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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불교]
원자와 태양과 나타나고 사라지는 유무有無의 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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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  2022 년 2 월 [통권 제106호]  /     /  작성일22-02-04 09:31  /   조회4,80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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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불교 18 | 대립과 연기법의 세계 

 

켈빈은 19세기의 탁월한 과학자였다. 열 살에 글래스고 대학에 입학했고 케임브리지 대학을 거쳐 스물두 살 이후 글래스고 대학의 교수로 일했다. 수학과 물리학 분야에서 6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고 70여 건의 특허를 낸 공학자이면서 대서양 해저 케이블 설치에 관여한 경영자이기도 했다. 그의 열역학 분야의 업적을 기려 절대온도를 켈빈 온도라고 한다. 그런 과학자가 중년 이후 관심을 가졌던 문제가 지구의 나이였다.

 

켈빈과 다윈의 지구 나이  

 

지구상에 생명이 존재하려면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가 있어야 하므로, 지구의 나이는 태양의 나이와 무관할 수 없다. 켈빈은 태양이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중력에 의해 점차 수축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근거로 처음에는 지구의 나이를 9,800만 년 정도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래 탈 수 있는 물체가 있을지에 대해 의심하면서 추정치를 계속 수정했다. 5천만 년이라고 했다가 최종적으로는 2,400만 년이 됐다.

 

 

사진 1. 제1대 켈빈 남작 윌리엄 톰슨 William Thomson(1824~1907). 

 

당시의 물리학으로는 수억 년 동안 연료가 바닥나지 않고 타오르는 물체를 상상할 수 없었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동시대인이었던 다윈은 켈빈보다 훨씬 길다고 생각했다. 다윈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의 화석과 지질학적 변화를 알고 있었다. 이런 생명과 지질의 변화가 있으려면 적어도 수억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다윈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지질학자들도 지구의 역사가 아주 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다. 켈빈과 다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후에 등장한 현대물리학의 원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원자와 상대성 이론      

 

대부분의 현대물리학은 원자와 관련돼 있다. 현대물리학의 기초가 되는 양자역학은 원자와 관련된 물리적 성질을 주로 다룬다. 양자역학에서 출발한 입자물리학, 핵물리학, 원자물리학, 고체물리학 등 전통적인 분야뿐 아니라, 양자컴퓨터나 양자정보이론 등 최근에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까지 거의 모든 영역이 직간접적으로 원자와 관련돼 있다.

 

 

사진 2. 노년의 찰스 다윈 Charles Darwin(1809~1882). 

 

이와 달리 상대성 이론은 원자와 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특수상대성 이론이 제시한 식 E=mc² 은 원자의 질량이 에너지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어서, 상대론 역시 원자와 관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식은 역학의 기초를 아는 학생에게는 1시간 안에 설명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은 식이지만, 질량과 에너지가 동등하다는 엄청난 의미를 품고 있다. 상대론이 나오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식은 핵융합 과정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로 항성 이 빛과 열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했고, 핵분열 과정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로 원폭이나 원자력 발전이 가능하다는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원자의 구조와 변환을 살펴보자.

 

원자와 원자핵의 구조  

    

원자의 중심에는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를 전자가 돈다. 핵nucleus의 구성 요소인 양성자와 중성자를 총칭하여 핵자核子, nucleon라고 한다. 핵자는 좁은 공간에 모여서 핵을 구성한다. 양성자 사이의 거리가 아주 짧으므로 그들 사이의 전기적 반발력은 대단히 크다. 양성자 사이의 전기적 반발력을 극복할 수 있는 강한 힘을 강력strong force 이라고 하며, 이 힘으로 핵이 구성될 수 있다.

 

원자핵이 안정적으로 구성되려면 강력뿐 아니라 중성자도 필요하다. 중성자는 핵자를 결합하게 하는 강력을 제공하면서도 핵자를 분열시키려는 전기적 반발력은 없기 때문이다. 헬륨 원자핵이 두 개의 양성자와 두 개의 중성자로 구성돼 있다는 것은 이를 보여주는 가장 간단한 예다. 안정적인 핵을 형성하려면 양성자와 중성자의 비율이 적절해야 한다. 안정적인 원자인 경우, 가벼운 핵은 거의 같은 수의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고 핵의 질량이 무거워지면 중성자의 비율이 높아진다.

 

방사성 붕괴에 따른 원자의 변환      

 

양성자와 중성자의 구성 비율이 적절한 영역을 벗어나면 원자핵은 불안정해진다. 이런 원자는 방사성 붕괴를 거쳐 다른 원소로 변한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어느 한 원자가 언제 붕괴하는지를 알 수는 없다. 붕괴할 확률만 알 수 있다. 방사성 원자의 절반이 붕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반감기라고 하며, 이는 핵의 종류에 따라 아주 짧기도 하고 지구 나이만큼 길기도 하다.

 

방사성 원자의 반감기는 연대 측정에 사용된다. 방사성 탄소가 질소로 변하는 붕괴 과정의 반감기는 5,730년이며, 방사성 탄소의 양을 측정하여 선사시대처럼 비교적 짧은 과거의 연대를 측정할 수 있다. 방사성 칼륨이 아르곤으로 변하는 방사성 붕괴의 반감기는 12억5천만 년인데, 방사성 칼륨의 양을 측정하여 암석의 나이를 계산할 수 있다. 자연 상태의 우라늄은 여러 단계를 거쳐 서서히 납 등으로 붕괴한다. 반감기는 우라늄-235가 7억4백만 년이고, 우라늄-238은 44억7천만 년이다. 반감기가 길어서 지구의 나이처럼 오랜 과거의 연대를 측정할 수 있다.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의 핵분열nuclear fission도 방사성 붕괴의 한 예다. 불안정한 핵이 붕괴해 다른 원소로 변하는 과정에서 질량이 줄어든다. 이 질량결손 ∆m에 c²을 곱한 엄청난 에너지 ∆m c²이 방출된다. 1kg의 우라늄-235가 붕괴하면서 나오는 에너지는 이론적으로 1천5백 톤의 석탄에서 나오는 에너지와 같다고 한다.

 

태양과 별의 핵융합과 지구    

  

핵분열은 무거운 원자핵이 이보다 가벼운 여럿으로 나누어지는 과정이고, 핵융합은 가벼운 원자핵이 결합하여 무거운 원자핵을 만드는 과정이다. 방사성 붕괴도 우리 주변에서 자연적으로 항상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를 과학 장비 없이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 이와 달리 핵융합은 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일어나기는 하지만, 태양과 별을 통해 낮이고 밤이고 그 현장을 확인할 수 있다

 

태양은 거대한 구 모양을 한 플라스마 상태의 수소와 헬륨 덩어리다. 반지름은 지구 반지름 6,000km의 100배 이상이고, 질량은 지구 질량의 33만 배여서 태양계 전체 질량의 99.9%를 차지한다. 태양의 표면 온도는 6천 도이고 중심부는 1천5백만 도 정도다. 중심부의 압력은 지구 대기압의 2천억 배에 이른다. 그 정도의 크기와 질량과 온도와 압력을 갖추었기에 핵융합 반응이 일어난다.

 

태양은 1천 와트의 전열기 6천억 곱하기 6천억 개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매 순간 우주 공간으로 뿜어낸다. 만일 태양이 석탄과 산소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그 수명은 수천 년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켈빈이 계산한 2,400만 년보다도 훨씬 짧다. 핵융합이 아니라면 엄청난 에너지를 수십억 년 동안 방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태양과 별은 석탄을 태우지 않고 수소를 태우고 있다.

 

태양의 중심부에서는 매초 6억 톤의 수소가 헬륨으로 바뀐다. 그 자체로는 엄청난 양이지만 태양 전체로 보면 지극히 일부분이다. 우리가 아는 어느 폭탄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에너지를 내뿜지만, 폭탄처럼 일시에 에너지를 내뿜고 사라지지 않는다. 극소수 비율의 수소만 핵융합 반응에 참여하면서 일정한 양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전체적으로 잘 제어된 상태를 아주 오래 유지한다. 이렇게 수십억 년 동안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준 덕택에 그동안 지구에서는 생명이 진화했고 오늘날의 생태계가 이루어졌다.

 

E=mc² 과 유무有無의 중도 

     

핵융합 반응에서는 4개의 수소 원자핵이 하나의 헬륨 원자핵으로 합쳐진다. 이 과정에서 0.7%의 질량이 감소한다. 이것이 태양이 지난 50억 년 동안 우주로 뿜어낸 에너지의 원천이다. 핵융합 반응뿐 아니라 핵분열 반응이나 방사성 붕괴에서도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분출된다. 질량이 바뀐 것이다. 상대론의 식 E=mc²은 질량과 에너지가 같다는 것이고, 이는 다시 물질과 에너지가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질량은 볼 수 있고 에너지는 보이지 않는다.

 

가습기를 틀어 놓으면 뽀얀 것이 뿜어져 나오다가 곧 사라진다. 뽀얗게 보이는 것은 아주 작은 물방울이다. 그 물방울이 수증기로 변한다. 물방울은 눈에 보이는 액체고, 수증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체다. 봄이 되면 씨앗에서 파란 싹이 돋아난다. 사대가 인연으로 화합하여 뭉치면 싹이 된다.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면 인연이 흩어져서 다시 사대로 돌아간다. 사대가 화합하면 눈에 보이는 싹이 되고 사대가 흩어지면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가습기는 물방울을 잘게 쪼개 수증기로 쉽게 변할 수 있게 하는 기계다. 씨앗은 사대를 화합하여 싹을 이루게 하는 생명이다. 핵융합은 질량을 에너지로 바꾸는 물리적 과정이다. 이름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변환이다. 단지 이름과 형색이 바뀔 뿐 생겨나는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다. 불생불멸의 중도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존재라고 하고 있음이라고 하고 유有라고 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비존재라 하고 없음이라고 하고 무無라고 한다. 그러나 단지 이름과 형색으로 그 둘을 구분할 뿐이다. 『가전연경』을 보면서 글을 맺는다.

 

“…세상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유와 무이다. 취함에 부딪히고 취함에 부딪히기 때문에 유에 의지하기도 하고 무에 의지하기도 한다. 만일 이 취함이 없다면, 마음과 경계를 얽어매는 번뇌를 취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으며 헤아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게 괴로움이 생기면 생겼다고 보고 괴로움이 소멸하면 소멸했다고 보아 그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미혹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아는 것을 정견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래가 시설한 정견이니라.

 

왜냐하면 세간의 발생을 사실 그대로 바르게 알고 본다면 세간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세간의 소멸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본다면 세간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이것을 두 극단을 떠나 중도에서 말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니, 즉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순전히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며,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이 소멸하고… 순전히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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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고려대학교 과학기술대학 물리학과 교수. 연구 분야는 양자정보이론. (사)한국불교발전연구원장. <산하대지가 참 빛이다 (과학으로 보는 불교의 중심사상)>, <양형진의 과학으로 세상보기>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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