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심리학의 만남]
의意와 식意의 불교심리치료적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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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조 / 2023 년 8 월 [통권 제124호] / / 작성일23-08-04 23:02 / 조회2,299회 / 댓글0건본문
지난 호부터 마음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마음은 심과 구분된다고 했다. 마음은 심心·의意·식意·성性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이고, 심은 마음의 일부이고, 심·의·식·성 각각은 다른 기능을 가진다. 심은 신체적으로 심장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는 것에 착안해서 심을 축적하는 기능에 초점을 맞추어서 지난 호에서 다루었다.
이번 호에서는 의意와 식意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의와 식은 보통 하나의 단어처럼 의식으로 불리고, 영어 컨셔서니스(consciousness)의 번역어로 사용된다. 그리고 보통 깨어 있는 상태, 잠들어 있는 상태, 멍한 상태 등 정신의 상태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불교에서는 이 둘을 구분하여 사용하며, 어떠한 정신의 상태보다는 정신의 활동을 가리킨다.
의意의 의미
의意는 빨리어로 ‘생각하다(think of)’라고 번역되는 마노(mano)이다. 인도유럽어 어원에 따르면 어원 멘(√men)은 희랍어 메노스(μένος)와 비교해 보면 ‘분위기(mood)’, ‘화(anger)’를 의미한다. 그 이후에 ‘생각하다(think of)’, ‘바라다(wish to)’는 의미로 사용된다.
심心·의意·식識이 동의어라고 하지만 특정 맥락에서는 각각 그에 따른 특정 용어가 사용되는 것을 볼 때 이들은 개별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라고 할 때 의意 대신 식識이나 심心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은 각각의 대상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을 감각하는 감각기관 또는 감각기능을 말한다. 감각기관은 있지만 감각기능을 하지 못할 때는 감각기관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제대로 감각기능을 하는 감각기관을 말하는 것이다.
의意는 법法을 감각하는 감각기능을 말한다. 눈이라는 감각기관이 색깔 또는 모양을 보듯이, 의라는 감각기관은 법이라는 대상을 감각한다. 여기에서 감각기능이 어떤 기능인지가 문제가 된다. 우선 의意의 감각기관은 심장이다. 심장은 의意라는 감각기능의 물질적 토대가 된다. 보는 감각기능이 눈이라는 감각기관을 물질적 토대로 가지듯이, 의意라는 감각기능은 심장이라는 감각기관을 가진다. 심장은 심의 토대가 되는 동시에 의意라는 감각기능의 감각기관의 역할을 한다.
여기에서 심장은 감각기관이다. 심장은 자체적인 신경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진폭이 두뇌보다 육십 배가 높다. 또한 두뇌보다 오천 배나 강한 에너지장을 발산한다. 그러므로 심장의 진동수는 뇌의 진동수를 동조화해버리게 된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는 안 된다’는 말은 심장의 진동수가 강하기 때문에 뇌의 진동수로는 심장의 진동수를 동조화시킬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심장의 진동수가 ‘분위기’, ‘화’와 같은 것이다.
의意라는 한자를 보면 ‘심장[心]+소리[音]’로 이루어져 있다. 심장의 진동수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의 폭을 넓히면 의意라는 감각기능을 심장을 포함한 몸 전체로 확대할 수 있다. 단지 뇌에 의한 인식작용만이 마음의 기능이 아니라 심장을 포함한 몸 전체의 기능이 ‘의’라는 감각기능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심장은 심心의 장기이다. 심을 표현하는 신체기관이라는 의미이다. 마음과 몸이 접촉하는 신체기관으로 심장이 있고, 감각기관으로 의意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의意는 동조화하는 기능(attunement), 물들이는 기능(tinting)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심장의 동조화와 마찬가지로 의는 대상을 동조화하고 물들이는 기능을 한다. 물들인다는 것은 즉 좋고 나쁨이라는 두 가지 분위기로 물들이는 것이고, 물들은 결과는 화와 같은 정서, 자기중심적 정서로 드러난다.
감각기능인 의意의 대상이 되는 법(dhamma)은 어원적으로 ‘유지하다(√dhṛ)’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고정불변의 실체(substance)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존재하지 않는 없음(nothingness)도 아니다. 생멸하면서 유지되고 있는 실재(reality)를 말한다. 생멸과 유지를 동시에 하고 있는 대상을 의意라는 감각기능이 감각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찰나 생멸하면서 찰나 유지되는 감각대상의 예로 진동을 들 수 있다. 심장소리라고 할 때의 소리도 진동의 일종이다. 생멸하고 유지하는 특징을 가진 법을 대상으로 이를 감각하는 기능이 의意이다.
감각기능으로서 의意는 항상 심장의 진동수에 영향을 받는다. 심장과 신체의 ‘분위기’에 의해서 감각기능은 항상 영향을 받는다. 안이비설신에 의해서 감각된 색성향미촉이 의意와 만날 때 의意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안이비설신 자체의 감각기관은 청정하지만, 의意는 항상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영향을 받는 것을 유식학에서는 ‘염오染汚’ 즉 ‘물듦’으로 표현한 것이다.
항상 ‘나’라는 몸과 마음 전체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염오식染汚識으로 불린다. 유식학에서는 염오식을 마나스식(manas vijñāna)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마나스는 의意를 말한다. 염오식인 칠식은 육식, 팔식과 함께 작용한다. 이때의 칠식도 감각기능의 형태를 띤다. 감각기능은 항상 ‘나’라는 형태로 팔식을 물들이면서[染汚] 육식과 접촉한다. 이렇게 되면 마나스식이 깨끗해지지 않는 이상, 팔식은 왜곡되어 육식으로 현현하게 된다. 그러므로 유식학에서는 칠식을 청정하게 하는 것, 즉 전식득지轉識得智가 지상과제가 된다.
요약하면 심心의 소리[音]를 의미하는 의意는 동조화하는 기능, 물들이는 기능을 한다. 의意는 심장이라는 감각기관을 바탕으로 소리와 진동수에 영향을 받는다. 이때의 소리와 진동수는 ‘나’와 연관되어 있고, 이러한 연관성을 ‘염오’라고 부른다. 심 자체는 좋고 나쁨이 없지만, 의意에서는 염오와 불염오가 있다. 나[我]와 연관될 때는 염오라고 부르고, 지智와 연관될 때는 불염오 즉 ‘청정’이 된다. 의意는 둘 중 어떤 것이든 간에 영향을 받는다. 소리 또는 진동수에 물들어 있는 것이다. 의意에는 좋고 나쁨 정도의 구분이 있지만, 식識에서는 더욱 다양한 구분이 이루어진다.
식識의 의미
식識에서 감각기능은 더욱 분화하게 된다. 식은 어원적으로 ‘구분하여(vi) 알다(jña)’라는 의미이다. ‘구분’과 ‘분별’은 다른 것이다. 분별은 상想을 만드는 작용을 거친 이후의 앎을 이야기한다. 구분하여 아는 것은 가장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반응하는 것(response)을 말한다. 즉 외부대상에 대해서 유기체가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앎으로써의 반응을 말한다. 아는 기능에는 가장 단순한 반응에서 가장 복잡한 기능까지 포함되어 있다. 아는 것과 관련된 빨리어 단어만 20여 가지가 존재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기능은 다양하지만, 감각기관 자체는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의 단어만 있는 것이다.
한자로 식識은 말[言]을 찰흙판[戠]에 새기는 것을 말한다. 이것도 구분하여 알기 위한 원초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식의 기능은 구분하여 아는 기능이다. 구분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앎이 아니라 매순간 새로운 앎이 필요하다. 매순간 알아차리는 것이 식의 고유한 기능이다. 이미 식 속에 생멸의 가능성이 전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오온의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에서 식識도 매순간 알아차리는 기능을 한다. 그렇다면 이 오온은 용어 자체에서 생멸성이 드러나게 된다. 색수상행식은 신체적이고 물질적인 기능(rūpa, 色), 받아들이고 느끼는 기능(vedanā, 受), 결합하고 생각하는 기능(saññā, 想), 의도하는 기능(saṅkhāra, 行), 구분하고 아는 기능(viññāṇa, 識)이다. 신체, 느낌, 생각, 의도, 앎이라는 명사화된 표현으로는 기능성이 잘 드러나지 않으므로 기능하는 동사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기능하는 존재로서 오온은 식識을 바탕으로 수受라는 인풋 과정을 통해서 들어오는 데이터를 상想이라는 과정에서 프로세싱하고 행行을 통해서 아웃풋을 하게 된다. 오온은 인풋-프로세싱-아웃풋(input-processingꠓoutput)의 과정을 거치면서 기능하는 것이다. 오온은 이러한 기능들이 함께 생멸·생멸하고 있는 역동적 몸·마음 통합체라고 할 수 있다.
연기에서도 식識이 사용된다. 무명無明으로 인해서 행行의 영향을 받는 식識이 매순간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식을 발생시키는 것이 행이다. 이때의 행은 삼업三業, 즉 신구의身口意에서 만들어진 행위를 말한다. 몸과 입과 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행위를 바탕으로 식이 영향을 받는다. 여기에서 의意가 등장한다. 식은 의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연기에서 만들어지는 식은 매순간 생멸한다. 매순간 우리가 신구의身口意라는 감각기능을 통해서 만드는 행위는 우리의 식識에 영향을 끼치고, 이것으로 인해서 명색名色이라는 몸과 마음에 영향을 끼친다. 이때의 몸과 마음은 또 다시 식識에 영향을 끼친다. 식과 명색의 상호증장적 생산구조에 의해서 십이연기 이후의 각지各支가 지속적으로 생겨나게 된다.
연기와 함께 근경식根境識 삼사三事가 화합함으로써 새로운 촉수애취유생노사觸受愛取有生老死라는 나머지 각지各支가 만들어지는 형태를 볼 수 있다. 근根이라는 감각기관, 경境이라는 감각대상, 식識이라는 감각기능이 함께하면서 새로운 업이 지속적으로 생산된다. 이렇게 새로운 업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유기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업은 심心에 저장된다. 심의식이 순환적으로 생멸과 유지를 지속하는 구조를 가지게 되는 식識의 상호증장성은 식과 명색의 구조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식識은 명색名色과 상호증장적으로 식識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상호증장을 도와주는 요소로 사식四食을 들 수 있다. 즉 자양분의 차원에서 음식은 몸의 자양분이지만, 접촉과 의도와 식은 마음의 자양분이다. 접촉을 통한 수많은 정보는 식에 영향을 주는 자양분 역할을 한다. 이 접촉의 자양분(phassa āhāra, 觸食)은 십이연기의 촉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의도의 자양분(manosañcetanā āhāra, 意思識)은 행을 말하는 것으로 십이연기의 행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식의 자양분(viññaṇa āhāra, 識食)은 식 자체가 식에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이다. 이 셋도 마음의 자양분이다. 십이연기의 차원에서 보면 행, 식, 촉이 자양분의 역할을 한다.
요약하면 식은 구분하여 아는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심이 축적, 기억, 유지하는 기능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의는 감각기능으로서 물들이고 동조하는 기능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들 심의식은 모두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불교심리치료적 함의
의意라는 감각기능을 바탕으로 매순간 식識이 생겨난다. 의와 식은 하나의 세트로 매순간 업業을 만들고 있다. 의와 식, 즉 의식은 업이 만들어지고 있는 생생한 업의 생산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하나의 상태라기보다는 매순간 변화하면서 새로운 업이 만들어지고 있는 현장에 가깝다. 근경식根境識이라는 세 가지가 화합할 때 세계世界가 열리게 된다. 각각의 감각기관과 그 대상, 그리고 식에 의해서 매순간 역동적 세계가 새롭게 열린다. 이 가운데 의意와 의에 의한 식識, 즉 의식意識이 만드는 세계도 하나의 세계이다.
의와 식에 의해서 업을 만들고 있으므로, 어떤 종류의 업을 만드는지가 핵심이 된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업에 따라서 열리는 세계가 달라진다. 사후의 세계이든, 지금 현재의 세계이든 육도六道는 이 만들어지는 업에 의해서 창조된다. 나아가서는 이러한 육도를 벗어나는 것도 이 만들어지는 업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순간 안이비설신의라는 감각기관으로 어떤 업을 만들지에 대해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매순간의 태도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업의 종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탐진치貪瞋痴라는 태도를 가질지, 무탐無貪·무진無瞋·무치無痴의 태도를 가질지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업이 달라진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물들이고 끌어당기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첫 태도를 어떻게 취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이들 가운데 탐진치로 나아가는 방향성과 무탐·무진·무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논의가 불교수행의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자는 범부의 방향성이고 후자는 성인의 방향성이다. 후자의 방향성 가운데 마음과 관련된 특징은 다음 호에서 다루게 될 성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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