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파편들 간다라 불교 유적 > 월간고경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월간 고경홈 > 월간고경 연재기사

월간고경

[실크로드 불교]
기억의 파편들 간다라 불교 유적


페이지 정보

한지연  /  2020 년 3 월 [통권 제83호]  /     /  작성일20-06-12 10:32  /   조회6,913회  /   댓글0건

본문

한지연 | 철학박사 

 

  헬레니즘 미술이 가장 발전한 장소로 간다라Gandhara를 손꼽는다면 지나친 것일까? 헬레니즘 미술과 간다라 미술은 주로 양식적 측면에서 관련이 있다고 언급되지만, 헬레니즘 문화가 최고로 꽃핀 지역은 간다라가 아닐까? 간다라에 있던 종교·신화 등에 그리스와 페르시아에서 전래된 학문·철학 등이 가미加味되자 외연外延과 내포內包가 한층 풍부해진 사상이 나타났고, 이를 토대로 성장한 ‘간다라 예술’이 훗날 세계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굽타Gupta 양식’으로 향상向上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추측이 완전히 잘못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간다라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예술작품 가운데 불교예술은 수적으로도 제일 많고, 질적으로도 뛰어나다. 사리기舍利器와 화폐에 조각되고 새겨진 불상에는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많은 요소들이 들어 있다. 1·2회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화폐에는 과거 동서 교류의 중심이었던 간다라의 경제 상황, 여러 민족들의 동향動向 등이 촘촘하게 배어 있다. 사리기를 통해 초기 불상의 형태와 그 당시 사회상도 엿볼 수 있다.

  


카니슈카 사리기. 

 

  카니슈카 대탑에서 출토된 사리기 뚜껑부분에 있는 삼존상은 무엇보다 주목된다. 사리기에 새겨진 카니슈카 왕의 모습과 꽃줄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부처님 열반 당시, 제자들이 꽃줄을 양쪽 어깨에 메고 행렬을 했던 바로 그 장면인데, 그 곳에 카니슈카 왕이 함께 꽃줄을 어깨에 얹고 있다. 카니슈카 왕은 부처님 열반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 무려 500여 년이나 뒤의 ‘후배’임에도 부처님 열반 당시 존재했던 사람인 양, 그 장소에 함께 있었던 듯이 묘사되어 있다. 카니슈카 왕은 왜 부처님 열반식에 참여한 듯 새겨졌을까? 

 

  먼저 쿠샨 왕조의 제3대 왕인 카니슈카 왕의 권력과 관련지어 해석할 수 있다. 역사를 보면, 왕조 성립 후 3대째 왕은 대개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고자 한다. 1·2대 왕들 시기의 국정國政에 상대적으로 불안함이 존재하고, 통치자는 왕조 창건에 공이 있는 신하들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향이 적지 않다. 그러다 3대 왕이 등극할 무렵이면 왕조는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가고, 자연스레 ‘통치 권력 강화强化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카니슈카 왕 역시 ‘비슷한 문제’들을 고민했을 것이다. 

 

  왕권 강화, 즉 통치의 정당성·정체성 확보에는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전륜성왕과 자신을 배대配對시키는 것도 하나의 효과적인 방법이다. 카니슈카 왕은 아쇼카 왕과 같은 전륜성왕임을 표방하고 불교를 활용했으리라. 꽃줄을 메는 왕의 조각은 이런 사정에서 등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간다라 지역에 성행하던 불교 사상을 활용해 자신의 통치가 바로 전륜성왕의 통치와 비슷한 것임을 보이려 했던 것은 아닐까? 설사 ‘이런 가정이 적확하지 않다’해도 사리기에 왕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쿠샨 왕조의 중심지였던 서북인도 및 중인도 지역 신앙의 핵심이 불교임을 반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물론 카니슈카 왕이 불교에 귀의했음 나타내기 위해, 불교를 더욱 번성시키기 위해 사리기에 이런 장면을 새겼을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카니슈카 왕의 개인적 종교가 불교였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위에서 추측한 두 가지 이유를, 화폐에 등장하는 왕과 붓다의 모습에 동일하게 적용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쿠샨왕조 시대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아쇼카 왕 시대의 가슴 아픈 ‘내밀한 사정’을 알려주는 유적도 간다라에는 있다. 파키스탄 탁실라Taxila 지역에 있는 쿠나라 태자 탑이 그것이다. 이 탑은 시르캅 도시 유적지 안쪽에 있다. 당나라 현장玄奘이 쓴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권제12에 이 탑과 관련된 기록이 있다. “아쇼카 왕의 태자가 탁실라국에서 자신을 눈을 도려내게 되었다. 아쇼카 왕이 이 사실을 알고 노하여 이 일을 담당한 재상을 추방해, 히말라야 산맥의 북쪽 황량한 계곡에 살게 했다.”(????大唐西域記????(T51,p.943a) “無憂王太子, 在呾叉始羅國, 被抉目已. 無憂王怒譴輔佐, 遷其豪族, 出雪山北, 居荒谷間.”)는 문장이 그것이다. 태자의 아름다운 눈에 반한 왕비(계모)가 태자를 유혹했지만 쿠나라가 넘어 오지 않자, 오히려 무고해 눈을 도려내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적지 않은 문헌에 등장한다. 

 

  계모인 왕비의 만행으로 두 눈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었지만 쿠나라 태자는 아버지의 아픔과 계모의 만행을 천하에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이 사실을 아버지 아쇼카 왕의 평소 가르침이 쿠나라 태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하면 지나친 것일까? 아무튼, 쿠나라 태자 탑 앞에서는 여러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교활한 여인, 고통을 당하고도 참는 태자, 후일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부왕父王의 고뇌 등등 ….

 

     탁실라 박물관에서 마주친 부처님

 

 

파키스탄 탁실라 박물관 전경. 

 

  쿠나라 태자 탑이 있는 탁실라 지역에는 탁실라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내부에는 탁실라 지역에서 출토된 여러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유물들의 대다수는 불상, 불두, 불전도, 보살상 등이다. 그만큼 고대 간다라 지역의 주요 종교는 불교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현재의 간다라는 불교를 믿는 이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기에 불교 유적지에 있는 우두커니 서 있는 불탑의 벽돌을 하나씩 빼 자신의 집이나 축사를 만드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그들 선조의 염원이 담긴 벽돌이니, 후손들이 생활에 필요해 사용한다고 해서 비난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탁실라 박물관에는 불두佛頭가 많다. 세월이 지나고, 불교를 믿지 않아서, 혹은 발굴과정에 훼손되어 지금은 불두만 남은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찬란했던 불교 융성지였음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씁쓸함이 함께 느껴지는 곳이 탁실라 박물관이다. 그런데 그 씁쓸함을 말끔하게 지워줄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

 


탁실라 박물관의 부처님 사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곳에는 부처님 사리가 모셔져 있다. 박물관의 부처님 사리가 공개된 것은 약 5년 전. 스리랑카 스님들이 이곳에 부처님 사리가 모셔져 있음을 알고 공식적으로 요청했고, 박물관 내에서 스님들이 ‘사리를 존숭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박물관 직원은 그 사실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 물론 박물관 직원들이 불교를 믿어서 ‘사리舍利 의식’을 거행한 것은 아니다. 이슬람교도들인 그들은 불교를 알지 못한다. ‘그 의식’을 위해 경제적 후원이 있었기에 사리의 ‘경제적 가치’를 새롭게 인식(?)한 것이리라. 어쨌든 ‘사리 의식’이 과거 한 때 대·소승이 공존했던 ‘간다라의 영광’을 되새기는 하나의 방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조상들이 열심히 믿고 사랑했던 종교, 왕마저 신봉했던 종교, 그것이 바로 불교였음을 파키스탄 사람들이 탁실라 박물관에서나마 느끼게 되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한지연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 철학박사. 저서 『서역불교교류사』, 공역 『돈황학대사전』외 논저 다수. 실크로드 불교교류사 전공, 최근에는 대승불교의 집단화 과정에 관심을 두고 연구 중이다.
한지연님의 모든글 보기

많이 본 뉴스

추천 0 비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우) 03150 서울 종로구 삼봉로 81, 두산위브파빌리온 1232호

발행인 겸 편집인 : 벽해원택발행처: 성철사상연구원

편집자문위원 : 원해, 원행, 원영, 원소, 원천, 원당 스님 편집 : 성철사상연구원

편집부 : 02-2198-5100, 영업부 : 02-2198-5375FAX : 050-5116-5374

이메일 : whitelotus100@daum.net

Copyright © 2020 월간고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