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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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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글 / 2019 년 10 월 [통권 제78호] / / 작성일20-05-29 10:21 / 조회6,981회 / 댓글0건본문
곰글 | 불교작가
성철 스님(1992-1993)은 여러 말씀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산은 산 물은 물〔山是山 水是水〕’이 가장 유명한 법어일 것이다. 본래 중국 당나라 청원유신靑原惟信 선사의 법문인데 성철 스님이 1200여 년 만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공부를 모를 때는 산은 그냥 산이고 물은 그냥 물이었다가, 공부를 좀 하니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됐다가, 공부가 무르익으니 세상의 진리라는 게 결국은 ‘산은 산 물은 물’이더라는 가르침이다. 세상물정 모를 때는 그저 순진한 노예처럼 살다가, 세상의 더럽고 치사한 속성을 간파한 뒤부터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했다가, 마침내는 ‘다 그러려니’하고 관대하게 받아들일 줄 알게 됐다는 마음의 성장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산에서는 산을 따르고 물이 뭐라 하면 물을 조금만 마시며, 그렇게 곱고 아득히 늙어간다.
다만 얼핏 보면 그 뜻이 바로 다가오지 않는 애매하고 신비로운 말이다. 그래서 신비주의 연예인이 뜨듯, 이 말도 크게 반짝거리며 유행했다. 더구나 죽음이라는 최고의 신비가 포개졌다. 성철 스님이 열반하자마자 ‘산은 산 물은 물’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됐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어도 불교계에서 매우 존경받던 큰스님의 말씀이라니, 다들 높이 평가했고 나중에 써먹었다. 어디서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뇌까리면 불교 좀 공부한 것처럼 보이고 세상 좀 아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이 원적에 든 지 26년이 흘렀건만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있다. 어느 부동산 관련 인터넷카페에서는 주택입지의 중요성에 관한 선견지명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숲세권’이라봐야, 산지에 있는 아파트의 가격은 강변에 있는 아파트의 가격을 절대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산에 간 것도 아니고 물에 간 것도 아닌데, 잘들 논다.
잊혀지지 않는 중도 법문
성철 스님은 1993년 늦가을에 돌아가셨다. 개인적으로 고3의 절정기였고 바빴으나 사회적으로 센세이션이 일어났던 건 분명히 기억한다. 나도 그 뜻이 궁금했다. 이제 와서는 맞건 틀리건 ‘중도中道’에 대한 또 다른 비유라고 간신히라도 넘겨짚는다. 워낙 중도를 일관되게 강조했던 당신이다. 생전에 남긴 『백일법문百日法門』은 3권짜리 두꺼운 책이지만, 사실 전부가 중도에 대한 요약이자 부연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중도가 공空이고 무아無我이고 무상無常이고 연기緣起이고 법계法界이고 진리이고 다 같은 말”이라신다. 나도 중도가 좋다.
두꺼비에게 새집을 달라고 청한다. 헌집과 새집을 맞바꾸자고 한다. 얼핏 치사한 짓이지만 그리 미안하지는 않다. 사실 두꺼비는 헌집이어도 사는 데 크게 지장이 없어서다. 두꺼비는 아파트 평수를 가지고 차별할 일도, 학군을 가지고 고민할 일도 없는 존재다. 뱀에게 잡아먹히지만 않는 곳이라면 그에겐 하물며 쓰레기장이라도 훌륭한 집이 될 수 있다. 어쩌면 헌집과 새집을 애써 구분할 필요가 없는 두꺼비가 인간보다 더 나은 신세라는 생각도 든다. 중도란 어디에서도 잘 수 있는 삶이며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삶이다. 산에 살든 물에 살든 어디서나 족할 수 있는 삶은, 마음이 언제나 평온하며 중심을 지킬 수 있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른의 법문은 따로 있다. 최잔고목最殘枯木. 제법 긴 글인데 옮겨보기로 한다.
“부러지고 이지러진 마른 나무막대기가 있다. 이렇게 쓸데없는 나무막대기는 나무꾼도 돌아보지 않는다. 땔나무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불 땔 물건도 못되는 나무막대기는 천지간에 어디 한 곳 쓸데가 없는 아주 못 쓰는 물건이니, 이러한 물건이 되지 못하면 마음 닦는 공부를 할 수 없다. 자기를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결국 저 잘난 싸움 마당에서 춤추는 미친 사람이 되고 말아서 마음을 닦는 길은 영영 멀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아무 쓸 곳이 없는 대낙오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영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희생해서 버리고, 세상을 아주 등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버림받는 사람, 어느 곳에서나 멸시당하는 사람, 살아나가는 길이 마음을 닦는 길 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천하의 허섭스레기만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만으로는 부족하고 사회적 최最약자만이 참된 수행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이라고 역설한다. 낙오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대’라는 수식을 붙임으로써, 그 쓸모없음과 같잖음을 한결 부각시키고 있다. ‘아주’ ‘영영’이라는 부사도 ‘병신성性’을 강조하는 효과를 갖는다. 일언이폐지하면 ‘깨닫고 싶다면 병신이 되라’는 일갈인데, 스스로가 병신처럼 느껴질 때 곱씹으면 제법 위안이 된다.
외롭지 않은 자는 수행하지 않는다. 패배하지 않는 자는 수행하지 않는다. 승승장구하는 자는 수행하지 않는다. 젊고 싱싱한 자는 수행하지 않는다. 외로워지고 밀려나고 수모를 당하는 처지가 되어야만, 나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세상이 얼마나 냉혹한지 그 진면목이 똑똑히 드러나게 마련이다. 정말로 돌아버릴 것 같을 때만이 진정으로 돌아보게 될 수 있다. 역경과 시련은 그런 차원에서 성불成佛에 이를 수 있는 매우 훌륭한 기회다.
조주 선사가 제자인 문원文遠과 선문답으로 내기를 했다. 진 사람이 호떡을 사기로 했다.
조주 : 나는 당나귀다.
문원 : 저는 나귀의 위장胃腸입니다.
조주 : 나는 나귀 똥이다.
문원 : 저는 나귀 똥 속의 벌레입니다.
조주 : 자네는 똥 속에서 뭘 하겠다는 건가?
문원 : 저는 거기서 여름을 지내겠습니다.
조주 : 어서 호떡을 사오게.
게임의 하나로 지는 씨름이란 게 있다. 먼저 쓰러져야만 이기는 게 룰이다. 조주와 문원의 대화는 누가 더 병신인가를 두고 다투는 셈이다. 나귀보다 나귀의 위장이 더 비천하고 나귀의 똥보다 나귀의 똥 속에서 사는 벌레가 더 비천하다. 여기까지는 조주보다 재치가 뛰어난 문원의 우세다. 사실 이 선문답은 후공後攻이 유리한 법이다. 먼저 공격하는 자가 어떤 사물을 제시하면 그것보다 가치적으로 낮은 사물을 떠올려 맞대응하면 그만이다. 세상의 위계를 이해하고 어휘력만 조금 있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대거리를 할 수 있다.
나는 나귀 똥 속의 벌레
이때 조주는 타고난 순발력으로 문원의 옆구리를 찌른다. 벌레라는 ‘명사’가 아니라 벌레로서의 삶이라는 ‘동사’로 말꼬리를 틀었다. 명사는 단순하지만 동사는 복잡하다. 예컨대 ‘토끼가 뛴다’고 할 때 토끼가 뛰는 것은 알겠는데, ‘어디로’ 뛰고 ‘어떻게(어떤 속도로)’ 뛰는지는 알기 어렵다. 똥 속의 벌레가 비천한 존재라는 것은 맞는 말이고 누구나 동의할 만한데, 그 똥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비천한 것인지는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는다. 거기서 여름을 지내겠다고? 사람도 여름은 잘도 지낸다. 곧 여름을 지낸다는 것만으로는 비천하지 않다. 결국 문원은 더 져주지 못했고 패배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산다는 것이 늘 힘이 들고 아리송한 까닭은 그것이 동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여름을 지내겠다’에서 한 술 더 떠 ‘하안거夏安居’를 보내겠다’로 해석하는데, 이러면 단순히 패배를 넘어 몇 대쯤 더 맞아야 한다. 본디 ‘있는 척’을 거부하고 위선을 경멸하는 것이 선불교다. ‘먹물’ 냄새가 진동을 한다.
여름의 주된 특징은 더위다. 모든 생명은 더위 속에서 괴로워하거나 씩씩거리거나 짜증을 낸다. 다시 말해 괴로워하든 씩씩거리든 짜증을 내든, 더위에 반응해 더위에 값하고 더위와 동격인 행위들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위보다 비천한가. 그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더위가 오면 더위가 됨으로써 완전한 병신이 되어야만 완전한 평온을 얻는다는 역설이 성립되는 지점이다. 내가 문원의 입장이었다면 한동안 침묵하고 있거나 켁켁거리며 죽는 시늉을 했을 것이다. 죽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누군가 나를 험담하면 그 험담과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누군가 나보고 개새끼라면, 그냥 개새끼인 줄 아는 것이 도道다. 어차피 나란 놈은 껍데기니까. 최악의 상황을 버텨내면 그 어떤 상황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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