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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 사막이 숨긴 불교미술관 ]
막고굴 화엄경변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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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  2025 년 8 월 [통권 제148호]  /     /  작성일25-08-05 12:29  /   조회20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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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불은 고행과 선정을 경험하고 마침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正覺]을 이루었다.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국의 태자로 태어난 그가 출가하여 보살의 여정을 거쳐 깨달은 분, 곧 여래가 되었다.   

『화엄경華嚴經』의 본래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mahā vaipulya buddhā gaṇḍavyūha sūtra)』이다. ‘위대한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를 설한 경전’이라는 뜻이다. 여래는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 적멸도량에서 깨달음을 이룬 후 처음 7일간은 보현보살 등을 위하여 깨달은 바를 설하였다. 여래가 출현한 후 깨달음을 설했던 시간과 장소가 곧 『화엄경』의 무대인 것이다.

 

여래의 지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 모든 시간에 두루 미치며, 차별 없이 모든 존재에게 평등하게 작용한다. 여래의 몸은 모든 세간에 가득 차 있다. 또한 여래의 음성이 시방세계(동서남북과 상하)에 두루 퍼지니, 마치 허공이 만물을 담고 있지만 모든 경계에 차별 없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과 같다. 여래의 존재에 대한 설명은 6세기 중엽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법결의경像法決疑經』에 담겨 있다. 이 경전은 중국에서 불신관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이른 경전이다. 다음은 『상법결의경』에 있는 문구이다. 

 

법신은 허공과 같아 분별分別되지 않으며,

무상무애하여 법계에 두루 있는 것을 본다.

 

이 문구는 60권 『화엄경』 「세간정안품世間淨眼品」에 기록된 시기대범천尸棄大梵天 게송에서 차용한 것이다. 중국불교는 본격적인 유식학의 발전과 더불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 시기에 새로이 법화法華와 화엄華嚴 사상을 받아들임으로써 중국적인 사고방식으로 변용된 불교가 점차 원숙한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사진 1. 용문석굴 대노사나상감(당 675년). 『世界美術全集』(小學館).

 

『화엄경』은 북위의 불타발타라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으나, 유식학이 기반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지루가참의 『불설도사경』, 지겸의 『불설보살본업경』, 축법호의 『보살십지경』 등 단편적인 내용의 경전이 일찍부터 중국에 번역되어 유행하였다. 이후 동진(418∼421) 시대에 와서 불타발타라에 의해 번역된 60권 『화엄경』과 당 측천무후 집정시기였던 699년 실차난타에 의해 번역된 80권 『화엄경』이 이 시기에 간행된 대표적인 불교 경전이다. 특히 80권 『화엄경』은 중국불교에서 화엄학이 전성기를 맞이하였음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경전으로 이후 동아시아 불교를 대표하는 주요 경전으로 자리 잡았다. 

 

화엄사상의 원대한 세계관을 조성하다

 

7세기 후반 가장 주목되는 불상은 봉선사동奉先寺洞으로 유명한 용문석굴의 대노사나상감大盧舍那像龕이다. 이 불감은 용문석굴 조상 중에서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주불인 노사나불은 크기가 약 17m에 달한다.

 

하락 상도의 용문산 남쪽에 있는 대노사나상감에 대한 기록, 대당 고종 천황 대제가 창건한 것이다. 불신과 통광, 대좌 등 전체의 높이는 85척, 2존의 보살상은 70척, 가섭과 아난, 금강신왕상은 각각 50척이다. 생각하건대, 함형 3년 임신년 4월 1일에 황후 무씨가 지분전(화장품 값) 2만 관을 희사하였다. 검교승인 서경 실제사의 선도 선사와 법해사의 혜간 법사, 대사 사농시경 위기, 부사 동면감 상주국 번현칙, 지료장, 이군찬, 성인위, 요사적 등이 칙령을 받들어 상원 2년 을해년 12월 30일에 불감을 완성하였다. 조로 원년 기묘년 8월 15일에 칙령을 받들어 대상의 남쪽에 대봉선사를 건립하였다.(주1)

 

사진 2. <화엄경변상도>, 오대五代, 돈황 천불동 제12굴 북벽(平丹社).

 

대노사나상감에는 7존의 화불이 표현되었고, 가섭과 아난 등 제자들이 협시하고 있다. 그러나 노사나불로 기록된 내용과는 다르게 석가모니불의 도상을 갖추고 있다. 이는 『화엄경』에서 석가모니불이 정각을 이루자 노사나불과 일체가 되는 것을 설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대노사나상감은 고종과 측천무후가 초국가적인 존재로서의 노사나불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조성한 것이다.

 

화엄경칠처구회도華嚴經七處九會圖

 

그렇다면, 돈황 막고굴에서는 과연 <화엄경변상도華嚴經變相圖>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막고굴 <화엄경변상도>는 당대唐代에 15점, 오대五代에 6점 등 총 29점을 돈황문물연구소에서 보고하고 있다. <화엄경변상도>는 막고굴에서보다 중원에서 먼저 출현하였다. 성당盛唐(705∼780) 시대에 제44굴의 <화엄경변상도>가 처음 그려진 것임을 볼 때, 법장法藏(643~712)의 칠처도七處圖(708)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이는 다른 정토변상도에 비해 비교적 늦은 시기에 출현한 것이다. 특히 ‘칠처구회七處九會’라는 구도 형식으로 막고굴의 <화엄경변상도>가 고착화되어 간 것은 대체로 당(618∼907)·오대五代(907∼960)에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오대 시기 이후에는 점차 쇠퇴하였으며, 소수의 변상도가 제작되기도 하였다. 

 

사진 3. <화엄경변상도>, 제12굴 부분도.

 

연화장세계도蓮華藏世界圖

 

만당晩唐 시기에 조성된 막고굴 제12굴 북벽의 <화엄경변상도>는 함통 10년(869) 전후에 색씨索氏 가문 공덕굴로 조영되었다. 12굴의 주실에는 8폭의 경변상도가 벽면에 장식되어 있다. 그중 북벽 좌측에 칠처구회도가 그려져 있다. 화면의 하단에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대연화大蓮花를 배치하였다. 12굴은 연화장세계와 수미산이 도상에서 가장 크게 부각되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화엄경』에서 드러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를 대표한다. 경문에서는 1회 중에 연화장찰해蓮華藏刹海를 설하는 「화장세계품」이 있고, 수미산의 정상(「승수미산정품」, 「수미정상게찬품」 등)에서 제3회 설법(도리천궁회)이 이루어진 것을 반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진 4. <화엄경변상도>, 제12굴 연화장세계도.

 

경전에서 서술하는 <연화장세계>는 맨 밑에 풍륜風輪이 있고, 그 위 향수해香水海에 연꽃이 떠 있다. 이 연꽃에 티끌 수만큼 많은 세계가 그물처럼 얽혀 세계종을 구성하며, 그 가운데 각각의 부처가 출현한다. 비로자나불은 그 입과 치아에서 광명을 발하여 티끌 수 같이 많은 세계해를 두루 비춘다. 저 세계의 보살 대중들이 모두 이 광명 속에서 비로자나불의 정토인 연화장세계에 대해 깨달음을 얻는 『화엄경』의 우주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진 5. <화엄경변상도>, 오대, 돈황 천불동 제117굴(61굴). 『敦煌石窟10』(文化出版局).

 

막고굴의 <화엄경변상도> 칠처구회는 아홉 칸 격자에 구획을 나누고 각각의 설법도를 그렸다. 이는 80권 『화엄경』 7처 9회를 표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9회의 각 설법회의 구성은 <화엄경변상도> 마다 다소의 차이를 보인다. 막고굴 제8굴이나 제102굴 <화엄경변상도>와 비교할 때, 3점 모두 하단의 중앙공간인 1회의 설법 장소를 보리도량회, 즉 석가모니불이 정각을 이루신 자리로 배치하였다. 1회 보리도량회(적멸도량)는 화장세계해의 바로 윗자리이자 9칸 중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1회의 특징은 산세가 받치고 있는 형세로 수미산을 나타내며, 여기에는 대체로 수미산 정상과 맞닿은 3회 도리천궁회가 자리한다. 제1회에서 비로자나불 좌우에는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있는데, 두 보살의 경우 비로자나불보다 작은 천개를 갖추고 있다. 설법을 듣는 다른 제보살의 광배는 간단한 원형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본존불을 향해 합장하고 있다. 

 

사진 6. <화엄경변상도>, 오대, 돈황 천불동 제102굴(76굴). 『西域美術』(講談社).

 

이중에서 제2회와 제7회, 제8회의 모임이 보광명전普光明殿에서 중복되기 때문에 전체 모임은 9회가 된다.(주2) 지상의 세 곳은 제1회, 제2회, 제7회, 제8회에 거듭 모인 보광명전, 제9회 서다림회이다. 천상의 네 곳은 제3회, 제4회, 제5회, 제6회이며, 장소를 하늘로 옮겨 보살도를 강설한다. 제3회는 도리천궁에서 법혜보살이 설주가 되어 보살의 십주十住를 설하며, 제4회는 야마천궁에서 공덕림보살이 설주가 되어 십행十行을, 제5회는 도솔천궁에서 금강당보살이 설주가 되어 십회향十回向을, 제6회는 타화자재천궁에서 금강장보살이 십지十地를 설한다.

 

사진 7. <화엄경변상도>, 오대, 견본 채색, 크기 194×179cm.

 

지상의 3곳인 제2회, 제7회, 제8회의 모임 중 2회는 문수보살이 설주가 되어 믿음[信]을 설한다. 제7회는 다시 보광명전[보광법당중회]으로 내려와 보현보살이 주요 설주가 되어 등각等覺과 묘각妙覺의 계위에 해당하는 정각의 세계를 설하며, 8회는 역시 보광명전에서 보현보살이 설주가 되어 보살도를 총괄한다. 마지막으로 제9회는 서다림[기원정사]에서 보현보살이 설주가 되어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역참하는 과정을 통해 보살행을 제시한다. 즉 천상과 지상, 염처染處와 정처淨處를 구분하지 않고 두루 원만하게 융섭된 장소에서 붓다의 말씀이 전해진 것이다. 결국 일곱 장소에서 있었던 이 모임들은 석가모니불의 정각正覺의 삼매(Samādhi)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실제로 장소를 이동하면서 설했던 것은 아니다. 

 

오대五代(907∼960)에 조성된 막고굴 <화엄경변상도> 칠처구회의 배열은 여러 그림에 영향을 주었다. 제117굴(제61굴)이나 제102굴(제76굴), 제12굴, 제156굴 <화엄경변상도>의 경우 이러한 작례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 8. <화엄경변상도>, 오대, 견본 채색, 크기 194×179cm.

 

많은 경우 제1회 보리도량과 제3회 수미산정의 자리를 제외하고는 각 굴의 변상도에 따라 각기 조금씩 배치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제12굴의 경우에도 판독 가능한 화기의 내용으로 볼 때, 제3회가 수미산정상이 아닌 다른 곳에 배치되어 있다. 

 

막고굴 <화엄경변상도>는 방대한 경전의 내용을 시각화하여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통해 불타의 화엄세계를 보여준다. 아울러 비로자나불의 한없이 넓고 무한한 미진세계微塵世界에 광명光明을 두루 비추는 위대한 깨달음의 경지를 설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각주>

(주1) 陸蔚庭, 「龍門造像目錄」, 『大物』, 1961, p.108.

(주2) 『華嚴要決問答』 권1, 「七處九會」의 『韓佛全』 2,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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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동국대학교 및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수료,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동국대학교 연구교수, 창원대학교 외래교수, 경상남도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경상남도 전통사찰보존위원회 위원, 창원민속역사박물관 자문위원, 한국불교미술협회 회장, 한국교수불자연합회 감사 및 불교미술 작가로 활동 중이다.
seonhi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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