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의 세계]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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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 2019 년 11 월 [통권 제7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151회 / 댓글0건본문
유근자 / 동국대 겸임교수 · 미술사
실크로드 … 만남
2016년 10월에 화엄사상의 근거지인 중앙아시아 호탄을 방문했다. 오늘은 경주 김씨의 시조 김일제, 백제의 흑치상지, 고구려의 고선지 장군의 발자취가 있는 기련산맥을 따라 돈황으로 가는 실크로드 여정에 나섰다. 실차난타스님이 번역한 80권의 <화엄경>은 호탄에서 구해왔다고 전해지는데 구마라집 스님의 고향인 쿠챠의 키질석굴에는 이 경전의 내용을 표현한 벽화가 남아 있다. 그림으로 표현된 가장 이른 시기의 화엄경 변상도라고 할 수 있다.
탐험이라는 가면을 쓴 서구 열강의 학자들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중앙아시아로 몰려들었다. 파키스탄을 거쳐 중앙아시아로 들어오는 관문인 카슈가르에는 영국과 러시아 영사관이 설치되었다. 중앙아시아를 방문하는 유럽의 여러 학자들은 영국과 러시아 영사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처음으로 중앙아시아 타클라마칸 사막을 탐험한 학자는 스웨덴의 지리학자 스벤 헤딘(Sven Hedin, 1865-1952)이었다. 중앙아시아의 무역로를 ‘실크로드’라고 명명한 라히트호펜F. Richthofen의 제자였던 헤딘은 스승의 영향으로 타림분지(타클라마칸 사막)의 탐험에 나섰다(제1 탐험, 1893-1897).
카슈가르의 러시아 영사 니콜라이 페트로프스키Nikolai Petrovsky는 헤딘에게 호탄에서 출토된 유물을 보여주면서 그로 하여금 호탄행을 결심하게 했다. 헤딘은 제2탐험(1899-1902)에 나서 수수께끼의 거대 호수인 롭 노르Lop Nor의 위치를 밝혀냈고, 이때 서역 남로의 유명한 유적지인 누란(樓蘭, Loulan)을 발견했다. 그러나 헤딘은 지리학자였기 때문에 유적지에 관한 관심은 별로 없었다.
헤딘 이후 중앙아시아 탐험에 나선 대표적인 인물은 조사의 명인名人 오렐 스타인(Marc Aurel Stein, 1862-1943)이었다. 고고학적 탐험가였던 그는 제1차 탐험(1898-1900) 때 단단 윌릭Dandān-Uiliq 유적지와 서역 남로의 호탄에서 옛 도시 유적지인 요트칸Yōtkan을 발견했다. 제2차 탐험(1906-1908) 때는 헤딘이 발견한 누란을 발굴했는데 스타인에게 정보를 준 사람은 카슈가르에 거주하고 있던 영국 영사 죠지 매카트니George Macartney였다. 그는 조사하고 발굴한 유적지에 관한 자료를 보고서로 발간해 후대 중앙아시아 연구의 초석을 마련했다. 그가 조사한 자료에는 화엄사상의 중심 사원지로 추정되는 호탄 라와크Rawak 사원지 불탑에 표현된 불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사진 1).
사진 2. 해인사 법보전 비로자나불상, 883년
불탑 표면에 부착되었던 불상의 광배에는 광명이 발사되는 것처럼 작은 불상이 가득 표현되어 있다. <범망경>에는 천개의 연꽃잎에 앉은 비로자나불의 터럭 한 끝에서도 무수한 부처님이 나타난다는 내용이 있는 것처럼 온 우주에 가득한 비로자나불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장 이른 시기 화엄사상을 나타내는 자료로서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는 실물은 볼 수 없고 스타인의 보고서에 실린 사진을 통해서 확인이 가능할 뿐이다.
법신불
해인사 주불전인 대적광전大寂光殿과 법보전法寶殿에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었다. 해인사가 화엄사찰이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비로자나불상이며, 팔만대장경이 있는 곳이 바로 법신이 머무는 곳이기 때문에 예부터 대장경이 모셔진 장경각藏經閣에는 주불로 비로자나불상을 봉안해 왔다.
쌍둥이 부처님으로 알려진 해인사의 두 비로자나불상은 새로 비로전을 건립해 함께 모셔놓고 있다(사진 2, 3). 883년에 조성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비로자나불상으로 각간 위홍魏弘과 진성여왕을 표현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헌강왕이 그의 조부와 조모를 추복하기 위한 목적에서 조성했으며 묵서명에 보이는 대각간大角干은 김계명金啓明이고 비妃는 그의 처인 광화부인光和夫人이라는 설이 새롭게 제기되기도 했다. 경문왕으로 이어진 왕실의 영원함을 기원하기 위해 해인사 비로자나불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비로자나불은 <화엄경>(80권본)의 주불로 ‘바이로차나Vairocana’는 부처님의 광명이 어디에나 비춘다는 의미인데 ‘비로자나’로 음역되었다. 뜻으로는 변일체처遍一切處, 광명변조光明遍照, 변조遍照 등으로 번역되었다.
이처럼 광명을 상징하기 때문에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대광명전大光明殿, 대적광전大寂光殿, 비로전毘盧殿이라 한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화엄경>과 밀교의 <대일정경>의 주불主佛로, 해인사의 경우 창건 당시 화엄종사찰이었기 때문에 주불전이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다.
좌우 협시는 석가모니불과 마찬가지로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실천행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이다. 삼신불三身佛일 경우는 법신法身 비로자나불의 좌우로 보신報身 노사나불과 화신化身 석가모니불이 배치된다. 조선시대 불상 가운데 삼신불상이 가장 잘 표현된 곳은 지리산 화엄사 대웅전 비로자나삼신불이다(사진4). 조선시대 불교조각 가운데 보신 노사나불이 보살형으로 표현된 유일한 예이다.
사진 4. 화엄사 대웅전 비로자나불상, 조선(1636년)
즉신성불을 상징하는 지권인智拳印
비로자나불의 가장 큰 특징은 수인手印에 있다. 오른손으로 곧추세운 왼손 검지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일반적인 비로자나불의 모습이다(사진5). 왼손 검지손가락을 끝만 잡기도 하고 전체를 감싸기도 하며 때로는 두 손의 손가락으로 깍지를 낀 듯하게 표현하는 등 그 모습은 실로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세부적인 형태는 다르지만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수인을 지권인(智拳印, Vajramudrā)이라 부른다. 가슴 앞에 두 손을 올려 지혜의 주먹을 쥐고 있다는 뜻이다.
두 손을 모아 하나로 합친 지권인은 중생과 부처님, 어리석음과 깨달음이 본래 하나라는 것을 상징한다. 밀교에서는 이러한 손 모양을 통해 진리를 즉시 깨우치게 하려는 것 즉 즉신성불即身成佛을 의미한다고 한다.
밀교의 주불인 대일여래大日如來는 왼손 검지를 세워 손가락의 첫 마디를 오른손 새끼 손가락으로 감싸고 있다고 경전에 서술되어 있다. 9세기 경에 우리나라에 유행한 지권인 불상은 화엄사상에 기반한 비로자나불로 볼 것인지, 밀교의 대일여래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경우 화엄사상에 바탕을 둔 비로자나불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우리나라의 비로자나불상은 766년에 지권인을 한 상이 지리산 자락의 석남암사에서 조성된 이후 다양하게 나타났다. 고려시대가 되면 비로자나불의 수인은 깍지 낀 형태인 권인拳印으로 변모되고 조선시대에는 권인(사진6)과 지권인(사진7) 등이 모두 표현된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산청 내원사 비로자나불
산청 내원사에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비로자나불상이 모셔져 있다(사진8). 아쉽게도 원 소재지인 지리산 자락에서 산청의 마을로 옮겨오면서 무게를 줄이기 위해 불상의 뒷면은 깎아내고 말았다. 화강암으로 조성되었지만 쉽게 부서지는 성질 때문에 법당 안의 불상은 현재에도 풍화가 진행되고 있다. 발견 당시 촬영된 사진 속의 부처님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현재는 부처님의 얼굴 표정은 잘 알 수가 없다.
사진 8. 산청 내원사 비로자나불상(원 석남암사 비로자나불상), 776년
766년에 조성된 불상으로 1990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2016년에 국보 제233-1호로 승격되었다. 불상의 대좌에서 발견된 사리호는 부산시립박물관에서 소장 중인데 국보 제233호로 지정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사리호와 세트라는 의미에서 국보 제233-1호가 되었다.
현재는 내원사에 봉안되어 있지만 원 소재지는 산청의 지리산 자락이었다. 산봉우리의 거대한 바위 위 절터에서 발견되어 마을로 옮겨졌다가 현 위치로 다시 이안移安되었다. 대좌의 중대석에서 발견된 사리호舍利壺의 표면에는 15행 136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영태永泰 2년인 766년에 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해 석남암사石南巖寺에 봉안한다는 내용이다. 불상을 조성한 목적은 죽은 자의 혼령을 위로하고 불상을 조성하는 공양승供養僧과 동참자들이 업을 소멸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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