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기도]
큰스님의 생활 법문에 매료된 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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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 1997 년 12 월 [통권 제8호] / / 작성일20-05-29 10:21 / 조회11,357회 / 댓글0건본문
"검푸른 밤하늘에 유난히 밝은 별빛이 고심원으로 향하는 제 발끝을 밝혀주며 길동무를 하는 듯합니다. 이 도량에 발길을 댄지 벌써 30여 년, 이젠 제집 마냥 구석구석 눈에 익지 않은 곳이 없고, 그런 세월의 무게로 절 못하는 돌보살이 신도회장이라는 중임까지 맡았으니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 열반하신 큰스님과 다른 상좌 스님들께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닌가 항상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참 세월이 빠르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고심원에 안치된 스님 존상 앞에 엎디어 절을 올리게 되리라고 언제 생각이나 했을까요.
아직도 제 귓가엔 백련암 기왓장이 날아갈 것 같은 스님의 고함소리가 쟁쟁합니다. 그리고 그 차가운 겨울에도 화장실에 갔다 오면 찬물을 끼얹고 법복을 갈아입고 기도에 들어가던 일도 엊그제 갔습니다. 기도에 필요한 공양물과 옷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완행열차 타고 대구까지 와서 다시 차 갈아타고 어둔 밤길을 도와 풀뿌리 잡아가며, 눈 쌓인 길을 헛디딜까 앞서 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팥죽 같은 땀을 흘리며 굽이굽이 백련암을 오르던 일도 눈에 선합니다.
기도가 시작되면 큰스님께서는 잠시도 방에 계시지를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기도를 부도낼 수가 없었지요. 그때만 해도 백련암에는 공양주가 없어서 부처님께 올릴 공양 준비도 기도 동참자들이 스스로 해야 했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성의 없이 했다간 당장 쫓겨 내려갔지요.
정말 혹독한 시집살이였습니다. 그런데 큰스님, 지금은 그때가 마냥 그립기만 합니다. 정말 그때는 성심성의껏 기도를 했습니다.
큰스님 떠나신 지 벌써 네 해, 처음엔 기도 대중이 줄지나 않을까 싶어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이젠 오히려 방사가 비좁아 걱정입니다. 그래도 그 옛날 큰스님 회상에서 기도를 하던 구참 도반들이 아직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고 그 사이사이로 새롭게 들어온 보살 대중들이 어울려 서로 힘을 보태가며 매번 기도를 원만성취하고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자리가 어디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조용히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보살대중에게 이 돌 보살은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내일 회향일을 앞두고 그나마 소임을 다한 것 같아 오늘 밤은 편안한 마음으로 스님 존상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백련암에 첫 발걸음을 하게 된 것은 도반 때문이었습니다. 한 도반이 불의의 사고로 아이를 잃고 매일 눈물 바람으로 사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묘각심 보살이 백련암의 큰스님 이야기를 하며 거기 가서 재를 한번 올려보라고 권유를 하였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우리들을 보시자마자 ""너희들 누구 따라왔노""하고 물으시더니 처음부터 아비라기도를 시키셨습니다. 사실 절에는 다녔다고 하지만 뭐 대단한 신심으로 다닌 것도 아니었고, 또 스님들이 하시는 법문도 한문 투의 어려운 말씀들뿐이었지요. 그런 돌보살들에게 큰스님께서 아비라기도를 숙제로 내리셨으니, 너무너무 힘든 기도를 한 것이지요.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친 우리들에게 하신 큰스님의 법문은 그야말로 귀에 쏙 들어오고 마음에 탁 와 닿는 생활법문이었습니다. 그 법문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이 눈 녹듯 사라지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 백련암으로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게 하는 인연이 된 것입니다.
처음 아비라기도를 하고는 법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다시 와서 3천배를 하고 '천진성'이라는 법명과 원상, 화두, 일과를 탔습니다. 그때 스님께 받은 화두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고'입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병중에 있었습니다. 남 보기에는 건강해 보여도 타고난 체질이 약해서 그런지 맨날 몸이 아팠었지요. 그런 저에게 큰스님은 삼칠일 장기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기도를 잘하는 한 보살이 도반이 되어 둘이서 장기기도에 들어갔습니다. 1년에 장기기도 3번, 칠일기도 5번, 네 번의 아비라기도까지 하다 보니 어느 해인가는 200일 이상을 절에서 살게 되더군요. 그러니까 집의 처사가 호적을 해인사로 옮기라고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큰스님께서는 내 육신이 보기와는 달리 허공 중에 붕 떠 있는 별 볼 일 없는 몸뚱이라는 것을 대번에 아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기도를 힘들게 했던지 큰스님께서도 제 불명보다는 '절 겁내는 보살'이라고 별명까지 다 붙여주실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장기기도가 끝날 무렵, 큰스님께서는 일과 1000배를 숙제로 주셨습니다. 그때 마침 관절에 통증이 심하게 와서 병원에 가서 두 번이나 물을 뺏을 때였습니다. 병원에 가면 절대 절을 하지 말라고 하고 큰스님께서는 절을 하라고 하니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야 하나 그때의 갈등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지요. 처음에는 병원엘 다녔지요. 그런데 이게 아니다 싶더군요. 그래서 병원에 가지 않고 100일을 정해 놓고 절을 하는 도중 아비라기도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100일 동안 일천배란 나에게는 엄청난 기도였습니다. 물론 큰스님께서는 몇일을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내 생각에는 꼭 100일을 해야 할 것 같았던가 봅니다. 아비라 기도가 끝나고 나가는데 갑자기 백련암 기왓장이 날아갈 것 같은 고함소리가 등 뒤에서 울려 왔습니다.
""절 하나!""
처음에는 큰스님이 인자하게만 느껴졌는데 갈수록 너무너무 겁이 나고 무섭고 두렵기만 해서 스님 그림자가 문가에 비치기만 해도 머리끝이 쭈뼛했는데, 갑자기 ""절하나"" 하고 고함이 터지고 대중의 눈길이 모두 저에게로 쏠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순간 스님께서 묻지도 않으셨는데 우물쭈물하며 ""80일 됐습니다."" 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사실 아비라 기도 들어오기 전에는 일과 3백 내지 6백배를 미리 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기도를 가뿐하게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관절도 안 좋은 데다 1000배를 80일 하고 기도에 들어오니 마치 무릎이 칼로 짼 듯하게 아팠던 것입니다.
""내가 언제 날짜 묻더냐. 무한대로 해라.""
어떻게 내가 날짜를 헤아리고 있는 것을 아셨을까, 내 마음속을 훤히 뚫고 계신 것 같아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 기도를 했을 때입니다.
내 딴에는 시간을 지켜가며 열심히 했습니다. 무릎이 너무 아파서 일어나기가 힘들어 엄지와 검지 손가락의 힘을 사용하다 보니 지금도 손에 못이 박혀 있습니다.
하루는 초저녁에 잘려고 누었는데, 꿈도 아니고 생시고 아닌 듯싶었습니다. 갑자기 무릎에서 이만한 뱀이 대문 밖으로 쑥 빠져나가더니 잇달아 수많은 뱀들이 쏜살같이 빠져나가더군요, 나중에는 가느다란 실뱀 같은 것들이 빠져나가면서 잠을 깨었는데 그 이후부터 관절의 통증이 사라졌고 지금도 관절은 이상이 없습니다.
또 한 번은 3천배 기도를 할 때였습니다. 몸이 퉁퉁 붓고 소변도 나오지 않으면서 방광이 터져 나갈 것 같이 너무너무 아픈데, 스님이 무서워서 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습니다. 간신히 절을 하고 내려오는데 스님께서 저를 보시더니 ""니 옆에 볼이 얼마만 한고""하며 큰소리고 물으시더군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그대로 바닥에 꿇어앉아 펑펑 울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다시 '볼이 얼마만 한고'하시며 고함을 치셨습니다.
""스님, 축구공만 합니다.""
정말 이만한 축구공이 하나 옆에 들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음성을 낮추어 ""그래""라고 답하시고는 삼칠일 기도 내내 매일같이 ""오늘은 볼이 얼마만 한고""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렇게 묻기를 한 보름하셨을 때는 축구공만 하게 느껴지던 볼이 자그마하게 느껴지더니 한 20일 쯤 되어서는 마치 철판을 붙여 놓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아지기는 했으나 스님 말씀대로 끝까지 철저하게 하지 못하고 중간에 쉬었다 하다 보니 아직도 그 병을 몸에 달고 삽니다.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좀 더 철저하게 기도하지 못한 점이 후회도 되지만 만약 그런 기도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로 큰스님께 받은 가르침이 많지만 이것만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과 꼭 함께하고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큰스님의 법문이 어렵다고들 알고 있는데, 스님들에게 내리시는 법문은 그럴지 몰라도 사부대중을 향한 법문은 쉽기도 하거니와 일상사를 살아나가는 데 꼭 필요한 지침이 되는 말씀들이어서 휴지에 적고 집에 와서 다시 옮겨 적고는 매일 또는 매년 꺼내 읽어 보면서 제 자신을 반성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생활이 바쁘고 하다 보니 한 10년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얼마 전 서랍을 정리하다가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십오륙년 전 스님께서 하신 법문입니다.
첫째, 자기 허물을 알자.
둘째, 진실한 참회는 성불한다.
셋째, 타인에게 지고 산다.
넷째, 사주보다 관상이 좋고 관상보다 심상이 좋다.
다섯째, 모든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 단 지극한 기도와 착한 마음으로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다.
여섯째, 인간은 욕망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허욕에 찬 지나친 욕심은 죄만 짓는 결과를 초래한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겠지만, 공을 벽에다 던지면 어디로 갑니까. 결국 자기에게로 돌아오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일은 다 자기가 한 만큼 돌아오는 것입니다.
또 놋그릇에 자기 업이 가득 한데 자꾸 업을 쌓는 사람은 더욱더 때가 끼고 업을 닦는 사람은 때가 적어지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기도 조금 해 놓고 '성불'을 찾습니다. 자기 업은 모르고 자기 기도한 것만 생각합니다. 물론 업 따라가겠지만 업을 빗겨나가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큰스님의 가피와 가르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야 자기를 바로 보고 남을 위해 기도하라 하신 그 크신 가르침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실천할 수 있을 듯합니다. 모쪼록 더 많은 사부대중이 큰스님의 법에 따라 열심히 참회 정진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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