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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로 엮는 현대불교사]
요란한 개구리 소리를 듣고 일체유심조를 깨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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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적(최동순)  /  2024 년 10 월 [통권 제138호]  /     /  작성일24-10-05 12:57  /   조회38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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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탄스님 ❷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간 데가 천은사하고 화엄사거든요. 그 화엄사에 책을 차에다가 한 보따리 싣고 가서 하숙을 했죠. 고등고시 합격해서 부모님 은혜도 갚고 내가 원하는 세계를 한번 가 본다고 결심했어요. 마침 사월 보름 하안거 결제일인데 하숙생이 모두 셋입니다.

 

수행 과정을 구술하는 월탄스님.

 

지리산 화엄사 출가 인연

 

공부를 하고 있는데 홍월국 스님이 오셨습니다. 나중에 우리 사형님 될 스님입니다. 황해도에서 피난 오셔서 스님이 되셨는데, 키가 후리후리하고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정말 신선과 같은 분이지요. 내가 그분한테 반해서 “야, 저런 스님도 있구나. 참으로 신선 같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분이 지객知客 소임인데, 손님들이 오면은 사찰 안내를 해주지요. 홍월국 스님이 “오늘은 우리 조실스님 금오스님께서 법문을 하니까 와서 들어라.”고 해요. “학생들도 와서 들어라.”고 그래서 우리들 셋이 금오스님께서 설법하시는 데에 갔어요. 설법을 듣고 있는데, 큰스님께서 법상에 올라가자마자 주장자를 턱 하니 세 번 구르시더니 다음과 같이 설법을 하셨어요.

 

사진 1. 화엄사 각황전(1970년대).

 

“이 세상 놈들 다 산 송장들이다. 왜 그러냐, 자기가 자기를 모르고 살고 있으니까! 살기는 살고 있지만 다 사형선고 받은 놈들인데, 지 죽는 줄도 모르고 산다. 그것, 지금 똥 덩어리 같은 이것,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쉬지 못하면 송장이 되고 사형선고를 받는 건데, 업의 사형선고를 받는다 이거야. 그런데 이 세상에는 산송장들만 우글거리고 있다. 여기 학생들, 그러면 어떤 것이 나라고 하는 거냐!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라 마음이 진짜 자기고 육신은 마음에 의해서 움직이는 건데, 마음 주인공은 버리고 몸뚱이를 나라고 해서 중상하고 모략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전쟁한다. 그러니 여기 학생들도 검사가 되고, 판사가 되고, 장관이 되면 뭐하냐. 자기가 자기도 모르는 놈이 판사가 돼서, 검사가 돼서 누구를 재판하겠단 것이냐. 그러니까 학생들도 먼저 ‘너’부터 찾아라, ‘너’가 누구냐? 바로 내가 이 얘기하는데, 보고 듣는 놈 고놈이 ‘니’ 마음이다.” 

 

그 법문을 듣고 내 마음이란 걸 찾아보려고 했지만 ‘과연 그것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겠더군요. 어느 날 장차 사형님이 될 홍월국 스님이 사명대사 소설을 갖다주더라고요. 내가 감명받은 것은 이순신이 있고 또 강감찬, 김유신, 또 징기스칸, 알렉산더 저 한니발도 내가 좋아해요. 그런데 서산스님 소설을 갖다주시는데 사명스님 것이 더 감명 깊었어요.

 

사진 2. 월탄스님의 은사 금오스님(1896〜1968).

 

“이야, 이렇게 사는 인생도 있구나. 야, 사명스님이 아니면 임진왜란을 어떻게 퇴치했으며, 포로로 간 분들을 어떻게 이끌고 왔겠는가! 이야, 내 인생도 그렇게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중이 되겠다고 홍월국 스님에게 “나 좀 중 만들어 달라.”고 그랬어요. “아, 조실스님한테 가서 허락 맡아야 된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금오스님께 가서 “큰스님, 제가 중이 되서 사명스님과 같이 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에이, 자네 학생은 공부나 열심히 해서 세속으로 가게. 인연이 아닌 거 같아.” 그러시면서 거절하셨어요.

 

난 관상을 봐서 자격이 없는 걸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초봄인데도 내가 군인들이 입는 새파란 덧고리 셔츠를 입고 있었어요. 겨울옷을 입고 있으니까 나를 병자로 보신 거예요. 병자는 중노릇할 수가 없다고 그래요. 그래서 큰스님이 “안 된다.”고 홍월국 스님한테 말씀하셨대요. 그래서 “나는 당수가 5단이고, 공수도가 5단이고, 태권도가 5단이고 또 내가 관장을 했고, 또 전라북도에서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나만 떳다 하면은 쌈하다가도 금방 다 도망가 버려요. 아, 내가 그런 체육인입니다.”라고 말씀드렸어요. 그제서야 “그러면 좋다.” 해서 스님의 허락을 받아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공양주를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쥐밥 짓고 일주일간 삼천배 참회

 

▶ 출가도 쉽지 않으셨군요?

 

화엄사 공양주를 하다가 내가 쥐밥을 했어요. 이건 지나갔으니까 공개하는데, 솥뚜껑이 엄청 크고 무거우니까 송판을 두 개를 대어서 열고 닫는 겁니다. 저녁에 미리 보리쌀을 안쳐 놓고 새벽에 나가서 그냥 불만 때려고 했지요. 그런데 밥을 다 해 놓고서 솥을 열어 보니까 아, 밥이 새카매요. 나중에 보니까 쥐란 놈이 배를 탁 내밀고 거기에 누워 있어요. 털이 싹 빠져 가지고요. 시간은 없는데 밥을 새로 지을 수도 없어요. 가려낼 대로 가려내고 쥐는 파묻어 주고 했는데, 그래도 밥이 새캄새캄하더만요.

 

사진 3. 탄성스님. 사진: 불교신문.

 

그날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꼭 지옥 같았어요. 내가 쥐밥을 스님들께 먹였으니 죄가 얼마나 되겠어요. 참다 못해서 1주일 만에 재무 보시는 우리 사형님, 내 머리를 깎아주신 사형 탄성스님(진공탄성眞空呑星, 1930~2000)에게 이실직고했습니다. “스님, 제가 1주일 전에 쥐밥을 했습니다. 이 마음이 괴로워서 도망가고 싶습니다. 이거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니 탄성스님이 내 말을 들으시고 “삼천배씩 1주일만 참회해라.”고 알려주시더라고요. 아, 그게 뭐 삼천배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죄책감 때문에 1주일을 딱하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탄성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야, 그 쥐밥을 먹고 죽은 사람 하나도 없고, 너는 참회를 했고, 그러니까 모르고 지나가거라. 지금이라도 얘기하면 기분 나빠할 테니까 모르고 지나가도록 해라.” 그래서 지금껏 비밀로 해 왔어요. 하하하.

 

금오스님이 화엄사 금정암에 계셔서 시봉했어요. 아침 3시에 일어나서 도량석하고 그다음에는 참선했습니다. 우리 스님께서 ‘시심마是什麽’ 화두를 주셨어요. “이것이 뭐꼬. 오유일물吾有一物하니 나한테 한 물건이 있다. 무두무미無頭無尾하고 그 한 가지 물건이 있는데, 그놈은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다. 무명무자無名無字하고, 이름도 없고 호도 없다. 상주천上柱天 하주지下柱地, 위로는 하늘을 떠받들고 밑으로는 땅을 받치며, 명여일明如日 흑사칠黑似漆이라, 밝기는 해와 같이 밝고 검기는 칠통과 같이 어둡다. 상재동용중常在動用中하되 항상 움직여 쓰는 가운데 있는데, 수부득자須不得者 시심마是什麽오. 그것을 한 번 딱 보려고 하거나 거두어 그것을 잡아 보려고 하면 얻을 수 없는 놈, 이놈이 무엇인고? ‘시심마’, ‘이놈이 무엇인고.’ 이것이라고 하는 ‘이놈 바로 그놈이다.’ 응? ‘이놈을 찾아라.’”

 

사진 4. 화엄사 금정암 요사(2024).

 

사실 나는 해인사 강원에 가서 공부를 좀 하고 싶었는데, 불교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금오스님이 “아, 그럴려면 너하고 나하고 인연이 없다. 그리하려면 나하고 인연 끊고 가거라.” 그래서 못 가고 스님 시봉을 하게 됐었습니다.

 

▶ 시봉생활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내가 축구를 하고 태권도를 해 가지고 장딴지가 뚱뚱해요. 그래서 아파서 30분도 못 앉아요. 그런데 무슨 놈의 ‘이 뭐꼬’가 찾아지나요. 그냥 졸기 바빠요. 그렇게 한 1년 반쯤 금오스님을 모셨어요. 5시 반에 밥 드리고 또 설거지하고 7시부터 9시까지 참선하라고 그래요. 그런데 나무 빠개고(패고) 또 나무 해 오고, 큰스님 빨래하랴 그러다 보니 ‘이 뭐꼬’ 내 마음 찾는 건 도망간 지 오래예요. 내가 나를 한 번 찾아보려고 하는데 이건 노예도 아니고, 그래서 도망갔어요. 저 전라남도 지리산 실상사로 도망간 겁니다. 가서 그 실상사 위에 약수암이라는 암자가 있어요. 거기에 월인스님이라고 안거 결제와 해제 때 오셔서 법문하시는데, 내가 그 스님을 존경했어요.

 

상무주암에서 용맹정진

 

월인스님께 “제가 도망왔습니다. 노예도 아니고 아침 3시부터 일어나서 밤 9시까지 ‘이 뭐꼬’를 찾을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내 마음 찾으려고 도망을 왔으니 제가 살 데를 하나 소개시켜 주세요.” 그러니까 스님이 지리산에 상무주라는 암자가 있는데,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거기서 초견성을 했다는 곳이라고 해요. “우리 월탄 수좌의 기질에 맞는 것 같으니까 그곳이 좋을 것이네.”라고 하셨어요. 상무주암은 노고단서부터 천왕봉까지 150리인데, 병풍같이 암자를 쫙 포위해요. 거기 가 보니까 조그마한 단지에 간장 하나 있어요.

 

사진 5. 상무주암 앞에 펼쳐진 지리산 산세.

 

원래는 수진이라는 스님이 상무주에 초막을 지었어요. 6·25전쟁 때 산에 불이 나서 다 타고 남은 잿더미 위에 지었어요. 그런데 그 수진스님이 최고의 미남 스님이었다고 그래요. 서울에 선학원이라는 절이 있는데, 그 스님만 나타나면 신도들이 스님 얼굴 보려고 많이 왔답니다. 그 수진스님이 도통하겠다고 상무주에다 띠집으로 방 한 칸, 부엌 한 칸, 한 사람이 절 할 만한 곳에 3칸을 지었어요.

 

초봄인데 상추만 심어놨더라고요. 쌀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이야~ 이것을 어떻게 하나.” 걱정이었어요. 내가 오수 시내에서 체육관 관장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먼 사돈뻘 되는 집이 부자라고 그래요. 그래서 탁발하러 그 집을 찾아갔어요. “사돈어른, 내가 도통을 하려고 하는데 쌀 한 가마니만 주시오.” 그랬더니 세 가마니를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상무주암 수행을 하기로 했어요. 도를 크게 통하려면 마장魔障이 많이 생긴다고 큰스님들한테 들은 얘기가 있단 말이요. 그래서 그 마장을 없애려면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야 된다고 내가 어렴풋이 들었어요. 일단 기도를 삼칠일(21일) 동안 했습니다. 

 

▶ 이 뭐꼬 화두도 들었습니까?

 

삼칠일 동안 기도를 어떻게 했느냐 하면, 먼저 『천수경』을 치고, 불교의 시조는 석가모니 부처님이니까 ‘석가모니불’ 정근을 두 시간 하고, 부처가 되려면 지혜가 있어야 하니 지혜제일 ‘문수보살’을 두 시간 염불을 했어요. 그리고 지혜만 있으면 뭐하냐 실천을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지 않는가? 그래서 ‘대행보현보살’ 정근을 했어요. 또 자비가 있어야 할 거 아닌가 해서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기도하면서 발원하기를, 모든 중생을 제도해서 ‘인류평화’, ‘인류평등’, ‘인류동체안락’을 기원했어요. 나는 학생 때부터 좀 소박한 돈키호테 같은 원願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장보살님이 일체중생이 모두 성불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하는 ‘대원본존지장보살’도 정근했어요. 24시간 밥 먹고 불 때고 그 밥 조금 짓고 하는 시간만 빼고는 삼칠일 동안 계속 목탁 치면서 정근만 했어요. 

 

사진 6. 상무주암 수각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고 일체유심조를 확철하다.

 

정근이 모두 끝나면 참선을 시작했습니다. 큰스님이 주신 화두話頭, 붓글씨로 써놓은 것이 지금 어디 있을 겁니다. “오유일물吾有一物하니 상주천하주지上柱天下柱地하고 명여일흑사칠明如日黑似漆이라 상재동용중常在動用中하되 수부득자須不得者 시심마是什麽오.” 이놈을 딱 벽에다 붙여놓고 참선하는 거예요. ‘이 뭐꼬’라는 의미를 뭐꼬~ 그렇게 하고 있으면 초봄 개구리들이 그냥 울어대요. 그 물줄기를 타고 한 20미터 되는데, 개구리가 울어서 ‘이 뭐꼬’는 없어지고 화두가 도망가 버린다 이 말입니다. 나무막대기를 갖고 가서 그놈들을 막 휘저어놔요. 그러면 한참 동안 또 조용해요. 조금 있으면 또 울어. “야, 이 새끼들아 내가 참선을 이렇게 하는데, 왜 하필이면 여기서 울어제끼는 건데 어?”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하지만 화두가 철저히 들리고, 철저히 들렸을 때 개구리가 울었어도 전혀 나하고는 관계가 없어요. 망상이 나니까 딴생각이 나는 거고, 개구리 소리가 들리더라 이 말이요! 이게 바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개구리가 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유월탄이라는 놈이 우는구나!” 내가 없으면은, 내 마음이 없으면 그놈 개구리가 울었는지 안 울었는지 아무 관계가 없어요. “우리 금오스님께서 부처님 일체유심조를 법문하셨더니 진짜 그렇구나.” 그래 가지고 바로 그놈을 깨달아서 도통을 했어요.

 

▶ 도를 통한 이후에는 주위가 다르게 보였습니까?

 

그래서 아무도 없으니까 그 부엌 벼락에다 뭐라고 썼느냐 하면, “청와靑蛙 일성一聲 명곡鳴哭에, 푸른 개구리 한 번 우는 소리에, 시방세계十方世界가 무부아無不我로구나. 이 우주 만법이, 우주 법계가 나 아니면 없구나.” 모두가 나로 인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가 없으면 우주도 없잖아요. 내가 없으면 우리 부모님도 없잖아요. 내가 없으면 이 세상이 객관적으로 봐서는 있지만, 주관적인 입장에서 나라는 존재가 없으면 이 우주도 없는 것이요. 천상천하에 유아독존, 이 세상에서 제일 존귀한 거는 바로 나구나. 내가 요걸 깨달은 것이요. 잘 살고 못 사는 게 다 자기 책임이구나. 

 

그 도를 통하게 되니 환희가 올라왔어요. 석 달 만입니다. 그래서 쌀이 많이 남았어요. 내가 쌀 세 말 짊어지고 시오리길 되는 마을을 내려갑니다. 오후 늦게 내려가서 날이 어수룩할 때 마을 사람들 오라고 했어요. 쌀 한 되가 귀하던 때라 “자, 이 쌀 한 되씩 나눠 가져가십시오.” 그거 얻기 위해 사람들이 오면 사랑방으로 모이라고 그래요. 사람들이 모이면 내가 법문을 하는 겁니다. 벌써. 도인이 되어 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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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적(최동순)
동국대학교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역임. 현재 불교무형문화연구소(인도철학불교학연구소) 초빙교수. 저서로는 『원묘요세의 백련결사 연구』가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호암당 채인환 회고록의 구술사적 가치」, 「보운진조집의 성립과 그 위상 연구」 등 다수.
obuddh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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