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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인욕, 어디까지 참을 것인가 알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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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7 년 9 월 [통권 제5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16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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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보시하기 어려움을 토로한 참에 육바라밀을 다시 생각해보니, 어느 하나 어렵지 않은 것이 없다. 그중에서도 인욕이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시에는 주는 기쁨이 따르고 선정에는 고요한 기쁨이 따른다. 이런 덕목들은 행하면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데 반해 참고 견디는 건 그 자체로 괴로운 일이다. 또한 무턱대고 참으면 되는 건지, 그게 아니라면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몇 가지 전적에서 인욕에 관한 대목을 찾아보았다.

 

우선 『불교사전』에서는 인욕을 “욕됨을 참고 어려움을 견디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욕됨은 남에게서 받는 모욕을 뜻한다. ‘인욕’의 ‘욕(辱)’ 자가 말해주듯, 주로 모욕을 참는 것이 인욕이다. 어려움은 질병, 재난, 폭행 등을 말한다. 몸으로 참든 마음으로 참든, 참는 일이 어렵다는 건 건장한 조폭의 팔뚝에 새겨진 ‘인(忍)’ 자를 봐도 알 수 있다.

 

『금강경』에 따르면, 이생에 모욕을 받는 건 전생에 지은 악업 때문이라고 한다. 지은 악업의 정도로 보아서는 큰 고통을 치러야 마땅하나 『금강경』 사구게(四句偈)를 지닌 덕분에 멸시천대 당하는 정도로 때운다는 것이다. 그런 줄 알고 모욕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라는 말씀이다. 한발 더 나아가 ‘나’라는 생각이 없어지면 참을 일도 없다는 것이 이 경의 가르침이다. 모욕 받을 내가 없으니 참을 일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가리왕에게 몸을 갈기갈기 찢기면서도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약자 어린이 임산부 그리고 하근기 중생은 따라할 수 없는 경계이다.

 

이번에 맡은 알바 덕분에 보게 된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에도 부처님이 인욕을 닦던 이야기가 나온다. 이 경에서 부처님은 길고 긴 윤회에 종지부를 찍은 존재로서 그동안 겪어왔던 자신의 과거 이력을 들려준다. 부처님도 성도하기 전까지 수많은 역경계를 만났고 그 경계들을 잘 겪어내고 도를 이루셨다. 전생을 훤히 보는 신통력으로 어느 전생에서 누구와 누구로 만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다 기억하셨다. 마왕 파순에게 해코지를 당할 뻔한 일도, 부인 야수다라에게 혼인 전에 무시를 당한 일도, 지난 생의 사연을 다 알기 때문에 기꺼이 감내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같은 눈을 갖지 못한 우리에게는 한참 먼 이야기다.

 

지난번에 맡은 알바 덕분에 보게 된 『능엄경』 「정맥소」에서는 인욕바라밀을 여섯 단계로 소개한다.

1. 화가 가라앉지는 않았으나 보복하지 않는다[力忍].
2. 아량으로 상대를 용납하고 없는 듯이 욕된 곳에 처한다[忘忍].
3. 돌이켜 자기를 꾸짖고 남을 탓하지 않는다[反忍].
4. 안팎으로 나와 남이 모두 꿈같은 줄 통달한다[觀忍].
5. 나의 참는 힘이 성취되었음을 기뻐한다[喜忍].
6. 상대의 어리석음에 연민을 느껴 제도하겠다고 발원한다[慈忍].

 

앞의 두 경에 비해 단계별로 시설된 자상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맞닥뜨리는 사건에 적용하기엔 너무 높아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근기 박약한 나 같은 중생은 첫 단계부터 딱 막힌다. 화가 가라앉지 않는 건 물론이고, 보복하지 않고 참으려니 힘이 든다. 보복할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 다만 보복할 힘이 없고 뒷감당 안 돼서 보복하지 못할 뿐이다. 두 번째도 그렇다. 당한 주제에 상대방을 용납할 아량이 있다면 그건 기만이다. 자기 탓으로 돌리는 세 번째 단계는 잠시 편리한 방책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잘 녹이지 못했을 때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내내 마음을 괴롭힌다. 네 번째 단계부터는 공(空)을 터득한 보살의 경계이니 더 말해 무엇 하랴.

 

당하고 갚아주지 못한 기억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을 끄집어내자면 이런 일이 있었다. 어렸을 적에 다른 아이에게 맞고 들어온 날이 있었다. 나는 원래 몸집이 작고 말라서 누가 봐도 만만한 먹잇감이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맞을 때의 굴욕감은 상당했다. 집에서 오빠에게 맞은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맛이었다. 바깥에서 상처를 받으면 집구석으로 퇴각하는 게 인지상정인지라, 집으로 달려와 엄마를 보자마자 울면서 일러바쳤다. 그러나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때린 아이 집으로 따지러 가기는커녕, 등신같이 맞고 들어왔다며 나를 나무라셨다. 맞은 것도 속상한데, 나를 위로하고 대신 싸웠어야할 엄마가 그런 식으로 나온 게 더 충격이었다. 세상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아픈 교훈을 얻었을 뿐이다. 다만 이제 와서 엄마의 나무람을 억지로라도 좋게 해석해보자면, “네 문제는 네가 알아서, 참지 말고 즉시 대응하라”는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래야 앞으로 살아갈 험한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지킬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렇게 살지 못했다. 속절없이 당하고 할 수 없이 참은 일들이 훨씬 많다. 특히나 모욕은, 참기도 어렵지만 잊기는 더 어렵다. 당한 것도 속 쓰린데, 당했을 때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욱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기를 들들 볶으면서 ‘참지 말고 그때 이렇게 해줬어야 하는 건데’를 복기한다. 처리되지 못한 울분에 번뇌를 더해 복수를 꿈꾼다. 처음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시작한 상상이 어느새 ‘눈에는 심장, 이에는 간’이 된다. 그럴수록 점점 자괴감만 깊어간다.

 

사람들은 어떻게 참고 사는지 궁금하다. 지위가 낮고 힘이 약할수록 당할 일이 많고, 당하고도 가만있으면 또 당하는 것이 실제 세상이다. 그래서 경전의 고매한 말씀보다 “참으면 병이 된다”는 요즘의 속설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렇게 너무 참으면 병이 되고, 다른 한편 참지 못하면 사고를 친다. 3년 전에 군대에서 일어난 두 건의 끔찍한 사고를 기억할 것이다. 병장 하나가 총기를 난사하여 사람을 죽인 일이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병 하나가 갖은 학대를 당한 끝에 목숨을 잃은 일도 있었다. 그래서 “못 참으면 임병장, 참으면 윤일병이 된다”는 말이 돌았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어디까지 참을 것인가, 참으로 정하기 어려운 문제다.

 

너무 참고 살아서 울화병이 된 나는 아직도 불쑥불쑥 일어나는 화를 어쩌지 못한다. 오늘도 모기한테 한 방 물린 데 복수심을 품고 목욕탕 휴지 한 통이 다 젖는 걸 개의치 않고 샤워기 물을 세게 쏘아서 기어코 그놈을 잡고 말았다. 그리하여, 한 평생 살아보고 내린 결론은, 참을 수 있으면 잘 참되, 무조건 참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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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불교학을 전공하였고, 봉선사 월운 스님에게 경전을 배웠다. <선림고경총서>편집위원을 역임했고 『승만경』, 『금강경오가해설의』, 『송고백칙』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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