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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로 세상 읽기]
남 탓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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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  2019 년 2 월 [통권 제70호]  /     /  작성일20-06-19 10:38  /   조회6,41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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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 자유기고가 

 

한 스님이 경청 화상에게 “저는 껍질을 깨뜨리고 나가려는 병아리와 같으니, 부디 화상께서

껍질을 쪼아 깨뜨려 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경청 화상이 “과연 그렇게 해서 살 수 있을까?”

하자, 그 스님은 “만약 살지 못하면 화상이 세상의 조롱이 되겠죠.”라고 받아쳤다. 이에 경청은 “멍청한 놈!”이라며 꾸짖었다.

僧問鏡淸, 學人啐請師啄. 淸云, 還得活也無. 僧云, 若不活遭人怪笑. 淸云, 也是艸裏漢.(『 벽암록』 제16칙)

 

우리나라에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이 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남 탓’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허물을 들여다보는 데 인색한 대신 다른 이의 잘못은 침소봉대하여 드러내려 한다.

 

이번 공안公案의 제목은 본래 ‘경청의 줄탁[啐啄]’으로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줄탁동기啐啄同機’로 이루어지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해 본다.

‘줄’은 계란의 배자胚子가 충분히 발육하여 병아리로 태어나기 위해 안에서 주둥이로 껍질을 쪼아 깨뜨리는 행위의 표현이다. ‘탁’은 암탉이 새끼의 활동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알맞은 시간에 밖에서 껍질의 같은 부분을 쪼아 알을 깨고 나오려는 새끼를 돕는 행위를 말한다. 이를 선가禪家에서는 수행자가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때 맞추어 스승이 그 개오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을 ‘줄탁동기’라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스님은 한창 배움에 열중하고 있는 젊은 학인學人이다. 이 젊은 스님은 자신이 깨닫지 못하면 스승으로서 경청화상이 ‘탁’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이 되므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다고 엄포를 슬쩍 놓고 있다. 이에 경청이 ‘멍청한 놈’이라고 되레 혼을 내는 장면이다. 채 무르익지도 않은 수행자가 줄탁을 거론하다 크게 한 방 얻어맞은 꼴이 되었다.

 

경청도부(鏡淸道怤, 868~937)선사는 6세에 동진출가하여 훗날 설봉 의존 선사의 법맥을 이었다. 당대에 선풍을 휘날린 운문문언(雲門文偃,864~949), 장경혜릉(長慶慧稜, 854~932), 보복종전(保福從展, ?~928) 등과 사형사제 간이다. 설봉선사에게 인가를 받은 경청은 월주(越州, 오늘의 절강성소흥)에 경청사를 세우고 후학들을 제접提接했다. 경청사에서 선사는 수많은 학자와 논쟁을 벌이곤 했는데 그의 선지禪旨와 선기禪機가 상대방을 대부분 압도했다고 전해진다.

 

촌뜨기의 겁없는 도전

 

이런 경청선사가 자신을 깨달음으로 이끌지 못할 경우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치기를 부린 젊은 학승에게 당할 리 없다. 경청선사는 ‘초리한艸裏漢’이란 말로 젊은 학승의 호기를 꺾어버린다. ‘초리한’은 당·송 시대의 속어俗語로 ‘촌뜨기’, ‘멍청이’란 뜻이다.

 

‘줄탁동기’가 되려면 세상에 나올 준비가 돼있어야 하고 무르익어야 한다. 어미 또는 스승도 그 무르익음을 알아 동시에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경청을 상대하는 학승은 알을 깨고 나올 만큼 익지 않았다. 선사 역시 그가 설익은 알에 불과할 뿐, 여전히 가슴에 품고 있어야만 하는 존재다. 깨달음의 경지에 가기 위해선 부단히 정진해야 하는 학인승려일 뿐이다. 이런 학승이 선불장選佛場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그 책임이 경청선사에게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으니 선사로선 기가 찰 일이다.

 

이처럼 자신의 어리석음을 모르고 천방지축 날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다가 잘못되면 남 탓으로 돌리기 일쑤다.

1994년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러 대의 차량에 흠집을 내고 타이어를 찢는 사건의 범인으로 당시 15세의 미국 소년 마이클 페이가 치안당국에 검거되었다. 싱가포르 법원은 그에게 징역 4개월, 3천5백 달러의 벌금, 그리고 6대의 태형에 처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문제는 태형이었다.

싱가포르에선 태형이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범죄에 대한 처벌로서 조용히 유지돼왔던 것인데 이 판결로 인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언론매체들은 연일 사설을 통해 태형을 비난하고 나섰다.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싱가포르에 노골적으로 압력을 행사했고 미상원의원 수십 명도 사면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는 “단지 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태형을 면제해 준다면 어떻게 자국의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라며 정면 대응했다. 단지 미국정부의 체면을 고려해 태형을 6대에서 4대로 감형해 주는데 그쳤다.

 

하지만 마이클 페이는 자신에 대한 미국정부와 국민의 관심을 저버렸다. 그는 미국에 돌아가서도 음주운전, 뺑소니, 마약범죄에 빠져들었다.

그리곤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 변명이 한심했다. “마약과 가스를 해야만 곤장을 맞던 기억을 잊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국민의 동정을 사기는커녕 분노만 불렀다.

 

물론 태형이 청소년을 교화하는데 있어서 효과적이냐는 의문을 가질 수는 있다. 그렇지만 잘못에 대한 성찰과 새로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문제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켰던 마이클 페이는 오히려 아시아의 작은 나라 싱가포르에 모든 책임과 원인을 전가하며 젊은 날 자신의 타락을 부채질했다. 과연 그럼으로써 얻은 결과는 무엇일까? 자신을 재기할 수 없는 타락의 길로 더욱 몰아갔던 것이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반조返照의 눈을 가질 때 거듭남이 있다. 모든 변화의 주인공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남 탓으로 원인과 책임을 전가하면 갈등만 증폭될 뿐이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선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회자되는 이 말은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키는 대목이다. 젊은이들이 새로운 신분제를 상징하는 말에 빠지면서 낙담하고 있을 때 정재원(1917~2017) 정식품명예회장(주1)이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해 주목받았다. “타고 난 금수저나 흙수저는 없어요. 뜻을 세우고 굽히지 않으면 길이 생기고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현실에 안주하는 무기력한 삶을 살기보다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아가야 합니다.”(주2)

 

 


 

 

정재원이 20대 청년의사 시절이었던 1937년 서울에서 아기들이 잇달아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베테랑 의사들도 그 원인을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었고 정재원 역시 이 의문을 풀기 위해 40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한 도서관에서 유당불내증乳糖不耐症을 소개하는 의학서적을 접하곤 충격을 받았다. 우유나 모유의 유당을 분해하지 못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는 유당불내증이 20년 전 바로 그 아기들의 사망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유당불내증 치료에 매달린 그가 1966년 만들어 낸 것이 유당이 없고 3대 영양소가 풍부한 콩으로 만든 두유인 ‘베지밀’이다. 이후 베지밀을 팔아 번 돈을 수 천명의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그는 100세의 일기로 운명할 때까지 남의 탓을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잘못된 일이 있으면 스스로 자기를 돌아보며 성찰하는 한편 해답을 찾기 위해 더욱 가일층 노력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금수저, 흙수저론’과 같은 신분제를 어떻게 받아들이셨을까? 부처님은 이와 관련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신의 행위가 자신의 고귀·비천함 결정

 

“인간은 결코 그의 신분에 의해서 비천해지거나 고귀해지지 않는다. 인간을 비천하고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신분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위다.”

부처님은 ‘인간을 비천하고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신분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위'라고 하셨다. 『잡아함경』 4권 102경 ‘영군특경’에 보면 ‘성내는 마음으로 원한을 품은자, 위선을 행하며 그릇된 소견을 가진 자, 거짓을 꾸미고 아첨하는 자, 생명을 해치고 자애로운 마음이 없는 자, … … 빚을 지고도 발뺌하는 자,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자, 자기는 추켜 세우고 남은 깔보는 자, 부처님을 헐뜯고 부처님의 제자를 비난하는 자, 성자가 아니면서 그런 척 하는 자’ 등등이 천한 사람의 부류에 해당한다. 남탓하는 사람도 당연히 천한 부류에 속한다.

 

우리 사회가 반목과 질시 대신 화합과 소통의 구조를 갖기 위해선 무엇보다 앞서 내 자신을 먼저 성찰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나를 성숙한 단계로 끌어줄 스승과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줄탁동기’와 같은 명쾌한 해법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 그러기 위해선 남을 탓하기 앞서 자신을 담금질하는 데 더욱 정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주)

(주1) 의사 출신의 기업인. 대한민국 제10대 1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우리나라 최초의 두유인 ‘베지밀’을 만든 정식품 창업주다.

(주2) 매일경제, 2016.02.29. ‘흙수저 한탄하는 한국청년에게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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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선시 읽는 법을 소개한 『마음의 밭에 달빛을 채우다』를 펴내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오도송에 나타난 네 가지 특징」·「호국불교의 반성적 고찰」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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