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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불교는 지금]
미국 사회참여 불교의 다양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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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광 김형근  /  2024 년 5 월 [통권 제133호]  /     /  작성일24-05-04 23:13  /   조회1,76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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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불교는 지금 16 | 미국 ⑯ 

 

재소자 재활 프로그램을 시작한 뉴욕 선산수도원

 

‘선산수도원(Zen Mountain Monastery)’ 은 로스엔젤레스 선원의 마애즈미 스님의 제자인 존 다이도 루리(John Daid Loori, 1931〜2009)스님이 1980년에 업스테이트 뉴욕에 건립하였다. 그는 1994년 조동종의 외국인 선사 자격을 정식으로 받았으며, 1997년에는 하라다-야스타니 계보와 임제종에서 법을 받아 조동종과 임제종 양쪽으로부터 법을 받은 스님이다. 선수행에 관한 12권의 책을 저술했다.

 

사진 1. 교회를 사서 수도원으로 만든 선산수도원.

 

이 선산수도원은 1969년 열렸던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렸던 우드스탁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이곳에서는 큰 건물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루리는 삭발한 스님이지만 항상 소탈한 모습이었다. 여러 번 만난 본 루리스님은 승복을 제대로 입은 적은 별로 없었다. 식당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이 스님이 이끄는 수도원에서 사회복지사업과 예술은 주요한 내용이었다. 이 스님은 특히 환경보호와 교도소 재소자 재활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사진 2. 루리스님(가운데).

 

그가 이 재소자 재활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은 뉴욕주 그린 해븐시에 있는 중형자 수감원 재소자로부터 루리스님 앞으로 온 편지에서 시작되었다. 재소자들은 정기적으로 루리스님으로부터 지도를 받았고 출감 후에는 수도원에 와서 머무를 수 있었다.

 

감옥에서 명상 지도 시작한 플리트 몰 박사

 

한국의 스님들도 감옥에서 재소자들에게 설법도 하고, 선을 지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에서 이런 재소자 명상기관(Prison Mindfulness Institute) 설립자 플리트 몰(Fleet Maull) 박사는 그 자신이 수감자였다. 그는 30년 넘게 미국 및 국제교정에서 마음챙김 기반 중재 및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제공해 온 마음챙김 전문가, 교육자, 교정 트레이너 및 연구원이다. 

 

사진 3. 플리트 몰.

 

하지만 그의 젊은 시절은 끔찍했다. 히피 세대인 그는 대학에 입학한 후 방황하였다. 1972년 페루 안데스 산자락에서 살았는데 술과 마약으로 시간을 보냈다. 1979년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나로파대학에 입학하여 명상심리치료 석사학위과정에 등록하고 공부하던 중에 남미를 왕래하며 마약밀수를 한 혐의로 1985년 25년 감옥생활을 언도받았다. 이후 알콜과 마약을 끊으면서 명상을 계속할수록 지나간 그의 인생에 대해 회한이 몰려왔다. 25명이 한 방을 쓰는 상황에서 청소도구 보관실을 정리하고 그곳을 자신의 선방으로 사용했다.

 

티베트 불교지도자로 나로파대학 설립자인 쵸감 트룽파의 오랜 학생인 플리트 몰은 1989년에 ‘교도소 다르마 네트워크(Prison Dharma Network, 현 Prison Mindfulness Institute)’를 설립했으며, 당시 최대 보안 연방교도소 의료시설에서 마약밀수 혐의로 최소 14.5년 형을 복역했다. 그는 14년(1985~1999) 동안 감옥 명상실에서 매주 두 번씩 명상그룹을 이끌었다. 그는 또한 최초의 교도소 내부 호스피스 프로그램의 시작을 도왔고, 석방될 때까지 죽어 가는 수감자들에게 매일 돌봄을 제공했다. 1991년에 그는 국립교도소 호스피스협회(National Prison Hospice Association)를 설립하여 현재 75개 이상의 주 및 연방교도소에서 호스피스 프로그램을 포함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에이즈 환자 돕다 입적한 샌프란시스코 이산스님

 

1960년대에 미국에서 샌프란시스코는 반전, 반문화의 중심지였고, 환각제 복용자(LSD)와 히피들의 중심도시였다. 그리고 이들은 이곳에서 스즈키 순류, 중국스님 선화선사 등을 만나 불교의 길로 들어선 젊은이들이 많았다. 이들 중에서 미국불교사에 큰 자취를 남긴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서 이산 도르지(Issan Dorsey, 1933〜1990)의 삶은 좀 특이하고, 스님의 삶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사진 4. 이산스님.

 

켈리포니아 산타바바라에서 태어난 이산의 속명은 토미 도르시(Tommy Dorsey)였는데 그는 게이였다. 한국전쟁 중이던 시기에 군에 입대한 게이 도르시는 남자 애인과 함께 해군에서 추방되어 몇 년 동안 취업과 휴직을 반복했다. 그는 마침내 North Beach의 한 바에서 웨이터로 일하게 되었고, 결국 그곳에서 여장을 하고 여성 역할을 하여 ‘드래그 퀸’으로 불리게 되었다.

 

1960년대에 그는 교통사고 후유증의 오진으로 인해 오랫 동안 습관성 마약 사용으로 60년대 중반 무렵 그의 건강은 악화되고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 그는 이 기간 동안 라마나 마하리쉬(Ramana Maharshi)의 사진을 관찰하면서 LSD의 영향으로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선원에서 스즈키 순류스님을 만나 좌선을 하게 되었는데, 1970년대에 그는 주로 참선을 하고 지냈다.

 

사진 5. 하드포드 선원.

 

샌프란시스코 선원에서 건립한 타사하라 선원은 미국 최초의 산중선원이다. 1966년 이 선원이 개원되었는데 이산은 거기에서 주방장이 되었다. 1970년에 그는 스즈키스님에게 보살계를 받았다. 정식으로 불교 신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1975년에는 스즈키 후계자 ‘리차드 베이커(Richard Baker)’로부터 조종동 비구계(법명 이산Isaan: 하나의 산이라는 의미)를 받았다. 1980년에 그는 당시 샌프란시스코 선원의 디렉터였는데 같은 시기에 이산은 게이 불자클럽(Gay Buddhist Club)을 개인적으로 돕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선원에서는 그들의 감성이나 요구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요구에 부응한 것이었다. 첫 모임은 샌프란시스코 선원에서 하였지만 이후 하드포드 스트리트 하우스(Hartford Street House)로 옮겨가게 된다. 이 장소는 원래 1973년부터 티벳불교센터(Tibetan Buddhist Center)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드디어 1981년 12월 8일 부처님 성도재일에 이 건물의 지하층에 참선방 개원식이 열리게 된다. 공식적으로 하드포드 스트리트 선원(Hartford Street Zen Center, HSZC)이 세상에 그 시작을 알리게 된 것이다.

 

사진 6. 하드포드 선원 현재 주지 묘스님(좌). 사진 7. 이산 도시의 책 『길거리 선(street zen)』(우).

 

1987년에 이산 도시는 하드포드 스트리트의 선원에 독립적인 마이트리 호스피스(Maitri Hospice)를 설립하여 주로 에이즈로 죽어가는 게이 남성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하였다. 노동운동가 혹은 빈민운동가가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면, 직접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로 살아야 하고, 빈민가에서 빈민들과 함께 살아야 그의 삶의 진정성을 인정받는다. 인도 빈민가에서 테레사 수녀가 일생을 빈민들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존경을 받게 되었듯이, 에이즈 환자라면 모두가 끔찍하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고 멀리하던 그 시절에 이산스님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에이즈 환자를 돌보았다. 그리고 그는 에이즈에 감염이 되었다.

 

이산스님의 삶을 요약하면 그는 게이였고 게이 클럽에서 드래그 퀸이었고 마약중독자였다. 그러다 1960년대에 샌프란시스코 선원에서 좌선을 시작하면서 마약을 끊었다. 1970년대에는 일본 조동종스님이 되었다. 1980년 ‘게이불교클럽’으로 시작된 초기 게이 불자동우회 모임을 ‘하트포트 스트리트 선원(HSZC)’으로 가져왔다. 20년 동안 선 수행을 한 후 1989년에 그는 샌프란시스코 하드포드 스트리트 선센터(HSZC)의 창립 수도원장이 되었으며, 그곳에서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마이트리 호스피스(Maitri Hospice)를 설립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죽음 직전에 이산은 도시로 인정받았다. 1990년 9월 6일 이산 도시는 AIDS와 관련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길거리 선(Street Zen)』이라는 책에는 그의 일생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부처가 되려고 하지 말고, 부처처럼 행동하라.”고 말했던 그는 에이즈, 비트세대(Beat Generation), 히피세대를 온 몸으로 끌어안은 선수행자, 미국보살로 평가받고 있다.

 

평화운동하는 뉴잉글랜드 일본산 묘법사

 

뉴잉글랜드 보스턴 근교에 있는 ‘니폰잔 묘호지(日本山 妙法寺, Nippozan Myohoji)’는 미국에 있는 불교사찰 중에서 드물게 평화운동을 전면으로 내걸고 활동하는 사찰이다. 이들은 평화의 상징으로 경내에 평화의 탑(Peace pagoda)을 세웠다. 일본인 교웨이 카토(Gyoway Kato)스님이 사찰의 주지이고, 미국인 비구니 클레어 카터(Sister Clare carter)가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카토스님은 80살이 넘었고, 클레엉 카터스님은 70살이 넘었다. 

 

사진 8. 평화탑 행사.

 

이 단체의 평화운동은 주로 3가지 분야에 걸쳐서 한다. 첫째는 반전반핵운동, 두 번째는 노예제반대, 세 번째는 미국 원주민 관련 운동이다. 이들은 그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반전반핵을 내세우면서 워싱턴 DC, 로스엔젤레스에서 워싱턴 DC, 보스턴에서 워싱턴DC까지 걷는 행진을 수차례 하였고, 또 1년 이상 걸려서 아프리카 노예들이 끌려온 길을 반대로 가는 행렬을 하기도 하였다.

 

특히 1년이 넘는 대장정 프로젝트였던 노예무역을 속죄하는 대서양 횡단순례는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서 시작해 카리브해(Caribbean)을 지나서 서아프리카(West Africa)로 향하는 당시 노예무역선이 지나온 길을 역으로 걸어가 보는 프로젝트였다. 사람들은 역사의 현장을 걸으며, 역사를 바로 알고, 함께 평화를 기도했다고 한다. 세상을 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만큼 아주 강력하고 값진 경험이었다고 클레어카터(Sister Clare carter)스님은 회상했다.

 

사진 9. 필자, 카토스님 그리고 클레엉 카터 스님(맨 오른쪽).

 

이들은 또 침략적인 전쟁을 먼저 일으킨 일본이 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으로부터 핵폭탄을 맞았다며 핵무기를 만드는 곳에 가서 시위를 하기도 한다. 클레어 카터스님은 불교란 행동하는 종교라고 말한다. 중생의 삶 속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고, 호흡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보살의 삶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존 카밧진의 의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참여불교

 

미국불교 저자 리처드 휴지스 시거는 존 카밧진의 마음챙김(mindfulness)을 기존 사회참여불교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참여불교라고 주장한다. 매세츠세츠 대학교 의료센터에서 존 카밧진에 의해 환자들에게 마음챙김(mindfulness)에 기반한 스트레스 감소와 예방의학에 적용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것은 마음챙김 명상을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널리 확산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1979년 카밧진은 메사추세츠 대학교 의과대학(University of Massachusetts Medical School)에서 스트레스 감소 클리닉(the Stress Reduction Clinic)을 설립하고, 마음챙김에 관한 불교의 가르침과 스트레스 감소 및 완화 프로그램(the Stress Reduction and Relaxation Program)을 개발하였다. 후에 그는 이 구조화된 8주 코스를 마음챙김 기반 스트레스 감소(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MBSR)라고 불렀다. 그리고 불교적 색채와 구조 및 불교와 명상과의 관계를 없애고, MBSR을 과학적 맥락 하에 배치하였다. 이후 메사추세츠 대학교 의과대학 안에 의학, 건강, 사회 마음챙김센터(the Center for Mindfulness in Medicine, Health Care, and Society)를 설립하였다.

 

사진 10. 강연하는 존 카밧진.

 

카밧진의 MBSR은 1991년 출판된 그의 첫 저작 『마음챙김 명상과 자기치유(Full Catastrophe Living: Using the Wisdom of Your Body and Mind to Face Stress, Pain, and Illness)』과 함께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 하였다. 책에서는 연습 지침을 자세히 제시하였다. 1993년, 스트레스 감소 클리닉에서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정치평론가 빌모이어스(Bill Don Moyers)가 진행한 PBS 방송국 특집방송 ‘Healing and the Mind’에서 다뤄지면서 MBSR이 광범위한 인기를 얻게 되었고, 카밧진은 미국 전역에서 유명인이 되었다. 1994년, 카밧진의 두 번째 저작 Wherever You Go, There You Are(한국에서는 존 카바진의 마음챙김 명상 『당신이 어디를 가든 당신은 그곳에 있다』는 이름으로 출판)가 미 전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1990년대 후반, 단독센터 형태 혹은 병원 내 의학프로그램의 일부로서 MBSR 클리닉이 많이 개설되었다.

 

리처드 휴지스 시거는 “카밧진의 활동은 미국에서 다르마가 몇몇 분야에서 전통적인 종교철학 및 수행으로부터 삶을 위한 일련의 사상과 기술로 바뀌어 가면서 세속적인 고객을 위해 현대화되고 있으면서도 영성의 본질적인 핵심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열린 명상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던 카밧진은 저서도 많은데 30여 개국에서 번역 출판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출판된 책은 『존 카밧진의 내 인생에 마음챙김이 필요한 순간』, 『처음 만나는 마음챙김 명상』, 『왜 마음챙김 명상인가?』, 『카밧진 박사의 부모 마음공부』, 『마음챙김 명상과 자기치유(상,하)』 등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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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광 김형근
미주현대불교 편집인 및 발행인. 전북 김제가 고향으로 전북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89년 뉴욕에서 월간 잡지 『미주현대불교』를 창간하여 운영하고 있다. 2010년부터 사단법인 ‘korean Cultural Heritage Foundation’을 설립하여 한국전통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남북불교교류 활동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북한사찰순례단을 조직하여 2005 년부터 4차례에 걸쳐 단체로 북한사찰순례를 하면서 북한불교를 소개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정부의 북한 여행 금지로 인해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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