나는 제법 성실하고 유능하고 양순했다.
시장통의 모든 악다구니는 볼썽사나우나 눈물겹다. 따지고 보면, 쥐도 새도 모르게 폐인이 될까봐 일껏 앙탈을 부리고, 조금이라도 덜 당하기 위해서 미워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놈의 몸뚱이는 길가의 돌멩이가 아니어서 밥을 먹어야 하고 집이 필요하며 연금도 타내야 한다. 곧 욕망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원망하지 않으면 자살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법도이리라.
사정이 이러하니, 욕심과 증오라는 것도 일종의 살아갈 힘이겠다. 시인들아 또는 철학자들아, 삶은 결국 삶일 따름이다. 잘난 삶이든 못난 삶이든 못된 삶이든, 각자의 쪽방에서 벌이는 깨춤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삶의 바깥을 탐할 수 있을 뿐, 결코 삶의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삶의 바깥이란 시간적으로는 죽음이요 공간적으로는 타인의 삶일 것이다. 일례로 죽음은 까마득한 상전이어서, 내게 보고하고 오지 않는다. 내가 그를 싫어하든 말든, 그는 그의 삶을 산다. 살아있는 동안, 나는 아무 데도 못 간다.
내가 바람이 아닌 이상, 나는 싸우거나 져야 한다. 다만 피땀까지야 흘렸겠냐마는, 몇 번의 눈물과 고함을 잘 숨겨서 만들어낸 게 지금의 내 성과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욕되고 욕되어서 거룩하다. 문득문득 머리가 저며올 때, 20년 가까이 같이 산 아내는 “네가 만날 죽네 사네 해도 결국엔 살아낼 것”이라고 말한다(그래야 우리가 산다). 순진한 정신으로 해탈을 논했었다. 삶의 배후가 무엇이고 이면이 무엇이건 간에, 인생은 당장 표면만으로도 버겁다. 일단, 미끄러지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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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이해하고 싶지 않아.
이해한 만큼
너를 이용하려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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