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암 거사와 배우는 유식]
식[아뢰야식]을 상분과 견분으로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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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암 / 2019 년 12 월 [통권 제80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8,009회 / 댓글0건본문
허암 | 불교학자 ‧ 유식
모든 마음[식識]은 대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안식은 색경, 이식은 성경, 비식은 향경, 설식은 미경, 신식은 촉경, 의식은 법경, 말나식은 아뢰야식을 대상으로 삼아 작용합니다. 다시 말해 눈은 사물을 보고, 귀는 소리를 듣고, 코는 냄새를 맡고, 혀는 맛을 보고, 피부는 접촉하고, 의식은 5가지 감각작용을 통합하여 대상으로 삼아 작용합니다. 또한 말나식은 아뢰야식에서 생긴 것이지만 동시에 아뢰야식을 대상으로 삼아 아뢰야식을 자아[자기]라고 생각하여 아뢰야식에 집착합니다. 그렇다면 아뢰야식의 대상[상분]은 무엇일까요?
1. 아뢰야식의 대상은 유근신, 종자, 기세간이다
유식에서는 오직[唯] 마음[識]만을 인정합니다. 즉 식전변(識轉變, 모든 것은 식이 전변한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모든 존재[현상]는 아뢰야식속의 종자에서 생긴 것이며, 마음[識]속에서 현현顯現한 것이라는 입장에서 모든 인식[앎]은 마음이 마음을 본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보는 주관적인 부분을 견분見分, 보여지는 객관적인 부분을 상분相分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성유식론』에서는 “識體轉似二分[식 자체[자증분]는 이분(二分, 견분과 상분)으로 사似하여 전轉한다]”이라고 표현합니다. 설명을 첨가하자면 ‘식 자체[자증분]가 전변하여[식전변識轉變] 견분과 상분의 둘로 나누어진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식은 인식작용[인식주체]인 견분과 인식대상인 상분으로 나눈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식이란 심왕과 심소를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안식 내지 아뢰야식 및 51가지 심소 모두는 견분[인식하는 것]과 상분[인식되는 것]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입니다.
『유식삼십송』에서 아뢰야식은 ‘종자’와 ‘유근신’을 상분[대상]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종자는 ‘본식[아뢰야식] 중에서 친히 결과를 생기시키는 공능[힘, 에너지]’이라고 지난 호에서 정의했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유근신有根身이란 ‘근(根,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는[有] 신체[身]’라는 뜻입니다. 유식에서는 유근신을 오색근五色根과 근의처根依處로 나눕니다. 이처럼 감각 기관을 뿌리 근根이라고 한 것은 식물의 뿌리가 영양을 빨아들여 줄기를 생장시키고 열매를 열리게 하듯이, 뿌리는 식물을 생성시키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감각기관을 ‘근’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본래 근根은 범어로 ‘indriya’라고 하는데, ‘indriya’는 인드라indra 신의 강력한 힘을 형용화시킨 것입니다. 이 근根을 안근·이근·비근·설근·신근의 다섯 가지로 구분하여, 오색근 또는 정근正根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근의처는 ‘색근을 돕는다’는 의미로 부근扶根이라고도 합니다. 예를 들어 눈[眼]의 각막이나 수정체 등은 감각기관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이러한 감각기관은 2차적인 것이고 보다 깊은 곳에 진정한 감각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색근 또는 정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색근은 직접 확인할 수 없으나, 요가수행들은 요가수행에 의해 이 감각기관의 존재를 확인하였던 것입니다. 요가행자들은 어떤 자극에 의해 사물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어떤 에너지를 발산하여 사물을 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정근과 부근을 합친 것을 유근신이라고 합니다.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맞지 않지만, 아무튼 고대 인도인은 ‘근’을 본질적인 것[정근]과 부차적인 것[부근]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아뢰야식의 또 다른 대상[상분]은 처處입니다. 처處는 기세간, 즉 우리를 둘러싼 세계[환경세계]를 말합니다. 이처럼 아뢰야식은 기세간을 대상[상분]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세간은 유정의 의지처입니다.
2. 대상[상분]은 3종류이다
그런데 법상종에서는 상분을 3종류[삼류경]로 나눕니다. 조금 어려운 내용이지만 설명해보겠습니다. 삼류경三類境에서 삼류란 3종류, 경境은 대상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3종류의 대상[境]이라는 뜻입니다. 즉 성경·대질경·독영경을 말합니다.
1) 성경性境
성경이란 실물[실재하는 사물] 또는 본질[성性, 실체]을 가진 대상[상분]입니다. 다시 말해 감각기관에 의해 직접 파악된 대상입니다. 이것의 가장 적절한 예는 전오식이 인식하는 상분[대상]입니다. 즉 안식이 꽃을 볼 때 보여지는 꽃이 성경입니다. 물론 유식에서는 마음[식]을 떠나 있는 것은 없지만 생각, 추리, 기억 등이 생기기 이전의 상분[대상]입니다. 이 상분[대상]은 마음[견분]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즉 마음이 선하다고 하여, 국화꽃이 선한 국화꽃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다음의 4가지 조건을 갖춘 대상[상분]입니다. 첫째는 견분의 종자와는 별도의 종자로부터 생긴 것입니다. 둘째는 생긴 상분에는 실제하는 실체와 실제하는 작용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눈앞에 있는 연필은 실제로 연필이라는 실체가 있고, 글자를 쓰는 작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성경을 인식하는 견분은 스스로 대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파악합니다. 넷째는 상분에 본질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질이란 아뢰야식이 만들어 낸 아뢰야식이 스스로 인식하는 존재의 기체基體를 말합니다. 상분에 본질이 있다는 것은 앞에서 ‘생긴 상분에는 실제하는 실체와 실제하는 작용이 있다’라고 한 것처럼 상분에는 실체와 작용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아뢰야식의 대상인 오근[유신근], 기세간, 종자입니다. 그리고 전오식의 상분, 전오식과 함께 작용하는 의식[오구의식]의 상분, 정심定心에서의 의식의 상분, 무분별지의 대상인 진여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전오식, 의식, 말나식, 아뢰야식에 두루 통하는 대상[상분]입니다.
『팔식규구직해』에서 성경에 대해 지욱 스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성경에서 ‘성’이란 ‘실’의 의미이다. 상분의 색은 상분의 종자로부터 생긴 것이다.”라고 하면서 성경은 본질이 있는 것[有本質]과 본질이 없는 것[無本質]의 두 종류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무본질이란 심왕인 제8 아뢰야식이 유근신, 기세계, 종자를 소연[대상]으로 삼은 것이라고 주석합니다. 반면 유본질이란 지금 전오식이 오경[색경 등]을 대상으로 삼은 것[전오식의 상분], 명료의식이 처음으로 생각하는 것[전오식과 함께 작용하는 의식] 정중의식과 독산의식(주1)이 선정 중의 결과인 색 등을 대상으로 삼은 것[정심定心에서의 의식의 상분]이라고 주석합니다.(주2)
2) 대질경帶質境
대질경이란 띨 대帶, 바탕 질質, 대상 경境자이므로, 대상[境]의 본질[質]은 아니고 ‘대상의 본질을 띠고[帶] 있는 대상’이라는 의미입니다. 식[마음]이 마음대로 만든 대상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처럼 바른 인식이 아니고 잘못된 인식을 말합니다.(주3) 이 상분은 본질을 가지고 자신의 종자로부터 생긴 것이지만, 성경과는 다르게 제6 의식의 분별이 관계하고 있기 때문에 독영경과 동일하게 견분의 종자와 관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대질경은 성경과 독영경의 중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대질경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첫째 말나식이 아뢰야식의 견분을 인식할 때의 상분입니다.[진대질경眞帶質境]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진대질경이란 ‘제7 말나식이 제8 아뢰야식의 견분을 ‘자아’라고 대상으로 삼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진대질경이란 제7 말나식이 ‘본질[質]인 제8 아뢰야식의 견분을 띠고[帶] 있는 대상[境]’을 자아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둘째 의식이 비량(非量, 그릇된 인식)을 인식할 때[착각]의 상분입니다.[사대질경似帶質境]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사대질경이란 오경[색경, 성경, 향경, 미경, 촉경]의 깁·네모·둥근·아름다움·추함을 조건으로 삼은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은 진짜 질[眞質]을 띠고[帶] 있는 것이 아니고 비슷한 질[似質]을 띠고[帶] 있는 대상[境]입니다. 즉 대질경은 제6 의식과 제7 말나식에서 작용하는 상분입니다.
3) 독영경獨影境
독영경이란 홀로 독獨, 그림자 영影, 대상 경境로 이루어진 말로, 제6 의식이 ‘단독[[獨]으로 만든 영상[환영, 影]의 대상[境]’을 말합니다. 이것은 유질독영경[지금은 없지만 과거에 경험했던 것(有質, 본질이 있는 것)을 의식이 단독으로 만든 대상]과 무질독영경[실재하지 않는 것(無質, 본질이 없는 것)을 의식이 단독으로 만든 대상]으로 나눕니다. 즉 독영경이란 본질이 없이 독자적으로[獨] 영상[影]만이 있는 대상[境]입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과는 정반대입니다. 독영경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첫째, 제6 의식이 거북 털이나 토끼의 뿔 등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인식할 때의 상분입니다.[무질독영경] 둘째는 제6 의식이 과거나 미래 등의 가법[임시로 존재하는 것]을 인식할 때의 상분입니다.[유질독영경] 즉 지금은 없지만 과거에 경험했던 것[대상], 다시 말해 의식 속에만 남아있는 대상을 말합니다.(주4) 이처럼 중국 법상종에서는 상분을 3종류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3. 식 자체도 3종류이다
호법 보살은 식의 주체적[주관적인] 부분을 견분, 자증분[자체분], 증자증분으로 나눕니다.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식[자증분]이 어떻게 나누어지는지 살펴보겠다. 먼저 상분은 대상화되어 인식[파악]되는 것입니다. 견분은 대상화된 것을 대상으로 인식[파악]하는 측면입니다. 예를 들면 식 자체에서 ‘꽃’은 상분이고, 꽃을 꽃으로 인식하는 것이 견분입니다. 자증분(자기[自]를 확인[證]하는 부분[分])은 견분, 즉 꽃을 보고 있는 자신을 내면으로부터 인식하는 측면입니다. 자증분을 자체분이라고 하는데, 자증분은 인식의 구조에서 식을 파악한 것이라고 한다면, 자체분은 존재의 관점에서 식을 파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증자증분(자기[自]를 다시 확인[證]하는 부분[分])은 자증분의 배후에 있는 것으로 자증분을 대상으로 확인하는 식(마음)입니다. 이처럼 자증분이 견분을 확인하고, 증자증분이 자증분을 확인한다면, ‘증자증분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유식에서는 증자증분을 확인하는 마음은 필요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증자증분을 확인하는 것은 자증분이기 때문입니다. 자증분은 견분을 확인하고, 한편으로 증자증분을 확인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견분에 관계하는 것은 자증분이지만, 견분은 자증분에 관계하지 않습니다. 견분이 관계하는 것은 상분뿐입니다. 즉 상분과 견분, 그리고 자증분 사이에는 일방적 관계만이 성립하지만, 자증분과 증자증분 사이에는 상호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법상종에서는 4분설(주5)이라고 합니다.
주)
(주1) 독두의식獨頭意識이란 제6 의식이 전오식과 별도로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 독두의식에는 정중의식, 몽중의식, 독산의식의 3종류가 있다. 먼저 정중의식定中意識은 선정 중의 의식 상태로 환각·환상의 상태를 말한다. 또는 깨달음의 체험이나 심신탈락心身脫落의 상태와도 관계하는 의식이다. 몽중의식夢中意識은 꿈속의 의식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는 꿈을 무의식과 관계하는 것으로 보지만, 유식에서는 제6 의식의 활동으로 파악한다. 독산의식獨散意識은 전오식의 활동을 떠나 제6 의식만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을 말하며, 구체적으로 사고, 판단, 상상력, 이상을 추구하는 등의 마음의 활동이다.
(주2) 一性境者. 性是實義. 謂相分色從相分種子所生. 故名爲實. 此復有二. 一無本質. 二有本質. 一無本質者. 卽第八心王所緣根身器界及諸種子. 但是自變自緣. 不假外質. 然約器界及他人之浮塵根. 旣是共相識種所變. 亦得說有外質也. 根本智親證眞如. 雖不變爲相分. 亦名性境. 二有本質者. 卽今五識所緣現在五塵. 及明了意識初念幷定中獨頭意識所緣定果色等. 皆托第八識之相分以爲本質. 隨卽變爲自識相分而爲所緣. 猶如鏡中所現群像. 雖約眞諦言之則皆如幻如夢了無眞實. 而約俗諦言之則五塵卽是五識相分. 從種子生還熏成種. 不同空華鏡像▩角龜毛. 亦復不同過去未來之不可得. 故名性境也.
(주3) 예를 들어 보자. TV를 보고 있다고 하자. 사실 보고 있는 것은 평면으로 이루어진 화면이지만, 멀리 떨어진 지리산 정상의 천왕봉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4) 『成唯識論掌中樞要』, T43, 620ab. 『成唯識論了義燈』, T43, 677c 이하) 橫山紘一, 『唯識佛敎辭典』, 春秋社, 2012.
(주5) 법상종의 창시자 규기는 『성유식론술기』에서 사분설四分說을 소개한다. 안혜는 자증분만을 인정하는 일분설一分說, 난타는 상분과 견분을 인정하는 이분설二分說, 진나는 상분(prameya, 所量)·견분(pramāṇa, 能量)·자증분(pramāṇa-phala, 量果)을 인정하는 삼분설三分說, 호법은 상분·견분·자증분·증자증분을 인정하는 사분설四分說을 주장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규기는 호법의 사분설을 정통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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