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어록의 뒷골목]
할미꽃도 꽃인데, 내가 어떻게 꽃이 아닐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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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 2017 년 7 월 [통권 제5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680회 / 댓글0건본문
호접지몽(胡蝶之夢)은 주객의 소멸에 관한 이야기다. 장자(莊子)는 “꿈속에서 나비로 날았는데 내가 나비였는지 나비가 나였는지 분간을 못할 지경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나’와 ‘너’의 경계가 사라져 굳이 나를 내세우거나 너를 밀어낼 필요가 없는 물화(物化)를 꿈꿨다. 형체 없는 달빛이 되어 여기저기를 나돌아 다니고 싶어 했다. 길가를 뒹구는 돌멩이는, 뒹구는데도 슬퍼하지 않고 기죽지도 않는다.
천하에 따로 대단한 존재는 없다. 대단해 보이거나 대단한 척하는 존재가 있을 뿐. 우리는 그가 쏟아낸 말에만 현혹될 뿐, 그가 눈 똥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제89칙 동산의 풀 없음(洞山無草, 동산무초)
동산양개(洞山良介)가 대중에게 보였다.
“첫가을 늦여름에 여러분은 동쪽이건 서쪽이건 모름지기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
다시 말했다.
“그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어떻게 가야 할까?”
석상경제(石霜慶諸)가 답했다.
“문을 나서기만 하면 그대로가 풀밭입니다.”
대양경현(大陽警玄)이 답했다.
“설령 문을 나서지 않는다 해도 역시 풀이 끝없이 무성하리라.”
‘떠난다’는 생각만큼이 망상이요 ‘떠나겠다’는 생각만큼이 고집이다. 떠나지도 말고 머물지도 말자. 한 걸음 나아가 ‘떠나지 말자’는 생각으로 떠나지 말자. ‘머물지 말자’는 생각 안에 갇히지 말자.
제90칙 앙산의 삼가 아룀(仰山謹白, 앙산근백)
앙산혜적(仰山慧寂)이 꿈에 미륵불의 처소에 가서 제2좌에 앉았다.
어느 존자가 “오늘은 제2좌가 설법할 차례요.”라고 말했다.
이에 앙산이 일어나서 법회를 알리는 종을 치고 법문을 시작했다.
“마하연의 법은 4구를 여의고 100비가 끊어졌습니다. 삼가 아룁니다.”
사구(四句)란 하나의 개념 혹은 대립되는 개념을 기준으로 현상을 판별하는 네 가지 논리를 가리킨다. 제1구는 A이다, 제2구는 A가 아니다, 제3구는 A이면서 A가 아니다, 제4구는 A도 아니고 A가 아닌 것도 아니다. 유와 무를 기준으로 하면 ‘있다(유)’, ‘없다(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역유역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비유비무).’
이 기본적인 사구에 다시 사구를 붙이면 열여섯이 되고, 열여섯은 이미 나타난 것과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을 합해 서른둘이다. 이 서른둘은 과거 현재 미래로 나뉠 수 있으니 아흔여섯이며 아흔여섯에 기본사구를 더하면 백이 된다. 사구백비(四句百非)란 모든 논리의 부정이다.
삶이라는 게 정말 그렇다. 즐겁다가도, 즐겁지 않다가도, 그러니까 즐거우면서도 즐겁지 않은 것이고, 즐거우면서도 즐겁지 않으니 즐겁지도 않고 즐겁지 않은 것도 아니고, 이미 나타난 즐거움도 아직 나타나지 않은 즐거움도 이와 같은 패턴을 반복할 것이고, 이러한 감정의 흐름은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럴 것이니, 또 다시 즐겁다가도 즐겁지 않다가도 그러니까 즐거우면서도 즐겁지 않고 즐거우면서도 즐겁지 않으니 즐겁지도 않고 즐겁지 않은 것도 아닐 것이다.
모든 이분법과 관념체계를 초월한 선사들은 ‘몰저선(沒底船, 밑 없는 배)’, ‘무영탑(無影塔, 그림자 없는 탑)’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으면 결국엔 강물로 흘러갈 것이다. 바다까지 떠났다가 되돌아온 물은 컵에든 쪽박에든 내가 떠서 다시 마시게 될 테고. 내가 못 마시면 내생의 내가 마시게 될 테고. 그러니까 실패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겠지. 그대도 언젠가는 내가 되겠지.
제91칙 남전의 모란(南泉牡丹, 남전모란)
남전보원에게 육긍대부가 물었다.
“일찍이 승조 법사는 ‘천지가 나와 같은 한 뿌리요, 만물이 나와 같은 한 몸’이라고 말했는데 참으로 대단한 경지 아닙니까?”
그러자 남전이 뜰 앞의 모란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부여, 요즘 사람들은 이 한 송이의 꽃을 보고는 마치 꿈과 같이 여기는군요.”
승조(僧肇, 384-413)는 경전 한역의 선구자 구마라집의 제자다. 18세에 문하에 들어와 스승의 번역을 도왔다. 그의 <주유마경>은 <유마경> 연구의 필독서로 명성이 높다. 황제는 이 젊은 천재를 갖고 싶어했다. 재상의 자리를 걸고 환속해줄 것을 권했으나 승조는 ‘잠꼬대 같은 소리’라며 일축했다. 괘씸죄에다가 이런저런 모함에까지 엮여서 승조는 결국 참수형을 당했다. 옥중에서 1주일간의 말미를 얻어 <조론(肇論)>을 쓰고는 입적했다. 그리고 엄청난 열반송을 남겼다.
“사대가 원래 주인이 없고 오온이 본래 공하다. 번쩍이는 칼날 앞에 머리를 내미니 마치 봄바람을 베는 것 같구나.”
<조론>의 핵심적인 개념이 물불천론(物不遷論)이다. ‘사물은 움직이지 않는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간다 해도 흐르는 것이 아니며 봄날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고 해도 오르는 것이 아니며 해와 달이 하늘을 돈다고 해도 돈 것이 아니다.”
뚱딴지같은 논리처럼 보이지만 움직이고 오르고 도는 현상을 바라보는 내가 없다고 가정하면 충분히 납득이 된다. 아무도 없는 허공에서 자동차가 달릴 때,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나’라고 하는 육체와 영혼을 초월한 승조는 그래서 무시무시한 혹형 앞에서도 평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육긍(陸亘, 764-834)은 당나라 헌종을 모신 벼슬아치다. 관리들의 잘못을 감시하고 바로잡는 어사대부(御史大夫)였다. 지금의 감사원장쯤 된다. 남전스님 문하에서 오래 공부하며 지혜를 체득한 거사로 알려진 그는 승조스님의 <조론>을 연구하다가 퍼뜩 깨달은 바가 있었다.
“‘천지는 나와 한 뿌리이며, 만물은 나와 한 몸[天地同根 萬物一體]’이라는 구절이 나오던데, 매우 훌륭한 말씀이군요.”
평소 친분이 도타웠던 스승을 찾아가 어렵사리 입수한 ‘한 소식’을 으스댔다. 묵묵부답하던 스님은 뜰 안에 핀 모란꽃 한 송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위와 같이 한 마디 일렀다. 대수롭지도 않은 깨달음에 호들갑을 떤다는 무언의 호통이다.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불교에 대한 비판이다. 우리는 이미 또한 언제든 만물과 하나다. ‘나’라고 하는 탐욕과 열등감만 없으면 내가 꽃이다. 하물며 할미꽃도 꽃인데, 내가 어떻게 꽃이 아닐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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