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삼국의 선 이야기 ]
순수선을 전한 중국 선사 난계도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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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상 / 2024 년 6 월 [통권 제134호] / / 작성일24-06-05 09:27 / 조회1,241회 / 댓글0건본문
일본선 이야기 6
대각파의 시조인 난계도륭蘭渓道隆(1213〜78)은 성도의 대자사大慈寺에 출가하여 무준사범, 치절도충, 북간거간 등의 지도를 받았으며, 무명혜성의 문하에서 수행하여 인가를 받았다. 1246년 입송한 일본 율승 게츠오치쿄(月翁智鏡)의 설득으로 일본에 왔다. 1253년 막부 5대 집권자 호조 토키요리의 초빙으로 가마쿠라의 건장사建長寺 개산조가 되었다. 만년에 참언으로 유배를 당했지만 다시 돌아왔다.
가마쿠라 건장사의 개산조
불조의 혜명을 잇는 선림에 걸맞은 엄격한 규칙을 제정하고 작법 시에는 제자들에게 엄중하게 했다. 건장사는 일본 최초로 임제종의 순수선을 전하는 선사禪寺로 칭했다. 당시는 아직도 여러 종학을 겸한 곳이 많았으므로 일본 선종사에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난계의 가르침은 후대 일본선이 토착화하는 큰 기반이 되었다.
당시 유력자일 것으로 추측되는 사마젠몬(左馬禪門)에게 보내는 법어에는 “참된 도는 원래 고원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며, 도를 밝히는 것은 사람에게 있다.”고 한다. 참선은 진리를 알고자 하는 인간이 발달시킨 최고의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한 것이다. 그는 이 서신에서 제불제성은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도를 성취했다고 하며, 『능엄경』과 『금강경』을 들어 이야기하고 있다.
제자들이 집성한 그의 설법집인 『대각록』에서는 오조법연이 제시한 “동산에 있는 물소가 창살을 넘어가고 있다.”는 공안을 참구하여 깨달았다고 한다. 이는 『무문관』 38칙인 우과창령牛過窓櫺으로 소의 머리, 뿔, 네 발은 다 빠져나왔지만 꼬리가 빠져나오지 못한 이유를 묻는 공안이다. 서신에서 “세밀하게 자신을 재삼 돌아보라.”는 말은 수행의 흔적마저 감추는 선의 본래면목을 간절히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난계는 『변도청규辨道淸規』를 통해 일본선문을 확립하고자 했다. 이는 중국 선승이 일본에서 최초로 편찬한 청규다. 『대각록』에는 들어 있지 않았지만, 여러 사찰에 흩어진 것을 모아 후대에 복원을 했다. 더불어 참선의 기본 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좌선의坐禪儀』를 찬술했다. 이는 일본에 와서 머물던 하카타의 원각선사에 있을 때 작성했다. 난계는 좌선의 서두에서 “좌선은 말하자면 대안락의 법문이다.”라고 운을 뗀다. 좌선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에서 다음까지 안락하지 못하다.
그 이유는 이것저것 마음이 헤매게 되어 여러 가지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좌선에 들어가도 마음이 산만해 개미가 집을 들락날락하는 것처럼 아래위로 요란해진다. 즉, 마음이 정해지지 않는다. 난계는 단호하게 “네가 주체적인 자신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진하고자 하기 때문에 손발을 놓을 곳이 없는 것이다.”라고 한다. 역시 마음이 몸을 지배할 수 있음을 난계는 분명히 제시한다. 선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많은 선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듯 평상의 계를 중시한다.
몸이 바르게 정리된 상태에서 존재하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도록 한다. “너의 일개 무상한 신체를 바라보라. 가죽은 근육을 감싸고, 근육에는 뼈가 있다. 근맥과 골수에 의해 이 신체가 만들어졌다. 후일 죽어서 불태워 없어지면 너는 어디에 존재하는가?”라고 묻는다. 무상관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석존이 결정적으로 출가를 결심한 것도 『아함경』에서는 죽음을 본 뒤라고 한다. 무상에서 무아로 바로 직입하는 것만큼 빠른 길도 없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선은 일반인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행이다.
마음 다스림은 궁정을 지키는 것과 같다
난계는 이어 좌선에 들어가기 전의 준비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 주로 마음의 자세를 설한다.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도록 할 것인가. “마음은 형체 등은 없고, 이름 붙일 것도 없다. 만약 신체 속에 축적된 것을 끄집어내어 마음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살덩어리일 뿐이다.” 따라서 준비라는 것은 확고하게 정해진 진실한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궁정을 지키는 것과 같다고 한다. 낮에는 육근의 외적을 막고, 밤에는 단단히 자각해 있어야 한다. 장군이나 장수가 명령을 내리면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태평하게 된다. “작은 것이라도 육적六賊이 자신의 경계를 침범했다면 바로 적을 체포하여 죽여서 없애라.” 육적은 육경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주장의 명령을 바로 실행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이러한 경계를 제시하며 깨침에 이르기까지 여러 경로를 설명하고 있다. 수마睡魔나 잡념을 대처하는 방법, 음성이나 사물에 의해 움직여질 때 대처하는 방법 등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은 일반화된 참선의 지침들이지만 당시 일본 사회에서는 매우 선진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살활자재하는 난계의 풍모로 인해 일본사회, 특히 왕실이나 무사계급의 지배 세력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하루는 교토의 건인사建仁寺에서 에사이의 기일에 상당설법을 하게 되었다. “촉 땅은 구름이 높고, 부상扶桑(해가 뜨는 동쪽 바다, 즉 일본)은 물이 상쾌하도다. 전신과 후신은 두 번 던진 주사위가 같은 숫자라네. 그 옛날에 오늘 죽었으나 없지 않고, 오늘 이 새벽에 여기 있으나 있지 않네. 여러분들은 핵심을 아는가?”라고 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향기로운 바람은 시든 꽃에 불더니, 다시금 새롭고 좋은 것에 비 내리도다.”라고 결어했다.
그는 수행은 “자신을 믿고, 스스로 닦아서 스스로 깨달아야만 한다.”고 하며, “믿는다는 것은 부처나 조사에게 전하지 않으면서도 전하는 오묘함이 있음을 믿는 것이요, 닦는다는 것은 자신이 이르고자 하지만 아직 이르지 못한 경지를 닦음이요, 깨닫는다는 것은 바로 지금 머리를 어지럽히고 헛된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을 깨닫는 일”이라고 한다.(『원형석서』)
난계의 수행론은 무엇보다도 후지안밍[胡建明]이 말하듯 돈오점수에 의거한 수증론에 기반하고 있다.(「난계도륭 선사의 법어·규칙의 묵적과 사상」) 이는 규봉종밀의 『선원제전집도서』나 지눌의 『수심결』에 잘 나타나 있다.
선은 모름지기 불성, 자성, 여래장을 드러내는 행위다. 중생은 이미 본래면목의 본각을 체험하고 있다. 무시이래의 무명에 뒤덮여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무루의 본성을 회두반조回頭返照하는 것, 그것이 참선이다. 그렇다고 돈오돈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선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이전투구하는 다수 중생들의 눈을 뜨게 해주고, 갈지자의 삶의 행보를 바르게 세워 불지를 향하도록 도와주는 일인 것이다. 그것은 어떤 특별한 자의 소유가 아닌 것으로 업에 의해 구속된 원초적 자유, 임운등등 무애자재의 삶을 회복하도록 하는 하나의 방편이다. 난계는 이 점을 친절하게 전하고 있다.
난계가 남긴 유계 5개조
그는 열반 전에 「유계遺誡 5개조」를 수시垂示했다.
“①송원松源 일파 승당의 규칙이 있으니, 오로지 좌선할 것을 요한다. 그 외의 것은 무엇이라도 말하지 않는다. 천고千古가 흘러도 이를 폐하지 않는다. 이것을 폐할 때는 선림에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부디 지켜서 실행해야만 한다. ②복산福山의 각 암자는 나루터든 골짜기든 물론하고 화합 보필하여 불조의 본종本宗을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 ③계는 그야말로 승려의 체體다. 오신채와 고기를 문전에서 파는 행위는 허락하지 않는다.
하물며 산중에 들이는 일이야. ④참선학도는 4·6문장이 아니라 부디 활조의活祖意에 참학해야 한다. 사화두死話頭를 염두에 두지 말라. ⑤대법은 그릇이 아닌 자에게 전수하지 말라. 나의 종이 번영하든 쇠퇴하든 오직 이것에 있다. 산승의 유계 이것 외에는 없다. 부탁하고 부탁한다.”
『법어·규칙』
난계는 오조법연→원오극근→밀암함걸→송원숭악→무명혜성으로 이어지는 법계를 잘 지키고자 하고 있다. 오직 도를 깨닫는 일에만 정진할 것을 주문하며, 그것이 바로 선림의 역할이라고 확신한다. 복산은 거복산巨福山 건장흥국선사建長興國禪寺로 부르듯 산호를 말한다. 자신의 문하가 일치단결하여 불조의 혜명을 계승해야 한다고 한다.
훈주육죽葷酒肉鬻이 나온 것은 일본 선문禪門이 아직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지 않았고, 승려들의 위의도 바로 확립되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4·6문장은 육조에서 당에 이르기까지 유행한 4·6변려체騈儷體를 말하는 것으로 4자 혹은 6자로 된 구를 기반으로 댓구를 구사하며 문장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방식이다. 중국과의 교류에서 외교문서에 활용되었다. 중국 유학승은 물론 일본의 승려들은 외교관으로서도 활동하던 시기이므로 세속에 흘러갈 수 있었다. 사구가 아닌 활구 참구를 통해 참된 본성을 회복하는 길에서 멀어지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이 유계는 난계가 평생 선사로서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명확히 알 수 있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다.
앞의 사마젠몬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난계는 “이렇게 회득하면 색색의 전혀 다름도 모두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고, 능엄·금강의 세계와 선과는 다른 것은 없다. 만약 의심의 마음이 터지지 않고 체득 성찰하는 것이 아직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선과 교가 다름을 보게 된다. 우리 종은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단지 그 근본을 얻으면 그 끝을 얻지 못함을 고뇌할 것 없고, 부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함에 고뇌할 것 없이, 우리 마음을 깨달아 얻으면 통달하지 않음이 없다.”고 한다.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마음 하나가 살활자재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후 난계가 지니고 있던 거울을 한 제자가 챙겼는데 꿈에 그 거울에서 관자재보살이 나타났다. 당시의 무사 권력자가 그 소식을 듣고 달라고 요청했다. 거울을 갈아서 보니 “존엄하고 대자대비한 상호가 모두 넉넉하게 갖추어져 있었다.”고 한다.(『원형석서』) 그만큼 일본 사회에 그가 끼친 영향력이 컸음을 보여준다. 1278년 난계의 사후에 그를 사모한 호조 토끼무네의 요청으로 무학조원無學祖元이 오게 되었다. 토끼무네는 토끼요리의 차남으로 막부 8대 집권자였다. 난계의 공덕으로 건장사는 최신의 중국선을 일본에 전파하는 첨단의 무대이자 중일 문화교류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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