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음미하는 부처님 말씀]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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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학 / 2019 년 3 월 [통권 제7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014회 / 댓글0건본문
윤제학 | 작가 · 자유기고가
만사여의萬事如意. 일마다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인지상정일겁니다. 해가 바뀔 때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마음에 새기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압니다. 세상살이의 진실은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데 있다는 것을. 그래서 한번 해 보는 말이겠지요. 한가위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편 생각해 보면 만사여의하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히틀러나 일본 제국주의자 같은 사람들이 뜻대로 다 이루었다면, 인류 역사는 쓰인 것보다 훨씬 참혹했을 것입니다.
만사여의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세상살이, 참 쉽지 않습니다. 성인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돈벌이 문제부터가 그렇습니다. 대부분 사람과의 관계일진대 사사건건 이해가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을ʼ의 입장은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갑ʼ이라 하여 마냥 뜻대로 할 수도 없습니다. 어쩌면 갑의 위치에 선 사람이 더 쉽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관철시키려는 뜻의 종류도 많고 의지도 더 강할 테니까 말입니다. 물론 원만한 인격자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요.
과연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요? 라면에 파를, 계란을 넣을까 말까 정도겠지요. 사실 그것조차도 쉬운 게 아닙니다. 냉장고의 형편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옷을 선택하거나, 시간에 맞춰 버스나 지하철 타는 지극히 단순한 일도 사실은 내 뜻대로 하는 게 아닙니다. 옷 선택에서는 날씨, 타인의 시선, 가야 할 자리의 성격 따위가 나의 뜻을 조종합니다. 버스나 지하철 시간은 오로지 그쪽 사정에 나를 맞춰야 합니다.
세상살이, 참 어렵습니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우선 세상에 온 것 자체가 그렇습니다. 내 의지는 조금도 끼어들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일어난 사건, 사고, 재해로 불행을 당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모진 놈 옆에 섰을 뿐인데 대신 벼락 맞은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반대의 경우로, 성공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력과 노력, 불굴의 의지 따위에만 돋보기를 대지만, 실패한 다수의 사람들 가운데 그보다 더 뛰어난 실력과 노력, 의지를 갖춘 이들도 많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결정적 계기나 기회가, 우연이나 전화위복의 형태로 찾아온 경우가 많습니다. ‘행운’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 이 되지 않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하늘이 도왔다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아슬아슬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자동차 운전에 국한시켜 봐도 식은땀나는 상황들이 줄줄이 지나갑니다. 역시 행운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래저래 세상살이 참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안 될 일도 되게 해 주는 보살, 관세음
대승불교를 지탱하는 기둥은 ‘보살ʼ일 것입니다. 보살승菩薩乘이 곧 대승大乘입니다. 대승을 표방하는 한국불교에서는 보살신앙도 활발합니다. 한국 불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보살은 누구일까요. 인기투표를 한다면, 단연 ‘관세음보살ʼ이 아닐까 합니다.
『삼국유사』에 경덕왕 때 희명이라는 여인의 눈 먼 아이가 분황사의 천수관음 앞에 노래를 지어 바치고 빌었더니 눈을 떴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동해 낙산사에 관음의 진신이 머물고 있다는 믿음도 의상, 원효 스님의 행적과 함께 전해 옵니다. 이로 미루어 보면 한국의 관음신앙은 불교 전 래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관음은 어떤 존재일까요? 이에 대한 이해의 단서는 신들의 종교라고 불러도 좋을 힌두교에서 찾는 것이 빠를 듯합니다. 불교의 ‘관세음보살ʼ에 대응하는 힌두교의 신은 ‘시바Shivaʼ입니다. 인도 사람들에게 시바는 최고의 신 중 하나로 숭배되는 신입니다. 이들에게 시바는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창조자이자 파괴자, 악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는 수호자입니다. 시바를 숭배하는 사람들은 어떤 소원을 빌어도 다 들어주는 신으로 확신합니다.
한국 불자들에게 관세음보살은 인도인들에게 시바 신과 거의 같습니다. 불교는 신을 인정하지 않는 종교인만큼 공공연히 신으로 떠받들지는 않지만 신앙 행태를 보면 거의 신적 존재입니다. 불자들이 뚜렷이 인식을 하든 않든, 관세음보살은 ‘인과ʼ를 초월한 가피력을 발휘하는 - 시바가 창조의 신이자 파괴의 신인 것과 같은 - 존재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죄가 있든 없든 그 이름만 불러도, 언제 어디서 어떤 고난을 만나든 다 구제해 주는 보살입니다. 좀 고상하게 말하면 ‘보문시현普門示現ʼ입니다.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한국 불자들에게 관세음보살은 어머니 같은 존재입니다. 직설하자면 안 되는 것도 되게 해 달라고 떼를 쓸 수 있는 대상으로 존재하는 보살입니다. 그렇게 해도 다 들어줄 것이라고 믿는 위신력의 존재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비불교적이니, 기복이니, 타력이니 하는 말로 문제시하기도 합니다. 이와는 다른 지점에서 우리 모두가 관세음보살이 되어야 한다는 우아한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세상살이, 참 어렵습니다. 관세음보살이라도 부르지 않고서 이 굴곡 많은 세상의 오르막을 어떻게 오를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달리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 모두는 힘들긴 해도 그럭저럭 또 살아갑니다. 이 또한 불가사의입니다. 살아가는 한편 살려진다는 얘기이겠지요. 나 아닌 다른 존재의 도움으로. 산 속에 홀로 사는 사람조차도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허리춤에 돌도끼를 차고 빗살이 그려진 토기에 밥을 먹던 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한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이미 보살입니다. 일심으로 ‘관음ʼ을 부르는 일. 어쩌면 그것은 홍수 속에서 갈증을 느끼는 딱한 시대의 비가悲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일로써 칭명 관세음보살. 이것만으로도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일은 소중합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어찌하여 관세음입니까”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은 『화엄경』의 「입법계품」과 함께 한국 불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경전의 한 부분입니다. 조금 길긴 하지만 뒷부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 불자는 어찌하여 관세음입니까ʼ 하는 무진의 보살의 물음에 대해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답한 부분입니다. 「보문품」 전편을 압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관세음의 위신력보다는, 우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초라하고 겁 많은 존재인가, 하는 점에 초점을 두고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중생의 부름에 나투는 관음의 행을 들으라.
관세음보살의 큰 서원은 그 깊이가 바다와 같은바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을 섬기면서
크고 맑은 원을 발한 것으로 말미암았노라.
그대에게 간략히 이르노니
그 이름을 듣거나 친견하거나 하여
마음에 새기고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다면
능히 모든 괴로움을 없앨 수 있으리라.
설혹 어떤 이가 해치려는 마음으로
큰 불구덩이로 떠밀지라도
관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불구덩이는 연못으로 변할진저.
큰 바다에 표류하여
용이나 물고기나 귀신에 의해 난을 당할지라도
관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파랑에 휩쓸리지 않을진저.
수미산 봉우리에서
누군가에게 떠밀려 떨어지더라도
관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해처럼 허공에 머물진저.
악인에게 쫓기어
금강산에서 떨어진다 해도
관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진저.
원한을 품은 적들이 에워싸고
칼로 해치려 해도
관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악인들 모두 자비심을 일으키게 할진저.
억울하게 나라의 법을 어겨
사형에 처하는 형벌을 받게 되어도
관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칼날이 조각조각 부서지게 될진저.
옥에 갇혀 목에 나무칼을 쓰고
손과 발에 차꼬를 차고 있어도
관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석연히 풀려날진저.
누군가 저주하여
독약으로 해치려 하여도
관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해치려는 자에게 해가 돌아가게 할진저.
악한 나찰이나
독룡과 귀신을 만나더라도
관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감히 해치지 못하게 할진저.
사나운 짐승들이 에워싸고
무서운 이빨과 발톱으로 위협하여도
관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할진저.
독사와 전갈이
불같이 독기를 뿜어도
관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스스로 달아나게 할진저.
우레와 번개가 치고
큰비와 우박이 쏟아져도
관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홀연히 구름 걷히고 개이게 할진저.
중생이 곤경에 빠져
한없는 고통을 받게 되면
관음의 미묘한 지혜
능히 세간을 구제하리라.
신통력 두루 갖추고
널리 지혜의 방편 닦아
온 세상에
그 몸을 나툴지니,
가지가지 악도惡道,
이를테면 지옥·아귀·축생 따위의
생로병사의 그 고통
점차 사라지리라.
관세음보살은
바르게 세상을 관찰하고
맑은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넓고 큰 지혜로 세상을 관찰하고
연민의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자애의 눈으로 세상을 관찰할지니
늘 원을 품고 늘 공경하고 우러러볼지어다.
관세음보살은
티 없이 청정한 지혜의 태양일지니
모든 어둠을 물리치고
능히 바람과 불의 재난을 이겨내어
세상을 두루 밝게 비추리라.
자비의 계戒는 우레로 울리고
인자한 마음 구름이 되어
감로의 법우를 내리니
번뇌의 불길 꺼지게 하리라.
송사가 벌어져 관가에 가거나
무섭고 두려운 전쟁터에서도
관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모든 적들 흩어지게 할진저.
미묘한 음성
세상을 보는 음성
범천의 음성이고 바다의 음성이어서
세간을 뛰어넘는 음성일지니
언제나 염하여 조금도 의심하지 말지어다.
맑고 성스러운 관세음보살은
그대가 고뇌와 죽음의 액운을 당했을 때
능히 의지처가 되리라.
모든 공덕 갖추고
자애로운 눈으로 중생을 바라보는 관세음보살
바다처럼 한량없는 복 갖추었으니
마땅히 공경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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