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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불세출의 딴뜨라 요기 밀라레빠 수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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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4 년 12 월 [통권 제140호]  /     /  작성일24-12-05 12:58  /   조회1,11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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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뿌르나 써키트(Annapurna Circuit)는 안나 산군山群을 크게 한 바퀴 도는 트레킹 루트이다. 토롱라Thorong La(5,416m)라는 아주 높은 고개를 넘어야 하고 또한 힌두교의 8대 성지의 하나로 이름이 높은 묵티나트Muktinath(3,760m)도 참배할 수 있는 순례길이다. 그러나 전체 일정이 보름 정도 소요되는 장도長途라 도전하기에는 순례자로서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사진 1. 마낭에 위치한 밀라레빠 수행동굴(둥근 원) 위치도.

 

마낭마을의 밀라레빠 동굴

 

모든 트레커들이나 순례자들은 이 써키트의 어느 코스를 택하든지 마낭Manang(3,540m)이란 마을에서 숨고르기를 하게 마련이다. 이 마을에서 바라보는 안나 연봉連峯의 일출은 가히 장관이다. 매일 안나뿌르나 남봉南峯만 바라보면서 지내고 있는 필자에게는 지척에서 안나 여신의 귀한 뒤태를 바라본다는 것은 또 다른 ‘설산멍’이어서 가끔 틈만 나면 마낭으로 발길을 옮기게 된다. 특히 오늘같이 특별한 화두 ‘밀라레빠 만나기’를 들고 오는 경우 그 기분은 더욱 각별하다. 

 

사진 2. 마낭마을에서 바라보이는 안나뿌르나 3봉(7,555m)의 웅장한 모습과 필자.

 

불세출의 딴트라 요기 밀라레빠Milarepa(1052~1135)는 말년에 이곳의 한 동굴에서 6년 동안 폐관 수행을 하였다. 그곳은 4,100m의 높이라서 브라가Bragha 마을에서 다리를 건너 이정표를 따라 한참이나 벌판을 횡단하다가 산을 올라야 한다. 중간쯤에 하얀 초르뗀과 암자가 있고, 더 오르면 목적지인 2개의 동굴이 나타난다. 

 

또한 암자에서 유심히 바라보면 절벽에 매달려 있는 활(弓, Bow)도 볼 수 있는데, 그 활은 사냥꾼 께라(Kera Dorjee)가 사슴을 쫓다가 사냥질[殺生]을 방해하는 밀라레빠에게 쏘았다는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밀라레빠는 자신에게 화살을 쏜 사냥꾼에게 살생의 인과율因果律을 노래로써 가르쳤다고 한다. 지금껏 전해 오는 이른바 ‘사슴의 노래’이다.

 

사진 3. 밀라레빠에게 화살을 겨누고 있는 사낭꾼(붉은 선 안).

 

나는 먼저 그대를 위해 모든 성취한 존재들께 기도드립니다.

그대는 인간의 몸을 가졌지만,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대가 지은 5가지 악업惡業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바랍니다.

 

귀신의 모습을 한 죄 많은 사람이여!

비록 그대가 이생의 쾌락을 갈망할지라도

그대가 쌓은 까르마 때문에 결코 그것들을 얻지 못할 것이나

만약 그대가 삿된 욕망을 버린다면

그대도 위대한 성취를 얻을 수 있습니다. (중략)

이 사슴을 죽이지 않으면 그대는 기쁘지 않겠지만

대신 그대 안에 있는 5가지 악업을 소멸시키면

그대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이런 사연을 보고 들은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여 이 노래는 설역雪域 하늘로 퍼져 나갔다. 그의 목소리는 맑고, 투명하고, 아름다워서 듣는 이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고 한다. 현대언어로 새기자면 그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성적인[Uni-Sex] 그런 목소리였다고 여겨진다.

 

사진 4. 마낭 밀라레빠 공원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밀라레빠 초상.

 

밀라는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기에 그의 아명兒名이 ‘밀라-또빠가Topaga’라고 불렸는데, 이름 자체가 ‘듣기에 즐거운’이라는 것을 보아도 밀라의 성악적 재능을 엿볼 수 있다고 하겠다. 또한 밀라레빠는 장성해서는 당시에 유행하는 도하dohas(즉흥적인 노래)의 형식을 빌려 수많은 노래를 불러서 음유시인으로 유명해졌기에. 그의 노래들은 설역 민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밀라레빠의 십만송(The Hundred Thousand Songs of Milarepa)』이란 미디어로 재탄생하여 현재 전 세계적으로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밀라레빠의 생애, 지옥에서 천당으로

 

자신의 재산을 빼앗은 친척들을 모두 죽인 희대의 살인마에서 번뇌 끝에 발심하여 티베트 최고의 딴트라 요가 성자로 거듭난 그의 삶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밀라레빠는 티베트 서부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노래를 잘 부른다는, ‘밀라-또빠가Topaga’라는 아명으로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냈다. 하지만 그가 일곱 살 때, 부친의 죽음으로 인해 그들 가족에게 검은 구름이 몰려왔다. 원래 그의 부친은 임종시에 어린 아들을 돌봐 달라고 이모와 삼촌들에게 모든 재산을 위임하였다.

 

사진 5. 브라가 다리 건너편에 있는 밀라레빠 동굴Milarepa cave 표지석.

 

그런데 그들이 재산을 가로채고 돌려주지 않고 오히려 밀라 가족을 거리로 쫓아내었다. 이에 분노에 찬 어머니는, “만약 네가 검은 흑마술黑魔術을 배워 나쁜 친척들에게 복수를 해주지 않으면 차라리 나는 지금 자살하겠다.”고 협박조의 애원을 하였다. 이에 착한 아들은 정말 집을 떠나 고생 끝에 흑마술을 배워 많은 친척들을 모두 죽이고 원수를 갚았다고 한다. 그러나 후에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로 번민의 나날을 보내다가 마침내 올바른 정법을 배우기 위해 세상을 떠돌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인도에서 ‘나로육법(Naro六法)’이란 새로운 요가술법을 배워서 티베트로 돌아온 마르빠Marpa의 소문을 듣고 어렵게 그의 제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지은 살인자로서의 까르마Karma를 정화하기 위해 스승으로부터 많은 시련과 학대를 견디어 내고 마침내 ‘나로육법’의 최대 난관인 ‘뚬모Tummo(Yoga熱) 술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사진 6. 밀라레빠 동굴 입구(좌). 사진 7. 극영화 <밀라레빠> 포스터. 부탄의 영화감독 네뗀 촉링Neten Chokling 작품(우).

 

그리하여 45세가 되어 고향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어머니는 잡초가 무성한 집에 백골로 남아 있었고 여동생은 구걸을 하며 떠돌이로 살고 있었다. 이에 밀라는 어머니의 백골을 수습하고 바로 마을 근처에 있는 드라카르 따소Drakkar Taso 동굴에 들어가 거적 한 장을 걸치고 수행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9년 만에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마하무드라Mahamudra를 성취한 성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 후로는 레빠repa(하얀 무명 옷을 입은 사람)로서 남은 여생은 이른바 보림保任 기간으로, 그의 가족에게 불행을 초래한 이모와 친척들을 용서하였다. 이후 그는 주로 설산의 동굴을 전전하며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의 직계 제자 중의 한 명인 짱뇬 헤루까Tsangnyön Heruka가 기술한 『밀라레빠 전기』에 의하면, 밀라레빠는 “인도로 가거나 인도인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티베트에서 태어나 깨달음을 얻은 티베트적인 붓다”로 평가하고 있다.

 

사진 8. 중국에서 열린 <밀라레빠 전시회> 포스터.

 

혹자는 밀라가 삼사라Saṃsāra(無常)의 고통, 죽음의 확실성과 죽음에 대한 불확실성, 우리의 어리석은 행위의 직접적인 결과가 두려운 환생으로 나타난다는 등의 불교의 기본 가르침을 잘 가르치고 있다고 하면서 결국 밀라레빠의 삶 자체는 살인자도 부처가 될 수 있는 좋은 본보기를 보여 준다고 평가를 하고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밀라레빠의 삶은 굴곡 많은 생애 자체에서 최고의 성취자로 우뚝 선 인간 승리도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현대 티베트 불교의 메이저 종단인 까규빠Kagyu school의 탄생을 낳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 대목도 불교사적 측면에서는 큰 위업으로 꼽을 수 있다고 보인다. 레빠로서의 은둔생활을 즐겨하는 밀라는 제자들을 찾아다니지는 않았지만 성취자로서 그의 오로라는 몇몇 제자들을 모여들게 만들었다. 그중 까규빠 종파를 여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감뽀빠Gampopa(1074~1153)에 의해 다음 대에 이르러 까규 혈통의 4대 분파가 설립되었다.

밀라레빠가 84살이 되었을 때 독이 든 우유를 마시고 입적하기 전에 읊은 열반송은 그의 굴곡 많은 삶처럼 역설적인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

 

사진 9. 밀라레빠의 일생을 그린 탕카.

 

완전한 고독 속에 영원한 친구가 있고

가장 낮은 자리에 가장 높은 자리가 있고

서두르지 않는 곳에 가장 빠른 길이 있고

온갖 목적 버리는 데 가장 순수한 목적 있다네.

 

은밀한 길 걸으면 첩경이 생기고

공空을 깨달으면 자비가 생기고

자타분별 사라지면 남을 도울 수 있고

남을 돕기에 순수하면 나를 만나게 되리니

나를 만나면 붓다의 경지 성취하리라.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김규현
현재 8년째 ‘인생 4주기’ 중의 ‘유행기遊行期’를 보내려고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로 들어와 네팔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틈틈이 히말라야 권역의 불교유적을 순례하고 있다.
suri11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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