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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복수는 나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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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21 년 4 월 [통권 제96호]  /     /  작성일21-04-05 11:11  /   조회6,51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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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개봉한 영화 중에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내용이야 둘째 치고 제목이 던져주는 메시지가 강렬했다. 억울하고 분한 기억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바세계의 삶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생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유일한 감정은 복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수의 결말은 영화에서건 현실에서건 모두의 파멸로 끝을 맺는다. 오늘 살펴볼 유식학의 내용은 ‘복수는 나의 것’이 되어가는 심리적 메커니즘에 대한 것이다. 

 

20가지 종속번뇌

 

지난 호까지 6가지 근본번뇌 심소에 대해 살펴보았고, 이제 근본번뇌에 수반되는 20가지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에 대해 살펴볼 차례다. 수번뇌는 근본번뇌에 수반되는 심소이므로 달리 수혹隨惑 또는 지말번뇌 등으로 부른다. 수번뇌심소는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에서는 19가지로 나열하지만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에서는 20가지로 꼽고 있다.

 

백일법문은 대승의 유식설을 기준으로 함으로 20가지로 설명한다. 20가지의 수번뇌 역시 그 경중에 따라 세 그룹으로 다시 분류된다. 10가지의 소수小隨, 2가지의 중수中隨, 8가지의 대수大隨가 그것이다. 이를테면 ‘작은 번뇌’, ‘중간 번뇌’, ‘큰 번뇌’라는 뜻이다. 번뇌의 경중에 따라 대중소로 구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열 가지 소수에 대해 성철 스님은 “분忿은 분심忿心을 내는 것이고, 한恨은 원한이고, 뇌惱는 뇌란을 말합니다. 부覆는 자기 허물을 덮는 것이니, 허물이 있을 때 남이 알까 싶어서 덮어 숨겨버린다는 말입니다. 광誑은 거짓, 첨諂은 아첨, 교驕는 교만, 해害는 남을 해치는 것, 질嫉은 질투, 간慳은 아껴서 너무 인색한 것”이라고 간략히 설명하고 있다.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면 먼저 마음의 작용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다스려야할 번뇌의 양상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지면 관계상 이번 호에는 분노와 관련된 세 가지 항목인 ‘분노[忿]’, ‘원한[恨]’, ‘뇌란[惱]’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이 세 가지가 수번뇌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데, 하나 같이 분노와 그로부티 비롯되는 감정과 관련된 마음작용이다.

 

분노를 참지 못하면 정신적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2차 3차의 부정적 번뇌와 행위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분노의 에너지는 가장 먼저 자신의 내면적 평화를 깨뜨리고,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더 나아가면 물리적 위해로 발전한다. 나아가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가슴에 품고 살면 원한으로 응어리지게 된다.

 

원한은 지난 일에 대한 억울함이나 손해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원한의 감정을 담고 사는 것은 지나간 과거 일에 자신의 삶을 옮아 매는 것이고, 부정적 에너지에 스스로 속박당하는 것이다. 원한은 상대방으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손해를 보았는지를 곱씹게 되고, 어떻게 복수할 것인지를 궁리하면서 밤잠을 설치게 된다. 그렇게 신경이 곤두서서 날카로워진 심리상태를 뇌란이라고 할 수 있다.

 

분노로 유발되는 세 가지 번뇌

 

『성유식론』을 통해 이들 세 가지 종속번뇌에 대해 고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분忿은 나쁜 상황 때문에 비롯되는 분노의 감정을 말한다. “현전의 이롭지 않은 상황을 만나 분노하는 것이 본성이다[現前不饒益境 憤發為性]. 분노하지 않음[不忿]을 방해하고, 몽둥이를 잡는 것이 작용이다[能障不忿 執仗為業]. 분노를 품는 사람[懷忿者]은 대부분 포악한 신표업身表業을 많이 일으키기 때문이다.”

 

분이라는 심리작용이 일어나는 요인을 두 가지로 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적으로 ‘눈앞의 일[現前]’이고, 상황적으로 ‘이롭지 못한 상황[不饒益境]’이 그것이다. 즉 현재 자신에게 이롭지 못한 상황에 의하여[依對] 촉발되는 부정적 감정이 분노다. 사람들은 자신의 뜻과 어긋나는 상황을 만나면 그것에 자극받아 화를 낸다. 그런 내적 감정은 행동으로 표출되기 때문에 분노는 ‘몽둥이를 드는 것이 업[執仗為業]’이라고 했다.

 

감정이 솟구칠 때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면 불쾌한 감정으로 끝나지 않고 폭력적 행동으로 폭발하게 된다. 1차적으로 악담 같은 구업을 짓고, 2차적으로 물건을 던지거나 급기야 몽둥이를 휘두르며 타인에게 물리적 위해를 가한다. 그래서 분노의 감정을 품은 사람은 포악한 행위를 하게 된다.

 

둘째, 한恨은 분노에 의해 생겨나는 원한이다. “이전에 생긴 분노로 인해 악을 품고 내려놓지 않으며 원한 맺는 것이 본성이다[由忿為先 懷惡不捨 結怨為性]. 원한을 품지 않음[不恨]을 방해하고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이 작용이다[能障不恨 熱惱為業]. 원한을 품은 사람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기 때문이다[結恨者不能含忍 恒熱惱故].”

 

한은 앞 단계에서 경험한 분노와 관련된 마음작용이다. 나쁜 상황에서 촉발된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품고 있으면 원한으로 굳어진다. 분노가 나쁜 상황에서 촉발된 일회적 감정이라면 한은 지속적 감정으로 굳어진 것이다. 이미 벌어진 사건에서 촉발된 것이 분이라면 한은 미래에 복수하겠다는 다짐이므로 지속성을 갖는다. 화가 났던 상황에 대한 수치심과 억울함을 계속 곱씹고 있으면 자연히 복수를 통해 손상된 감정을 치유 받고자 하는 보상심리가 작동한다. 이런 상태가 되면 참는 것은 굴욕이나 패배로 인식되기 때문에 한을 품으면 참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따라서 마음은 지속적으로 수치심과 복수심 같은 부정적 감정에 시달리면서 고통 받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단어가 ‘열뇌熱惱’이다. 분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이르는 말이다. 보통 화가 날 때 ‘열불 난다’거나 ‘열 받는다’고 하는데 딱 그런 의미이다. 분노를 우리말로 ‘화’라고 표현하는데 그 성질은 불과 같으므로 화는 ‘화火’라고 할 수 있다. 화는 초기에 진압하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 주변까지 불태우는 무서운 불씨가 된다.

 

셋째, 뇌惱는 한으로 인해 생기는 신경질적 감정을 말한다. “이미 일어난 분忿 · 한恨에 자극받아 감정이 폭발하여 평정을 잃고 포악해지는 것이 본성이다[忿恨為先 追觸暴熱 佷戾為性]. 고뇌하지 않음[不惱]을 방해하며, 타인에게 마치 지네가 쏘는 것처럼 하는 것이 작용이다[能障不惱 蛆螫為業].”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대상에 자극 받아 분노가 생겨나고, 그 분노의 감정이 내면에 쌓이면 원한이 된다. 뇌란은 분노와 원한 때문에 수반되는 부정적 감정으로 분노를 곱씹고, 복수를 다짐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상태를 말한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쉽게 자극받아 불같이 화를 내는 등 감정이 날카로워진 상태이다. 소위 말해서 내면적 스트레스로 까칠해진 상태가 뇌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상태를 ‘폭열暴熱’이라고 표현한 것도 흥미롭다. 

 

뜨겁게 달아올라 작은 자극에도 폭발하는 마음을 폭열이라고 했다. 이런 상태가 되면 마치 지네나 벌이 쏘는 것처럼 험악한 표정과 말을 쏟아내며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분노로 인해 복수심과 수치심에 자극받은 감정은 칼날처럼 까칠해질 수밖에 없다. 평소 같으면 웃어넘길 일도 불같이 화를 내고, 사나운 벌레가 쏘는 것처럼 험악한 욕설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이상 세 감정의 연관관계를 다시 정리해 보면 첫째 자신에게 손해가 되거나 거슬리는 상황을 만난 순간 화를 낸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내면의 원한으로 자리 잡는다. 그런 감정을 품고 살면 성격은 날카로워지고 사소한 자극만 받아도 불같이 화를 내며 타인에게 상처가 되는 말과 행동을 하며 스스로 고통에 시달린다.

 

마음을 허공처럼 쓰기

 

『성유식론』에서는 이상의 세 감정 즉 분, 한, 뇌를 모두 “진심소의 일부분을 본체로 한다[瞋恚一分為體].”고 했다. 역경계를 만나 불같이 화를 내고, 상황이 종료되었는데도 가슴에 담아두고 상대를 원망하며 복수를 다짐하고, 끓어오르는 분노와 복수심 때문에 스스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은 모두 순간의 불쾌한 상황을 유연하게 넘기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사람의 인품은 이롭지 못한 상황, 손해를 보는 부정적 상황에서 본 모습이 나타난다. 일이 잘 풀릴 때는 모든 사람들이 성인군자와 같다. 하지만 역경이 닥쳐오면 그 때 그 사람의 인품이 드러난다. 수행은 그와 같은 분노의 상황이 닥쳤을 때, 다시 말해 상황이 나빠졌을 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내면의 평화를 지키는 지혜이자 기술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혜능 대사는 “마음 씀씀이를 허공처럼 넓게 쓰라[心量廣大 猶如虛空]”고 타일렀다. 역경계를 만났을 때 마음을 허공처럼 넓게 가져야만 부정적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잘 써야 하는데, 그런 작용을 『단경』에서 ‘심량深量’이라고 했다. ‘마음의 헤아림’이라는 뜻이다. 부정적 순간이 닥쳤을 때 마음으로 그 상황을 어떻게 헤아리는가에 따라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고, 일생을 짓누르는 응어리가 될 수도 있다.

 

살다보면 수시로 부정적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 때 마음의 헤아림을 크게 하면 불쾌한 상황에 현혹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 매 순간순간 만나는 부정적 상황에 감정이 속박당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곧 고해를 건너가는 바라밀이다. 부정적 상황은 짧지만 그로 인해 촉발된 분노의 해악은 길다. 순간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면 지속적인 고통이 되고, 날카로워진 감정은 작은 일에도 폭발하며 악순환의 고리로 빠져들게 되는데 그때 ‘복수는 나의 것’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의 분노와 일생을 맞바꾸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매순간순간 만나는 상황에 자극받지 않고, 내면에 원한을 키우지 않는 삶이야말로 진정 지혜로운 삶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헤아림이 허공처럼 넓게 가져야 한다.

 


북한산 계곡의 봄. 사진=서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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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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