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불교]
대흥사의 다맥茶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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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춘 / 2020 년 12 월 [통권 제92호] / / 작성일20-12-30 10:17 / 조회7,591회 / 댓글0건본문
대흥사에는 초의(1786-1866)선사를 비롯해 수명의 다승들이 있었다. 대흥사의 12대 강사였던 아암(兒菴, 1772-1811)과 그의 제자들, 대 강백이었던 완호(玩虎, 1758-1826)와 그의 제자 삼의(三衣. 호의, 하의, 초의를 말함)가 그들이다. 이들은 조선 후기 대흥사의 선다禪茶를 활짝 꽃피웠다. 특히 초의(사진 1,2)는 차에 밝은 제자들을 배출하여 선다의 전승을 이어주었는데, 그의 제자 중에 차를 만들었던 승려로는 서암(恕庵, ?-1876)과 월여(月如, 1824-1894)가 있고, 대승계 제자로는 상훈(尙薰, 1801-1885), 자흔(自欣, 1804-1875), 수홍(修洪, 생몰년 미상), 무위(無爲, 1816-1886), 범해(梵海, 1820-1896) 등이 있다. 이들 중 상훈과 자흔은 추사 김정희(1786-1856)에게 차를 보내 극찬을 받았던 다승茶僧이었다. 하지만 이들에 관한 자료로는 겨우 추사와 소치 허련(小癡許鍊, 1809-1892) 등이 남긴 시나 편지 몇 편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초의의 대승계 제자였던 범해는 차를 즐긴 수행자로, 여러 편의 다시茶詩를 남겨 자신의 차의 세계뿐 아니라 19세기경 대흥사의 음다 풍속, 초의의 제다법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그렇다면 범해는 어떤 인물일까. 이는 그 자신이 서술한 『동사열전』「자서自序」에 그는 호의縞衣의 제자라고 하였다. 그런데 삼의三衣는 서로 그의 제자에게 보살계 등을 포살하여 법맥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범해가 하의荷衣· 초의에게 참학參學했던 연유이다.
사진. 초의가 썼던 흑색 다관
그의 속성俗姓은 최 씨이다. 신라 명철明哲 최치원(崔致遠, 857~?)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강했다. 당시 사찰 내에서 불경 이외의 다른 외가서外家書를 읽은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유학儒學을 섭렵했던 이력을 가진 승려다. 그의 저술로는 『통감사기通鑑私記』와 『사략기史略記』 『동사열전東師列傳』 등 역사서뿐 아니라 『경훈기警訓記』 『유경경기遺敎經記』 『동시만선東詩漫選』 『사십이장경기四十二章經記』, 등을 남겼다. 근대에 대흥사 문중에서는 『범해선사유고』를 출판하여 세상에 반포했다. 앞에 열거한 저술의 규모에서 드러난 것처럼 경전과 역사서, 시문 등 다양한 부분에 관심을 가졌던 수행자였다.
사진2. 초의스님 영정, 김호석그림.
그의 차 생활 규모는 초의의 영향을 받아 「동다송」을 애송愛誦했으며, 초의의 차 만드는 법을 곁에서 봤던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대흥사의 다풍을 이은 승려였지만 초의가 이룩한 차 문화의 중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여력은 부족했던 듯하다. 이는 그가 차에 대한 이해나 열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근대로 이어지는 격변기 속에서 새로운 음다층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이는 시대의 한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서도 차의 가치를 노래한 다시茶詩는 근대 대흥사의 음다풍을 살필 귀중한 사료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그의 다시茶詩 중에서 차로 이질을 치료한 과정을 노래한 「다약설茶藥說」이 있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첫 잔을 마시니 뱃속이 조금 편안해지고 一椀腹心小安
둘째 잔을 마시니 정신이 또렷해지네. 二椀精神爽塏
서너 잔을 마시고 나니 온몸에 땀이 흐르고 三四椀渾身流汗
맑은 바람이 뼈에서 일어나는 듯하더니 淸風吹骨
상쾌하여 비로소 병이 없었던 듯. 快然若未始有病者也
「다약설茶藥說」
사진3. 응송 스님(오른 쪽)과 박동춘, 차 만드는 광경.
윗글은 『범해선사유고梵海禪師遺稿』에 수록된 시로, 그가 1852년 6월경 남암에서 수행할 때 지었다. 당시 그는 이질에 걸려 달포 간이나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당시 그의 전후 사정을 듣고 찾아온 인물은 부인富仁, 무위無爲이다. 마침 부인은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차를 끓여 범해에게 마시게 했는데, 이때 병이 사라져 가는 정황을 서술한 것이다. 그의 병은 대략 6월경에 발병했다. 그러므로 그는 1852년 6월 11일(음력) 하의荷衣의 열반으로 피로가 누적되었을 것이며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이었다는 점은 그가 설사병으로 거동할 수 없게 된 요인으로 작용되었을 것이다. 한편 차를 즐겼던 범해였지만 차를 보관해 두지 못한 연유는 무엇일까. 당시 대흥사 사중에는 차를 즐기는 다수의 승려가 있었지만, 차를 보관해 두고 즐길 정도는 아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그러기에 위급할 때 쓸 요량으로 보관해 둔 부인富仁의 차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범해의 「다약설茶藥說」은 당시 사중寺中에서는 소량의 차를 만들었던 정황을 드러낸 자료로, 조선 후기 사중의 경제력을 가늠할 수 있는 정보라 하겠다.
범해는 「다구명茶具銘」에서 그가 사용한 찻그릇을 언급하여 어떻게 차를 즐겼는지를 밝혔는데, 이는 그의 소박한 음다풍을 가늠하게 한다.
맑고 한가한 삶은 生涯淸閑
차 몇 말뿐이라 數斗茶芽
찌그러진 질화로를 준비하여 設苦窳爐
약하고 강한 불을 담았지 載文武火
질 다관은 오른 쪽에 瓦罐列右
오지 찻잔은 왼 쪽에 두었네 瓷盌在左
오직 차에만 힘쓸 뿐이니 惟茶是務
무엇이 나를 유혹하랴 何物誘我
위 인용문에서 범해의 차 살림 규모는 겨우 몇 말에 불과한 차를 소비했다는 것이다. 찌그러진 질화로는 그가 오랜 세월 차를 즐긴 다승이었음을 드러낸다. 더구나 차를 끓이는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문무文武의 화후이다. 이를 잘 이해했던 그였기에 차의 이론을 완벽히 이해한 다승이었음을 드러낸 언구言句라 하겠다.
특히 그에게 차 생활에 영향을 미친 초의는 동철銅鐵이나 납소鑞小로 만든 다관, 옹기 다관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일지암서책목록』에서 확인된다. 이외에도 백자 다기와 청에서 수입한 찻잔도 사용하였다. 그가 청나라 찻잔을 사용한 것은 추사의 영향 때문이라 짐작한다.
이러한 사실은 허련의 「추사난화도秋史蘭畵圖」에는 청나라에서 유행하던 채색 찻종으로 차를 즐긴 추사의 모습을 그려 당시 청나라 문예인과 교유했던 추사의 일상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므로 초의와 범해의 다구의 사용이 다른 것은 이들이 교유한 인사의 수준에 따라 달라졌던 것이다. 이 무렵 열악한 환경에서 차를 즐겼던 범해의 질박한 다풍은 당시의 흐름을 보여준 것이다. 시기마다 찻그릇의 규모는 다르지만 ‘오직 차에만 힘쓸 뿐이니惟茶是務/ 무엇이 나를 유혹하랴何物誘我’라고 했던 범해의 다풍은 선가의 담박한 풍습이 그에게 오롯이 전해졌음을 나타낸다.
그가 초의가 열반한 지 10여 년이 지난 1878년에 지은 「초의차草衣茶」는 초의가 어떻게 차를 만들었는지를 증언한 자료이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곡우에 穀雨初晴日
아직 황아 차 잎은 피지도 않았네 黃芽葉未開
깨끗한 솥에서 정성을 다해 덖어내 空鐺精炒出
밀실에서 잘 말리네 密室好乾來
측백나무 모나고 둥글게 찍어서 栢斗方圓印
죽순 껍질로 잘 포장했지 竹皮苞裹裁
단단히 간수하여 밖의 기운 막았으니 嚴藏防外氣
잔 가득 향이 피누나 一椀滿香回
사진4. 박동춘 차 덖는 모습.
윗글로 인해 초의가 만든 차는 덖음 방식의 산차散茶였음이 명증하게 밝혀졌다. 그뿐 아니라 초의는 생활 조건을 차용하여 차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밀실에 말리는 방법인데, 밀실은 온돌방을 말한다. 초의의 제다법은 범해를 거쳐 원응에게 전해졌고, 응송 박영희(1893-1990)로 이어졌다. 응송의 제다법(사진 3)에서 완성한 차를 뜨거운 온돌방에서 하룻밤을 재워 두는데, 이것이 바로 범해가 말한 ‘밀실에서 잘 말리네密室好乾來’라는 것이다. 응송의 제다법은 현재 그의 제자 박동춘(1953- )에게 전해져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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