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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인색, 사람을 비루하게 하는 번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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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21 년 8 월 [통권 제100호]  /     /  작성일21-08-04 15:23  /   조회6,203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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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100. 수번뇌심소 5

 

 

어린 시절 친구들과 딱지치기 놀이를 하고 놀 때 딱지는 내게 소중한 보물과도 같았다. 밀가루 포대나 양초 갑처럼 빳빳한 종이를 찾아 정성껏 접고, 꼭꼭 밟아 다진 딱지는 내가 소유한 최초의 자산이었는지도 모른다. 딱지가 있어야 놀이에 낄 수 있고, 탐나는 딱지를 갖고 있어야 친구들에게 나의 존재감이 어필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땀을 뻘뻘 흘리며 팔이 빠지게 내리쳐 딴 딱지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전리품이었다. 

 

아끼면 똥 된다

 

하루해가 뉘엿해질 무렵이면 놀이는 끝나고, 누군가는 부자가 되고 누군가는 빈손이 되었다. 딱지를 모두 잃은 친구는 몇 장만 달라고 애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나는 선뜻 그걸 나눠주지 못했다. 흙먼지와 손때 묻은 딱지는 내가 가진 전부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나눠주는 대신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마룻장 밑 깊숙한 곳에 꼭꼭 숨겨두었다.

 

어느덧 방학이 끝나고 친구들이 모두 떠나면서 딱지 칠 일도 사라졌다. 자연히 딱지의 존재를 잊고 지냈고, 시간이 한 참 흐른 뒤 우연히 마룻장 밑에서 딱지뭉치를 발견했다. 애지중지하던 딱지였건만 그새 곰팡이가 피고, 쥐똥과 뒤엉켜 썩어가고 있었다. 아끼면 똥 된다는 속담을 실증적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때서야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 친구에게 나눠주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그때 딱지 몇 장을 나눠가졌더라면 놀이는 더 진행되었을 것이고, 나는 인심 좋은 친구라는 덕담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딱지는 이미 쥐똥과 함께 썩어버렸고, 친구들은 이미 떠난 뒤였다. 딱지는 친구들과 놀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고, 친구들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물건이었다. 그런데도 부질없는 수단에 집착하다 정작 소중한 관계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며 아끼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쳐버리는 것은 어린 시절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물질과 재화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친구들이 있어야 딱지가 의미 있듯 삶과 관계가 지속되어야 물질적 재화도 의미가 있다. 우리가 물질에 집착할 때 따라 붙는 한 가지 전제는 삶이 천년만년 계속 되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선사들은 ‘손가락 한 번 튕기는 사이에 다음 생이 온다.’고 했다. 삶이 영원할 것 같아 가진 것에 애착하지만 무상無常의 파도가 덮쳐오면 애지중지하던 것들은 친구가 떠난 뒤의 딱지처럼 부질없는 법이다.

 

때로는 단지 똥이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가 남긴 것들 때문에 자식들 간의 갈등과 싸움을 촉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치가 이럼에도 우리는 가진 것들을 놓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심초사 하며 살아가는지 모른다. 행여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내게 될까봐, 남들이 나 보다 더 혜택을 받을까봐 작은 것들에 연연하며 그야말로 쪼잔한 삶을 살고 있다. 문제는 내가 가진 것들이 똥이 된 뒤에 밀려오는 공허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가진 것들을 지키려고 아등바등하고, 마음이 인색하면 그 자체로 스트레스와 번뇌가 되고, 삶의 과정이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이번 호에 살펴 볼 번뇌심소는 바로 이 인색한 마음에 관한 것이다.

 

인색이라는 번뇌

 

51가지 심소 중에 소수번뇌小隨煩惱 심소의 열 번째 항목은 ‘간(慳, mātsarya)’ 심소이다. 여기서 ‘간’이란 ‘인색한 마음 작용’을 말한다. 자신이 소유한 재산, 사회적 지위, 명예, 수행을 통해 얻은 ‘증과證果’ 등에 집착하여 아끼려는 마음을 말한다. 크게 보면 간심소는 자신이 소유한 것에 대한 욕심의 일종이므로 삼독의 하나인 탐貪심소의 일부분으로 분류된다. 『성유식론』에서는 간심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재물과 법에 탐착하여[耽著財法] 베풀지 못하고 감추고[不能慧捨] 아끼는 것이 본성이다[祕吝為性]. 인색하지 않음을 방해하여 비루하게 비축하는 것이 작용이다[鄙畜為業]. 인색한 사람은 마음에 비루한 머뭇거림이 많아[心多鄙澀], 재물과 법을 축적하고[畜積財法]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不能捨故].”

 

이상의 내용을 살펴보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재물과 법에 탐착하는 것이고, 둘째는 남에게 베풀지 못하고 비루하게 감추는 것이고, 셋째는 베푸는 것에 머뭇거림이 많아 숨기고 축적하는 것이다. 가진 것에 탐착하면 당연히 그것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애지중지하게 된다. 그런 마음 때문에 자신이 가진 것을 남에게 베풀거나 공유하지 못하고, 남몰래 숨겨 두고 축적하는 일에 골몰하게 된다. 작게는 비자금을 만들고, 크게는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공금을 빼돌리는 것들이다. 이렇게 행동하는 사이 마음은 졸렬해 지고, 삶은 비루해지는 법이다.

 

『아비달마품류족론』에서는 간심소에 대해 “마음이 비루하고 인색한 것[心鄙吝]”이라고 했다. 비루하게 보일만큼 가진 것에 집착하고, 작은 것에도 벌벌 떨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아끼는 대상에 대해 ‘탐착재법耽著財法’이라고 표현한 대목이다. 아끼는 것이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법法’도 포함시키고 있다. 법이란 불법과 같이 진리를 의미하지만 좀 확대하면 

자신의 지식이나 노하우 등 정신적 자산으로 확장할 수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지혜를 나누지 않고 비법이라며 자신만 알고 있는 것도 인색한 마음에 해당한다.

 

재화가 아무리 풍족해도 나누지 않고 소수가 축적하면 부족해지기 마련이다. UN인권위원회의 특별조사관으로 일했던 장 지글러는 120억의 인구가 먹고 남을 만큼 충분한 식량이 생산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세계인의 절반이 굶주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부국들이 축적하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굶주리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이런 것을 경험한 바 있다. 재앙이 닥쳐오자 각국의 사람들은 생필품을 사재기하거나 뜬금없이 휴지를 사재기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닌데 두려움 때문에 상품을 사재기 하면서 생필품 부족이 초래되었다. 함께 나누고 베풀면 재화의 효용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색함을 버리고 서로 나누고 베푸는 것은 진짜 절약을 실천하는 길이다. 아끼고 독점하면 더 많이 생산해야하지만 골고루 나누면 필요한 만큼 적정하게 생산하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집착하며 뺏기지 않으려고 하면 우리의 마음은 비루해진다. 그래서 간심소에 대해 ‘비루하게 비축함[鄙畜]’을 작용으로 삼는다고 했다. 떠도는 말 중에 ‘나이가 들수록 말은 줄이고 지갑은 열라.’라는 말이 있다. 인격은 자신의 것을 베풀고 나눠 갖는 아량에서 나오는 법이다. 누구도 인색한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집착하면 물질은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정작 중요한 인품은 지킬 수는 없다. 움켜쥐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에서 그 사람의 비루함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아끼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수행의 기본은 욕심을 줄이는 것이며, 보시 받은 물품을 아끼는 것이다. 근검절약하고 ‘맑은 가난[淸貧]’을 실천하는 것이 수행자의 삶이다. 그런 삶에 대해 영가 현각 스님은 ‘수행자의 몸은 가난하되 마음은 가난하지 않다[身貧道不貧]’고 했다. 성철 스님 또한 수채에 기름이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대중들을 불러 모아 호통을 치시고, 구정물을 다 함께 나눠 마시게 했다는 것은 전설이 되었다.

 

수행자들은 한 톨의 밥알이라도 버려질까봐 발우를 깨끗이 씻어먹는다. 이는 아끼고 절약하는 것이 수행자의 기본적 덕목이기 때문이다. 비단 수행자가 아니더라도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우리의 삶에서도 무엇이든 절약하고, 최소 소비의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 덕목으로 떠올랐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좋은 의미에서 물건을 아끼고 절약하는 것은 번뇌가 아니며 오히려 물질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수번뇌심소에서 말하는 인색함과 절약은 그 성격이 전혀 반대임을 알 수 있다. 절약이 함께 나누고 공유하며 소비를 줄이는 것이라면, 인색함은 독점함으로써 오히려 생산을 확장하는 것이라는 차별성을 띤다.

 

그렇다면 인색으로 인해 마음이 비루해지는 것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보살의 여섯 가지 바라밀 중에 하나인 보시布施가 그 해답이다. 자신이 가진 재화를 나누면 개인의 소유물은 줄어들지도 모르지만 공동체는 풍요로워 진다. 더불어 나누는 물질과 함께 내 속에 있는 집착과 인색함도 사라진다. 따라서 물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베푸는 것은 그 자체가 욕심을 덜어내고 만족을 깨달아가는 훌륭한 수행이다.

 

그런데 나와 너라는 분별심이 있고, 준다는 마음이 있다면 아깝다는 생각이 불쑥 일어난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라는 불이不二의 통찰을 가져야 하고, ‘모두가 한 몸’이라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 마음을 가질 때 베푸는 것은 아까운 것이 아니라 기쁨이 된다. 그때 『금강경』의 말씀처럼 비로소 ‘주었다는 생각 없이 베푸는’ 무주상 보시가 가능해진다.

 

 

 

북한산 보현봉에서 내려다 본 서울 풍경. 사진: 서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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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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