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불설법구경』의 「번뇌즉보리품(煩惱卽菩提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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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 2017 년 10 월 [통권 제54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527회 / 댓글0건본문
『명추회요』의 96권-9판(745쪽)에는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 마지막으로 『법구경(法句經)』이 인용된다. 여기에 나오는 『법구경』은 우리에게 친숙한 초기 불전이 아닌, 대승경전인 『불설법구경(佛說法句經)』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법구경』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고 대략 삼백 년이 지난 후에 인도의 법구(法救)라는 스님에 의해 편찬된 경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모두 39개의 품으로 엮은 것이다. 현재 이 경은 한역본과 팔리어본이 모두 한글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명추회요』에 인용된 『불설법구경』은 대장경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돈황 문헌 가운데서 확인된다. 일본에서 나온 『대정신수대장경』 제85권은 주로 돈황 불전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를 보면 『불설법구경』의 두 개 판본이 모두 돈황에서 나왔다. 그 중 하나는 일본에 있고, 나머지 하나는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0세기 초 돈황에서 다수의 고문헌이 발견되었을 때, 이것의 자료적 가치를 파악하고 이를 대량으로 확보했던 이들은 중국인이 아니라 프랑스와 영국의 탐험가들이었다. 돈황 문헌들은 기구한 사연을 지닌 채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결과적으로 오늘날 불교학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연구의 영역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불설법구경』은 『명추회요』의 근간인 『종경록』에도 종종 인용되지만, 『종경록』 이전에 출현했던 마조 대사의 어록에도 인용되었고, 초기 선종의 역사서인 『역대법보기』 등에서도 인용되었던 만큼, 선종에서는 꽤 비중있게 다뤄진 경으로 볼 수 있다. 그간 이 경에 대해서는 아주 일부만 다뤄졌으므로, 여기서는 이 경의 내용을 돈황본에 의거하여 전반적으로 소개 해보고자 한다.
돈황본 『불설법구경』의 체제와 내용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돈황본 S.2021호는 앞부분이 결락되어 있어 경명을 알 수 없었지만, 일본에 소장되어 있던 이와 동일한 판본과의 비교를 통해 그것의 경명이 『불설법구경』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경은 「서품」을 포함하여 모두 14개의 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경의 시작이 “이와 같이 들었다[聞如是].”라고 시작되고 있어서, 통상 불경이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如是我聞].”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에 비해서는 보다 오래 전에 한역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경을 한역한 이의 명칭은 나타나지 않는다.
『대정신수대장경』을 편찬한 이들은 이 경을 ‘의사부(疑似部)’로 분류했는데, 이는 이 경의 유래에 뭔가 의심스러운 점이 있음을 반영해주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 경이 인도에서 유래했는지, 아니면 중국에서 찬술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돈황 문헌 가운데 이 경에 대한 주석서인 『법구경소(法句經疏)』(『대정장』 85권)가 전해지고 있으므로, 당시 이 경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았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 경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땅이 아닌 하늘 세계의 일월궁(日月宮)의 승장전(勝藏殿)이다. 이 경의 부처님은 천상의 보살들을 대상으로 법을 설하셨던 것이다. 또한 이 경에서 처음으로 부처님께 청문(聽問)하는 보살은 바로 ‘불괴제법보명보살(不壞諸法寶明菩薩)’이다. 이 보살은 과거 연등불이 계실 때 출가하여 도를 구했는데, 당시 세존으로부터 미래에 ‘불괴제법보명’이라는 명호(名號)의 보살이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았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를 현생의 부처님께 여쭤보았던 것이다.
보명보살의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은 상당히 철학적인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명칭에 대응하는 실질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부처님은 명칭의 본성은 공(空)한 것이므로, 이 명칭에 대해 누군가 비방하거나 칭찬하더라도 성내거나 기뻐할 일이 아니라고 답해주신다. 왜냐하면 명칭과 마찬가지로 비방과 칭찬의 본성 역시 공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답은 다시 소리[聲]의 본성, 내(內)·외(外)·중간(中間)의 세 곳, 선지식이란 누구이며, 선지식이 지닌 공덕이 무엇인지를 논하는 내용으로 이어지는데, 특히 선지식에 대한 부분은 우리가 좀 더 세밀하게 다룰 내용이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도 저 언덕에 도달한다
『명추회요』에 인용된 부분(745쪽)은 『불설법구경』 가운데서도 선지식의 공덕을 논하는 아홉 번째 품인 「번뇌즉보리품(煩惱卽菩提品)」의 앞부분인데, 이 내용을 살펴보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선지식에게 큰 공덕이 있으니, 너희들에게 탐욕·성냄·어리석음·사견(邪見)·5개(五蓋)·5욕(五欲) 등 수많은 번뇌 속에서 불법을 건립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 마음도 일으키지 않고 큰 공덕을 얻게 된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견고한 배를 가지고 큰 바다를 건널때, 몸과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도 저쪽 언덕에 이르는 것과 같다.”
이는 경전에서 대승(大乘), 곧 큰수레를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내용과 유사하다. 가령 조그마한 파리가 하루 만에 천리(千里)를 이동하는 것이 가능할까라고 누가 물어본다면, 그에 대해 여러 가지 대답이 가능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불가능하다고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하는 사람은 파리의 비행 능력과 활동 범위가 천리에는 미칠 수 없으므로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파리가 천리마 꼬리에 붙어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하루 만에 천리를 이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는 그럴 힘이 없지만, 방법을 잘 고안하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인도에서 이른바 대승불교(大乘佛敎)를 주창한 이들 역시 대승이 지닌 큰 기능을 강조하였다. 즉 중생은 나약하여 스스로 구제될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수레, 혹은 어떤 길을 만나면 분명히 저 언덕[彼岸]으로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승의 가르침에 입각하면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을 것 같은 목적지에 금세 도달하게 된다는 말이다. 『명추회요』에는 이에 대한 보충 설명이 없지만, 위에 나온 인용문은 『종경록』 제23권(『대정장』 48권, 543b)에도 나오므로 그와 관련된 맥락을 좀 더 소개해 보고자 한다.
질문. 어째서 이 종경(宗鏡)에 들어가면 일념에 상응해서 도를 신속하게 보아 겁(劫)을 뛰어넘는다고 설하는가?
대답. 실제로 이런 이치가 있으니, 세상의 비유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자기 마음을 곧장 돈오(頓悟)하여 공덕을 원만하게 갖추지 못하고 마음 밖에서 허망하게 구한다면, 다만 오랜 겁의 세월만 지날 것이다. 만약 자신의 마음을 비출 수 있다면, 배가 순풍을 만난 것처럼 일념에 원만히 불도를 성취하여 막힘이 없을 것이다.
연수선사는 『종경록』 100권을 통해서 늘 ‘돈오의 법’을 설하였다. 이는 단박에 자신의 마음의 본성을 깨달아서 성불하는 길이다. 선사 자신은 이런 길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던 것 같다. 다만 주변 사람들 가운데서는 이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이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종경록』 곳곳에 이와 유사한 문답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수선사는 몇 차례나 간곡하게 ‘일념에 상응하는 길’이 있음을 강조한 뒤, 이는 자신이 억지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역대 부처님들의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을 불경을 인용하여 보여주고 있다. 『불설법구경』의 인용 역시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그런데 대승의 가르침 가운데 ‘번뇌가 곧장 보리이다[煩惱卽菩提].’라거나 ‘번뇌를 끊지 않고도 곧장 열반에 들어간다[不斷煩惱而入涅槃].’는 말씀에 대해서는 아주 깊은 통찰이 필요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말씀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게 되면 ‘제멋대로 방종하는 병통[任病]’에 걸려들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선종의 역사, 더 나아가 불교의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지적되는 모습이므로, 이 말씀을 처음 제기했던 분들이 가졌던 팽팽한 긴장감을 놓지 말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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