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와 불교윤리 ]
불교적 존엄(안락)사를 말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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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결 / 2025 년 7 월 [통권 제147호] / / 작성일25-07-05 12:25 / 조회7회 / 댓글0건본문
대한민국은 2024년 연말 기준 65세 이상 노인 인구(1,024만 명)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 이른바 초고령사회 속으로 공식 진입했다.(주1) 필자 또한 얼마 전부터 이 인구집단에 속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초 출판된 남유하 작가의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이기도 한 존엄(안락)사(주2)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는 느낌이다.
책의 제목은 스위스에서 의사 조력 자살로 삶을 마감한 작가의 어머니가 하루라도 빨리 그 지긋지긋한 고통을 끝내고 싶은 마음에서 존엄(안락)사 전날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고 하소연한 말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말기 암환자인 어머니의 매일 반복되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은 모녀를 서울에서 8,770km나 떨어진 스위스의 존엄(안락)사 주선 단체 ‘디그니타스’를 찾게 했다. 두 모녀가 몸소 겪은 이야기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우리 사회를 향해 말기 환자의 의사 조력 자살(physician assisted death), 즉 존엄(안락)사의 허용 여부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개인과 사회의 이고득락離苦得樂을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해결 과제로 삼고 있는 불교의 속내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안락사와 존엄사의 차이, 그리고 관련 논의들
어릴 때 아버지의 말기 암 투병 과정을 임종 때까지 지켜본 아픈 기억이 있다. 그때는 병원이 아닌 주거 공간에서 환자와 가족이 함께 생활할 수밖에 없던 환경이었다. 아버지는 말기 암의 극심한 통증이 찾아올 낌새가 보이면 다급하게 막내아들을 불러서 읽을거리를 아무것이나 가져다 달라고 하셨다. 소설책이나 잡지를 읽는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잠시 고통을 잊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내일의 죽음보다 오늘의 통증을 더 힘들어하셨던 것이 분명했다. 당시의 아버지 고통을 지금의 내가 겪고 있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안락사 내지는 존엄사를 선택했을까?

최근 들어 삶의 존엄성과 질質의 측면에서 오늘의 ‘무시무시한 고통’ 대신 내일의 ‘고통 없는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존엄(안락)사를 둘러싼 찬반 논쟁도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안락사의 종류를 어떻게 구분하든 그것의 본질은 의도적인 생명의 단축이자 자연적인 생명의 과정에 제3자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부자연스러운 죽음이라는 사실이다.
의료진의 개입 정도에 따라 적극적인(active) 안락사와 소극적인(passive) 안락사로 구분하기도 하고, 환자 자신의 동의 여부에 따라 자발적(voluntary) 안락사와 비자발적(non-voluntary) 안락사, 그리고 본의가 아닌(involuntary) 안락사의 세 가지 형태로 나누기도 한다. 이 두 가지 기준은 ‘자발적인 적극적 안락사’ 또는 ‘비자발적인 소극적 안락사’ 등으로 결합할 수 있을 것이다.

적극적 안락사는 정맥주사와 같은 직접적인 행위로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고, 소극적 안락사는 영양 또는 수분의 공급과 같은 생명의 필수조건을 의도적으로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환자의 수명을 상당히 줄이는 방법으로 정의되고 있다. 대다수 국가에서는 적극적 안락사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반면, 소극적 안락사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의 충족을 요구하지만, 점차 허용하는 쪽으로 큰 흐름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주3)
이와 함께 자발적 안락사는 법적 권한을 가진 환자가 자신의 생명을 단축해 달라는 요청을 반영한 것이며, 비자발적 안락사는 법적 권한이 없는 환자의 생명을 다른 가족이나 의료진이 규정된 절차에 따라 중단시키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본의가 아닌 안락사는 환자의 동의와 관계없이 환자의 죽음을 고의로 재촉하는 행위이다.(주4) 최근에는 의사 조력 자살을 안락사의 중요한 형태로 인정하려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안락사 대신 존엄사라는 말이 더 많이 사용되는 가운데 환자 개인의 자율성(autonomy)이(주5) 강조되는 추세는 의사 조력 자살이 주목받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주6)
그렇다면 기존의 안락사와 현재의 존엄사란 개념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환자 개인의 관심사는 두 용어의 차이가 아니라 그것의 선택과 실행 여부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안락사가 말기 환자들의 고통 없는 죽음 그 자체에 방점이 찍힌 개념이라면, 존엄사는 안락사를 선택하는 환자 개인의 존엄한 인격권 전반에 대한 도덕적 존중을 전제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전과 달리 개인의 교육 수준과 경제 여건이 월등히 높아진 현실을 고려할 때 개인의 가치 추구와 권리행사의 방식을 존중해 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생명권이 갖는 사회적 무게감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날이 갈수록 자율성에 바탕을 둔 말기 환자의 마지막 선택은 존중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지난 3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미래 사회 대비를 위한 웰다잉 논의의 경향 및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남녀 1,021명 중 의사 조력 존엄사의 합법화에 찬성하는 비율이 무려 82%에 달했다는 것은(주7) 이런 추세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국회에서도 존엄사 관련 법안을 발의하는 등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려는 움직임이 확연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의 안규백 의원은 2024년 7월 24일 ‘조력 존엄사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주8) 보수적 종교단체의 반대 등에 부딪혀 아직 상임위에서 계류 중이지만, 이 법안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보다 훨씬 더 존엄(안락)사의 문턱을 낮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세한 것은 법안이 발효되어야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겠지만 말기 환자의 자율성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보장하는 조항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락사 또는 존엄사에 관한 불교윤리적 기준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율장의 원칙은 승단 추방을 의미하는 바라이죄의 세 번째 규칙이다. 이 부분은 여러 곳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경향이 있지만, 불교적 존엄(안락)사의 허용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준거가 된다는 점에서 일단 그 내용을 한 번 더 확인할 필요
가 있을 것 같다.
“고의적으로 어떤 사람에게서 생명을 빼앗는 비구나 그 비구의 칼잡이가 되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비구, 혹은 죽음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비구, 또는 ‘여보시오, 자, 이 사악하고 험난한 삶이 도대체 당신에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오? 당신은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소.’라고 말하면서 어떤 사람을 선동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비구, 혹은 고의적이고 의도적인 여러 가지 방식으로 죽음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거나 어떤 사람을 선동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비구는 그가 [어느] 누구이든지간에, 그 비구는 또한 패배한 자이며 따라서 [승가] 공동체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Vin.Ⅲ.73)(주9)

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세 번째 계율은 ‘의도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것, 다른 사람들의 자살을 돕는 것 또는 자살하도록 듣기 좋은 말로 선동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금지 조항들은 열악한 조건에 놓인 노인들이나 장애가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 악의적인 친인척이나 불친절한 의료기관에서 당할 수 있는 정서적 학대와 위협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조항까지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이는 자살 금지의 규정임과 동시에 안락사 또는 존엄사의 무분별한 확산을 제한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할 생명권 일반에 대한 불교윤리의 최소기준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본다.
말기 환자의 생명권을 둘러싼 또 하나의 중요한 기준은 자비심이다. 자비로운 이유로 실행된 자비로운 죽음인 안락사 또는 존엄사가 살생을 금지하는 계율의 위반으로 기록된 사례를 꼼꼼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거기서 환자의 죽음을 초래한 동기는 죽어 가는 과정에 있던 비구가 겪는 고통에 대한 연민이자 자비심이었을 뿐이라고 말해진다. 하지만 붓다는 이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계율을 위반한 잘못이 있다고 꾸짖었다.
“‘자비심으로부터(Out of compassion)’라는 것은 그 비구들이 그 아픈 비구가 병고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연민의 마음을 내어 그 비구에게 말한 것이다. ‘당신은 덕이 있는 사람이고 착한 일을 하고 살았는데, 어째서 죽는 것을 두려워합니까? 진실로, 덕이 있는 사람에게는 죽는 순간에 곧 천상[극락]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비구들은 [이 비구의] 죽음을 자신들의 목표로 삼았고 … 죽음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했다. 그 [아픈] 비구는 그 비구들이 죽음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한 결과로부터 음식 섭취를 중단했고 [더] 일찍 죽었다. 이 때문에 그 비구들은 계율을 위반했다.”(Vin-A. Ⅱ. 464)(주10)

고통받는 비구를 오직 연민의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위안의 말을 건넸을 뿐인 비구들은 도대체 무슨 잘못을 범했는가? 붓다고사에 따르면 그들이 저지른 잘못의 본질은 그 비구의 ‘죽음을 자신들의 목적으로 삼았다(maraṇā-atthika)’는 것이었다.(Vin-A.Ⅱ. 464) 그 비구들의 도덕적 의도(cetanā)가 문제였던 셈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자비심이란 본래 도덕적으로 선한 동기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자비심의 이름으로 실행된 모든 행위가 불교윤리적으로 정당화되지는 않는다는 결론에 이를 것임을 알 수 있겠다.(주11)
그러나 불교적 존엄(안락)사를 길게 논의하는 목적은 결국 불자이자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에 속하는 필자와 같은 사람이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 직면했을 때 과연 실제로 이를 실천할 수 있겠느냐는 도덕적 용기의 문제로 귀착된다고 본다. 여기에는 일생 동안의 불교 공부와 수행 경험이 총체적으로 작용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윤리적 판단과 실천에서 지식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필요조건일 뿐, 말 그대로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고 믿는다. 이어서 불교적 존엄(안락)사의 현실적 접근에 대한 의견을 나누어 볼 생각이다.
<각주>
(주1) 《서울신문》, 2025년 3월 13일 자.
(주2) 두 단어를 의도적으로 겹쳐 씀으로써 안락사 내지는 존엄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자 함.
(주3) 양영순, 「불교, 안락사를 말하다-자기결정권에 의한 깨어 있는 죽음을 위하여」, 『불교평론』(2025년 여름 제27권 제2호), p.52.
(주4) Damien Keown, “Euthanasia”, in Daniel Conzort & James Mark Shields eds., The Oxford Handbook of Buddhist Ehics(Oxford:Oxford University Press, 2018), pp.612∼613.
(주5) T.L.Beauchamp and J.F.Childress, Principles of Biomedical Ethics. 7th edition(Oxford:Oxford University Press, 2013). 책에서 저자들은 의료윤리의 네 가지 주요 원칙으로 자율성(autonomy), 무악의(non-maleficence), 자애(beneficence), 정의(justice)를 제시했고, 그중에서도 자율성의 원칙은 이후의 의료윤리적 쟁점과 관련된 다양한 논의에서 핵심적인 판단기준의 하나로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안락사 혹은 존엄사에서도 ‘자율성’의 원칙은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주6) 양영순, 『살레카나-자이나교의 자발적 단식 존엄사』(서울:씨아이알, 2025), pp.125∼129.
(주7) 《한겨레신문》, 2025년 3월 28일 자.
(주8) Good News, 2025년 3월 28일 자.
(주9) 피터 하비 저, 허남결 옮김, 『불교윤리학입문-토대, 가치와 쟁점』(서울:싸아이알, 2021), pp.526∼527에서 재인용.
(주10) Damien Keown, “Euthanasia”(2018), p.621에서 재인용.
(주11) 다미엔 키온, 허남결 옮김, 『불교응용윤리학입문』(서울:한국불교연구원, 2007), pp.157∼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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