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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로 세상 읽기]
낙오하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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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  2019 년 11 월 [통권 제7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56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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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 자유기고가

 

어떤 스님이 조주화상에게 물었다. “소문을 들으니 화상께선 저 유명한 남전화상을 친견하고 그 법을 이은 제자라는데 과연 그렇습니까?” 이에 조주화상은 “진주에서는 꽤 큰 무가 나오지!”하고 답했다.

 

擧 僧問趙州 : “承聞和尙親見南泉是否?” 州云 : “鎭州出大蘿菔頭.”
『벽암록』제30칙

 

『조선불교통사』에 의하면 “한국의 선승들은 조주의 ‘무’자 화두를 화두 중의 제일로 여기고 있다〔海東僧侶 以趙州無字 爲話頭之王〕.”고 할 만큼 조주선사는 한국불교의 선문에서 매우 유명하다. 『경덕전등록』 등 문헌에 전하는 선사의 속성은 학郝씨이고 중국 산동성 조주부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부모의 슬하를 떠나 고향의 용여사에서 출가하였고 숭산 소림사의 유리계단에서 수계 득도하였다고 전한다.

 

수계한 후 주로 경經과 율문律文을 공부하다가 남전산에 있는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4)선사의 명성을 듣고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조주 선사는 남전의 법을 이어받고 한 곳에 정주定住하지 않은 채 전국을 돌며 여러 대덕들을 만나 대법對法을 즐겼다. 그가 조주성의 관음원觀音院에 짐을 풀고 후학을 제접한 것은 나이 80세 때였다. 이 문답은 그가 관음원에 주석하고 있을 때 이루어진 것이다. 한 스님이 조주 선사에게 그 유명한 남전보원 선사의 문하에서 직접 선사를 뵙고 법을 이어받은 게 사실이냐고 묻는 내용이다. 이에 선사는 ‘그렇다’ 또는 ‘아니다’라는 직접적인 답변 대신 “진주에서는 큰 무가 나오지!”라는 일상적인 화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진주는 관음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시로 무로 유명하다. 얘기인 즉 조주 선사에게 묻는 스님의 관심은 남전보원이 아니라 주조 선사에게 있다. 당신이 남전에게 법을 이어받을 정도로 큰스님이냐는 것을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에 조주 선사는 “진주에서는 큰 무가 나오지!”라고 응대하는 장면이다.

 

명장의 조련술

 

명장 밑에 오합지졸은 없다. 훌륭한 명장은 어느 상황에서라도 허둥대지 않도록 병사들을 잘 조련한다. 지략과 계책이 이미 병사들의 몸에 잘 훈습돼 있으니 명장의 지도력은 언제나 빛을 더한다. 조주 선사는 당신이 어떤 인물이라는 걸 ‘진주에서 나오는 큰 무’로 빗대 표현하고 있다. 즉 진주에서 나는 큰 무처럼 남전보원의 제자들이 대부분 큰 선승들이라는 의미다.

 

누구에게 사사 받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띤다. 스승의 인품과 사상이 후대의 가풍을 이루기 때문이다. 조주 선사는 이를 ‘진주의 큰 무’로 비유해 이해를 돕고 있다. 진주의 큰 무라고 하면 지역의 유명한 특산물이다. 상품가치가 커 누구나 신뢰한다. 굳이 현물을 보지 않고서도 구입하는 것이 지역의 유명한 특산물이다.

 

우리나라에도 각 지방마다 특산물이 있다. 유명한 것을 골라 몇 개 열거하자면 하동은 재첩, 성주는 참외, 제주는 귤, 보성은 녹차, 울릉도는 오징어, 영천은 포도, 영덕은 대게, 옥천은 율무, 금산은 인삼, 예산은 사과, 천안은 호두, 상주는 곶감, 영광은 굴비, 나주는 배, 평창은 메밀, 철원은 감자, 무주는 머루 등이다. 각 지역의 특산물은 다른 지역에 비해 품질이 뛰어나다. 품질이 뛰어나므로 소비자들은 믿고 구입한다. 신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특산물이란 그 지역의 지질, 온도, 환경, 재배기술 등 여러 요인이 그 특산물을 생산해 내는 데 매우 적합하여 오랜 기간 사람들에게 인증되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만일 금산의 인삼이 다른 지역의 인삼에 비해 약효가 덜하다면 특산물의 자격을 상실하게 될 것은 뻔한 이치다. 그러나 여전히 각 지역의 특산물이 사람들에게 특별한 인기 속에 팔려나가고 있는 것은 그 오랜 역사를 거치며 알려 온 명품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특산물이라고 해서 다 똑같지는 않다. 개중에는 품질이 현격히 떨어지는 것도 있다. 그렇다면 똑같은 환경과 지질에서 생산된 것인데 품질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몸 안에 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자기 주도로 신진대사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얼간이가 되고 마는 경우다. 햇빛을 받아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없는 병을 갖고 있으면 결국 실패작으로 끝나고 만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공부하던 사람이 나중에 보니 ‘쭉정이’ 신세로 전락해 실망을 던져주는 것이다. 승승장구할 것 같던 사람이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사건에 연루돼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목도해 왔다. 특산물 가운데서도 명품으로 서야 할 존재가 힘없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다면 기울였던 공이 얼마나 허탈할 것인가? 하물며 인간에게 일어나는 이러한 충격은 결코 가볍게 와 닿지 않는다.

 

조주화상은 ‘진주에 꽤 큰 무가 나오지!’ 라는 말로 선불장選佛場의 종가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러므로 질문하는 스님에게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여 부처가 될 것을 경책한다. 다만 아무리 이름난 특산지역이라 하더라도 다 명품을 배출하는 것이 아니듯 기대에 저버리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라는 암시를 주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창의력과 열린 마음

 

기대를 저버리는 결과는 따지고 보면 자만自慢과 아집我執이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가르침을 순리대로 따르지 않고 독선적으로 아집에 갇혀 자기를 그릇되게 하는 행위가 결국 명품으로 크지 못하고 중도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마치 햇빛의 따가움이 싫다고 가지 밑에 숨어 있다가 결국 하품下品으로 전락하는 특산물의 신세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낙오하지 않는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자만과 아집은 개인의 문제다. 개인의 문제를 극복한다고 해서 낙오가 발생하지 말란 법은 없다. 인간이란 본디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성과 패가 갈라질 뿐 아니라 구조적인 낙오의 쓴맛도 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핀란드의 교육현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서점가에 나온 『핀란드의 끝없는 도전』(파시 살베르그 지음, 푸른숲)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핀란드는 오래전부터 교육현장에 혁신과 창의, 협업이라는 철학을 반영하는 것으로 낙오자를 만들지 않는 교육을 펼쳐왔다. 1990년대 초 핀란드는 실업률이 20%에 이르고 가장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었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중위권에 머물러 누구 하나 주목하는 사람이 없었다. 타개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핀란드 교육부는 네트워크 설비 및 통신제조업체인 노키아 등 기업까지 포괄하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특위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교육부에 요구했다.

 

“수학이나 물리학을 모르는 젊은이를 채용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 실수하는 게 무서워 독창적 아이디어를 내놓을 줄 모르는 사람을 채용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무엇보다 창의력과 열린 마음을 없애서는 안 된다.”

 

핀란드는 이 말에 귀 기울였다. 지금은 학교시험을 일체 치르지 않고 숙제도 거의 없다. 그럼에도 해마다 전 세계 학업성취도 평가PISA에서 수위권을 달리고 있다. 핀란드에서는 학교 건물을 지을 때 교사들이 참여해 학생들이 존중감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과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이같은 핀란드의 교육철학은 낙오자를 만들지 않는 사회교육문화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아주 효과적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우리가 주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낙오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른 게 없다. 사회적 관계망에 따른 협업과 독창적인 의식의 발전을 기하는 것이다. 현 사회는 미디어와 통신기술의 발달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과의 교감 능력 또한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필요한 철학이 ‘다른 사람과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닐까? 이것이 또 세상의 가르침을 거스르지 않는 시대 철학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승가공동체가 주는 교훈을 되새겨 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진주에서 큰 무가 나듯이 불교계에서도 조주종심과 같은 대종장들이 무수히 배출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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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선시 읽는 법을 소개한 『마음의 밭에 달빛을 채우다』를 펴내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오도송에 나타난 네 가지 특징」·「호국불교의 반성적 고찰」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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