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음미하는 부처님 말씀]
바르게 말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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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학 / 2018 년 8 월 [통권 제64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607회 / 댓글0건본문
편의점에서 껌 한 통을 계산대에 올려놓고 기다립니다. 점원이 (스캐너로 바코더를 읽은 다음) 말합니다.
“천 원이세요.”
천 원이‘세’요? 역시 ‘동방예의지국’의 국민답습니다만 황당합니다. 점 원의 신분이, 잠시 용돈 벌이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이어도 그 렇지, ‘돈’이 그의 ‘상전’일 수는 없습니다. 처음 몇 번은 이런 불편한 사태 앞에서 ‘돈을 존대하는 건 아니라고’ (아주 예의 바른 어투로) 교정을 시도했지 만 곧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꼰대짓’으로 받아들인 듯 눈에 잔뜩 힘을 주 고 ‘그래서 어쩌라고요’ 하는 투로 바라보는 점원에게 ‘바른 어법’을 얘기했 다가는 ‘진상’ 혹은 ‘갑질’의 혐의까지 뒤집어쓰게 될 게 뻔해 보였습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며 계산서를 내밉니다. 계산원 대부분은 먼저 이렇게 말합니다.
“계산 도와 드리겠습니다.”
역시 황당합니다. 문맹률이 거의 0에 가까운 나라에서 아라비아 숫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 도대체 무얼 돕겠다는 것인지요. 손님의 행색이 아주 초라해 보여서 밥값의 일부를 감해 주거나 대신 부담해 주겠다는 뜻 이라면 모르겠습니다. 혹은 돈 낼 사람이 휠체어를 탄 상황에서 점원을 불 러 계산을 해 달라는 상황이라면 또 모르겠습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계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계산해 ‘드리는’ 정도면 충분히 예의 바른 표현 입니다. 그래서 몇 번 ‘얼마를 보태 줄 건데요’ 하고 농담조로 교정을 시도 했지만 별무효과였고, 괜한 까탈을 부리는 손님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를까 봐,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맙니다.
단순히 언어 예절에 관한 문제라면 위의 두 사례는 별 것 아닐지도 모르 겠습니다. 더 황당한 경우도 겪었습니다. 편의점에 어떤 물건을 사러 갔다 가 꼭 필요했는데 잊고 있었던 다른 물건이 생각났습니다. 점원이 앳되어 보여 그냥 편안히 말했습니다.
“학생, 뭐 하나 물어 볼 게요.”
점원은 밝고 친절한 음색으로 말했습니다.
“네, 여쭤 보십시오.”
당황스러웠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습니다. 기계적인 대답이었어도 나름 대로 최대한 공손하고 예의 바른 단어를 선택하려 했다는 ‘진심’이 느껴졌 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잘못 적용하긴 했지만) ‘묻다’와 ‘여쭈다’의 차이를 안 다는 점이 대견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차마 점원의 실수를 들추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언어생활이 일그러진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1970대엔 권위주의적 군사 정권이 앞장서서 ‘국어사랑 나라 사랑’이라는 표어를 내 걸고 이른바 ‘국어순화’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국어가 ‘순화’되 었을까요? 법률 문장에는 여전히 한문투와 일본어투에 비문이 수두룩합니 다. 정부에서 내는 보고서나 공문서는 국어를 오염시키는 데 앞장서는데, 띄어쓰기 규정은 작심하고 어기고 마침표는 원칙처럼 생략합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감한 정책이나 국가적 쟁점에 대한 언론을 질문 에 거의 습관적으로 ‘~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해야 바르게 우리말을 쓰는 것이지요. ‘생각’은 ‘하 는’ 것이지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 한 마디가 사회적 정치적으로 영 향을 끼치는 대통령의 언어생활이 이러할진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나 식당 직원의 어법을 문제시하는 건 쩨쩨한 짓이겠지요.
예의 바른, 너무나 예의 바른 대한민국
허일구 교수(창원대 국문과)는 『국어에 답 있다』는 책에서, 최근 한국인의 언어생활에서 ‘경어’ 표현이 늘어난 것을 지적하며 그 원인을 치열한 경쟁 에서 찾습니다. 지나친 경쟁의 결과로 일상 언어에도 상품 광고나 기업 홍 보 문구처럼 과장된 표현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허 교수는 이런 경어는 진 정어린 겸양의 표현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치열한 상술, 손님과 종업원 의 수직적 위계의 반영이라는 것이지요.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는 말에 어린 세태의 슬픈 표정입니다.
언어생활은 세태를 반영하게 마련입니다. 반대로 언어가 세태를 바꾸기 도 합니다. ‘여류 시인’이라는 말에서 ‘여류’라는 표현의 부당성을 인지하기 만 해도 남녀 차별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 경험을 쌓으면서 우리는 더디 게나마 남녀 차별의 문턱을 낮추어 왔습니다. ‘시민’이라는 말이 ‘국민’의 입에 자연스럽게 붙을 때, 과도한 국가주의의 폐해도 줄어들겠지요.
진정성이 결여된 경어의 남발이 경쟁 과잉 세태의 반영에 그친다면 크 게 걱정할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경쟁이 완화되면 그 또한 바로잡힐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노가다, 야매, 부락, 시 다바리, 야리꾸리, 함바집, 땡깡… 같은 일본말의 찌꺼기에서 보듯이 대중 들에게 한번 자리 잡은 말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사실 그것도 큰 문제는 아닙니다. 그런 말을 쓴다고 (어떤 사람이 말한 것처럼) ‘혼의 비정상’이 초 래되지는 않습니다. 조금 허세를 섞어 말하자면, 내심 이제는 일본쯤이야 하면서,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진 자의 여유에서 나오는 농담처럼 내뱉기도 합니다. 문제는 ‘진정성’입니다. 그것은 어휘 차원이 아니라 심리적 차원의 문제입니다. 거짓 감정 표현이라는 것이지요. 너도 속고 나도 속는, 끝내 집단적 자기기만에 빠진 사회는 얼마나 공허할까요.
『한국인의 거짓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주 도발적으로 한국은 ‘거짓 말 공화국’이라고 주장하는 책입니다. 그 근거는 전체 범죄 대비 사기 범죄 가 OECD 국가 가운데 1위라는 세계보건기구(WHO) 조사 자료입니다. 어 느 정도 수긍은 하지만 사기 범죄 1위라는 것만으로 거짓말 공화국이라 단 정하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해서 그 러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마다 사법 체제가 다를 텐데 순위는 별 의미가 없 다는 주장을 펼칠 생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느 정도 수긍을 한다는 것 은, 어느 나라든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면 거짓말이 횡행한다는 뜻에서입 니다.
이 책은 한국인이 거짓말을 잘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잘 속기 때문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국인의 거짓말 신호를 분석하고 이에 대처하는 법을 소개 합니다. 속지 않는 법과 속이는 법에 대한 매뉴얼이라 할 만합니다. 그렇 다고 해서 이 책이 한국의 사기 범죄율을 낮추는 데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는 않습니다. 그리고 설사 이 책의 주장대로 한국이 거짓말 공화국이라 해 도 크게 놀랄 생각이 없습니다. 법적 처벌이 따를 거짓말이든 부도덕 수준 의 거짓말이든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죄를 묻고 감옥을 운영하려면 힘이 들 테지만 그것은 유사 이래 모든 사회가 그 랬던 것처럼 마땅히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입니다. 정녕 우리가 두려워해 야 할 것은 도덕과 부도덕의 경계조차 희미한, 진정성 없는 경어 같은, 거짓말 아닌 거짓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바른 말이 바로 불망어不妄語
‘현재 유럽 사상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지그문트 바우만은 “내용이 무감각할수록 인사말은 더 정중해진다.”고 말했습니다.(『도덕적 불감증』, 책 읽는 수요일, 2015) 조금 다른 맥락에서 한 말이긴 합니다만, 오늘 우리들이 일삼는 진정성 없는 경어 표현에 대한 일침으로도 읽힙니다. 앞서 편의점이나 식당의 언어 사용에서 제가 문제로 여긴 것은 어법의 어긋남이 아니라 지극히 기계적인 예의 바름이었습니다. 그들 아니 우리 모두의 역할이 당장 AI로 대체된다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어 보입니다. 이미 일부 편의점에서는 AI를 도입했다 합니다. 머잖아 서로 사기를 치더라도 진정 인간과 인간이 부딪치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범죄 행위도 아니고 부도덕하지도 않은 거짓말도 많습니다. 처음 만난 처녀 총각이 서로에게 호감을 느낄 때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거짓말이 필수입니다. 평소 냄새도 맡지 않던 순댓국도 상대의 반응에 따라서는 좋아한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는 당연히 고슴도치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인륜의 차원에서 용인되는 거짓말도 있습니다. 범죄자를 숨겨주거나 도망가도록 도와주는 것도 범죄이지만 친족이나 함께 사는 가족이 그러한 행위를 했을 때는 처벌하지 않습니다. 장려되는 거짓말도 있습니다. 항일 독립투사를 쫒는 일본 경찰, 유태인을 색출하는 나치 앞에서는 사냥꾼에게 쫒기는 사슴을 숨겨준 나무꾼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통 우리들이 거짓말이라 하는 것은 사기와 같은 거짓말은 물론이거니와 남에게 해를 끼치는 말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망어妄語’라 합니다. 불교 신자라면 누구나 ‘거짓말하지 말라[不妄語]’는 계율을 압니다. 재가오계, 사미(니) 10계의 네 번째 계율입니다. 구족계를 받은 비구·비구니가 불망어계를 어기는 것은, 승가에서 내쫒기는 가장 무거운 죄의 하나로 바라이에 해당합니다.
‘불망어’를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으로도 얼마든지 죄 없는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진정성이 결여된 경어도 거짓말은 아니지만 인간을 수단시 한다는 점에서 ‘망어’입니다. 진정한 불망어는 ‘바른 말’일 것입니다. 『화엄경』은 바른 말의 길을 이렇게 열어 보입니다.
“보살은 나쁜 말을 하지 않는 성품이어서
이른바 남에게 해를 끼치는 말, 거친 말, 괴롭히는 말, 원한을 품게 하는 말, 저속한 말, 용렬하고 천한 말, 듣기 원하지 않는 말, 듣는 이에게 기쁘지 않은 말, 노여워하는 말, 속 타게 하는 말, 원한을 맺게 하는 말, 극심하게 마음에 고통을 주는 말, 자애롭지 않은 말, 달갑지 않은 말, 나와 남을 해롭게 하는 말을 모두 버렸느니라.
하여 늘 정겨운 말, 윤택한 말, 부드러운 말, 기뻐하는 말, 즐거워하는 말, 듣는 이의 마음속으로 잘 스며드는 말, 멋스러우면서 도리에 맞는 말, 많은 사람이 즐거이 믿고 따르는 말, 많은 사람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말, 심신을 뛸 듯이 기쁘게 하는 말을 하느니라.
보살은 교묘하게 꾸미는 말을 하지 않는 성품이어서
늘 사려 깊고 분명하게 말하기를 즐기어, 때에 맞는 말, 진실한 말, 이치에 맞는 말, 법다운 말, 도리에 맞는 말, 교묘하게 조복 시키는 말, 때에 맞추어 헤아려 결정한 말을 펼치느니라.
이 보살은 우스갯소리도 늘 생각하고 하거늘, 하물며 어수선한 말을 함부로 하겠는가.”
- 『화엄경·십지품』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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