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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원효 대사와 『종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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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  2017 년 7 월 [통권 제5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08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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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통일 신라의 원효(元曉, 617-686) 대사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이가 드물 것이다. 올 초에 시행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불교대학에 다니는 대학생 670여 명 가운데 21.2%가 가장 존경하는 스님으로 원효 대사를 선택했고, 성철 선사께서 17.7%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원효 대사는 원융회통(圓融會通)의 사상을 근거로 사회의 소통에 앞장섰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았고, 성철 선사는 ‘부처님 법대로’라는 정신으로 봉암사 결사를 추진해 승단을 정화하고자 했던 점에서 큰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우리가 원효 대사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바는, 대사께서 의상 스님과 함께 중국 유학길 도중에 해골 물을 마시고 일체유심(一切唯心)의 이치를 깨달은 뒤 중국에 가지 않고 신라로 돌아와 많은 저술을 남기고 무애행(無礙行)을 했다는 내용일 것이다. 또 요석 공주와의 인연이라던가, 아드님인 설총에 대한 얘기도 원효 대사와 관련해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내용들이다. 이런 얘기들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세대를 전하면서 거듭 전해진 내용들이므로, 굳이 그것의 출처에 대해 면밀히 따져보는 일은 이 방면에 종사하는 학자들의 몫일 것이다.

 

필자가 <종경록>을 공부하면서 놀랐던 점 중의 하나가 바로 원효 대사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필자가 알기로는, 오늘날 남아 있는 문헌 가운데 원효 대사가 더러운 물을 마시고 깨달았다는 얘기를 전하는 가장 빠른 시기의 문헌은 바로 <종경록>이다. 또한 <종경록>에는 원효 대사 이외에도 의상 대사의 저술 역시 인용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해동의 훌륭한 스님들의 말씀을 중국에 널리 전파하는 데 있어 연수 선사의 역할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원효 대사가 시체 썩은 물을 마시다

 

오늘날 원효 대사의 중국 유학과 관련해서는 비슷하긴 하지만 서로 다른 두 가지 계통의 얘기가 전승되고 있다. 두 가지 계통이란, 더러운 물을 마셨다는 것과 귀신의 동티를 만났다는 것이다. 이 중 전자는 <종경록> 및 혜홍각범(慧洪覺範, 1071-1128)의 <임간록(林間錄)>에 나오고, 후자는 고려의 일연(一然, 1206-1289) 스님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1268년)에 나온다.

 

13세기 고려에서 나온 <삼국유사>에 따르면, 원효 대사는 의상 대사와 함께 두 번째 유학길을 바닷길로 정하고 백제 땅에 있던 항구로 향하였다. 그러다 밤에 비가 오는 바람에 땅막[土龕]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아침에 깨어 보니 그곳이 땅막이 아니라 오래된 무덤임을 알게 되었다. 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룻밤을 더 지내다가 귀신의 동티를 만난 뒤 원효 대사는 마음을 크게 깨쳤다. 이때 원효가 읊은 게송은 다음과 같다.

마음이 일어나므로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멸하니 땅막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알겠다.

반면 <삼국유사>보다 대략 300년 정도 앞선 10세기 후반에 성립된 연수 선사의 <종경록> 11권(T48, 477a)에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해진다.

옛적 동쪽 나라의 원효 법사와 의상 법사 두 사람이 함께 당나라에 와서 스승을 찾았다. 밤에 들에서 묵으며 동굴에서 쉬게 되었다. 원효 법사는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었는데, 마침 곁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떠서 마셨더니 매우 맛있었다. 다음날 그곳을 봤더니 본래 죽은 시체에서 나온 물이었다. 바로 그때 속이 메스꺼워 토하다가 활연히 대오(大悟)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부처님께서는 ‘삼계(三界)는 오직 마음이고 만법(萬法)은 오직 식(識)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좋고 싫음은 내게 있는 것이지 실로 물에 있지 않음을 알겠구나.”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가 지극한 가르침을 널리 펼쳤다.

 

이후 중국에서는 12세기에 활동한 각범 스님의 <임간록>에 원효 대사의 이야기가 조금 각색되어 등장한다. 다만 여기 나오는 물은 해골[髑髏]과 관련되고, 게송 역시 “마음이 생기니 갖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니 해골 물과 (맑은 물이) 둘이 아니구나.[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髑髏不二”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원효 대사의 오도(悟道) 일화는 중국 문헌에서 더 빨리 기재되어 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전승에서는 원효 대사가 중국에 가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는 반면, <종경록>과 <임간록>에서는 원효 대사가 당에 들어가서 스승을 찾던 도중에 위와 같은 일을 겪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런 차이를 제외하면 <종경록>에 나오는 얘기가 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원효 대사의 고사와 일치한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원효 대사와 <금강삼매경론>

 

올해 2017년은 원효 대사께서 탄생하신 지 1400주년이 되는 해이므로, 대사의 사상에 대해 이곳저곳에서 여러 가지 학술행사를 많이 준비하는 것 같다. 대사는 신라 시대에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인물로 손꼽히는데, 그 가운데서도 <금강삼매경론>은 ‘논(論)’으로 칭해질 만큼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근래 <금강삼매경>이 신라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주장들이 일본의 불교학계로부터 나온 이후, 많은 학자들이 이 학설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또한 중국에서 이 <금강삼매경>과 그에 대한 원효 대사의 <논>을 가장 많이 인용한 책 역시 <종경록>이므로, 원효 연구에 있어서도 <종경록>은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볼 수 있다.

 

<금강삼매경>과 관련하여 <명추회요> 94권-4판(710쪽)을 보면 ‘마음이 청정하면 3계(三界)는 없다’는 제목 아래 <경>의 내용이 인용된다. 그것을 먼저 살펴보자.

<금강삼매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중생의 마음에는 다른 경계가 실제로 없다. 무엇 때문인가? 마음이 본래 청정하기 때문이고, 진리에는 더러움이 없기 때문이다. 티끌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었기 때문에 3계(三界)라 하고, 3계에서 쓰는 마음을 다른 경계라 한다. 이 경계는 허망한 것이니, 마음을 따라 허깨비처럼 생겨난 것이다. 마음에 망념이 없다면 다른 경계란 없다.’
대력보살이 말하였다. ‘마음이 만약 청정한 곳에 있다면 모든 경계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이 마음이 청정할 때 3계는 마땅히 없습니다.’”

3계는 중생들이 사는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의 세 곳을 말한다. 욕계와 무색계는 그 수준의 그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크긴 하지만, 아직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 존재들이 머물고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경>에서는 이런 3계가 중생의 마음이 번뇌에 물들었을 때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한다. 따라서 마음이 청정하다면 3계가 현현하지 않을 것임을 대력보살의 말씀을 통해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나온 <금강삼매경>의 말씀을 보면 앞서 원효 대사가 경험했던 내용과 매우 흡사한 구조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럽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는 그냥 시원하고 맛있는 물이었는데, 시체와 관련되었다는 것을 안 순간 그 물 역시 더럽고 구역질나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보통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면, 모든 것이 다 자기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이해된다. 물론 이런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늘 대상을 비추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마음의 상태에 따라 대상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바깥에 있는 대상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수용할 수 있는 관건은 바로 그것을 마주한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으므로, 연수 선사는 <종경록>에서 끊임없이 ‘마음’을 강조하였고, 그런 마음을 자각한 훌륭한 사례로서 원효 대사의 이야기를 소개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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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교전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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