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읽는 법어]
세상과 거꾸로 사는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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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Barry / 2013 년 11 월 [통권 제7호] / / 작성일20-08-12 14:30 / 조회11,315회 / 댓글0건본문
Seeing the world Upside-down
세상과 거꾸로 사는 불교
When someone asks me what Buddhism is, I tell them that it’s seeing the world upside-down. Although many people around the world harm others in their quest to build a self-centered existence, Buddhism is the opposite: It’s the process of eliminating the concept of a separate self, and living for others. And that, to conventional society, is seeing the world-upside down.
누가 어떤 것이 불교냐고 물으면 세상을 거꾸로 보는 것이라고 답한다. 세상은 전부 내가 중심이 되어 나를 위해 남을 해치려고 하는 것이지만, 불교는 나를 완전히 내버리고 남을 위해서만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란 세상과는 거꾸로 사는 것이다.
Serving, Not Saving
-봉사와 구제
The true Buddhist offering is helping others. That makes me think about the fact that nowadays it seems that people with leeway help the poor financially. But those people don’t know how to really help others.
남을 돕는 것이 바로 불공이다. 흔히 남을 돕는다고 하면 부유한 자가 가난한 자에게 무언가 베푸는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는 참으로 남을 도울 줄 모르는 것이다.
The way to genuinely help others is to always serve everyone as if you were serving you ageing parents, as if you were feeding your hungry teacher, as if you were making and offering a new set of robes to a Buddha in tatters. We should respect and serve everyone in everyway possible.
나이 든 부모를 모시듯, 배고픈 스승께 음식을 드리듯, 떨어진 옷을 입으신 부처님께 옷을 지어 올리듯, 남을 항상 받들어 모시는 것이 바로 진정으로 남을 돕는 것이다.
The concept of “saving”people who are weak and poor because you think that they are pathetic does not exist in Buddhism. By thinking that way, you are generally insulting their basic nature and dignity.
그러므로 약하고 가난한 상대를 불쌍한 생각으로 돕는다는 의미의 ‘구제’는 불교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의 인격에 대한 큰 모욕이기 때문이다.
Wherever you go you will find hungry buddhas, naked buddhas and sick buddhas. Buddhism teaches that we should serve all of these innumerable buddhas in every way possible. In other words, while Buddhism doe have an all-encompassing concept of serving, it has no concept of “saving.”You can serve a buddhabut can you save a buddha from being a buddha?
어디를 가나 배고픈 부처님, 옷 없는 부처님, 병든 부처님이 있다. 이들 무수한 부처님들을 효자가 성심으로 섬기는 것이 곧 불교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봉사(奉仕)’는 있지만 구제는 없다.
(성철 스님 법어집 『이 뭣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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