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
주야장천 100점을 맞은들, 학생은 학생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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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 2018 년 2 월 [통권 제58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986회 / 댓글0건본문
글│장웅연
#2. 만공의 그물
신심(信心)? 믿는 마음. 뭘 믿지? 부처님을 믿지. 왜 믿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니까. 부처님이 너의 마음을 너를 편안하게 해준 걸까? 부처님을 믿는다는 너의 마음이 너를 편안하게 해준 걸까?
어느 해 여름 안거(安居)를 해제(解制)하던 날이었다.
= 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웃고 엄마들은 운다.
만공월면(滿空月面, 1871~1946)이 승당(僧堂)에 내려와 대중을 두루 돌아보며 3개월 간 두문불출하고 열심히 참선한 선객들을 칭찬했다.
= 가장 크게 웃는 건 돈 받고 오래 쉴 선생님들이다.
“올 여름 여러분은 용맹스럽게 잘들 정진하였다. 하지만 나는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무더위 내내 그물만 드리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와서 보니 그물 속에 고기 한 마리가 걸려 있구나. 자! 일러봐라. 어떻게 해야 고기를 구할 수 있겠는가?”
= 방학숙제로도 그간의 스트레스를 보상받는다.
이때 무리 가운데서 한 스님이 일어났다.
= 별똥별이 될 별이다.
뭐라 한마디 하려 입을 떼는 순간 만공이 외쳤다.
“옳거니! 한 마리 또 걸려들었다.”
= 스님이 그 별을 별사탕 삼아 먹었다.
그물의 도시에 산다. 이것 좀 먹어보시라고 이것 좀 입어보시라고, 거리 여기저기서 미끼를 던진다. 간신히 빠져나오면 ‘최신식’이라고 ‘가성비’가 으뜸이라고, 더 탐나는 미끼 앞에 내던져진다. 이미 승부가 정해진 싸움이라는 걸 잘 안다. 잘 모르는 사람과 둘이서 점심을 먹을 때, 어색한 분위기가 괴로워서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걸 물어보고 소주도 시킨다. 회사로 돌아오면 윗사람이 자꾸 뭘 묻는다. 집으로 돌아오면 아랫사람이 입을 벌려 먹이를 보챈다. 수중에 가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물이 끊기면 밥줄이 끊긴다.
돈의 그물, 권력의 그물, 생계의 그물, 음녀의 그물, 송사의 그물… 그물의 형식은 억압이기도 하고 유혹이기도 하고 책임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그물들의 경쟁과 결탁 안에서, 나 역시 나름대로 그물을 드리우고 무엇이든 걸리길 기다린다. 세상은 끊임없이 문제를 던지고 문제가 원하는 답변을 준비해야만, 그물 속에서나마 살아남을 수 있다. 물론 그물 안에 쳐진 그물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물이 나의 그물을 먹어치워야만, 내 그물은 안전하다.
내가 그물을 치는 자세는 대체로 넙죽 엎드린 채 손만 벌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뭔가 바라는 게 있으니까 그물 안으로 자청해 들어간 것이고, 그들처럼 되기를 바라니까 그들을 흉내 내서 투망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물의 바깥에서 살고 싶다면, 물고기의 인생 따위는 선뜻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이어야 한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들은, 그물이 잘 안 먹는다.
무엇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고 싶다면, 그물을 찢어야 한다. 누가 깨달음에 대해 물을 때, 선사들이 동문서답을 하거나 아예 묻는 입을 비틀어버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답’이란 걸 부숴버려야만 정답에 갇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만의 길을 닦아야 남들이 닦아놓은 길에서 멀찌감치 도망칠 수 있다. ‘1+1’이 ‘2’가 아닌 ‘젓가락’인 삶은 혼자서도 장단 두들기며 잘 논다. 이른바 ‘신의 한 수’도 못 당해내는 것이 바둑판을 뒤엎어버리는 일이다. 주야장천 100점을 맞은들 학생은 학생에 지나지 않는다. 선생만,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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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좋아하거나 여자를 좋아하면 개인만 망한다. 도박을 좋아하면 집안이 망하는 것과 다른 점이다. 선(禪)을 좋아하면 술이든 여자든 도박이든 죄다 망해버리는 것과도 다르다.
#3. 성철의 아궁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고 아쉬워들 한다. 오죽하면 비슷한 제목의 베스트셀러가 있다. 알고 보면, 그때 몰랐으니까 지금 아는 것이다. 몰라서 당했으니까, 몰라서 죽을 만큼 힘들었으니까, 이제는 죽을힘을 다해 기억하는 것이다. 지혜는 언제나 뒤늦게 오고, 깨달음은 자살 시도를 해본 자들에게만 온다. 그래서 인생은 일견 살아볼 만하다. 오래 살아야 하나라도 더 안다. 깊은 고통은 목숨을 하나 더 준다. 만약 그때 알아버렸더라면, 이렇게 옹알거리지도 못했으리라.
해인사 방장(方丈)이었던 퇴옹성철(退翁性徹, 1912~1993)이 어느 겨울밤 야경(夜警)을 잘 하는지 보려고 암행을 나섰다.
= 우리나라 전체 문화재의 65%는 불교문화재다.
순찰을 돌던 학인(學人)이 하도 추워서 군불을 피운 방 안에 들어가 뭉그적거렸다.
= 화재 위험 때문에 난방이 금지됐던 시절이다.
성철이 득달같이 방문을 열어젖혔다.
= 쥐가 고양이를 마주치면 놀라서 얼어버린다.
“큰스님! 입(아궁이)을 만들었으면 밥(장작)을 주어야지요.”
= 너무 놀라면, 문다.
성철은 별달리 대꾸하지 않았다. 다만 아침이 밝자 대중을 소집했다. 아궁이를 진흙으로 메워버렸다.
= 터진 입은 아무거나 먹고 아무렇게나 말한다. 제 스스로 입을 찢은 게 아니니… 죄는 없으나, 벌은 받아야지.
일한 만큼 잔다. 먹은 만큼 싼다. 말한 만큼 허물이 쌓인다.
사랑한 만큼 오해가 쌓인다. 기대한 만큼 실망도 크다. 올라간 만큼 더 오래 내려간다. 미워한 만큼 내가 미워진다. 인과(因果)의 경제학엔 예외가 없고 에누리도 없다. 아궁이를 만들면 장작이 필요해진다. 불은 이미 난 것이나 다름없다.
살면서 겪는 불운과 풍파는 이유가 없다. 나뭇잎 사이로 바람 들이치듯이, 이 몸뚱이로 태어났으니까 이 몸뚱이로 그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살아있으니까 반드시 겪고 기어이 겪고야 마는 것이다. 살아있음에서 오는 고통은 따로 주인이 없어서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실직이든 실연이든 실기(失機)이든 조실부모든 나이 어린 직장상사든 홀연히 찾아온 말기 암이든, 여관방에 손님 들 듯이 들어와 술 먹고 토하고 고스톱 치고 별걸 다 한다.
불청객들을 정리하는 방법이 있다면, 스스로 인생을 여관방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실제로도 여관방이다. ‘이게 바로 나’라고 떠벌여 봐야, 이번 생에 한정된 한 조각 넝마이고 낭하일 뿐이다. 남녀가 급히 사랑을 나누고 떠나간 공간 한쪽에, 내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수건이 걸려 있다. ‘경축(慶祝)’이라고 쓰이긴 했는데, 누가 거기다 코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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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를 손으로 쳐 죽이던 순간,
노숙자가 나타나 담배 한 개비를 얻어갔다.
선방했다.
당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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