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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종경록』의 인증장(引證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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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  2017 년 6 월 [통권 제50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82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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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선사의 『종경록』은 표종장(標宗章)·문답장(問答章)·인증장(引證章)의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이들 내용은 모두 선사의 치밀한 의도 아래 전개된다. 우선 언어와 문자에 의해 드러내고자 하는 핵심[宗]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부분이 표종장으로, 이는 『종경록』 1권의 전반부에 해당한다. 여기서 연수 선사는 ‘마음’을 종지로 제시한다. 다음으로 이 마음에 대한 다양한 물음들에 일일이 답변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전개되는데, 이것이 『종경록』 1권의 후반부에서 93권에 이르는 문답장이다. 이 부분은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라는 말씀에 따라 제기된 여러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 그리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경론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분량상 『종경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수 선사 자신의 주장이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종경록』94권부터 100권까지의 인증장에서 경·율·론을 비롯한 불전의 말씀을 대거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고 있다.

 


 

 

『명추회요』는 『종경록』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주요 내용을 발췌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므로, 이 책의 94권(708페이지 이후)부터는 대부분의 경론이 소개된다. 그리고 인용된 내용이 어려울 경우 연수 선사가 직접 붙인 해설이 같이 나오기도 한다. 『명추회요』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연수 선사가 인증장을 펼친 의도와 그것의 체계에 대한 『종경록』의 내용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앞에서 비록 질문과 대답으로 의심을 풀었지만, 오히려 믿기 어려울까 염려된다. 상근기는 보자마자 단박에 총지(總持)의 문에 들어가겠지만, 중근기와 하근기는 보더라도 여전히 여우같은 의심을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믿음의 힘이 깊지 않아 조그마한 의심도 끊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거듭 대승의 경 120본, 여러 조사의 말씀 120본, 현성(賢聖)의 책 60본의 모두 300본의 미묘한 말씀(微言)으로 일불승(一佛乘)의 참된 가르침을 총괄한다.

이는 인증장에서 인용한 내용들이 부처님의 경, 조사의 말씀, 그리고 여러 현성들의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과 이들 모두가 ‘미묘한 말씀’이고 또한 ‘일불승을 드러내는 말씀’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권수대로 본다면 부처님이 설하신 대승의 경은 『종경록』 94~96권에 나오고, 조사의 말씀은 97~98권에 나오고, 여러 현성들의 말씀은 99~100권에 나온다. 특히 현성들의 말씀에는 논(論)·의소(義疏)·장초(章草)·명(銘)·결(訣)·찬(讚)·서(序) 등의 다양한 글이 있어 『종경록』의 종지를 적극 드러내고 있다. 이들 인용문 가운데는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 문헌들의 내용도 상당 부분 전해지고 있으므로, 『종경록』이 고대 불교 문헌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도 높은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참고로 필자가 연수 선사의 말씀을 직접 확인해본 결과 대승의 경 120본은 『종경록』 94권에서 49회, 95권에서 28회, 96권에서 43회 나온다. 여기서 연수 선사는 단지 경을 인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해석하여 말하길(釋曰)’이라는 단서를 붙인 다음 인용된 경의 내용을 『종경록』의 종지인 ‘마음’과 연결시켜 해석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조사의 말씀 120본은 97권에 60회, 98권에 63회가 나오므로, 실제로는 총 123회가 된다. 특히 97권에는 과거7불, 서천28조, 동토6조, 그리고 6조 이후의 다양한 조사들이 남긴 말씀이 소개되어 있다. 현성의 책 60본은 99권에 44회, 100권에 16회가 나온다. 여기에는 신라 화엄학의 대성자인 의상 대사의 말씀 역시 보인다. 그리고 인증이 모두 끝나는 100권의 말미에 다시 질문과 대답이 등장하여 인증의 의의와 그에 따른 몇 가지 의문점들을 논의하고 있다.

 

허깨비인 줄 알면 허깨비에서 벗어난다

 

앞으로는 『명추회요』에 인증된 내용 중 위에서 소개한 대승의 경, 조사의 말씀, 현성의 책의 순서대로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호에 살펴볼 부분은 인증장이 시작되는 앞부분에 나온 『원각경』의 말씀과 그에 대한 연수 선사의 설명이다. 『원각경』은 말 그대로 부처님께서 설한 ‘경’이다. 이 경 가운데서 연수 선사는 자신이 『종경록』에서 제시한 종지에 부합하는 내용을 추려낸 뒤, 그것을 부연 설명한다.


‘허깨비인 줄 알면 곧 벗어난 것이라 방편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허깨비는 확정된 모습이 없어 자성(自性)이 항상 벗어나 있으니, 벗어나면 공(空)하다. 곧 일체범부와 성인의 더럽거나 깨끗한 온갖 법이 모두 허깨비와 같고 허공과 같기 때문이다. 하필 다시 방편을 써서 벗어나고자 하겠는가.(94권-2판, 709쪽)

인용문의 앞에 나오는 『원각경』의 경문은 부처님께서 보현 보살의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경의 앞부분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모든 것이 허깨비와 같은 줄 알라고 설법하셨는데, 이를 듣던 대중들 가운데 ‘일체법이 허깨비와 같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도 허깨비와 같을 것인데, 허깨비와 같은 몸과 마음으로 어떻게 수행하라는 말씀인가?’라는 의문을 일으킨 이가 있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허깨비인 줄 알면 곧 벗어난 것이라 방편을 쓰지 않는다.’라고 답해주셨다.

 

허깨비란 ‘환(幻)’을 번역한 말이다. 허깨비란 실제로는 없는데 마치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대상을 말한다. 가령 눈병이 났을 때 눈앞에 ‘허공 꽃’이 보이는 것과 같은 것이 허깨비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원래는 없던 허공 꽃에 대해 ‘꽃잎의 색깔이 붉다’거나 ‘꽃잎이 네 개 정도 된다’거나 ‘꽃잎이 아름답다’라고 하는 등의 분별을 끝도 없이 일으킬 수 있겠지만, ‘허공 꽃이 본래 허깨비와 같아서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히 알기만 하면, 방편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아도 곧장 허공 꽃과 그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이 싹 사라지게 된다는 말씀이다. 허깨비가 공(空)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 논의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점차’가 있는지의 문제로 곧장 연결된다.

‘허깨비를 벗어나면 깨달음이라 또한 닦아갈 점차(漸次)가 없다.’는 것은, 벗어날 때에 대각(大覺)을 완전하게 성취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벗어남이 그대로 깨달음이니 평등한 하나의 비춤이고, 이미 앞뒤도 없으니 어찌 점차가 있겠는가.

『원각경』에서는 허깨비라는 점을 자각하면 어떤 방편을 쓰지 않고도 단박에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으므로 ‘점차가 없다’는 점이 강조된다. 다시 말해 허깨비인 줄 알아서 그것을 벗어나면 곧장 깨달음의 순간이 되므로, 수행에 있어서도 점차적으로 닦을 일이 전혀 없다는 말씀이다.

 

허깨비의 자각과 돈오돈수

 

한편 연수 선사의 『종경록』에는 ‘돈오돈수’의 관점이 수행론에 있어 최상의 길로 제시되고 있다. 연수 선사는 자신의 이전까지 전해지던 돈점론을 돈오돈수를 중심으로 재편한 인물로서, 특히 마조 스님의 ‘평상심이 도이다(平常心是道)’는 말씀을 돈오돈수의 관점으로 복원하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돈오돈수라는 말 가운데서 ‘돈수’ 곧 ‘단박에 수행한다’는 말에 종종 의아함을 일으키곤 한다. 수행은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 어떻게 단박에 수행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의문에 대해 연수 선사는 허깨비인 줄 알고 벗어나는 그 순간이 바로 큰 깨달음이므로, 방편과 점차가 없이 곧장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돈오돈수’라는 것은 크게 깨닫는 것이 바로 수행의 완성이라는 점을 분명히 제시하는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허깨비인 줄 알았지만 그것에 대한 여러 가지 분별들이 남아 있으므로 허깨비를 더 닦아서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도리어 이치에 맞지 않게 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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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교전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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