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불교]
무아의 연기로 나타나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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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 2022 년 4 월 [통권 제108호] / / 작성일22-04-04 10:19 / 조회5,022회 / 댓글0건본문
과학과 불교 19 | 대립과 연기법의 세계
흑체복사
양자역학은 플랑크Max Planck가 도입한 양자가설에서 시작됐다. 이는 흑체복사(Blackbody radiation)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흑체는 모든 파장의 빛을 흡수하는 물체다. 복사란 에너지를 입자나 파동의 형태로 주위 공간에 전달하는 것이다. 전기난로의 스위치를 켜면 방열판이 붉어진다. 붉은 파장의 빛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주위로 에너지를 내뿜는다. 이것이 복사의 한 예다. 흑체복사란 흑체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빛 에너지를 방출하는 현상이다.
흑체에서 방출되는 빛의 복사를 온도와 파장에 따라 설명하려는 시도가 여럿 있었다. 그러나 어떤 방식의 이론도 흑체복사의 관측 결과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물리학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경험과학이다. 경험과학의 이론체계는 관측 사실을 잘 설명하는 경우에만 의미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체가 아무리 그럴듯 하거나 훌륭해 보이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 플랑크 이전의 모든 시도는 이 경우에 속한다.
플랑크의 양자가설
이와 달리 관측 결과를 잘 설명해 주기만 하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론체계라 하더라도 그 타당성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당시의 배경 지식과 비교하여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과학의 역사에서 여러 번 나타났다. 다윈의 진화생물학,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 갈릴레이의 관성의 법칙,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과 일반상대성 이론 등이 그렇다. 이들 이론은 모두 당시의 배경 지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을 이론체계 안에 담고 있다.
과학철학자 포퍼Karl Popper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부정되거나 도저히 그럴듯하지 않은 가설이 확증confirmation될 때 과학이 크게 진보한다고 생각했다. 위의 여러 예와 함께 플랑크의 양자가설이 이 경우에 속한다. 영Thomas Young이 이중 슬릿을 이용하여 빛이 간섭한다는 사실을 밝힌 이후, 빛이 파동이라는 것은 자명했다. 빛이 전자기 파동이라는 사실은 맥스웰 방정식에 의해 이론적으로 설명되고, 헤르츠의 실험으로 확인됐었다.
당시의 이런 배경 지식과 달리, 플랑크는 빛을 양자量子(Quantum)라고 가정했다.(주1) 이 가설은 온도와 파장에 따라 변하는 흑체복사의 관측 자료를 완벽하게 설명했다. 빛이 알갱이로 이뤄져 있다는 파격적인 가설이 확증된 것이다. 여기서 양자역학이 출발하면서 현대물리학이 시작됐다. 새로운 학문 분야가 열리는 큰 진보가 이뤄진 것이다.
파장이 짧은 빛은 위험하다
빛 양자를 광자 혹은 광량자라고 한다. 영어로는 빛을 의미하는 photo와 알갱이를 의미하는 접미사 on을 합쳐 포톤photon이라고 한다. 플랑크의 양자가설에 의하면, 광자의 에너지는 ε = hν 로 표시된다. 여기서 h는 플랑크 상수이고, ν 는 진동수다. 광속을 c, 빛의 파장을 λ라 하자. 파동이론에 의하면 c = νλ이므로, 광자의 에너지는 ε = hν = hc/λ가 된다. 이에 따라 광자의 에너지는 진동수나 파장에 따라 달라진다. 진동수가 높거나 파장이 짧아지면 에너지가 크고, 진동수가 낮거나 파장이 길어지면 에너지가 작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전자기파를 가시광선이라고 한다. 적외선이나 마이크로파는 가시광선보다 긴 파장의 빛이어서, 광자의 에너지가 작다. 이와 달리 자외선, x선, 감마선 등은 가시광선보다 짧은 파장의 빛이어서 광자의 에너지가 크다. 작은 에너지의 광자는 건강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큰 에너지의 광자에 노출되면 유전자가 변형되는 등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된다. 빗방울은 많이 맞아도 되지만 돌멩이는 하나라도 맞으면 다치는 것과 같다. 빛 에너지가 알갱이로 전달된다는 양자가설은 파장이 짧은 빛이 왜 위험한지를 설명하기도 한다.
파장이 짧은 빛은 위험하다
빛 양자를 광자 혹은 광량자라고 한다. 영어로는 빛을 의미하는 photo와 알갱이를 의미하는 접미사 on을 합쳐 포톤photon이라고 한다. 플랑크의 양자가설에 의하면, 광자의 에너지는 ε = hν 로 표시된다. 여기서 h는 플랑크 상수이고, ν 는 진동수다. 광속을 c, 빛의 파장을 λ라 하자. 파동이론에 의하면 c = νλ이므로, 광자의 에너지는 ε = hν = hc/λ가 된다. 이에 따라 광자의 에너지는 진동수나 파장에 따라 달라진다. 진동수가 높거나 파장이 짧아지면 에너지가 크고, 진동수가 낮거나 파장이 길어지면 에너지가 작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전자기파를 가시광선이라고 한다. 적외선이나 마이크로파는 가시광선보다 긴 파장의 빛이어서, 광자의 에너지가 작다. 이와 달리 자외선, x선, 감마선 등은 가시광선보다 짧은 파장의 빛이어서 광자의 에너지가 크다. 작은 에너지의 광자는 건강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큰 에너지의 광자에 노출되면 유전자가 변형되는 등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된다. 빗방울은 많이 맞아도 되지만 돌멩이는 하나라도 맞으면 다치는 것과 같다. 빛 에너지가 알갱이로 전달된다는 양자가설은 파장이 짧은 빛이 왜 위험한지를 설명하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
전자는 보통 상황에서는 원자핵에 묶여 있는 상태bound state로 있다. 행성이나 위성도 마찬가지다.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는 태양에 묶여 있고, 지구 주위를 도는 달이나 인공위성은 지구에 묶여 있다. 묶여 있다는 것은 이들의 역학적 에너지가 0보다 작은 음의 값이라는 것이다. 이런 물체에 에너지를 공급하여 역학적 에너지가 양의 값이 되면 묶인 상태에서 탈출할 수 있다. 이렇게 탈출한 전자를 자유전자free electron라고 한다. 빛을 금속에 쪼여 원자핵에 묶여 있던 전자가 자유전자로 방출되는 현상을 광전효과라고 한다.
그렇다면 빛 에너지를 충분히 주기만 하면 자유전자가 튀어나와야 한다. 실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특정한 진동수 이상의 빛을 비출 때만 자유전자가 나왔다. 그리고 전자는 아주 작아서 전자에 충분한 에너지가 쌓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빛을 비추면 전자가 즉각적으로 튀어나왔다. 고전 전자기학으로는 이 두 가지 관측 사실을 설명할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빛 에너지가 알갱이 즉 양자의 형태로 전자에 전달된다고 생각했다. 묶여 있는 전자를 풀어줄 만한 에너지를 공급하려면 광자의 에너지 hν가 묶임 에너지binding energy hν0보다 커야 한다. 이는 빛의 진 동수가 ν0보다 클 때만 광전효과가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한다. 알갱이로 뭉쳐져 있는 광자의 에너지를 전자에 전달하기만 하면 되는데 워낙 많은 수의 광자가 있으므로 광전효과가 즉각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콤프턴 산란과 전자구름
콤프턴 산란은 광자가 원자에 묶여 있는 전자와 충돌하는 과정이다. 묶임 에너지보다 큰 에너지의 광자가 전자와 충돌하면서 광자의 에너지가 전자에 전달된다. 광자는 충돌하면서 진행 방향을 바꾼다. 광자에서 전자로 에너지가 전달되면서 전자는 자유전자가 되고 광자의 에너지는 줄어든다. 광자의 에너지는 ε = hν = hc/λ이므로 이 충돌 과정을 거치면서 광자의 진동수는 작아지고 파장은 길어진다. 이렇게 빛을 알갱이라고 생각하고 콤프턴 산란을 빛 알갱이인 광자와 전자 사이의 충돌이라고 생각하면 관측 자료가 잘 설명된다. 콤프턴 산란은 양자가설로 설명된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물체의 위치를 알려면 물체를 보면 된다. 본다는 것은 물체에 반사돼 나오는 빛을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자의 세계에서는 빛을 봄으로써 대상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 콤프턴 산란을 하고 나온 빛은 충돌 전에 전자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려줄 뿐이다. 전자는 빛과 충돌 하면서 그 충격으로 다른 곳으로 움직인다. 전자의 위치를 알려고 하는 바로 그 행위가 전자의 위치를 알 수 없게 만든다. 이는 측정 방법을 정교화하거나 측정 장치를 개선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전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양자역학에서는 전자의 위치를 전자구름과 같은 확률로 표시한다.
전자의 회절과 이중슬릿 간섭
지금까지는 파동이라고 여겨졌던 빛이 입자처럼 행동하는 것을 논의했다.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입자라고 여겨졌던 전자가 파동처럼 행동하는 현상이 관측된다. 전자빔을 격자 구조의 물질에 투사하면 전자빔이 휜다. 이를 물리학에서는 회절 혹은 에워싸 며 돌아간다는 의미로 에돌이라고 한다. 이 휘어진 전자빔이 간섭을 일으킨다. 그 결과 파동의 전형적인 모습인 간섭무늬가 나타난다. 전자만이 아니다. 전자보다 훨씬 무거운 중성자도 회절을 한다. 중성자 회절은 물질의 구조를 알아내는 데 이용된다.
영Thomas Young이 1801년에 이중슬릿double slit 실험을 통해 빛이 간섭한다는 것을 관측했다. 간섭은 파동의 전형적인 특징이므로 이때부터 빛을 파동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1927년에 전자도 이중슬릿을 통과하면서 간섭무늬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자도 파동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후 전자만이 아니라 원자와 분자도 이중슬릿 간섭무늬를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19년에 비엔나대학에서는 수소원자의 25,000배의 질량을 가진 분자도 간섭무늬를 보인다는 것을 관측했다. 무거운 분자도 파동처럼 행동할 수 있다.
양자는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니다
빛은 간섭과 회절을 하므로 파동으로 여겨졌지만 흑체복사나 광전효과, 콤프턴 산란에서는 입자처럼 행동한다. 양자역학은 여기서 출발했다. 이와 반대로 입자라고 여겨졌던 전자는 회절과 간섭무늬를 보이면서 파동처럼 행동한다. 이를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wave-particle duality이라고 한다.
빛이 입자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고 해서 영의 이중슬릿 간섭 실험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양자역학이 나온 이후에도 이중간섭 실험을 하면 빛은 파동처럼 간섭한다. 그렇다면 빛은 입자인가 아니면 파동인가? 빛은 광전효과에서 입자처럼 행동하므로 이중간섭 실험에서 파동의 간섭무늬를 명확히 보인다 해도 빛이 파동일 수는 없다. 빛은 이중간섭 실험에서 파동처럼 행동하므로 광전효과에서 에너지 알갱이를 전자에 전달한다 해도 빛이 입자일 수는 없다. 그러면 빛은 파동일 수도 없고 입자일 수도 없다. 파동도 아니고 입자도 아니다.
양자역학의 이중성과 참여하는 관측
빛은 어떤 맥락에서는 파동처럼 행동하고 어떤 맥락에서는 입자처럼 행동한다. 도봉산을 어떤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과 같다. 빛은 광전효과에서는 입자처럼 행동하고 이중슬릿에서는 파동처럼 행동한다. 의정부에서 보면 북도봉이 보이고, 서울에서 보면 남도봉이 보이는 것과 같다.
때에 따라 북도봉과 남도봉이 나타나고 상황에 따라 입자와 파동이 나타나지만 이들은 서로 엉키지 않는다. 광전효과에서는 언제나 입자가 나타나고 이중슬릿에서는 언제나 파동이 나타난다. 의정부에서 보면 언제나 북도봉이고 서울에서 보면 언제나 남도봉이다. 왜 그런가? 관측자가 참여하여 설정하기 때문이다. 광전효과를 보려면 빛이 입자로 나타나게끔 관측장치를 설정해야 한다. 이중슬릿 실험에서는 빛이 파동으로 나타나게끔 관측장치를 설정해야 한다. 의정부에 갔다는 것은 북도봉이 보이게끔 설정해 놓고 도봉산을 보는 것이다.
참여하는 관측과 연기와 무아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주관이 참여해야 현상이 나타난다. 참여하는 과정을 거치므로 그 나타나는 것은 객관세계 자체가 아니다. 어떤 관측자가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짠맛을 느끼는 우리에게는 바닷물이 짜지만 돌고래나 고등어에게 바닷물이 짜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바닷물 자체가 나타나지 않고 참여를 거쳐 변형되므로 서로 다른 관측자에게는 서로 다른 상相이 나타난다. 광전효과를 보려는 관측자에게는 입자의 상相이 나타나고 이중슬릿을 통해 보려는 관측자에게는 파동의 상相이 나타난다.
나타나는 상相이 대상 자체가 아니므로 모든 상相은 어떤 관계의 맥락, 어떤 연기緣起의 맥락이 맺어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남도봉이나 북도봉으로 명확히 나타나도 그 나타난 상相은 실체가 아니어서 남도봉도 아니고 북도봉도 아니다. 입자나 파동으로 명백히 나타나도 그렇게 나타나는 상相은 실체가 아니어서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니다. 단지 연기이고 무아일 뿐이다. 무아無我의 연기緣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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