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종교와 불교의 미래]
하나와 하나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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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 2023 년 6 월 [통권 제122호] / / 작성일23-06-05 11:08 / 조회2,741회 / 댓글0건본문
표층종교는 초월적인 존재와 인간 및 사물은 각각 독립된 개체들로서 그들 사이에는 ‘영원한 심연’이 있을 뿐이라고 믿습니다. 말하자면 우주를 분리(muliplicity)의 차원으로 파악하는 셈입니다. 반면 심층종교는 초월적인 존재나 인간 및 사물이 결국은 하나라고 하는 하나(unity)의 차원을 중시합니다. 만물의 근원이 ‘하나’이고, 또 모두가 다시 하나로 돌아간다는 생각입니다. 지난 4월호에 만물이 서로 연관되고 서로 의존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문제와 관련이 있지만 만물이 ‘하나’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보려고 합니다.
‘하나’를 강조한 이들
일단 ‘하나’를 강조한 심층종교 전통과 이를 강조한 대표적인 사상가 몇을 살펴봅니다. 첫째, 중국 신유학자 중 한 분인 북송 중기의 정호程顥(1032~1085)입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본래 우주 만물과 하나를 이루고 있었는데, 인간의 욕심 때문에 하나됨을 잃어버리고 분리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맹자가 말한 남의 고통을 보고 참지 못하는 불인不忍의 마음이나 남을 측은히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도 기본적으로 만물이 하나라는 생각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마음이라고 보았습니다. 인간이 다시 성誠(sincerity)과 경敬(attentiveness)이라는 수양을 통해 나와 만물이 하나라는 혼연동체渾然同體의 진리를 깨닫는 것, 이것이야말로 무한한 기쁨의 원천이라고 했습니다.(주1)
둘째, 성서 『요한복음』 저자에 의하면 예수님도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요10:38)고 하고,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고도 하고, 결국은 단적으로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요17:21)라고 하며 모두가 하나임을 강조했습니다.
미국 성공회 주교 존 쉘비 스퐁 신부는 『요한복음』에서 일반 그리스도인 모두가 익히 아는 ‘요한 3장 16절’이 아니라 위에 언급된 하나됨의 메시지가 중심사상이라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됨을 체감할 때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22:39)는 예수님의 말씀이 의미 있는 것으로 들리게 됩니다.(주2)

셋째, 노자의 『도덕경』 제42장에 보면, “도道가 ‘하나’를 낳고,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습니다.”하는 말이 있습니다. 절대 무, 절대적인 비존재로서의 도에서 모든 존재의 시원인 ‘하나’가 나오고 거기에서 모든 것이 나온다는 우주창생론cosmogony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도덕경』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만물이 도로 다시 ‘돌아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32장에 “세상이 도로 돌아감은 마치 개천의 물이 강이나 바다로 흘러듦과 같습니다.”라고 하고, 또 제40장에서는 “되돌아감이 도의 움직입니다.”라고 했습니다.(주3)
넷째, 신플라톤주의 창시자 플로티노스(205∼270)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플로티노스 사상의 근간은 이른바 ‘유출론流出論(emanation theory)’입니다. 절대 최고 근원으로서의 절대적 궁극실재를 ‘하나, to Hen, the One’으로 보고 이것이 바로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흘러나오는 시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하나에서 ‘누스nous’가 나오는데 영어로 보통 intelligence, mind, spirit로 번역하고, 우리말로는 ‘정신’이라 합니다. 다시 누스로부터 ‘프시케psyche’가 나오는데, 이것을 영어로는 소울soul이라 번역하고 우리말로는 영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영혼은 세 가지 형태로 분류되는데, 최하의 형태는 동물적이고 감각적인 것이고, 중간 형태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으로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게 하는 것이며, 가장 높은 형태의 영혼은 누스와 하나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초인간적 형태의 영혼이라고 합니다.
플로티노스에게 가장 핵심적인 사상은 유출을 반대 방향으로 역류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목표는 최하질의 영혼에 얽매이지 않고 음악과 사랑과 깨침을 통해 제2의 이성적 영혼을 정화시키므로, 최고 형태의 영혼이 우리를 관장하게 하여 다시 누스로 돌아가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와 하나되는 것이라고 합니다.(주4)
다섯째, 20세기 가장 사랑받은 종교사상가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의 기도 중에도 이런 사실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하나이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므로 하나이면 하느님도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그와 하나가 된다고 합니다.

“오 하느님, 우리는 당신과 하나입니다. 당신은 우리가 당신과 하나 되도록 만드셨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서로에게 열린 자세를 가지면 당신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열림을 유지하도록,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다해 그것을 위해 싸울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주5)
여섯째, 아인슈타인도 비슷한 말을 했기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마커스라는 유대인 랍비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존재지만,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전체의 일부입니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도, 그리고 자기의 생각과 감정도 우주의 다른 것들과 분리된 무엇이라 여기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의식에서 일어난 일종의 착시적 망상(optical delusion)에 불과합니다. 이런 망상에서 자유스러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참된 종교가 추구해야 할 화두입니다.”(주6)
일곱째, 동학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학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우리가 하늘을 우리 속에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侍天主, 우리 속에 있는 하늘이 곧 우리 자신이기에 우리 인간과 하늘이 하나라는 것을 강조하는 인내천人乃天이 바로 그것입니다.
불교에서의 ‘하나’
이상에서 ‘하나’를 강조한 사상가나 종교 전통을 이야기했지만, 무엇보다 하나를 강조하는 종교는 불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은 유명한 『십우도』의 아홉 번째 그림이 수행으로서는 최종 단계라 할 수 있는 ‘반본환원反本還源’입니다. 이제 나와 우주, 그리고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임을 깨닫는 단계입니다.(주7) 『유마경』에 나오는 ‘불이不二’라는 말도 생각납니다. 이는 분리와 대립을 초월하는 경지, 어느 면에서는 하나라고도 말할 수 없는 절대 침묵의 경지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화엄경』과 화엄종에서 말하는 ‘법계法界 Dharmadhātu’라는 것도 영어로 보통 ‘the realm of elements’라고 번역하는데,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전일적全一的 바탕’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가 절대적인 신을 가리켜 ‘존재의 바탕(the Ground of Being)’이라 표현한 것과 상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화엄의 기본 가르침인 상즉상입相卽相入도 결국 만사를 하나로 보는 입장이고, 의상대사의 『일승법계도』에 나오는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 ‘일중다一中多 다중일多中一’이라는 것도 ‘하나’와 여럿의 관계를 밝히는 것입니다.
원효가 중국으로 가다가 어느 토굴에서 깨달았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것도 결국 모든 것이 ‘심心’에 의해 생겨났다고 하여, 이 ‘심’ 하나가 바로 만물의 근원이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승기신론』에서는 구체적으로 일심一心에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이 있다고 하면서, 절대적인 경지와 현상세계가 결국 일심의 작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로자나불로 표현되는 법신法身도 우주의 유일한 근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원불교에서 말하는 ‘법신불 일원상(◯)’도 우주의 궁극 진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나가면서
위에서 언급된 것 이외에도 모두가 하나이거나 하나로 돌아간다는 만유일체萬有一體, 만법귀일萬法歸一, 동체귀일同體歸一, 그리고 동학에서 내가 바로 하늘이므로 제사를 지낼 때 나를 향해 신위를 베풀라는 향아설위向我設位,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말 중 구속을 의미하는 atonemnet의 어근인 ‘하나가 되다(at-one-ment)’, 다시 하나가 된다는 의미의 ‘reunion,’ 다시 화해한다는 뜻의 ‘reconciliation’ 등도 모두 인간을 포함하여 만물이 하나라는, 그리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런 말 중 특히 동체대비同體大悲와 사인여천事人如天은 주목할 만합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라는 사실을 깊이 체감할 때, 이웃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보살정신이 가능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뿐 아니라 이웃을 하늘 섬기듯 섬길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십우도』에서 말하는 마지막 단계, 도움의 손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는 ‘입전수수入廛垂手’를 통해 우리 사회와 세계는 더욱 맑고 밝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각주)
(주1) 오강남,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현암사, 2020), 372쪽 참조.
(주2) 존 쉘비 스폰 지음, 변영권 옮김, 『아름다운 합일의 길 요한복음: 어느 유대인 신비주의자의 이야기』(한국기독교연구소, 2018) 참조.
(주3) 오강남, 『도덕경』(현암사, 2010년 개정판), 188, 197쪽 참조.
(주4) 오강남, 앞의 책 41~47 쪽 참조.
(주5) 1968년 10월 인도 콜카타에서 한 비공식적 연설에서 한 끝맺는 기도. The Asian Journal of Thomas Merton (1975). Thomas Merton, Spiritual Master : The Essential Writings (1992), 237 쪽에서 재인용.
(주6) 나오미 레비 지음, 최순님 옮김, 『아인슈타인과 랍비』, 29~30쪽 참조.
(주7) 오강남·성소은 지음,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판미동, 2020), 226~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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