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로 만나는 스님 이야기]
선종 제3조 승찬(僧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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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 2018 년 3 월 [통권 제59호] / / 작성일20-07-01 10:12 / 조회7,022회 / 댓글0건본문
삼조 승찬(三祖僧璨) 대사가 처음으로 이조(二祖)를 찾아뵙고, “저는 죄가 중합니다. 화상께서 이 죄를 참회하게 해주십시오.” 하니 이조는 “그 죄를 가져오라. 그대에게 참회하게 하리라.” 하였다. 삼조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하기를, “죄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니 이조가 “그대의 죄를 다 참회해 주었으니, 불법승에 의지하여 살아가라.” 하였다.
삼조가 다시 묻기를, “제가 보니 스님은 승보이지만 어떤 것이 부처와 법입니까?” 하니 “마음이 부처요 마음이 법이니 부처와 법은 둘이 아니요, 승보도 그러하다.” 하였다. 삼조가 “오늘에야 비로소 죄의 본성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으며 중간에도 있지 않고, 마음이 그런 것처럼 부처와 법은 둘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하니 이조는 “그렇다.” 하였다. <나옹혜근(懶翁慧勤), 『나옹록(懶翁錄)』>
“삼조 승찬(三祖僧璨) 스님은 북제(北齊)의 천평(天平) 2년(556)에 소림사에서 법을 얻은 후 환공산(晥公山)에 은거하며 죽을 때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혜안(慧安) 스님은 수문제(隋文
帝)가 개황(開皇) 7년(587)에 천하의 모든 사제(私製) 도첩(度牒)을 지닌 승려를 조사할 때, 내 본디 이름이 없다 하고 마침내 숭산에 은둔하였다. 두 스님은 이름과 누를 싫어하며 그렇게 도학에 한결같이 정진하였으니 나는 참으로 그분들을 흠모한다.”
<혜홍각범(慧洪覺範), 『임간록(林間錄)』>
『정종기(正宗記)』에서 삼조(三祖) 스님을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존자께서 처음엔 비록 그의 성씨와 집안과 고향 등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 후 세상에 나와 30여 년 동안 어찌 입을 닫고 조금치도 자기 신분을 말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 점이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내 비문을 살펴보니, ‘대사는 일찍이 사도 도신(四祖道信, 580~651) 스님에게, <누가 묻더라도 나에게 법을 얻었다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하니 이는 존자 스스로가 세상 인연을 미련 없이 끊은 말이다. 도인[至人]은 사물의 자취가 대도(大道)에 누(累)가 된다 생각하여, 마침내는 자신의 마음까지도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제 바른 법의 종지마저도 잊고자 하는데 하물며 성씨며 고향 따위의 속세 일을 생각하였겠는가?”
나는 『정종기』에서 이 부분을 읽다가 명교 스님의 공부가 훌륭함을 알게 되었다.
왕안석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옛날 도인은 공적[功業]도 그의 마음에 누를 끼치지 못했는데 하물며 죽은 뒤의 이름에 연연할 턱이 있었겠는가? 서산양(西山亮, 1153~1242) 스님이 서산에 은거한 일, 법상(法常, 752~839)스님이 대매산(大梅山) 암자에 살던 일, 귀종 지상(歸宗智常) 스님이 자기의 눈을 멀게 했던 일, 법정(法正) 스님이 이름을 말하지 않은 일 따위는 모두가 자신이 들었던 바를 실천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가신 지 수백 년이 지나서도 그분들의 늠름한 기상은 오히려 살아 계신 듯하다. 그분들은 이 세상에 뜻이 없었으나 사람들이 다투어 가며 이 분들과 함께하려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 하겠다.” <혜홍각범(慧洪覺範), 『임간록(林間錄)』>
“삼조(三祖)께서 말씀하시기를, ‘현묘한 종지를 모르고 망념을 가라앉히느라 헛수고하는구나’ 하셨다. 또 ‘보이는 것[物] 보는 것[見]이라 오인한다면 마치 기와 부스러기를 가진 것과 같으니 무엇에 쓰겠으며, 보는 것이 아니라 한다면 목석과 무엇이 다르랴’라고 하셨다.” <백장회해(百丈懷海), 『백장록(百丈錄)』>
“삼조(三祖)께서 말씀하시기를, ‘현묘한 뜻은 알지 못하고 부질없이 애써서 생각만 고요히 한다’고 하였다.”
<백장회해(百丈懷海), 『백장록(百丈錄)』>
“사람이 부처가 되면 얻었다[得] 하고 사람이 지옥으로 떨어지면 잃었다[失] 한다. 옳다[是] 그르다[非]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삼조(三祖)께서 말씀하시기를, ‘시비득실을 동시에 놓아 버리라’ 하셨다.”
<백장회해(百丈懷海), 『백장록(百丈錄)』>
여산(廬山)의 원공(遠公)이 이르되 “근본 단서[本端:무명]가 끝내 어디로부터 왔는가? 있음과 없음의 경계에서 일어났다 멸했다 하도다. 하나의 미세함이 움직이는 경계에 젖어든 뒤로는 이를 형용하면 민둥산[禿貴山] 모양이로다.” 하였거니와, 3조께서 꺼림하신 것은 벌써 스스로가 미워하고 사랑한 뒤에 도리어 말씀하시기를, “다만 미워하거나 사랑하지만 않으면 환하게 밝아지리라.” 하였으니, 여러분은 한 걸음 물러서서 자신을 향해 자세히 점검해 보라. <만송행수(萬松行秀), 『종용록(從容錄)』>
3조께서 이르시되, “대도(大道)는 바탕이 너그러워서 쉬움도 어려움도 없건만 조그마한 소견으로 의심을 일으키면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더욱 더뎌진다.” 하셨다.
<만송행수(萬松行秀), 『종용록(從容錄)』>
삼조가 이르되, “증애(憎愛)하지만 않으면 통연(洞然)히 명백하리니 한 생각이 만 년에 이르도록 받아 지녀 다함이 없게 하라.” 하였고, 녹문(鹿門)이 이르되, “온 땅덩이가 학인의 한 권 경전이요 온 천지가 학인의 한쪽 눈이라. 이러한 눈으로 이러한 경을 읽어 천만억 겁에 잠시도 끊임이 없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경 읽기도 쉽지 않구나!” 하노라.
<만송행수(萬松行秀), 『종용록(從容錄)』>
앞도 잊고 뒤도 잊었다 함은 『영가집(永嘉集)』의 사마타송(奢摩他頌) 제4에 이르되 “여기서 말한 안다는 것은 앎으로써 알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알 뿐이다. 그렇게 되면 앞쪽으로는 사라짐과 이어지지 않고, 뒤쪽으로는 일어남을 이끌지 않아서 앞뒤의 연속이 끊어지고 중간이 스스로 외로이 존재한다.”하였다.
무진등(無盡燈, 문수좌)의 뒤의 법통은 자세치 않다. 중간에 개봉부(開封府) 이문산(夷門山) 광지(廣智) 선사라는 분이 있었는데 휘는 본숭(本嵩)이었으나 별다른 어록은 없고 오직 이 대목만을 들었다. 그런데 문수좌는 이 구절이 『영가집』에서 나온 것인 줄 모르고 본숭이 처음 창출한 것이라 했으므로 여기에서 잠시 밝힌 바이니, 학자들은 그런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앞도 잊고 뒤도 잊는다는 법문은 정확히 말하면 3조의 『신심명(信心銘)』에서 이르기를, “언어의 길이 끊겨 과거・미래・현재가 아니다.” 한 데서 나온 것이다.
<만송행수(萬松行秀), 『종용록(從容錄)』>
암두(岩頭)가 이르되, “곧장 자기의 가슴에서 흘러나온 것으로써 나를 위해 하늘을 덮고 땅을 덮으라.” 하였는데, 지금은 말하기를, “하늘은 덮고 땅은 싣는다.” 하였으니, 어쩌면 이다지 뒤바뀌었을까? 대체로 상식[人情]에 따라서 말했기 때문일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모두가 이르기를, “천지가 사람을 내니 이를 삼재(三才)라 한다.” 하거니와, 불교에서는 반대로 사람이 천지를 낸다고 한다. 그러기에 이르기를, “삼계가 유심(唯心)이요, 만법이 유식(唯識)이라.” 한다. 여기에서 이것을 한 덩어리로 뭉치고 한 무더기로 만들어 “법계에 두루했으되 가[邊]와 겉이 없다.” 한 것이다.
『능엄경』에서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되, “너는 땅의 성품을 관하라. 거친 것은 땅덩이요 가는 것은 먼지이거니와, 인허진(隣虛塵)에 이르자면 저 극미(極微), 즉 색의 변두리 모습[色邊際相]을 일곱 구분으로 나누어서 이루어진 것이요, 다시 인허진을 쪼개면 실로 허공의 성품일 뿐이다.” 하였다. 만송은 항상 『신심명(信心銘)』에서 이른바 “극히 작으면 큰 것과 같으니 경계를 잊어 끊었고 극히 크면 작은 것과 같으니 가도 끝도 볼 수 없다.” 한 것을 들었더니, 어떤 이가 묻되 “세간에서 어떤 물건이 가장 큽니까?” 하면, 꼭 대답하되, “진공(眞空)이니라.” 하였으니, 무슨 까닭인가? 가장 크면 작은 것과 같으니 가도 끝도 볼 수 없기 때문이요, 어떤 이가 묻되, “세간에 어떤 물건이 가장 작습니까?” 하면, 반드시 대답하되, “진공이니라.” 하였으니, 무슨 까닭인가? 극히 작으면 큰 것과 같으니 경계를 잊어 끊었기 때문이다. 오! 삼조(三祖)는 어떤 분이시던가? 화두 한 말씀을 내놓으시면 천하의 납승이 뛰어넘으려야 뛰어넘을 수 없는 분이다. <만송행수(萬松行秀), 『종용록(從容錄)』>
조주 스님이 평소에 이 화두를 들어 말씀하시면서 “간택을 꺼려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3조(三祖) 스님의 『신심명(信心銘)』에 이르기를,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게 없다. 오직 간택을 하지 않으면 될 뿐이니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아주 명백하니라.”고 했다. 시비가 있는 순간 간택에 떨어지거나 명백에 떨어진다고들 하는데 이렇게 이해를 하면 잘못이다. 이렇게 쇠못을 박고 아교풀 칠을 한 것처럼 집착해서야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조주 스님이 “간택에 떨어지거나 명백에 떨어진다.” 했는데 요즈음 참선하여 도를 닦는 사람들은 간택 속에 떨어져 있지 않으면 반대로 명백 속에 빠져 있다.
<원오극근(圓悟克勤), 『벽암록(碧巖錄)』>
어두운 6도(六道)가
밝음을 막지 않으니
터럭 끝만치도 어긋남 없이
감로 열반을 얻으리라.
벌거숭이 머리로
이름 밝히기 꺼려하니
식견도 떠나고 미혹한 생각을 멀리 벗어나
세상사 얽매임 모두 다 없애려 했네.
산과 바다 시내에 묻혀
삼베옷에 삿갓 쓰고
유유히 왕래할 제
갈포 속에 보물을 품었도다.
진실된 마음만을 갈고 닦아
몸과 이름을 모두 버리니
후세에 무덤조차
아는 이 없구나.
< 혜홍각범(慧洪覺範), 『임간록(林間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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