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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禪, 禪과 시]
말로 하고자 하나, 이미 말을 잊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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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4 년 12 월 [통권 제140호]  /     /  작성일24-12-05 13:03  /   조회1,03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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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사 주차장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면 대비암과 성전암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갈림길에서 조금 가면 대비암이 나오고 성전암까지는 1km 정도입니다. 예전에는 그냥 다녔는데 오늘 가보니 예상외로 경사가 꽤 심하군요. 10분 정도 올라가면 성전암 주차장이 나타납니다.

 

성전암 가는 길

 

주차장이 벌써 해발 610m입니다. 겨우 차를 대고 성전암을 향해 올라갑니다. 초입의 이 길, 경사도가 거의 50도는 될 것 같습니다. 성전암 길이 워낙 가팔라서 각종 공양물과 식량을 운반하기 대단히 어렵습니다. 옛날에는 엉성한 리프트가 있었는데 요즘은 깔끔하게 모노레일을 깔았군요. 오랜만에 성전암에 다시 와보니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깊은 산속 암자까지 달라질 정도로 우리나라는 많이 발전했습니다.

 

모노레일 출발점을 지나면 익숙한 옛길이 나타납니다. 20년 만에 성전암에 다시 붙으니 내가 마치 20년이나 젊어진 듯합니다. 절벽에 붙어서 낸 길이라 좁고 위험합니다. 경사가 얼마나 급한지 전체적으로 45도~60도 정도의 경사가 내내 이어집니다. 어휴, 힘듭니다. 

 

사진 1. 절벽에 붙은 제비집 같은 성전암 전경.

 

성전암이 가까워지면 묵은 채마밭이 나타납니다. 요즘은 성전암은 물론 파계사까지 채마밭은 모두 묵힌다고 합니다. 상주하는 대중도 부족하고, 여기까지 올라와서 농사지을 신도도 없기 때문입니다. 저기, 일주문이 보입니다. 아이고 이제 다 왔습니다. 해발 680m, 30분 만에 올라왔습니다.

 

왕관 바위 아래로 절벽에 붙은 제비집 같은 성전암입니다. 정자 뒤에 있는 건물은 공양간이고, 그 옆 건물에는 성전암 편액과 현응선원 편액이 함께 붙어 있습니다. 성전암 뒤에 있는 조그만 건물은 성철(1912~1993) 스님이 10년 수행했던 적묵실입니다.

 

돌아다니지 말그래이

 

가파른 계단을 올라 5평 남짓한 적묵실 앞에 서 봅니다. 이 작은 방에서 성철스님은 1955년 동안거부터 1963년 동안거까지 10년 동안 그 유명한 장좌불와長坐不臥 수행을 했습니다.(주1) 흔히 8년 수행 또는 10년 수행이라고 엇갈리게 말하는데 따지고 보면 둘 다 맞는 말입니다. 당시 헐어서 일부 썩은 성전암을 수리하고, 암자 주변에 철조망을 둘러친 다음, 들락날락하며 성철스님을 시봉했던 법전(1925~2014) 스님은 이렇게 회고합니다.

 

성철 노장께서는 늘 수좌들에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당부했다.(주2)

 

성철스님은 실로 의미심장한 말을 아주 단순하게 말한 것입니다. 단순하지만 이 한마디에는 알맹이가 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사람을 수행시키는 힘이 느껴집니다. 적묵실 앞에 서면 아득한 세월을 가로질러 성철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사진 2. 성철스님이 10년 동안 수행했던 적묵실.

 

“돌아다니지 말그래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 많이 돌아다닙니다. 어떤 단어는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생명력이 강해지고 주술적 의미마저 지니게 됩니다. 진정성 있고 귀중하며 울림이 있는 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성장해 온 단어들입니다. ‘돌아다니지 말라’는 말은 정말 오래된 말입니다. 『숫타니파타』는 고타마 붓다(B.C.563?~B.C.483?)가 직접 제자들에게 베푼 말을 가장 소박한 형태 그대로 전하는 불경입니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수행자는 때가 아닌데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 정해진 때에만 탁발을 위하여 마을에 가야 한다. 때가 아닌데 나가 돌아다닌다면, 집착에 얽매이기 때문이다.(주3) 

 

사진 3. 성전암에서 수행하던 시절의 성철스님과 청담스님. 

 

수행자가 방일한 마음을 억제하고 오로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리 오래된 이야기라도 낡았다는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습니다. 서양에서도 이집트의 수도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방에 머물러라. 그러면 그 방이 너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주4)

 

말은 조금 달라도 뜻은 같은 말입니다. 동양이 금지형으로 말하고 있다면, 서양은 긍정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말이 선종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달마(6세기 초중반)의 입에서도 나왔습니다. 달마는 신격화되어 실제의 모습을 알기 어렵지만, 그가 한 말은 7, 8세기 중국 선종의 기본적인 입장이 투영되었다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달마는 이조 혜가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밖으로는 모든 인연을 끊고, 안으로는 마음에 헐떡거림이 없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 장벽과 같으면 가히 도에 들어갈 것이다.(주5)

 

모든 인연을 끊는다는 말은 ‘돌아다니지 말라’는 말과 그 뜻은 같다 하겠습니다. 한 번 산에 들어가면 다시는 나가지 않을 각오로 수행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8세기경의 선종 승려들이 불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잘 알려주는 『능엄경』에도 비슷한 말이 나옵니다.

 

헐떡거리는 마음을 쉬게 하라, 생각이 쉬면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다.(주6)

 

돌아다니지 않는 것,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 수행의 핵심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말들은 단순한 말이지만 문화적 축적이 거듭되면서 보통 말과는 급이 다른 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로 하고자 하나, 이미 말을 잊었네

 

일찍이 말단 지방관리직을 전전하다가 40세에 평택 현령을 그만둔 다음 고향에 은거하며 여생을 보낸 사람이 있습니다. 고향에 은거한 후 20여 년 동안 그는 돌아다니지 않고 밭 갈고 책 읽으며 가난 속에서 농부처럼 살았습니다. 다시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고 교류한 대상도 오직 농부뿐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도연명(365~427)입니다. 『남사』 열전 도연명전에 의하면 그는 굶주림으로 수척해져 드러누워 지내는 날이 많았다고 합니다.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꽃을 따다가

무심코 남쪽 산을 바라보네

산은 저녁 무렵이라 더욱 아름다운데

새들은 줄지어 보금자리로 돌아가네

이 생활 속에 참된 진리가 있어서

말로 하고자 하나, 이미 말을 잊었네(주7) 

 

도연명은 국화꽃을 따다가 무심코 남산을 바라봅니다. 해가 질 무렵 산은 더욱 아름다운데, 새들은 무리를 지어 둥지로 돌아갑니다. 도연명은 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문득 무념의 경지를 체험하고 아집에서 벗어난 순전한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경험한 것을 말로 하고자 했을 때 무념의 그 경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시에서 어려운 부분은 ‘말을 잊었네[忘言]’라는 한 단어뿐입니다. 아마도 도연명은 『장자』를 통하여 ‘망언’이라는 경계를 알았을 것입니다.(주8)

 

사진 4. 정선, 유연견남산도悠然見南山圖(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망언의 경계란 결국 언어와 생각을 잊는 것이고 나를 잊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생생하게 야생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도연명이 맛본 경계입니다. 이 시는 평범한 일상의 언어로써 깊은 인생철학을 이야기합니다. 도연명처럼 평온한 문화 인격의 사람은 대중들이 좋아하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평범한 시골 농가에서 높고 아득한 경지를 만들어냈으니 실로 대단한 시인입니다.

 

도연명이 죽고 600년이 지난 후 송대, 특히 소동파(1037~1101)에 의해서 도연명의 진정한 가치가 알려집니다. 소동파는 「여자유서與子由書」를 통하여 “이백과 두보도 도연명만 못하다.”라고 말하면서 “만년에 그의 깊음을 배우고자 한다.”라고 칭송하였습니다.

 

자신을 잊는 경지에 이른 시를 하나 더 소개하겠습니다. 일본 조동종의 개조로 불리는 도겐(道元, 1200~1253)의 시입니다. 도겐은 불법을 전하고자 하는 사명감에 불타서 『정법안장正法眼藏』 95권을 저술했습니다.

 

나는 무엇에

세상과 인생을 비교하면 좋을까요?

달그림자에,

이슬방울 속의 달그림자가

물새의 부리를 스칠 때(주9)

 

도겐은 덧없는 세상에서 덧없는 사물과 함께합니다. 덧없음을 슬퍼하지 않고 자신도 덧없는 사물과 함께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유쾌하게 흘러갑니다. 이슬방울 속의 달그림자가 물새의 부리를 스치는 찰나의 순간, 거기에는 이미 자기라고 부를 만한 어떤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내면성이 없는 무아로부터 솟아난 것입니다. 선시는 이처럼 존재의 놀라움을 섬광처럼 드러내면서 거기에 불성이 나타나게 합니다.

 

암자의 겨울은 빨리 옵니다. 성전암도 장작을 준비하고 연통을 달고 겨울 채비를 마쳤군요. 내려다보면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저 멀리 주차장이 보입니다. 올라오는 길은 역경이라 힘들지만 내려가는 길은 순경이라 수월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고, 그것은 역경이라 힘든 일입니다. 『고경』에 글을 쓰면서 한 번도 ‘이걸로 됐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삼 년 칠 개월 동안의 연재를 마치면서 이제 이 사람도 한번 먼 산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동안의 성원과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각주>

(주1) 원택스님 엮음, 『이 길의 끝에서 자유에 이르기를』, 조계종출판사(2013).

(주2) 종정 법전, 『누구 없는가』, 김영사(2009).

(주3) 『숫타니파타』 386.

(주4) 엠마누엘 융클라우센, 『예수 기도 배우기』, 성바오로출판사, 2011.

(주5) 『景德傳燈錄』(大正新脩大藏經), 卷第三, 第二十八祖 菩提達磨, “爲二祖 說法秖教曰 外息諸緣 內心無喘 心如牆壁 可以入道.”

(주6) 『楞嚴經』 第四卷, “狂性自歇,歇即菩提.”

(주7) 陶淵明, 『陶淵明集』, 飲酒詩之五,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주8) 『莊子』 外物篇, “筌者所以在魚,得魚而忘筌,言者所以在意,得意而妄言.”

(주9) 道元, 『傘松道詠集』, “世中は何にたとへん水鳥のはしふる露にやとる月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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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1976년 시). 전 대구시인협회 회장. 대구대학교 사범대 겸임교수, 전 영신중학교 교장.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저서로 『보물찾기』(시와시학사, 2000), 『납작바위』(시와반시사, 2012), 『글쓰기 노트』(집현전, 2018) 등이 있다.
jtsu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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