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과 도자기]
장인匠人, 손이 익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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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 2019 년 12 월 [통권 제80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9,344회 / 댓글0건본문
김선미 도예작가
내가 도자기를 하겠다고 마음을 굳힌 것은 우연히 들른 김제의 귀신사歸身寺에서 차를 한잔 대접받고서였다. 말차를 한잔 타 주셨는데 차보다도 찻그릇이 마음에 탁 와 닿았다. 단순하면서도 운치가 있고 기울지 않는 당당함이 있으면서도 소박한 느낌이 있었다. 저런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군더더기 없는 명료함과 어리숙함이 함께 들어 있었다.
누구의 그릇이냐고 물어보니 ‘문경의 천한봉 선생님’이라고 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문경에 그런 분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다완茶碗의 존재도 몰랐었다. 집에 온 후 계속 내 마음은 그 차 사발에 가 있었다. 인생에서 저런 그릇을 한번 만들어보면 후회가 없을 듯 했다.
다행히 인연이 닿았는지 선생님께서는 제자로 받아주셨다. 하시는 말씀이 도자기의 기술적인 것은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고 자기가 훈련을 해야 잘 할 수 있는 것이니 마음을 배워가라고 하셨다. 도자기집에서 기술적인 기법을 배웠다기보다는 선생님 말씀대로 개밥도 주고 과수원일도 하고 나무도 나르고, 가마 불을 때며 그릇을 손질하기도 하고 흙을 갈기도 했다.
‘천한봉 선생님 문하로 들어가다’
지금 생각하면 참 벅찬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침 첫차로 선생님 댁에 가면 이미 새벽 2시부터 작업한 그릇들이 작업장에 꽉 차 있었다. 아침 일찍 주흘산의 기운이 내려앉은 듯 상쾌한 바람과 문득 문득 고개를 들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
그러나 작업장 안은 숨쉬기조차 어려운 긴장감과 엄숙함이 있었다. 또 하루에 만들어 건조하여 굽까지 깎는 시스템이어서 봉당에 불을 뜨겁게 때서 고무신을 신으면 발바닥이 뜨거웠다. 공기도 진땀이 날 정도로 후덥지근해서 숨이 탁탁 막혔다.

선생님의 작업하는 모습(60페이지 사진)은 너무나 시원했다. 흙덩이를 올리고, 힘 있게 탁탁 두드리고, 빠르게 중심을 잡으면 금세 그릇이 뚝딱 나왔다. 손이 익었다는 것…. 너무나 멋진 모습이었다! 물레는 돌고 있고 마음조차 놓아 버린 손에선 어느새 그릇이 태어나고…. 손(59페이지 사진)은 익고 무심으로 그릇을 만들어내는 경지.
선생님은 올해 87세다. 16세에 시작해서 지금껏 한눈 안 팔고 그릇을 만들어왔다. 젊은 시절엔 하루에 800개의 그릇을 만들어 굽까지 다 깎았다고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저렇게 손이 익을 정도면 평생 몇 개의 그릇을 만들었을까. 계산조차 되지 않는다.
내가 처음 그 차 사발을 봤을 때 느꼈던 그 단순함과 엄숙함이 익을 대로 익은 손에서 무심으로 나온 거였다.
언젠가는 재미삼아 선생님이 그릇 만드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시간을 재본 적이 있다. 다완은 30초를 넘지 않았고 찻잔은 15초였다.
일본 작가가 와서 선생님 작업장에서 작업을 해 함께 불을 때는 과정을 일본 방송사에서 다큐를 찍고 있었다. 선생님의 익은 손은 마치 퍼포먼스같이 달인 그 자체였다. 작업 스타일이 다른 일본 작가는 10분이 넘도록 그릇을 주물럭거리고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고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고 있었다. 선생님은 뭐라 말하지도 못하고 한참을 지켜보다가 담배 태우시러 나가시던 것이 생각난다. 그리고 같이 작업한 작품을 불을 땐 후, 일본에서라면 일주일 후에 완전히 식은 다음 꺼낼법한데 선생님은 불씨가 다 꺼지기 전에, 몇 백 도는 되는 온도임에도, 수건으로 싸매고 들어가서 그릇을 꺼냈다. 선생님의 얼굴이 완전히 익어서 빨개져서 나오니 일본작가가 자신도 꺼내보겠노라며 수건을 싸매고 가마에 들어갔다. 십초쯤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얼굴은 탈 듯이 익어서 나 살려라하면서 뛰쳐나오던 모습이 선하다.
닳아버린 지문
다완이 일본에서는 다도에서 쓰이는 가장 중요한 물건이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선생님의 작품을 하나 소장하는 것이 다인들의 소원이다시피 했다. 일본에서 300여 회의 전시회를 했는데 늘 곤욕을 치르는 과정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입국 심사 할 때 지문을 찍는데 지문이 다 닳아버려 난감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언제 닳았는지도 모르게 닳아진 지문指紋. 언젠가는 지문뿐만이 아니라 손가죽이 다 닳아 피가 나는 것을 본적도 있다.
가끔 장인과 예술가의 경계를 생각할 때가 있다. 내 유전자는 장인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객관적인 구분이 어렵지만, 몸이 익었다는 것…. 그것은 참 숭고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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