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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손가락 사이]
지옥에서 쫓겨난 어둠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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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  /  2020 년 4 월 [통권 제84호]  /     /  작성일20-05-28 16:09  /   조회7,55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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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 / 시인. 영남대 교수 

 


 

지옥에 동백이 피었습니다, 송이송이 지옥을 

두 손 들고 찬송합니다 

지옥에도 목련화가 집니다, 송이송이 지옥을 

두 팔 걷고 내다버립니다

봄이 끝나면 그곳으로 주소를 옮길까 합니다 

땅값이 오르기 전, 집 한 채를 사서 

지옥을 잘 지키겠습니다 

설마 그곳에도 불성이 있겠지요

제가 출가를 하겠습니다 

뒷산에다 절을 짓고, 철새에게 백팔배를 가르칠 겁니다 

돌들에겐 목탁 치는 법을, 밭 가로 흩날리는 비닐들을 끌어 모아, 

참선에 몰두토록 하겠습니다

이만하면 지옥도 불국토라 할 만 하겠죠?

아, 그러면 

저 극락이 설 자리는 또 어디인가요?

청도 운문사 내원암 가는 길에

도랑가로 내려가, 물고기 스님 세 분에게 묻는다

물속을 왔다 갔다, 금새 돌 밑으로 숨고

아무도 응대하지 않는다

불멸의 침묵이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구름도 몸이 무거워 밑바닥으로 내려와 눕는다

지옥도 짐이고, 극락도 짐이란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란다 

들 것에 실려 떠나는 생각을 본다

내 생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로 

떠나가는 그림자를 보았다

삭발한 허망을 붙들고 우는 신발을 쳐다보았다

지옥에서 쫓겨난 어둠이 터벅터벅 천국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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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
영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영남대 철학과 졸업, 일본 츠쿠바(筑波)대학에서 문학석사・문학박사 학위 취득. 전공은 양명학・동아시아철학사상・문화비교. 동경대, 하버드대,북경대, 라이덴대(네덜란드) 객원연구원 및 방문학자. 한국양명학회장 · 한국일본사상 사학회장 역임했다. 저서로 『노자』, 『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일본판, 대만판, 중국판, 한국판), 『동양철학자 유럽을 거닐다』, 『상상의 불교학』 등 30여 권이 있고, 논문으로 「원효와 왕양명」, 「릴케와 붓다」 등 200여 편이 있다.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6권의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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