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히말라야를 넘나드는 니번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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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5 년 10 월 [통권 제150호] / / 작성일25-10-03 18:40 / 조회156회 / 댓글0건본문
요즘도 외국인들이 육로를 통해 네팔과 티베트를 자유롭게 출입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봉쇄된 상태이기에 반드시 전문여행사를 통해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입·출국이 가능하다. 그래서 지난 세월 수십 년 동안 외국인은 이런 절차를 밟아 지정된 통로인 ‘잠무(Jammu, 章木)~코다리(Khodari)’ 국경을 통해 네팔에서 티베트로 입국할 수 있었다.
라수와디 다리를 건너 티베트로
그러나 2015년의 대지진으로 인해 이 도로가 유실되어 막혀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두 나라는 2년간의 공사를 통해 새로운 길을 뚫어 2017년 8월부터 통행을 재개하였다. 바로 현재의 국경인 ‘라수와디가리(Rasuwadigari)(주1)~케룽(Kerung, 吉隆县)’(주2)을 잇는 ‘제2의 우정의 도로’였다.

그런데 필자는 수년간의 노력 끝에 새로 뚫린 루트가 사실은 아주 유서 깊은 옛길이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아가 곧 개통한다는 외신을 접하고는 흥분에 겨워 쾌재를 불렀던 적이 있었다. 새로 개통된 이 루트가 바로 옛 ‘니번고도尼蕃古道’였다. 7세기 네팔의 브리꾸띠 공주가 투뵈[吐蕃]제국을 세운 송첸캄포 왕에게 시집가기 위해 티베트로 갔던 길이었다.
브리꾸띠 공주가 세웠다는 빡바 사원
그런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듯 티베트의 첫 마을인 케룽에는 네팔 공주가 세웠다는 빡바(Pakba) 사원이 자리잡고 있다. 두 나라의 화합을 상징하듯 네팔과 토번의 건축양식이 절충된 특이한 사원이다.
필자가 수미산 순례를 위해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케룽 시가지는 여전히 포근하고 인상적이었다. 다만 시가지 전체를 덮고 있다시피 한 붉은 오성기五星旗는 여전히 눈에 거슬렸다. 올해가 티베트가 중국에 점령된 지 60년이 되는 해라는 것을 생각해 보니 그 세월은 ‘우리의 36년’에 비하면 짧은 세월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이제는 티베트의 중국화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뵈(Bö, 蕃) 민족을 향한 짝사랑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기분 전환을 겸하여 발걸음을 옮겨 비가 내려 더욱 고즈넉한 빡바(Pakba) 사원으로 들어가 법당 주위를 3번 꼬라(Kora)를 돌고 나서 분향대焚香臺 앞에 서서 향나무 가루를 한 웅큼 집어넣는다. 그리고 허공으로 피어오르는 흰 연기를 바라보면서 나라 잃은 민족의 앞날을 위해 두 손을 모아 기도드렸다.
유서 깊은 니번고도
티베트로 가는 네팔 공주의 혼인길에 대하여는 티베트와 네팔 측의 기록은 그리 구체적이지 않다. 어떻게, 어떤 루트로 갔는지에 대한 중요한 팩트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가설假說을 공인된 역사로 확정하는 필요충분조건에는 우선 뒷받침되는 역사적 기록이 있어야 하고, 그다음으로는 고고학적 물증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니번고도가 “티베트 본토에서 히말라야의 고개를 넘어 케룽을 경유하여 네팔로 이어지는 옛길이다.”라는 명제는 현재까지는 물론 가설의 범주에 머물러 있으나 아래 제시되는 증거를 보강하면 역사적 기정사실로 다음 세대들에게 전해주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1990년 6월에 케룽현 종가진宗曷鎭에서 발견된 이른바 〈대당천축사신출명비大唐天竺使臣出名碑〉(주3)라는 7세기에 새겨진 금석 명문을 해석해 보면 니번고도의 실체는 명확해진다. 이 석비명에는 특히 의미심장한 구절이 보인다. 바로 필자가 오랫동안 애타게 찾던 대목으로 “현경玄京 3년 6월 대당좌효위 왕현책王玄策…”이라는 구절이다.

여기서 ‘현경’은 당나라 제3대 고종高宗 황제의 연호이므로 현경 3년은 658년이 된다. 왕현책의 3차 천축행의 연도와 맞아떨어지고 네팔 공주와 당나라 공주가 토번으로 시집온 해[639년, 641년]와 송첸캄포 왕[649년], 문성공주[679년], 고종황제[683년]의 사망 그리고 현장의 순례 기간[629∼645의 17년간] 등의 주변 연대기와도 부합한다.(주4) 이 대목이 의미하는 것은 “케룽을 통과하는 왕현책로王玄策路는 역사적 사실이고 니번고도와 겹쳐져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옛길은 불교의 전파로傳播路로써의 의미도 크다. 이 길로 빠드마삼바바[蓮花生大師]가 딴트라 밀교를 티베트에 전파하였고, 또한 오늘의 테마인 네팔 공주가 약쇼바 불상을 티베트로 운반하였고, 그녀를 따라 네팔의 고승 실라만주가 티베트로 들어갔고, 역시 인도불교가 광범위하게 소개되며 티송데쩬 시대에 티베트에서 불교가 제자리를 잡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네팔 공주의 혼례길
네팔 공주의 신행길을 더듬어 보자면 우선 7세기 당시의 설역고원을 중심으로 한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살펴보아야만 한다. 당시 고원에는 투뵈왕국의 제33대 짼뽀인 송첸캄포라는 불세출의 영웅이 출현하여 중원과 중앙아시아에 막강한 위력을 과시하던 때였기에 당나라가 정략결혼의 제물로 당나라의 공주를 토번으로 보냈다.

그러나 사실은 2년 전, 639년에 네팔 공주가 먼저 시집을 왔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브리꾸띠는 네팔의 리챠비(Lichhavi) 왕조의 암슈바르마왕(Amshuvarma, 605∼621)의 딸이었다고 전하고 있는데, 히말라야 너머로 세력을 뻗어오는 토번의 세력에 공주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팔의 고도 빠딴(Patan) 고궁광장에는 전해오는 설화가 있는데, 당시 브리꾸띠 공주의 수행원 중의 한 명이 ‘빔센 마하라지’의 화신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후 빔센사원에 모셔진 신상神像을 12년마다 티베트 라싸까지 모셔 갔다가 되돌아오는 축제를 반복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12년마다 브리꾸띠 공주의 신행길을 재현했다는 것인데, 그것마저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후 사라져 버렸다. 이는 라싸까지의 교역로를 개척한 사람이 바로 빔센의 화신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튼 정략결혼의 피해자가 된 꽃다운 공주는 까마득한 하늘 고갯길을 넘어가며 고비마다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각주>
(주1) 카트만두에서 서북쪽 145Km 지점에 있는 국경 마을로 랑탕자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주2) 티베트 중부의 중점도시인 시가쩨[日客則]에서 490Km 거리에 있는 국경마을로 히말라야의 남쪽 변경에 위치하며 7세기 중반 송짼감뽀가 전국의 군사 조직을 ‘오여五茹’로 개편할 때 ‘여랍茹拉’의 한 지부로 편입하였다. 그러나 중국령이 된 후에 잠무-코다리 국경은 활발하게 사용한 것에 비해 케룽 국경은 거의 폐쇄된 상황이었다
(주3) 이 석각은 케룽현에서 4km 거리에 있는 아와자잉산[阿瓦呷英山] 입구, 해발 4,130m 지점이다. 이 명문은 서북에서 동남향으로 뻗어 있는 절벽 중간에 8m 정도의 자연적인 너럭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그 가운데에 양각전서체陽刻篆書體로 〈대당천축사출명大唐天竺使出铭〉이라 새겨져 있다.
(주4) 네팔 공주와 당나라 공주가 토번으로 시집온 해[629~645]와 송첸캄포의 사망[649년] 문성공주의 사망[679년] 그리고 현장의 순례 기간[629~645의 17년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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