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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지리산 무쇠소 사찰음식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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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2025 년 10 월 [통권 제150호]  /     /  작성일25-10-03 17:39  /   조회51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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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무쇠소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입니다. 소처럼 묵묵히 땅을 일구는 성실함, 무쇠처럼 꺾이지 않는 의지, 지리산처럼 깊고 넉넉한 품이 그 안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수행자의 원력이자, 전통을 이어가려는 굳센 마음의 표현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리산 무쇠소를 기억하는 것은, 강철 같은 정성과 자연 같은 너그러움으로 삶을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되새기는 일일 테지요.

 

발효의 향기, 스님의 유산

 

지리산 자락에는 오래도록 바람과 구름, 풀잎과 새소리가 엮어낸 고요한 기운이 흐릅니다. 그 기운을 온몸으로 품으며 수행의 길을 걸어간 한 스님이 계셨고, 세상 사람들은 그분을 지리산 무쇠소라 불렀습니다.

 

소는 예부터 땅을 갈고 씨앗을 품어내며 사람을 먹여 살린 존재였습니다. 묵묵히, 한결같이, 제 몫을 다하는 삶의 상징입니다. 그 이름 앞에 ‘무쇠’가 붙은 것은, 흔들리지 않는 강철 같은 의지와 꺾이지 않는 정진의 발걸음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고단한 세월도, 수많은 시련도, 무쇠소의 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지리산 무쇠소가 법호가 된 스님은 바로 쌍계총림 방장 고산 큰스님이십니다. 강직한 수행자다운 성품과 강한 의지에서 유래한 별명으로 수행과 불법에 반하는 일에 대해 단호하게 맞서며 붙여진 이름입니다. 

 

사진 1. 산갓물김치.

 

지리산智異山은 예로부터 지혜와 기이한 이치를 품은 산이라 불립니다. 불가의 큰 스승들이 모여든 도량이자, 수많은 이들의 기도가 쌓여 온 산입니다. 그 산의 품에 안겨 ‘무쇠소’라는 이름은 더욱 깊고 넓은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지리산 무쇠소는 자연과 수행, 인내와 원력이 한데 어우러진 상징입니다. 흙을 가꾸듯 사람의 마음을 일구고, 물러서지 않는 힘으로 전통을 이어내며, 산의 기운처럼 넉넉하게 세상을 품는 뜻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지리산 무쇠소’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단한 의지와 성실한 삶의 길을 되새기는 일입니다. 소처럼 묵묵히, 무쇠처럼 굳세게, 지리산처럼 깊고 넓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그 이름 하나가 고스란히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햇살을 머금은 쌍계사 장독대

 

코로나 시국에 그야말로 숨을 쉬고 싶어서 찾았던 곳이 지리산이었고, 그곳에서 마주한 지리산 자락 쌍계사 마당, 장독대 위로 햇살이 내려앉던 날이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합니다. 고산스님을 처음 뵌 곳은 스님께서 열반하시기 2년 전, 된장 향이 은은히 번져 오르는 부천 석왕사 공양간 옥상이었습니다. 지팡이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의지하시며 옥상으로 안내하시는 스님의 뒷모습을 보며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시려는 스님의 마음이 헤아려지는 듯 뭉클함이 밀려왔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스님은 나즈막히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사진 2. 연장아찌.

 

사찰음식은 발효를 떠나서는 말할 수 없어. 발효는 흙과 바람, 햇살과 사람의 정성이 함께 빚어내는 도반이야. 장독대는 수행자의 또 다른 선방이지. 나물의 향은 욕심을 부리지 않을 때 가장 깊게 배어난다네. 오래 두고 먹는 음식일수록 마음도 오래 써주어야 해.

 

장독대는 수행자의 또 다른 선방이라는 말씀은 아직도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 이렇게나마 스님을 기억할 수 있어서 감사하기만 합니다. 나물은 철 따라 사라지고 곡식은 금세 소진되지만, 발효는 세월과 더불어 깊어지며 삶을 지탱합니다. 고산스님께서는 발효란 조리법이 아니라, 무상과 기다림을 품은 수행의 길이라는 말씀으로 사찰음식의 기본을 전해 주셨습니다. 사찰음식을 연구하고자 마음을 낸 연구자의 입장에서 우리 몸에 이로운 음식에 진심이셨던 고산 큰스님의 음식철학은 경經, 율律, 논論 삼장을 습득하시며 깨달은 또 다른 장르의 한가지였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자필로 남기신 음식 일기로 많은 가르침을 남기셨습니다.

 

혜원정사 전통내림 사찰음식전수관

 

세월이 흘러 스님은 열반에 드셨고, 저는 인연 따라 부산 혜원정사 사찰음식전수관의 전임연구교수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고산 큰스님께서 남기신 사찰음식 요리법을 함께 연구하고 체험하고자 마음을 낸 수많은 수강생들과 차근차근 발효의 꽃을 피우고 있는 중입니다. 혜원정사는 고산스님께서 불사하시며 원력을 세운 도량입니다. 햇살 아래 장독이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을 바라볼 때면, 스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듯합니다.

 

사진 3. 고산 큰스님.

 

메주는 하늘이 빚고, 장은 사람을 지킵니다. 발효는 세월이 만든 자비입니다. 발효는 기다림의 미학이며, 정성과 마음만이 최고의 요리법입니다. 재촉하지 않고, 온전히 맡기며 기다릴 때 비로소 음식은 약이 됩니다.

 

부산 혜원정사에는 대웅전 바로 옆으로 ‘지리산 무쇠소’라고 씌어 있는 고산혜원 큰스님의 유물전시관이 있습니다. 고산스님의 상좌이신 원허스님의 원력으로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아직도 제자는 스승을 극진히 모시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은사스님께서 아직도 그곳에 기거하며 살고 계시는 듯, 존경과 사랑이 묻어나는 공간이었기에 마음이 따스해짐을 느꼈습니다. 전시된 유품 이외에 다른 유품들은 수장고에 정성껏 보관하시며 한국불교의 역사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사진 4. 고산스님의 사찰음식 일기.

 

고산스님의 사찰음식 일기장

 

사찰음식이 국가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사찰음식의 원형을 복원하고 발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부산 혜원정사는 고산 큰스님의 뜻을 받들며 율사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도심 사찰로서 회주 원허스님과 주지 진일스님께서는 불자님들의 신행을 이끌어 주시며 혜원정사를 지켜오고 계셨습니다. 그러다 지난 8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 불교박람회에 혜원정사가 첫 나들이를 하게 된 셈입니다. 나흘 동안 열린 불교박람회에서 혜원정사는 처음으로 고산 큰스님의 자필 요리책을 대중에게 선보였고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고산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살아오신 여러 스님과 불자님들이 다녀가셨고 함께 사셨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시니 그 또한 사찰음식의 가치를 더욱 돈독하게 지켜주시는 듯하여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시는 원로스님들의 말씀을 들으니, 스님의 사찰음식 일기장이 이 시대에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진 5. 고산스님의 자필로 쓴 송이버섯요리.

 

심행일장몽心行一場夢  식심즉시각息心卽是覺

몽각일여중夢覺一如中  심광조대천心光照大千

 

고산스님은 이 오도송을 통해 마음이 일으키는 모든 작용, 즉 번뇌와 망상이 결국은 한바탕 꿈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음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을 멈추고 쉬게 하는 것, 즉 고요한 상태가 바로 진정한 깨달음의 순간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꿈’과 ‘깨달음’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달았을 때, 내면의 참된 마음[心光]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춘다는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외부의 대상을 쫓지 않고, 자신의 본래 마음을 찾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의 길임을 보여주는 선禪의 정수를 담은 게송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좋고 싫고, 옳고 그르다며 아등바등하는 모든 생각과 감정들이 결국에는 꿈처럼 덧없다는 뜻입니다.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신기루와 같다는 거죠.

 

사진 6. 혜원정사 사찰음식전수관.

 

열반에 들기 2년 전에 스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인연으로 큰스님의 사찰음식 일기장은 당신만 간직하려 했던 비밀 노트가 아니라 사찰음식의 소중함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기록한 유산임을 깨달았습니다. 수려한 필체로 시원시원하게 세로로 쓰여진 고산 큰스님의 사찰음식 일기장을 넘기며 다짐합니다.

 

그리고 새벽을 가르며 서울에서 부산까지 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을 강의하러 갈 때마다 기도를 합니다. 고산 큰스님께서 기록해 두신 혜원정사의 전통내림음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사실은 기쁨이자 두려움입니다. 표고버섯 장아찌에 스님의 세월을 담고, 녹차죽에 지리산의 향을 담으며, 두부 위에 고요히 내려앉은 차향 속에서 스님의 미소를 얻어 여러분께 전하려 합니다. 햇살 아래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을 바라보니 어디선가 스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을 통해 여러분께 전합니다. 

 

사진 7. 혜원정사 회주스님과 사찰음식 수강생들.

 

녹차죽

 

【 재료 】 (4인 기준) 

 

쌀 1컵(찹쌀을 조금 섞으면 부드러움이 더해짐), 마시고 남은 녹차 잎 5~6g(또는 말린 잎 차 2큰술), 물 6컵, 소금 약간.

 

【 만드는 법 】

 

1. 쌀 불리기: 쌀은 깨끗이 씻어 30분 정도 불린 후 체에 밭쳐 물기를 뺍니다. 찹쌀을 함께 쓰면 죽이 더 고소하고 차진 맛이 납니다.

2. 녹차 우려내기: 냄비에 물을 넣고 끓입니다. 끓는 물이 잠시 식어 약 80℃ 정도가 되면 녹차 잎을 넣어 2~3분간 우리고, 건져 냅니다. 쓴맛이 나지 않도록 너무 오래 우리는 것은 피합니다.

 

3. 죽 끓이기: 우려낸 차 물에 불린 쌀을 넣고, 은근한 불에서 천천히 끓입니다. 바닥에 눌지 않도록 나무 주걱으로 저어가며 끓입니다. 쌀이 퍼져 알갱이가 부드럽게 풀어질 때까지 약 40분 정도 끓입니다.

4. 마무리: 간은 소금으로 아주 약하게 합니다. 그릇에 담아내고, 원한다면 위에 곱게 간 녹차 가루를 살짝 뿌려 향을 더할 수 있습니다.

 

표고버섯 장아찌

 

【 재료 】 (4인 기준) 

 

마른 표고버섯 10개, 간장 1컵, 물 1컵, 다시마 5cm 조각 1장, 감초 1쪽(선택), 매실청 또는 조청 2큰술.

 

【 만드는 법 】

 

1. 표고 준비: 마른 표고는 미지근한 물에 2~3시간 충분히 불린 후 물기를 꼭 짭니다. 생표고를 쓸 경우 깨끗이 씻은 뒤 살짝 데쳐 사용합니다.

2. 장물 끓이기: 냄비에 간장과 물, 다시마, 감초, 매실청을 넣고 끓입니다. 한 번 끓어오르면 다시마와 감초는 건져내고 식힙니다.

3. 절이기: 불린 표고버섯을 준비한 장물에 넣어 밀폐 용기에 담습니다. 하루 뒤 장물을 따라내어 다시 끓여 식힌 후, 다시 붓습니다. 이 과정을 2~3회 반복하면 깊은 맛이 납니다.

4. 숙성: 서늘한 곳이나 냉장고에서 7일 이상 숙성시키면 간장과 표고의 향이 어우러져 완성됩니다. 

 

TIP. - 표고버섯은 감칠맛이 깊고 단백질이 풍부해 사찰음식에서 자주 쓰이는 재료입니다.

- 장아찌로 담으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고, 밥반찬이나 죽·비빔밥에 곁들이기 좋습니다. 


차 두부무침

 

【 재료 】 (4인 기준) 

 

두부 1모(약 300g), 말차가루 또는 곱게 간 녹차가루 1작은술, 소금 약간, 볶은 참깨 1큰술, 들기름 몇 방울(선택).

 

【 만드는 법 】

 

1. 두부 준비: 두부를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면포에 싸서 수분을 충분히 뺍니다. 곱게 으깨 부드럽게 풀어줍니다.

2. 무치기: 으깬 두부에 말차가루와 소금을 넣어 고루 섞습니다. 볶은 참깨를 뿌리고, 원하면 들기름 몇 방울로 은은한 향을 더합니다.

3. 완성: 담백하면서도 차향이 은근히 배어든 두부무침이 완성됩니다. 사찰에서는 기름기를 줄이고 소금도 아주 약하게 해 본연의 맛을 살립니다.

 

TIP. 두부는 수행자의 단백질을 책임지는 음식이고, 차는 마음을 맑히는 도반입니다. 이 두 가지가 만나 몸과 마음의 조화를 이루는 법문이 됩니다. 고산스님 말씀처럼, “차는 정신의 법문이고, 두부는 몸의 법문이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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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궁중음식문화재단이 지정한 한식예술장인 제28호 사찰음식 찬품장이다. 경기대학교에서 국문학과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선학과 박사과정, 사찰음식전문지도사, 한식진흥원 교강사이다. 국가유산 조선왕조궁중음식연구원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식물기반음식과 발효음식을 연구하는 살림음식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논문으로 「사찰음식의 지혜」가 있고, 현재 대학에서 사찰음식과 궁중음식을 강의하며, 혜원정사 사찰음식 전수관 전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naturesw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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