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산책]
‘아미타불’ 한 구절이 왕생의 인연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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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기 / 2019 년 11 월 [통권 제7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296회 / 댓글0건본문
백원기 /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 문학평론가
조선 중후기 부휴 선수-벽암 각성-취미 수초의 법맥을 잇는 백암 성총(1631-1700)은 선문과 교학을 두루 섭렵한 종장이다. 성총은 『정토보서』 서문에서 "염불이 모든 방편 가운데 최상"이라고 언급했는데, 『백암정토찬』은 그의 이러한 사상을 기반으로 한 구도와 깨달음의 서정을 잘 담아내고 있다.
아미타불은 대서원의 방편으로 삼계의 중생들을 서방정토로 이끌어주신다. 하지만 중생들의 믿음은 늘 한결같지가 않아서 부처님의 원력이 아니고서는 정토에 이르기가 지극히 어렵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하다. 믿음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설법을 듣고 이해함으로써 생겨난다. 서방정토에 계시는 미타불의 넓고 깊은 원력에 대하여 성총은 이렇게 찬탄하고 있다.
설법 들으니 미타불의 원력 깊어서 聞說彌陁願力深
십겁이 지나도록 해조음을 펴셨다네 邇來十劫演潮音
새소리 바람소리 모두가 법을 펴고 鳥吟風籟皆宣法
땅에 펼친 연못 모래 모두 금이라네. 地布池沙盡是金
중생이 귀 기울이면 언제든 들을 수 있고 믿음이 서는 순간, 눈앞에는 정토의 세계가 펼쳐진다. 두두물물의 소리가 법음이고, 금모래가 흐르는 팔공덕수 연못에는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 있다. 이러한 정토세계에 대한 찬탄은 다음의 시에서 한층 더 구체적이고 아름답게 묘사된다.
구슬로 누대 전각을, 옥으로 숲을 만들고 珠爲臺殿玉爲林
사람은 순일한 양기요 땅은 황금이네 人是純陽地是金
꽃비는 하염없이 밤낮없이 내리고 있으니 華雨長飛無晝夜
바람 구름 어찌 다시 청음이 있겠는가. 風雲那復屬晴陰
정토의 아름다운 세계가 구슬로 만든 누대 전각, 옥으로 만든 숲, 인간은 순일하고 양기가 넘치며, 황금 대지에는 꽃비가 하염없이 밤낮으로 내리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 세계는 바람이 강하거나 구름이 끼는 일이 없는 늘 밝고 청정한 안락국이다. 이런 정토에 계시는 아미타불의 중생구제의 서원은 넓고 깊을 뿐이다. 여기에서 선문이냐 염불문이냐는 따질 필요가 없다. 모두가 다 한마음에서 비롯된 차별상이니, 그 마음 거둬들이면 달처럼 환한 부처님의 금빛 얼굴뿐이다.
역내에는 둥글게 금빛 세계 이루었고 域內圓成金色界
미간에는 언제나 백호광이 빛나도다 眉間常燭白毫光
티끌 마음 잠시라도 놓으면 곧바로 왕생하여 塵心暫放能超入
일미인 제호醍醐를 곧바로 맛보리라. 一味醍醐下口甞
아미타불의 금색 원만상의 미간 백호광은 중생의 무명을 없애주려는 듯 언제나 찬란한 빛을 발한다. 하여 잠시라도 번뇌의 티끌[마음]을 내려놓으면 즉시 왕생하여 오직 한맛인 ‘성불’이라는 최상의 감로차[제호醍醐]를 맛볼 수 있음을 설하고 있다. 오직 부처님만을 생각하여 그 부처님 국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마음을 항상 지속할 때의 마음을 ‘염불심’이라 한다. 다음의 시는 세외지심世外之心으로 살아가는 성총의 염불 행도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인연 따라 처소 따라 스스로 편안하며 隨緣隨處自安閑
나무아미타불 염송하며 박산향로 마주하네 口誦南無對愽山
창에 비치는 저녁 햇살 물거울에 젖어들고 日晏窓明涵水鏡
비 내린 후 푸른 봉우리에 푸른 연기 어울리네. 雨餘峯翠理烟鬟
“인연 따라 처소 따라 스스로 편안”하다는 것은 분별심을 떠난 경지를 말해준다. 분별심을 여읜 화자는 비 내린 고즈넉한 저녁, 박산향로를 마주하며 염불삼매에 빠져 있다. 박산은 바다 위에 있는, 신선이 산다는 전설상의 산이다. 박산이 부조된 향로에서 피어오른 한 줄기 향은 석양에 물든 산봉우리를 엷게 물들인 푸른 연기와 비슷하다. 탈속한 산승의 염불하는 모습, 박산향로의 한 줄기 향, 그리고 비갠 뒤 산봉우리에 피어오른 푸른 연기는 실로 한 폭의 동양화이다. 이러한 정경의 이미지는 곧 성총의 정신세계를 그대로 함축하고 있다. 성총의 미타행자로서의 삶은 염불을 끝낸 후에 몇 모금의 차로 정신을 맑히는 데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바위 여울에 비 내리니 패옥의 울림 있고 岩溜雨添鳴珮玦
골짜기 솔바람 소리 풍류가락처럼 들리네 壑松風颭聽鉤韶
아미타불 염송을 마치고서 彌陁念誦纔休罷
떠온 물로 차 달여 몇 모금 들이키네. 汲水煎茶飮數瓢
화자는 바위 여울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패옥[귀걸이]의 울림인 듯하고, 골짜기의 솔바람 소리가 천상의 선율인 듯 염불소리와 더불어 유장하게 흐르는 것으로 감응한다. 그리고 선정에서 깨어나듯 아미타불 염송을 마친 화자는 솔향기 그윽하게 스민 계곡물로 차를 달여 마신다. 즉, ‘조주의 차’가 부럽지 않은 청정명다淸淨茗茶로 선정에 드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성총은 이행문易行門의 가르침이 있으니 오랜 세월 동안 고생하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염불수행에 힘써 다음 생까지 기다리지 말고 현생에서 왕생하기를 권하고 있다.
보배 나무 바람 이니 온갖 음악 울려 나고 風鳴寶樹千般樂
황금 연못에 향내 퍼지니 무성한 연꽃 피네 香散金池百葉花
세인들에게 받들어 권하노니 예념에 힘써 奉勸世人勤禮念
이생에서 꼭 도달하여 어긋나지 않도록 하세. 此生須到莫蹉跎
숲에는 염불하는 가릉빈가 날아다니고 林飛念佛頻伽鳥
바람 불면 수레바퀴 같은 연꽃이 향기를 풍겨 오네. 風動如輪菡萏香
이치는 본래 생사가 없거늘 어찌 가고 옴이 있으리. 徃理本無生安有
그대가 돌아가고자 한다면 공연히 바빠지리라. 君須歸去即奔忙
화자는 서방정토의 아미타불과 상서로운 광경에만 마음 뺏기지 말고, 또한 아무리 연꽃 향기가 그윽하더라도 스스로의 마음을 관조할 것을 설파하고 있다. 생사란 본래 따로 있지 아니하여 찰나 멸하고 찰나 생하는 그 마음속에 달려있는 것, 생사의 분별심을 떠나고 나면 가고 옴이 어찌 있을 것이며 서방정토는 어디에 있을까? 하여 화자는 “그대가 돌아가고자 한다면 공연히 바빠지리라”며 분별심을 버리고 내 마음속의 정토를 찾으라고 설하고 있다.
하늘에선 밤낮으로 하늘 꽃비 내려오고 空中晝夜天華雨
귓가엔 시시때때 설법 음악 떠들썩해 耳畔時常法樂豗
부처님 찬탄하시는 소리 진실로 간절하니 我佛讃揚誠苦口
중생들 어찌 귀의하지 않으리. 중생안得不歸哉
남녀와 노소도 분별하지 않는데 休論老幼并男女
어찌 존비와 빈부를 가리겠는가 豈揀尊卑與富貧
재삼 다짐하노니 정녕코 다른 교설 없네 三復丁寧無別說
아미타불 한 구절이 왕생하는 인연 되네. 彌陁一句徃生因
서방정토에 계신 아미타불은 자금색紫金色 단정한 모습으로 중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한없는 보배로운 빛이 중중무진으로 펼쳐지지만 부처님의 상호에서 빛나는 백호 빛은 그중에서도 뛰어나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남녀노소, 존귀와 비천함,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귀의하지 않고 사바세계를 살아가는 중생들에게 왕생의 인연을 맺는 것은 오직 하나 ‘아미타불’일 뿐, 정녕코 다른 교설은 없다고 설한다. 성총의 이러한 정토관은 연못에 피는 백련은 끝내 물든지 않음을 역설하는 시에서 명징하게 나타난다.
참된 법에 도취된 마음으로 의혹의 그물 없애고 醉心眞法除疑網
두 손 모은 높은 담론으로 오만한 기를 꺾는다네 拜手高論折慢幢
연못 위의 백련은 끝내 물들지 않으니 池上白蓮終不染
이생에 저 피안을 넘으면 이름 짝할 자 없어라. 此生超彼號無雙
화자는 한 입에 서강의 물을 다 마실 듯 탕탕 무애하여 금방이라도 일대활로一大活路를 열어 보일 듯한 선문보다, “저 피안을 넘으면 이름 짝할 자 없다”며 의혹의 그물을 없애는 ‘참된 법’인 정토문이 훨씬 더 수승함을 역설하는 압권의 시이다. 한편, 성총은 조사들 모두가 정토로 귀의한다는 정토로써 선을 섭수하는 정선불이淨禪不二의 경향을 숨김없이 나타내고 있다.
흐르는 물 향기로운 차는 참된 도의 맛이고 活水香茶眞道味
파란 하늘 밝은 달이 우리 절집 가풍이라 靑霄白月是家風
선의 길 외에 다른 한 길 별도로 열어 보이니 別開一路禪乘外
조사마다 모두가 정토에 귀의하네. 祖祖皆歸淨土中
선가에서 흐르는 물과 향기로운 차는 참된 도의 맛이라 했고, 파란 하늘의 밝은 달 역시 깨달음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깨달음을 향한 선 수행 외에 다른 한 방편 별도로 열어 보인 것이 정토문이다. “조사마다 모두가 정토에 귀의”한다는 언급에서 보듯이, 젊은 시절 탕탕 무애한 선지로 구도와 깨달음을 추구했던 성총은 자성미타 유심정토의 입장에서 나이 들어 정토를 우위에 두고 선문을 받아들이는 ‘정선불이’의 수행관으로 나아간 모습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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