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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위앙종의 종풍과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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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3 년 1 월 [통권 제117호]  /     /  작성일23-01-05 11:25  /   조회6,12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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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25 |위앙종의 선사상 4  

 

당말唐末에 이르러 혜능의 남종선을 계승한 조사선의 위앙종을 필두로 점차 오가五家의 종파들이 성립하였다. 후대에 천여유칙天如惟則의 「종승요의宗乘要義」에서는 오가로 나뉘어 서로 다르게 발전한 원인에 대하여 “오가종파의 성쇠가 같지 않음은 대체로 선사 가풍家風의 기용機用과 사활死活이 같지 않은 것에 말미암을 뿐이다.”(주1)라고 평하고 있다. 이 문구에 대해서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  

 

종법제도의 유행과 오가의 분등

 

오가는 혜능의 남종선을 계승하고 있어 명확하게 ‘그 도는 하나일 뿐’임을 천명하면서 무슨 까닭으로 굳이 오가로 분등分燈 해야만 했을까? 여기에는 각 종파의 독자적인 제접법提接法 이외에 또 다른 원인, 이것은 필자가 생각하는 원인이지만, 바로 당시에 유행한 종법세계宗法世系의 전통과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중국에서는 수대隋代로부터 도교道敎에서 종법제도宗法制度를 받아들여 도사들의 계보인 도통道統을 확립하였고, 또한 당대唐代에 들어서면서 유학儒學에서도 도통설을 제창하였으며, 나아가 천태종과 같은 불교 종파에서도 법계를 확립하였다.

 

그에 따라 중국선 계통에서도 법계를 설정하면서 ‘달마-혜가’ 계통과 ‘도신-홍인’의 동산법문을 연결하여 동토東土의 ‘달마-혜가-승찬-도신-홍인’의 ‘5조’에 이르는 중국선 법계가 출현하였다고 하겠다. 한편 종법세계에서는 적자적통嫡子嫡統을 크게 강조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법계法系의 적자嫡子를 가리는 것이 절대적인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남종과 북종의 적통을 가려 제6조第六祖가 누구인가는 상당히 중요한 논쟁이었고, 하택신회의 목숨을 건 투쟁으로 인하여 황권皇權으로부터 하택신회가 제7조로 인정을 받게 되면서 혜능이 6조의 지위에 올랐던 것은 앞에서 논한 바와 같다. 그렇게 하택이 제7조의 지위를 차지하였는데, 그렇다면 남종선의 적자는 하택신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적자는 그 법계의 모든 정통성을 쥐고 있으며, 방계는 그 법이 아무리 뛰어나도 산성散聖으로 칭할 뿐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하택신회에 의하여 6조가 혜능으로 확정된 이후 방계가 된 북종의 신수계는 지리멸렬하여 역사 속에서 사라진 것과 같다고 하겠다.

 

그런데 후대에 하택신회 계통이 힘을 못 얻게 되고, 강서와 호남에서 마조馬祖와 석두石頭가 두각을 나타나게 되면서 적자의 정통성을 강조함은 자칫 자가당착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문제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남종선에 이른바 ‘별위일종別爲一宗’의 가풍이 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하여 하택신회의 계열을 하택종荷澤宗, 마조도일의 선풍을 홍주종洪州宗, 석두희천의 계열을 석두종石頭宗으로 칭명한다면 더는 적자논쟁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악계 마조 계열에서 위앙·임제종, 청원계 석두 계열에서 조동·운문·법안종의 오가로 별위일종으로 삼은 것도 조사선의 제접법을 보다 다양화하여 폭넓게 학인들을 깨우치고자 하는 대존숙大尊宿들의 안배가 아닐까 한다. 이는 비록 ‘종’으로 설정하지만 그 법맥法脈을 더욱 강조하여 모두 대감大監, 즉 혜능으로부터의 몇 세世인가를 지극히 강조하고 있는 점으로부터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오가의 출현은 제접법의 차별

 

위앙종의 종풍을 논하고자 하다가 홀연 무엇 때문에 오가의 분등이 발생했는가 하는 문제가 떠올라 잠시 논지에서 벗어난 주제를 논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오가의 가장 기본적인 사상은 바로 『단경』에서 강조하는 돈오이고, 나아가 이를 계승한 마조와 석두의 사상으로부터 분화된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은 돈오를 통한 이른바 ‘본래현성本來現成’과 ‘당하즉시當下卽是’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단경』에서 “자성을 스스로 깨달아[自悟] 돈오돈수頓悟頓修하는 것이지 점차漸次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법을 세우지 않는다. 제법은 적멸한 것이니, 어디에 차제次第가 있단 말인가?”(주2)라고 설하는 바와 같이 돈오에서는 그에 도달하는 차제의 법을 세울 수 없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이를 마조는 “만약 상근중생上根衆生이라면, 홀연히 선지식의 지시指示를 만나 다시 계급階級과 지위地位를 거치지 않고서 본성을 돈오할 것이다.”(주3) 라고 하여 ‘선지식의 지시’, 즉 제접提接이 바로 돈오에 이르는 길임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후대에는 선지식의 지시인 선사와 학인의 참알參謁을 통한 제접의 과정이 이른바 공안公案으로 정형화되었다고 하겠다. 이러한 제접법의 차별이 결국은 오가종파의 분등으로 출현한 것이라 하겠다.

 

위앙종의 종풍, 방원묵계方圓默契와 작상시의作相示意

 

그렇다면 위앙종의 종풍은 과연 어떠한가? 오가 가운데 마지막으로 성립한 법안종의 문익文益이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에서 최초로 오가의 사상적 특징을 논하는데, “위앙은 바로 방원方圓으로 묵묵히 계합默契한다.”(주4) 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는 앙산혜적이 혜충국사의 제자인 탐원耽源으로부터 97개의 원상圓相을 얻은 것으로 시작된 것으로 위앙종에서는 이를 ‘작상시의作相示意’라고 한다. 이는 『영우선사어록』의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 엿볼 수 있다.

 

사진 1. 위앙종의 조정 밀인사 산문. 

 

어떤 승려가 선사에게 “무엇이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라고 묻자, 선사는 불자拂子를 일으켜 세웠다. 후에 그 승려는 왕상시王常侍를 만났다. 왕상시가 “위산 선사께서 최근 무슨 말을 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하자, 승려는 앞의 일을 들었다. 상시는 “그것을 사형제들은 어떻게 상량商量하였습니까?”라고 묻자, 그 승려는 “색色을 빌어 마음을 밝히고 사물에 기대어 이치를 드러낸 것이지요.”라고 하였다. 상시는 “그러한 도리가 아니니 상좌는 빨리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내가 편지를 한 통 화상에게 보냅니다.”라고 하였다.

 

그 승려가 편지를 얻어 지니고 돌아왔다. 선사가 뜯어보니 원상圓相이 그려져 있었고, 그 안에는 ‘日’ 자가 쓰여 있었다. 선사는 “누가 천 리 밖에 지음知音이 있음을 알았겠는가!”라고 하였다. 앙산이 곁에 있다가 말하기를, “비록 그렇지만 또한 단지 속인일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선사는 “그대는 또한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하자, 앙산이 도리어 하나의 원상을 그려 그 가운데 ‘日’ 자를 써서 발로 뭉개니, 선사가 바로 크게 웃었다.(주5)

 

이로부터 작상시의의 사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경덕전등록』 권12에 실린 혜적의 제자인 서탑광목西塔光穆의 전기에는 “어느 승려가 묻기를, ‘무엇이 돈頓입니까?’라고 하자, (서탑광목) 선사가 원상으로 그것을 보였다. 다시 묻기를, ‘무엇이 점漸입니까?’라고 하자, 선사가 다시 손으로 허공에 원을 세 번 그렸다.”(주6)라고 한다. 이러한 사례로부터 위앙종에서 원상을 이용한 제접이 유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법안문익이 위앙종을 “방원으로 묵묵히 계합한다[方圓默契].”고 평가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부자일가父子一家와 체용쌍창體用雙彰

 

후대에 출현한 『인천안목人天眼目』과 『오가종지찬요五家宗旨纂要』에서는 위앙종의 종풍을 다음과 같이 각각 평가하고 있다.

 

“아비는 자애롭고 아들은 효순孝順하니, 위에서 시키면 아래에서 행하였다. 그대가 밥을 먹으려 하면 나는 바로 국을 퍼주고, 그대가 강을 건너려고 하면 나는 바로 배를 젓는다. 산을 넘어 연기를 보면 바로 불이 난 줄 알고, 벽을 넘어 뿔이 보이면 바로 소인 줄 안다.”(주7)

 

“위앙의 종풍은 부자父子가 한 집에 머물고, 사자師資가 조화를 이루었다. 말함과 침묵을 드러내지 않았고,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며, 체와 용을 모두 밝혔다[體用雙彰]. 무설인無舌人을 종宗으로 하며, 원상圓相으로 그것을 밝혔다.”(주8)

 

이러한 평가로 보자면 위앙종의 종풍에 대하여 대체로 자상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체용쌍창’은 ‘작상시의’와 함께 위앙종의 대표적인 종풍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이 『앙산어록』에 다음과 같이 보인다.

 

위산이 묻기를, “마조 문하에서 84분의 선지식이 배출되었는데, 누가 대기大機를 얻었고 누가 대용大用을 얻었는가?”라고 하자 앙산은 “백장百丈이 대기를 얻었고, 황벽黃檗이 대용을 얻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마조의 선법을 그대로) 창도唱導하는 선사들입니다.”라고 답하였다. 위산은 “그렇다. 그렇다.”라고 하였다.(주9)

 

 

사진 2. 밀인사 만불전에 붙어 있는 밀인선사 편액.

 

여기에서 말하는 대기와 대용은 당연히 체와 용을 의미한다. 이 문답에서 위앙종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백장은 위산의 스승이고, 그 문하에서 위앙종이 출현하였다. 황벽은 임제의 스승으로, 임제가 임제종을 세웠다. 이 대화에서 자신들의 위앙종은 대기를 얻은 백장으로부터 법을 받았으니, 대용을 얻은 황벽 문하의 임제종보다 더욱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특히 이 대화의 이면에는 바로 대기를 얻은 백장을 사사했기 때문에 위산이야말로 대기대용을 모두 얻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후대에 대기대용은 임제종의 종지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이사불이理事不二와 진불여여眞佛如如


위앙종의 종풍을 논함에 있어서 결코 배제되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이사불이理事不二’와 ‘진불여여眞佛如如’라고 하겠다. 진불여여는 위산이 백장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은 기연인 ‘신령한 불꽃[靈焰]’과 관련이 있는데, 앙산이 위산으로부터 깨달음을 얻는 대화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는 앞에서 인용한 바가 있어 영우의 대답만을 또 인용하겠다. 

 

“생각하면서도 생각이 없는 묘妙로써 신령한 불꽃[靈焰]의 무궁함을 돌이켜 생각하되, 생각이 다하여 근원으로 돌아가면 성품[性]과 모습[相]이 항상 머무르고 일과 이치가 둘이 아니라서[事理不二] 참 부처가 여여[眞佛如如]하다.”(주10)

 

이와 유사한 구절이 『영우선사어록』에도 보이는데, 다음과 같다.

 

핵심을 말하자면, 실제實際 이치의 땅은 먼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고, 만행萬行의 문 가

운데 하나의 법도 버릴 게 없다. 만약 단도직입單刀直入하면, 바로 범성凡聖의 정情이 다하고, 진상眞常을 드러내어 이사가 둘이 아닌[理事不二], 바로 여여불如如佛이다.(주11)

 

이로부터 위앙종에서는 ‘이사불이’와 ‘진불여여’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진불의 소재는 어떠한가? 『영우선사어록』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사진 3. 영우선사가 심은 밀인사의 은행나무.

 

도인道人의 마음은 바탕이 곧고 허위가 없으며, 등지거나 친밀함이 없고, 속이고 허망한 마음이 없다. 모든 시간에서 보고 들음에 평상平常을 찾으며 다시 삐뚤어짐이 없고 또한 눈을 감고, 귀를 막지 않는다. 다만, 정情은 물物에 기대지 않으면 바로 얻는다.(주12)

 

이로부터 진불은 바로 취사 선택이 없는 평상에 있으며, 다만 정이 물에 오염되지 않는 데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문구에서 명확하게 사조師祖인 마조의 평상심시도와 도불용수의 사상적 취지를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위앙종에서 종풍이라고 말하는 체용쌍창, 이사불이, 진불여여 등은 모두 가깝게는 마조-백장, 멀게는 『육조단경』에서 연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안사安史의 난으로부터 시대사조가 변화하였고, 더욱이 회창법난을 겪으면서 새롭게 조사선을 일으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오가 가운데 최초로 위앙종이 출현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특히 조사선과 여래선의 구분을 남겼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위앙종은 이러한 의미에서 중요한 사상사적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 그러나 위앙종은 이외에도 여러 가지 주목할 선사상이 존재한다. 여기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종풍과 선사상을 간략히 살펴보았을 뿐이다.

 

<각주>

(주1) 善遇編, 『天如惟則禪師語錄』 卷9, 「宗乘要義」(卍續藏70, 833c), “五家宗派盛衰不齊, 蓋由師家機用死活之不等耳.”

(주2) 宗寶本, 『壇經』(T48, 358c), “自性自悟, 頓悟頓修, 亦無漸次. 所以不立一切法. 諸法寂滅, 有何次第?”

(주3) 『江西馬祖道一禪師語錄』(卍續藏69, 2c), “若是上根衆生, 忽爾遇善知識指示, 言下領會, 更不歷於階級地位, 頓悟本性.”

(주4) [唐]文益撰, 『宗門十規論』(卍續藏63, 37c), “潙仰則方圓默契.”

(주5) [明]語風圓信, 郭凝之編, 『潭州潙山靈祐禪師語錄』(大正藏47, 579c),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竪起拂子. 後僧遇王常侍. 侍問: 潙山近日有何言句? 僧擧前話. 常侍云: 彼中兄弟, 如何商量? 僧云: 借色明心, 附物顯理. 常侍云: 不是這箇道理, 上座快回去好. 某甲敢寄一書到和尙. 僧得書遂回持上. 師拆開見, 畫一圓相, 內寫箇日字. 師云: 誰知千里外有箇知音! 仰山侍次, 乃云: 雖然如是, 也祇是箇俗漢. 師云: 子又作麽生? 仰山却畫一圓相, 於中書日字, 以脚抹却. 師乃大笑.”

(주6)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12(大正藏51, 293c), “問: 如何是頓? 師作圓相示之. 曰: 如何是漸? 師以手空中撥三下.”

(주7) [宋]智昭集, 『人天眼目』 卷4(大正藏48, 323b), “父慈子孝, 上令下從. 爾欲捧飯, 我便與羹, 爾欲渡江, 我便撐船. 隔山見煙, 便知是火, 隔牆見角, 便知是牛.”

(주8) [淸]性統編, 『五家宗旨纂要』 卷下(卍續藏65, 276c), “潙仰宗風, 父子一家, 師資唱和. 語默不露, 明暗交馳, 體用雙彰. 無舌人爲宗, 圓相明之.”

(주9) [明]語風圓信, 郭凝之編, 『袁州仰山慧寂禪師語錄』(大正藏47, 587b), “潙山云: 馬祖出八十四人善知識, 幾人得大機? 幾人得大用? 師云: 百丈得大機, 黃檗得大用. 餘者盡是唱導之師. 潙山云: 如是, 如是.”

(주10)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9(大正藏51, 282b) “以思無思之妙, 返思靈焰之無窮, 思盡還源性. 相常住, 事理不二, 眞佛如如.”

(주11) [明]語風圓信, 郭凝之編, 『潭州潙山靈祐禪師語錄』(大正藏47, 577c) “以要言之, 則實際理地不受一塵, 萬行門中不捨一法. 若也單刀直入, 則凡聖情盡, 體露眞常, 理事不二, 卽如如佛.”

(주12) 앞의 책(大正藏47, 577b) “夫道人之心, 質直無僞, 無背無面, 無詐妄心. 一切時中, 視聽尋常, 更無委曲, 亦不閉眼塞耳, 但情不附物卽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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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 저서로 『중국불교거사들』, 『중국불교사상사』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조선불교통사』(공역), 『불교와 유학』, 『선학과 현학』, 『선과 노장』, 『분등선』, 『조사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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