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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거짓[誑]과 은폐[覆]라는 번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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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21 년 5 월 [통권 제97호]  /     /  작성일21-05-04 14:44  /   조회6,50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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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봄꽃들이 산과 들을 알록달록 수놓는 계절이 왔다. 때마침 보궐선거를 맞이하여 길거리도 알록달록한 유니폼을 입은 운동원들이 나른해지기 쉬운 봄날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각 후보들은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구석구석 뛰어다니며 장밋빛 공약을 쏟아내며 유세를 벌이고 있다. 

 

선거와 검증

 

그런데 언론에서는 이번 선거를 네거티브 선거라고 지적한다. 건설적인 공약과 대안 제시는 뒷전이고 상대방의 과거사나 개인비리만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만을 놓고 보면 맞는 지적이다. 미래를 향한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대안적 공약으로 맞붙는 정책 선거가 된다면 선거는 축제의 장이 될 것인데 상황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는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공직에 나선 인물들의 과거에 대한 검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론들이 네거티브 선거라고 규정해도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과거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공약도 중요하지만 그가 공약대로 할 수 있는지는 그가 살아 온 과거 행적이 말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보들의 과거와 숨은 행적을 검증하는 것은 미래에 구현하겠다는 공약 못지않게 중요하다.

 

물론 누구에게나 과거를 들추고, 현재 시점에서 평가받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유권자들은 후보들이 걸어온 행적을 밝히고자 하지만 당사자들은 자신의 과거를 숨기거나 부정하기 바쁘다. TV토론을 지켜보고 있으면 과거 나쁜 행적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 하나 같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오리발을 내밀거나 때로는 보다 적극적으로 또 다른 거짓말로 과거를 덮으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후보들이 보여주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고경』을 통해 살펴보고 있는 번뇌심소 중에 두 가지를 떠올리게 된다. 바로 ‘부覆 심소’와 ‘광誑 심소’로 10가지 소수번뇌小隨煩惱 가운데 네 번째와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심소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심소는 선거과정에서 후보들이 내적으로 겪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번뇌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부심소는 자신의 잘못을 숨기는 것을 말하고, 광은 속이거나 거짓말로 둘러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숨기는 과정에 번뇌 생겨

 

디지털 장례식이라는 것이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자신에 대한 나쁜 정보를 완전히 삭제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서비스처럼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말끔히 지워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업을 숨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때문에 자신의 허물을 은폐하려는 과정에서 번뇌와 고가 생겨난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부정해야 하고, 거짓말로 꾸며내야 하고, 기억에서 자신의 삶을 지워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덮고, 한 것을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로 꾸며대면서 나타나는 번뇌가 바로 부覆와 광誑이다.

 

성철 스님은 부심소에 대해 “자기 허물을 덮는 것이니, 허물이 있을 때 남이 알까 싶어서 덮어 숨겨버리는 것”이라고 설명했고, 광에 대해서는 ‘속이는 것’이라고 했다. 스님의 설명처럼 부覆는 한자의 의미 그대로 ‘숨김’, ‘덮음’, ‘허물 감추기’를 뜻한다. 자신이 행한 잘못이 드러나면 명예가 실추되고, 지위와 재산을 잃어버릴 것이 두려워 자신의 행적을 감추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로 타인을 숨길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겉으로 아니라고 부정해도 행여 그것이 들통 날까봐 내심으로 불안하고, 과거의 삶을 후회하며 번뇌에 시달리게 된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부심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이익과 명예를 잃어버릴까봐 두려워[恐失利譽] 감추려 드는 것이 본성이다[隱藏為性]. 숨기지 않음을 방해하며[能障不覆] 후회하면서 괴로워함이 작용이다[悔惱為業]. 죄를 숨기는 사람은 훗날 반드시 후회하고 괴로워하며[後必悔惱] 마음이 평온할 수 없기 때문이다[不安隱故].”

 

설명한 바와 같이 부심소는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이익과 명예를 잃어버릴 것이 두려워 죄과를 숨기려는 마음작용이다. 있는 그대로 털어놓지 못하고 거짓을 꾸며내고 부정하면서 내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에 떨게 된다. 잘못을 숨기려다 보면 자연히 거짓말을 해야 하고, 없던 사실을 꾸며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바로 ‘광誑’ 심소의 작용이다.

 

『금강경』에 보면 여래를 ‘불광어자不誑語者’라고 했다. 부처님은 ‘속이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광이 바로 ‘거짓’과 ‘속임’을 뜻한다. 그런데 중생은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해 거짓과 속이는 말을 곧잘 한다. 공직에 나선 후보들도 과거 자신의 허물을 덮고 거짓말로 사실을 왜곡하기까지 한다. 없는 것을 꾸며내고, 둘러대지만 내면으로는 불안과 초초함에 시달리기 때문에 번뇌가 된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광심소는 “이익과 명예를 얻기 위해[為獲利譽] 교묘하게 덕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矯現有德] 속이는 것을 본성으로 삼는다[詭詐為性]. 속이지 않음[不誑]을 방해하여[能障不誑] 삿되게 살아가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邪命為業].”고 했다. 자신의 잘못을 숨기고, 거짓으로 덕을 꾸며내는 이유는 결국 이익과 명예를 얻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속이는 사람들은 “마음에 다른 음모를 품고[懷異謀]”있으며, “진실치 못한 삿된 수단으로 살아가는 일[不實邪命事]”에 종사한다고 했다. 허물을 감추고, 과오를 숨기기 위해 거짓을 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선거에 나선 후보들을 통해 가장 극명하게 볼 수 있다.

 

잘못을 드러내는 발로참회發露懺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은폐하고 거짓말로 꾸며대는 것은 모두 “이익과 명예를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恐失利譽]” 때문이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고 덮는 부심소에 대해 “탐욕과 어리석음의 일부로 포함된다[貪癡一分攝]”고 했다. 자신이 한 일을 부정하고, 자신의 재산을 모른다고 숨기는 이유는 자신의 과거행적 때문에 더 큰 명예와 권력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욕망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욕망은 명예나 권력, 물질적 부를 천 년 만 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리석음에 기인한다. 결국 솔직하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내면의 탐욕과 어리석음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업業은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거짓말로 둘러댄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법구경』에 보면 “허공도 아니요, 바다도 아니다. 깊은 산 바위틈에 들어가 숨어도 일찍이 내가 지은 악업의 재앙은 이 세상 어디서나 피할 곳 없다.”고 했다. 자신이 지은 업은 늘 자신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허공 속에 숨고, 깊은 바다 속이나 험준한 산에 들어가 숨어도 업은 늘 자신을 따라다닌다. 그래서 『42장경』에서는 “메아리가 소리에 응應하고,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이 끝내 재앙을 면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행한 악업은 메아리가 소리를 따르고,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처럼 언제나 나를 따라다니고, 수레바퀴가 소의 발자국을 따르듯이 언제나 나를 따라다닌다.

 

물론 자신의 과거를 잘 숨겨서 선거에서 승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업의 소멸이나 면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지은 업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발로참회發露懺悔이다.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진심으로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업은 소멸되고, 나로부터 분리된다.

 

업은 썩지 않는 씨앗과 같다. 죄과를 은폐하는 것은 마치 씨앗을 땅에 파묻어 두는 것과 같다. 씨앗을 땅에 묻어두면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때가 되면 씨앗은 발아하고 누구나 볼 수 있는 나무가 된다. 하지만 씨앗을 밝은 햇볕에 내놓으면 말라버리고 만다. 사람의 업도 그와 다르지 않다. 잘못을 뉘우치고 대중 앞에 드러내 놓고 합당한 대가를 받으면 땅위에 꺼내놓은 씨앗처럼 더 이상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거나 번뇌가 되지 않는다.

 

숨겨져 있던 후보들의 과거가 선거라는 검증과정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진영논리와 시류에 의해 허물은 덮이고 승리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선거에서 이긴다고 해서 업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패한다고 해서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선거의 승패와 무관하게 드러난 의혹에 대해 고백하고 참회하는 것만이 공인으로서 바른 자세이며, 업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다.

 


각시붓꽃: 부산 고심정사 석문숙 불자 제공. 부산 승학산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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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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