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밥에서 평등, 법에서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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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8 년 1 월 [통권 제57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067회 / 댓글0건본문
한 해가 저물어간다. 올해도 경을 읽는 것으로 밥을 먹고 살았다. 실은, 그전에 2년 동안 『능엄경』에 푹 빠져 있던 터라, 새로 맡은 일로 이런 저런 경을 보는 중에도 『능엄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친구들과 『능엄경』을 다시 읽게 되었고 이제 첫 부분을 지났다. 이 경은 아난이 특별초청을 받고 나갔다가 혼자 돌아오는 길에 여자한테 홀리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왕의 초청을 받아 궁에 들어가서 대접을 받는 동안, 아난만 따로 나갔다가 사달이 난 것이다. 경에 따르면, 그의 평등심이 문제의 발단이었다고 한다.
아난은 바리때를 들고 마을을 지나 돌아오는 길에, 걸식을 하되 아직 시주를 하지 못한 자에게 복 지을 기회를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깨끗한 이든 더러운 이든 관계치 않고 계급이 높든 낮든 가리지 않고 차례로 걸식을 하고자 했으니, 평등한 자비를 행하려는 뜻이었다. 그 전에 아난은, 수보리와 가섭이 걸식 때문에 부처님께 혼이 난 일을 알고 있었다. 두 분은 무려 아라한과를 얻은 성인들이다. 그런데 수보리는 부잣집만 골라서 걸식을 했고 가섭은 가난한 집만 골라서 걸식을 했다. 수보리는 가난한 사람의 형편을 생각해서 그리 했고, 가섭은 가난한 사람일수록 복을 지어줘야겠다는 마음에서 그리 한 것이다. 모두 배려에서 나온 행동이었으나 부처님은 그러지 말라고 나무라셨다. 나무라신 말씀이 ‘무차(無遮)’, 가리지 말고 평등하게 밥을 빌어먹으라는 말씀이다. 가난한 집만 가면 위선을 떠느라 그러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 있고, 부잣집만 가면 맛난 음식만 찾는다는 비방을 살 수 있다. 부처님은 두 제자를 꾸짖어 평등심을 유지시키는 한편, 의심과 비방을 동시에 막아주셨다. 아난은 대선배님들이 이렇게 혼나는 것을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평등자비를 시행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그가 밥을 빌러 다니던 모습을 그려본다면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한다.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38권에서 부처님이 가전연에게 걸식하는 법을 가르쳐주신 게송이다. 너무 길어서 중간 중간 생략하고 옮겨본다.
마을에 들어가 밥을 빌 때는
이것저것 보느라 홀리지 말지니
탐낼 만한 것들에 무심하다면
집착할 일 없어져 해탈하리라
마을에 들어서면 조용히 서서
집집마다 차례대로 밥을 빌어라
다닐 때는 실없이 웃지 말고
남에게 말을 걸 땐 예의를 갖춰라
발우를 들고서 밥을 빌러 다닐 때는
말솜씨가 좋더라도 입을 다물라
받은 밥이 적다고 불만을 품지 말고
밥을 베푼 사람에게 욕하지 마라
밥을 얻었다면 최고로 좋겠지만
얻지 못했어도 성을 내진 말아라
양편에 똑같이 평등한 마음으로
나무 밑에 가져와서 편히 먹어라
밥에서도 평등, 법에서도 평등. 이래서 불교가 참 멋있다. 그러나 이렇게 훌륭한 법문에도 내 마음은 불편하다. 걸식이 중요한 수행법이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이런 말씀들을 나에게도 적용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보다는 걸식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건 아무래도, 내가 밥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밥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밥을 받는 사람들이 나를 낳고 기르신 부모였기에, 마음을 예쁘게 가지려고 애를 써봤다. 그분들을 위해 식사를 마련하는 건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 세뇌를 시켜보기도 했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고 나를 다독여보기도 했다. 그러나 허사였고, 하는 내내 불행했다. 하기 싫은 건 하기 싫은 거니까. 생각하기 전에 몸이 벌써 아는 일이다. 그래서 경을 읽을 때 도를 닦는 스님들에게 감정이입이 되기보다는 밥을 지었을 여자들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얼마나 수고가 많았을까. 그러나 이들에 대해서는 별 말씀 없으시다.
모든 경에서 부처님이 매번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이 있다. ‘관찰’과 ‘사유’, 잘 살펴보고 곰곰이 생각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매일같이 밥을 해야 하는 사람의 처지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찰하고 사유했을까. 쇠털같이 많은 날들을 밥하는 데 종사한 사람의 자격으로 말한다면, 앞에서 말한 평등은 제한된 평등이다. 도를 닦는 그룹에서 남자 스승이 남자 제자에게 해주는 말이다. 그래서 그분들이 수다원이건 아라한이건, 내 눈엔 밥 안 해도 되는 게 제일 부럽다. 삼시세끼 먹고 치우기. 이 고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 평화학자 정희진의 말을 들어보자.
“여성이든 남성이든 세상 그 누가, 이 권력을 포기하겠는가. 식사준비의 번거로움, 귀찮음, 먹는 사람의 평가, 남은 음식과 치우기 걱정은커녕 아예 그런 발상 자체와 무관한 삶. 누가 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권리와 ‘마음의 평화’, 자유를 포기하겠는가.”(『정희진처럼 읽기』, 정희진, 교양인, 2014)
이 책에서 저자는 로잘린드 마일스가 쓴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녀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만일 남자 요리사였다면 열광하는 추종자를 거느린 성인이 되어 그를 기념하는 축일이 생겼지 않았을까’였다. …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그 많은 설거지는 누가 했을까?’이다.”
하루에 설거지를 한 번 이상 하면 그날 인생이 억울한 사람으로서, 그녀의 말에 공감한다. 그래서 부처님이 그 옛날 인도에서 나신 것이 나에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동네에서 나셨더라면 걸식을 나오셨을 테고, 우리 집 문을 두드렸을 테고, 그때마다 불편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부처님. 남편이 밥 달랄까봐 겁나서 결혼도 못했거든요.”
이제는 밥을 안 해 먹고 산 지 벌써 몇 년 되었다. 집에는 냉장고가 없다.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가사노동에 쓰는 시간이 두 달에 한 시간쯤 되려나. 남는 시간에 멍을 때리든 독립운동을 하든, 그건 온전히 내 시간이다. 이렇게 놓여나고 보니 해탈이 따로 없다. 세상 누구든,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하기 싫은 걸 하지 않을 자유가 누구에게나 있다면, 그곳을 평등한 세상이라 하겠다. 자유와 평등. 이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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