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과 함께 하는 인생이야기]
자식에 대한 사랑과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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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자 / 2019 년 4 월 [통권 제72호] / / 작성일20-06-20 13:38 / 조회6,237회 / 댓글0건본문
박원자 | 불교 전문 작가
서른한 살의 큰딸애가 6개월만의 백수생활 끝에 재취업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딱 3년 직장생활을 하더니, 휴식을 취하면서 다른 삶을 모색해보겠다며 회사를 그만둔 지 정확히 1년 반 만이다. 그동안 여행도 다녀오고 규칙적인 운동도 하면서 몇 개월 쉬더니 재취업 대신 평소 하고 싶던 분야의 창업을 선택했다. 다소 경험이 부족해 무모해보였지만, 자기 인생이니 심사숙고했을 터이고, 젊은 날 하고 싶은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는 것도 큰 인생 공부겠다 싶어 지지해주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 않던가.
6개월쯤 지나자 상황이 어려워보였다. 경제적인 투자를 계속해야 하는데, 저축해놓은 비용은 바닥이 난 것이다. 제 아빠가 좀 도와줄까 했더니 펄쩍뛰었다. 자기 힘으로 해보겠다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힘겨워보이던 어느 날, 딸이 나에게 말했다. “엄마, 그만 접는 게 좋을 것 같아.” “좀 더 버텨보지 그래. 아빠가 1년까지는 좀 도와주겠다고 하시던데.” “아니, 사업을 시작할 때 부모님의 도움은 받지 않기로 결심했고 또 조금 도움 받아서 될 일이 아닌 것 같아. 사업을 하는 데 10개의 힘이 필요하다면 적어도 한두 개 정도는 확실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난 그것도 준비가 안됐더라고. 지금으로선 힘을 더 키우는 게 맞는 것 같아. 나 자신을 발견한 소중한 기회였어.”
경제적 손실은 보았지만 돈은 다시 벌면 되는 것이고, 해보고 싶은 것 해보고 자기를 발견했으니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하더니, 뒤도 안돌아보고 일을 접었다. 조금만 더 해보지 하면서 부모의 도움을 받다가 자신은 물론 우리도 힘들게 하는 것보다 일찍 현명하게 판단을 내린 딸애가 지혜로워 보여 잘했다, 칭찬해주었다. 이런 나를 보고 남편은 ‘초 긍정적이라 다행이라’고 말하면서도, 좀 더 해보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마음이 불안해 … 100일 기도 해야겠어”
딸애의 재취업 시도가 시작되던 어느 날, 슬그머니 권해보았다.
“108배 좀 해보지?”
“마음이 불안해서 안 되겠어. 100일기도 시작해야겠어.”
불이 났을 때 소방수를 찾는 것처럼 마음이 급할 때마다 108배를 하곤 하던 딸애는 달력에 하루하루 표시를 하며 기도를 시작했다. 말이 거창하게 100일 기도지 방석을 펴놓고 매일 108배를 하는 게 전부인 기도였다(이것도 빼먹은 날이 종종 있어 백일이 훨씬 지나서야 기도를 마쳤다).
마음에 맞는 직장을 다시 잡기는 쉬워 보이지 않았고, 100일 기도가 끝나도록 재취업의 소식은 없었다. ‘가고 싶은 데 가려고 그래, 걱정 마 엄마.’ 하면서 오히려 나를 안심시켜주는 딸을 보면서 ‘제법 내공이 있는데’ 하면서 지켜보았다. 살짝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럴 때 내가 안심을 얻는 데 큰 역할을 하는 두 가지 기둥이 있다. ‘애들이 몸과 마음만 건강하면 나머지는 덤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 인연법에 마음을 턱 맡기자’ 하는 것이 나머지 하나이다.
작은 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학부모들의 모임이 있어서 학교에 갔는데, 모두들 모여 앉아 대학입시 문제로 이야기가 한창인데,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 엄마 한 사람이 있었다. 이야기가 다 끝나고 났을 때 그 어머니가 담담히 한 마디 했다. “저는 우리 아이가 혼자 힘으로 학교에 왔다가 집에 돌아오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밥 잘 먹으면 다른 거는 바라지 않을 거 같아요.”
평범해 보이는 저 일이 제대로 안 되는 아이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그 이후 난, 한 생각 푹, 쉬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 평범한 일에 감사하자.” 그 뒤로 정말이지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등 세상에서 재는 잣대로 아이들을 평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문제로 아이들에게도 스트레스를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두 애들 모두 재수 끝에 대학을 갔고(남들이 말하는 일류대학이 아니었지만 나는 결과를 궁금해 하는 지인들에게 정확히 어느 대학 어느 과를 갔다고 미리 문자를 보내주었다), 대학에 다니면서 1년씩 휴학을 했고, 졸업 후 들어간 직장들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이 아니었다. 친구들의 이른바 잘나가는 엄친아 소식을 들을 때 조금씩 흔들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저 두 가지 기둥으로 바리게이트를 쳤고, 안심을 얻었다. 가끔씩 나는 그날 학교에서 만났던 그 어머니가 자식에 대한 내 욕심을 내려놓게 한 관세음보살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어쨌든 큰애는 백일기도가 끝나고 다시 백일기도를 시작하던 중 재취업에 성공했다. 먼저 번 직장보다는 모든 면에서 대우가 좋고 무엇보다 일하고 싶었던 직장이어서 다행이다. 언젠가 저와 둘이서 휴가 때 선방에 같이 가서 정진하자고 한 약속이 한 발자국 다가선 것 같아 기쁘다.
딸애의 취업으로 한숨 놓고 있지만, 이제 다시 직장생활을 거쳐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친구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손주 보아주는 일을 두고 고심을 하게 될 것이다. 며칠 전 중학교 동창 결혼식에서 만난 친구들 절반 정도가 손주들을 보아주고 있었다. 내 자식, 내 며느리가 직장 생활이 단절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혹은 너무 힘들어하는 자식들이 안타까워 손주들을 봐주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젊었을 때 나이 들어 아이들에게 해방이 되면 일 년에 6개월(동하안거 3개월씩) 선방에서, 6개월은 집에 있으면서 읽고 친구들과 여행 다니고 해야지 했었다. 지금도 그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을 보면 저 계획을 실천하기가 쉬워보이진 않는다. 이런 일을 두고 스님들은 “언제까지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집착하면서 묶여 살 것인가” 하고 꾸짖으신다. 요즘 듣고 있는 혜암 스님 법문에서도 ‘내 마음을 찾는 일보다 더 시급한 일이 세상에 없다’ 하시면서 자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남은 시간 정진할 것을 권하셨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자식이 사회생활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아이 맡길 데가 적당하지 않고 남에게만 맡기는 것이 안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식의 아이를 돌봐주는 것이 과연 집착일까? 스님들께선 나이들수록 자식에 대한 집착은 이제 그만 끊고 자신을 찾는 공부에 매진하라고 하시는데, 손주를 남의 손에 맡겨놓고 내 본 마음 찾자고 선방에 가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왜 미리 걱정하느냐 하고 할 테지만 곧 나에게도 닥칠 일이고, 모든 초보 할머니들이 선택해야 할 과제다.
나는 이 시점에서 타협점을 찾아보는데, 모델은 수행과 생활면에서 균형 있게 살아가고 계신 나의 도반님이신 금륜행 보살님이다. 사남매의 어머니이신 올해 76세이신 보살님은 여러모로 그동안 나의 인생이나 도반 선배로서 모범이 되어온 분이다. 십 년을 뵈어왔지만 수행 면에서나 일상생활에서 균형적인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뵈면 한 달 혹은 3개월 선방에서 정진하다 나와 계신가 하면, 어느 날은 약속 장소에 갓난쟁이 손주를 업고 나타나신다. 외국에 사는 막내딸네 집에 가서 손주를 봐주고 계시다가 서울에 나타나셨다 싶으면 도시 한복판 선방에 출퇴근을 하며 정진하고 계신다. 고령의 시어머니를 오래 모시면서도(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정월 보름같이 특별한 날엔 맛있는 나물을 풍성하게 차려놓고 그리웠던 사람들을 불러 모아 푸짐히 대접하기도 한다.
“… 말로만 그랬지 애들에 묶여 있었구나!”
시골에 시부모님이 살던 집을 조금 개조해 일 년에 여러 달을 그곳에 머물면서 뒷산에서 밤을 주워 도반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김장철이면 아들 딸 며느리들을 죄다 불러 김장을 한다. 물론 간장 고추장 된장도 손수 담그신다.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는 뒷산에서 주운 도토리로 묵을 쑤어서 공양을 올리신다. 그 보들보들한 묵을 양념장에 찍어먹을 때마다 어떻게 늙어가야 할지를 생각해보곤 한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우리 정진 모임에도 별 일 없으면 참석하셔서 허리를 곧추 세우고 앉아 정진하신다. 밤새 꼿꼿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허리를 펴고 앉아있는 모습만으로도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증명하고 계신 분이다.
얼마 전엔 큰아드님 댁 얘기를 들려주셨다. 고3 수험생을 두고 있는 큰아들며느리가 손자에게 집착을 하고 마음을 끓이는 것 같기에, 어느 날 새벽에 강북의 집을 나와 택시를 타고 강남에 사는 아들집으로 갔단다. 초인종을 누르고 한 첫 마디가, ‘너희 둘 다 나오너라, 나랑 같이 갈 데 있다.’ 하시곤 다짜고짜 집에서 가까운 봉은사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108배를 함께 하고는 내가 선물한 책 『내 인생을 바꾼 108배』를 쥐어주고는 집으로 돌아가셨단다. 1월 정진회에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들 며느리가 차례로 그 책을 읽고 매일 새벽예불에 나가 108배를 한다는 군요. 절을 하고 아들은 바로 출근을 하고 며느리는 집으로 돌아와 애들 챙겨주고 일을 본다고 해요.” 그 말씀을 듣고 생각했다. 수행의 힘이 아니고는 그 새벽에 자식의 집에 달려가 아들 며느리를 데리고 절로 데리고 갈 수 없었을 거라고.
나의 선배도반이신 금륜행 보살님을 보면서 아무리 좋은 것에라도 갇히지 말자고 다짐한다. 무유정법이라고 하지 않던가. 삶에 정해진 것은 없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진심을 다해 살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손주를 어떻게 돌봐줄지를 미리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정답은 애초에 없는 거니까. 며칠 전 시내에 나가다 보니 길가의 산수유가 어느새 노랗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맞다, 산수유가 한창 피어날 때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생각했다. ‘그랬구나, 내가 말로만 그랬지 애들에 묶여 있었구나.’ 괜찮다 하면서도 몇 달 동안 딸애와 함께 취업문제로 고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자식과의 문제는 살아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이쯤에서 다시 외쳐본다. “오직 모를 뿐! 정진할 뿐!” 정진하는 삶을 선택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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