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보초삼매경에서 여우같은 의심을 풀어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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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 2017 년 8 월 [통권 제5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469회 / 댓글0건본문
우리는 지금 『명추회요』의 제일 후반부에 해당하는 ‘인증장(引證章)’을 거닐고 있다. 『종경록』 94권부터 시작되는 인증장은 먼저 부처님의 말씀인 경(經)을 인용하여 마음의 능력과 번뇌의 정체 등에 대한 연수선사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부분이다. 이번 호에는 그 중 94권-8판(716쪽)에 속하는 『보초삼매경(普超三昧經)』 「결호의품(決狐疑品)」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보초삼매경』은 서진(西晉) 시기인 287년 월씨국(月氏國)의 삼장법사 축법호(竺法護) 스님에 의해 한역되었다. 전체 제목은 『문수사리보초삼매경(文殊師利普超三昧經)』이다.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사리가 등장하여 여러 보살들에게 집착이 없는 보살행을 설하고, 아사세(阿闍世)왕에게 공(空)의 이치를 설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명추회요』에서는 아사세왕이 유수(濡首)보살과 문답하는 짧은 대목과 이에 대한 연수선사의 풀이가 같이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원래의 품명은 「결의품(決疑品)」인데, 『명추회요』에서는 여기에다 여우 ‘호(狐)’ 자를 한 글자 더 넣어 「결호의품(決狐疑品)」이라고 하였다. 즉 ‘여우같은 의심을 풀어준다’는 의미이다.
아사세왕의 불행한 사연
여기에 나오는 아사세왕은 상당히 심각한 사연을 가진 인물이다. 이 사연을 알아두는 것이 이후 전개되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사세왕은 불전에 자주 나오는 마갈타국 빔비사라왕의 아들이다. 마갈타국은 부처님 당시 매우 강대한 국가였으므로 불교 교단에도 영향력이 상당히 컸다. 그런 빔비사라왕의 부인인 위제희(韋提希)가 아사세를 가졌을 때, 점치는 사람이 “이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를 죽일 것입니다.”라고 예언하는 통에 빔비사라왕은 큰 두려움을 갖게 된다. 이 불길한 예언으로 아사세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와 원한을 맺게 되었다. 그의 다른 이름 가운데 하나인 미생원(未生怨)은 바로 이런 사연을 담고 있다.
아사세가 태어난 후 아버지 빔비사라왕은 아이를 높은 곳에서 던져버렸지만, 이 아이는 손가락만 잘리고 죽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장성한 아사세는 태자가 되었고, 제바닷타의 꼬임에 넘어가서 아버지인 빔비사라왕을 지하 감옥에 가두어 굶어죽게 만들었다. 왕이 된 아사세는 인근의 작은 나라들을 병탄하였고, 그 위세가 사방을 진동시켰다. 다만 아버지를 죽인 죄로 온 몸에 부스럼이 생겨 고통을 받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부처님 앞에서 참회하였고,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이후에는 불교 교단의 호법자(護法者)가 되었다고 한다. 아사세왕이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아버지 빔비사라왕을 죽이고, 주변 국가를 두루 정복하여 인도 통일의 초석을 다지긴 했지만, 그 마음 밑바닥에는 늘 아버지를 죽였다는 깊은 죄책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이런 상태의 아사세왕이 『보초삼매경』에 등장한다.
허공을 오염시킬 수 있는가
그럼 이쯤에서 『명추회요』에 나온 『보초삼매경』 「결호의품」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이에 아사세왕이 유수보살에게 말하였다.
“바라옵건대 유수보살이시여, 저의 의심을 풀어주소서.”
유수보살이 대답하였다.
“대왕의 의심은 항하의 모래알 수와 같은 불세존께서도 풀어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때 대왕은 스스로 살펴보아도 구제할 방법이 없자 낙담하여 앉은 자리에서 굴러 떨어지니, 마치 큰 나무가 꺾여 땅에 쓰러지듯 하였다.
아마 아사세왕은 평소 자신이 갖고 있던 깊은 죄책감에서 구제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유수보살에게 물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유수보살은 다짜고짜 그런 의심은 아무리 많은 부처님이 계셔도 풀어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이 아사세왕에게는 청천벽력같이 들렸던 것 같다. 얼마나 낙담했으면 한 나라의 왕이 그 자리에서 굴러 떨어졌겠는가. 그런데 사람은 늘 자신의 관점에서 상대방의 말씀을 듣기 때문에 상대방이 말한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보기 힘든 상황이 자주 생긴다. 위의 상황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이에 가섭존자가 중재로 나선다.
그러자 대가섭이 말하였다.
“대왕이여, 안심하소서. 공포심을 품지 말고 두려워 마소서. 왜냐하면 유수동진(濡首童眞)은 큰 지혜의 갑옷을 입고서 훌륭한 방편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당신의 의문을 물어보십시오.”
그러자 왕이 곧바로 일어나서 유수보살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 항하의 모래알 수와 같은 모든 부처님께서도 저의 의심을 해결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까?”
유수보살이 대답하였다.
“왕의 생각엔 어떻습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나는 먼지와 어둠, 재와 연기, 구름과 안개로 이 허공을 오염시키겠다고 말한다면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왕이 대답하였다.
“오염시킬 수 없습니다.”
유수보살이 다시 물었다.
“만일 대왕께 누군가에게 이 허공을 씻어 깨끗이 하라한다면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왕이 대답하였다.
“깨끗이 할 수 없습니다.”
유수보살이 대답하였다.
“저는 이런 까닭에 조금 전에 항하의 모래알 수와 같은 모든 부처님께서도 풀어줄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요즘같이 미세먼지로 대기가 오염되는 상황에서는 위의 대화 내용이 금방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인도에서는 전통적으로 허공을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것의 대표로 꼽았다. 마치 거울에 더러운 것이 비쳤다고 거울 자체가 더러워졌다고 할 수 없고, 거울에 깨끗한 것이 비쳤다고 거울 자체가 깨끗해졌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허공도 본래 깨끗하여 오염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허공’은 무엇을 비유하는가.
연수선사의 풀이
위 경전에 나오는 ‘허공’에 대해 연수선사는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명추회요』 717쪽에 나오는 연수 선사의 풀이를 살펴보자.
일체중생은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럽고 깨끗하다는 분별을 허망하게 일으키고, 깨닫고 미혹함에 스스로 빠져서 마침내 의심이 없는 속에서 의심을 일으키고, 해결할 것이 없는 데에서 해결을 구한다. … 허공의 성품은 더럽히거나 깨끗하게 할 수 없다는것을 통달하고 나면 본래의 마음은 미혹되거나 깨달은 적이 없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연수선사는 허공을 자성청정심을 비유하는 것으로 보았다. 자성청정심은 본래 청정한 마음을 가리키는데, 우리들의 마음이 본래 그렇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자신의 마음은 어째서 그처럼 청정하지 않은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 불교도들은 객진번뇌(客塵煩惱)가 자성청정심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객진번뇌란, 말 그대로 번뇌라는 것이 손님처럼 오는 것임을 표현하는 말씀이다. 원래 주인이 아니고 손님이므로 그런 줄 알면 떠나가게 된다는 뜻 역시 들어 있다.
『명추회요』에는 나오지 않지만, 『보초삼매경』에는 유수보살과 아사세왕의 대화가 더욱 길게 이어지는데, 유수보살의 말씀을 깊이 이해한 아사세왕이 유순법인(柔順法忍)을 얻어 마음이 크게 안정되었다고 한다. 유순법인이란 진리에 따라서 깨닫는 것을 말한다. 아마 아사세왕은 지난날의 자신의 죄가 본래 깨끗한 마음이 객진번뇌에 의해 가려진 상태에서 저질렀던 짓임을 깨닫고, 다시는 그런 번뇌에 휘둘리지 말아야겠다고 굳게 결심하지 않았을까. 아사세왕의 자각은 이후 불법의 수호로 이어진다. 그는 결국 불법을 통해 의심을 끊고 자신을 지키고 나라도 지키는 그런 길로 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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