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어록의 뒷골목]
쉬고 싶다면, 이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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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 2016 년 11 월 [통권 제4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392회 / 댓글0건본문
어느 정신과 의사의 블로그에서 영감을 얻었다. 사람은 누구나 일을 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면 우선순위는 다음과 같이 정할 것을 권한다. 1.할 수 있는 일 2.해야 할 일 3.하고 싶은 일. 힘을 덜 내어도 되고 욕심을 덜 내어도 되는 일들이 앞쪽에 배치됐다. 앞엣것을 먼저 해야 이문이 남는 법이다. 오랜 직장생활과 대인관계 스트레스에서 얻어낸 자투리 지혜다. 정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면, 세상을 탓하지는 마라. 전적으로 욕심부린 그대 탓이다.
무시당할 때, 무시당한다 싶을 때, 누군가가 미울 때, 누군가가 죽도록 미울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무언가를 반드시 해야 할 때,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그냥 하고 빨리 하라. 해낸 일만큼 힘이 쌓이고 희망이 쌓인다. 나에 대한 남들의 증오는 온전히 그들의 것이다. 내 감정은 내가 통제할 수 있다. 타인의 감정을 통제하려 들 때 드는 힘보다 10분의1 정도 밖에 안 든다. 무엇보다, 현실화된다.
제66칙
구봉의 머리와 꼬리(九峰頭尾, 구봉두미)
어떤 승려가 구봉도건(九峰道虔)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머리입니까?”
구봉이 말했다.
“눈을 떴으되 새벽을 느끼지 못하는 격이다.”
“어떤 것이 꼬리입니까?”
“만년(萬年)의 평상에 앉지 못한다.”
“머리만 있고 꼬리가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끝내 귀하게 되지 못한다.”
“꼬리만 있고 머리가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배는 부른데 힘이 없다.”
“바로 머리와 꼬리가 서로 합할 때는 어떠합니까?”
“아기들은 무슨 일을 하건 힘이 들 텐데, 집안 식구들이 그걸 몰라주네.”
두미(頭尾)는 시작과 끝이라 읽어도 좋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좋아야 끝이 좋은 법이다. 또한 시작도 좋고 끝도 좋아야 그 힘이 오래 간다. 원력(願力)은 소원과 노력의 준말이다. 소원이 아무리 드높아도 노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하루 종일 낫을 봐도 기역자를 떠올리지 못한다. 반면 목적의식 없이 무작정 일만 하면 잠시도 엉덩이를 붙이지 못한 채 평생 고생만 하다 갈 팔자다.
머리든 꼬리든 한쪽만 가져도 결국엔 절름발이 인생이다. 말만 번드르르한 자는 역겹다. 발만 동동 구르는 자는 지친다. 그렇다면 소원도 정당하고 노력도 애틋하다면 능사일 듯 싶은데, 그게 또 아니다. 갓난쟁이가 어렵사리 수저를 들어 일껏 밥을 먹는다손, 그게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될까.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원래 오묘한 지라, 일정한 손해와 울분은 깔고 가야 한다.
제67칙
화엄경의 지혜(嚴經智慧, 엄경지혜)
『화엄경』에 이르되 “내가 이제 모든 중생을 두루 관찰하니 여래의 지혜와 덕상(德相)을 갖추었건만, 오직 망상과 집착 때문에 증득하지 못할 뿐이다.” 하였다.
타인과 의견일치를 보지 못해 난감했던 경험.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를 단박에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 의견을 버리면 된다. 하자는 대로 하면, 만사형통이다. 자존심 상해할 필요는 없다. 의견이란 그저 한 순간 생각일 뿐이어서, 덧없고 허망하다. 본래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자존심은 반드시 나에게 손해만 가져다준다. 열불 나게 하고 밤잠을 설치게 한다. 증오의 과보는 상대가 아니라 나만을 직격한다. 나를 위하려는 마음은 결국 나를 죽이는 마음이다.
제68칙
협산이 칼을 휘두르다(夾山揮劍, 협산휘검)
어떤 승려가 협산선회(夾山善會)에게 물었다.
“쓰레기를 헤치다가 부처를 발견하면 어떡해야 합니까?”
“바로 칼을 휘둘러야 한다.”
이번엔 석상초원(石霜楚圓)에게 가서 똑같이 물었다.
“그에겐 국토가 없으니 어디서 그를 만나겠는가?”
승려가 돌아와 석상의 말을 협산에게 고했다.
협산이 법당에 올라 다음과 같이 법문했다.
“문정(門庭)의 시설은 노승에게 미치지 못하거니와, 진리에 대한 안목은 석상이 100보쯤 앞서가는구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살불(殺佛)의 가치는 모든 의미의 무의미화에 있다.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 훌륭하다는 생각, 비싸다는 생각이 늘 사람의 기를 죽이고 목마르게 한다. 역대 조사들은 깨달음을 따로 찾지 않았으며, 오직 ‘그냥’ 살았다. 인생에서 의미를 소멸시킴으로써 죽음의 허무를 극복하려 했던 자들이다. 부처라는 ‘모난 돌’을 빼내야만, 마음의 길이 평탄해진다.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미니멀리즘은, 대충대충 사는 데에서 완성된다.
요즈음의 나는 과업이든 갈등이든 무슨 일이든, ‘한 끼 때운다’는 심정으로 해치우는 편이다.
“바로 칼을 휘둘러야 한다”는 건 ‘부처’라는 망상을 버리라는 이야기다. 쓰레기통 속에서 뒹굴어도 만족할 수 있다는 게 협산의 경지다. 석상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에게 국토가 없다”는 건 부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본래 있지도 않은 부처를 왈가왈부할 게 무어냐는 투다. 석상은 쓰레기통 속의 삶을 넘어, 아예 쓰레기라고 자기를 인식하고 있다. 문정의 시설? 경제적 형편이나 정치적 위세는 협산이 석상보다 훨씬 더 나았던가 보다.
플라톤은 “가장 행복한 사람은 못된 심성의 흔적이 하나도 없는 영혼의 소유자”라고 말했다. 하긴, 못된 놈이 이긴다. 그러나 쉬고 싶다면, 이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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